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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31화 (430/434)

제431화

그림에선 일말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겉으로만 봐선 정말 그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그림 속 본체가 있는 곳이 지금의 공간과 차원이 다르다는 증거였다.

그림의 실체가 같은 공간에 있다면 서로의 존재가 느껴지겠지만, 실체가 다른 곳에 있다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그럼 상대는 이 그림 속에 숨어서 지금의 일을 벌였다는 이야기인가요?”

“내 결계를 정확히 말하자면 공간 조작 능력이야. 일반 헌터들 중에선 엄청난 힘이지만…… 상대가 사용 중인 건 내 능력보다 한 차원 높은 힘. ……바로 차원 조작 능력이야.”

차원 조작 능력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했지만 사실 그 능력은 여러 힘을 필요로 한다.

‘스승님에게 들은 적 있어.’

신유성의 스승인 유원학은 탑의 고층에 올랐다. 그중에선 7급의 위험도를 가뿐히 넘는 괴물들도 있었다.

- 나는 차원 조작 능력을 가진 적을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헌터는 강한 힘을 가진 괴수라면 차원 이동을 쉽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히려 착각이지.

신유성은 유원학이 해준 설명을 떠올렸다. 그러자 지금 벌어진 상황이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상대는…… 차원 이동에 필요한 2가지 조건을 완수했군요. 그리고 이젠 3가지 전부를 넘보고 있고요.”

신유성은 끔찍한 정보를 차분히 말했다. 그러나 유라를 더욱 놀라게 한 건 신유성이 차원 이동의 조건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 차원 이동에 대해 알고 있어? 자료도 찾기 힘들고 학생들에겐 교육하지도 않을 텐데…….”

그러나 무신산에 박혀 있던 신유성에게 자료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신유성의 모든 지식은 스승이 실전에서 익힌 경험을 전수받은 것이었다.

“왜 게이트에선 약한 괴수들의 출몰이 잦을까? 어린 시절에 생각해본 적이 있죠.”

권왕의 가르침은 그 질문에서 시작 됐다.

- 게이트는 자연히 발생한 통로다. 그렇지만 차원 간의 이동은 규칙이라는 게 있다.

차원 이동에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이 필요하다. 규칙은 총 3가지.

“그리고 그 정답은 차원 공명. 차원 통로. 그리고 촉매. 이 3가지 조건에 있었어요.”

“맞아. 자연 발생한 게이트는 그 3가지를 전부 충족하지.”

유라는 아까 신유성에게 나눠준 무전기를 들었다.

-아아, 잘 들리지?

무전기는 포켓조차 작동하지 않는 공간에서 정확하게 음성을 전달했다.

“아날로그로 비유를 들자면 차원 공명은 주파수랑 비슷해. 게이트 현상 자체가 차원 간의 파장이 맞아 균열이 생기고 이동하지 못한 힘이 시공간을 일그러트리며 생기는 것이니까.”

그러나 공명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중요한 건, 서로의 차원을 인지하게 만드는 통로였다.

차원 이동에 더욱 중요한 게 바로 통로와 촉매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네요. 상대는 선배를 위해서 힘을 준 것도 아니고, 얌전히 선배의 목숨을 받으러 온 건 더더욱 아니에요.”

“그게 무슨…….”

“왜 하필 상대가 조종하는 게 밴시일까요? 생존자들은 왜 1명의 사상자도 없이 멀쩡했을까요?”

무언가를 깨우친 듯 몰아치는 신유성의 이야기에 유라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녀는 게이트가 발생하자 밴시들을 보내 생존자들을 포획 했어, 그 과정에 그림을 매개체로 삼아 공간을 만들었고…….”

“그 목적이 단순히 식사를 위해, 마나를 원한 게 아니겠죠. 7급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가 그럴 필요는 없죠.”

유라는 퍼즐들을 하나씩 맞춰갔다. 악신이 보낸 밴시는 인간들을 모아 델타 타워에 포획했고, 악신은 유라와 계약했으며 힘을 줬다.

정체를 숨긴 채 잠복해 있다가 유라의 존재를 느끼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차원의 공간에 가뒀다.

“선배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상대는 왜 선배님에게 힘을 줬을 까요? 왜 델타 타워에 올 때까지 기다렸을까요?”

“……아.”

유라는 침음을 흘렸다.

신유성의 말이 맞았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이라 자학하는 과정에서 이런 간단한 진실을 놓치고 말았다.

“왜…… 모르고 있었을까? 악신이 겨우 시민 몇 명이나 6급 헌터 한 명으로 만족할 리가 없지.”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신은 통로를 만들고, 사람을 납치하고, 계약을 통해 유라라는 촉매를 준비했다. 이 모든 불편한 조건들은 의식이고 계약이었다.

“상대는 목적은 명확히 [차원 이동] 그 자체에요. 다른 차원에서 저희들이 사는 세상으로 현신하는 게 목적이죠.”

퍼즐은 맞춰졌다.

신유성의 설명에 유라는 이를 으득- 물더니 거대한 그림을 노려보았다.

“그럼 나를 제물로……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했다는 거야? 나는 지금까지 내 주변에 벌어진 불행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라는 결계를 톱니처럼 만들어 던졌다. 결계는 공사장에서나 들릴 법한 굉음을 내며 그림을 찢어발기려 했다.

꿀렁-

하지만 그림은 진흙이나 늪처럼 톱니 형태의 결계를 꿀렁거리며 삼켜버렸다.

- 어리석은 인간아 약속을 어겼구나!

- 어찌, 계약을 어기십니까?

유라의 변화를 인지하자 그림 속에서 분개한 늙은 노인과 슬퍼하는 어린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왕께선 너의 소원을 이루어주었다.

- 저희들의 어머니께선…… 당신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림에서 염소의 뿔이 뻗어 나왔다. 하얀 베일을 쓴 소녀가 걸어 나왔다. 유라와 신유성은 전투 자세를 잡았지만 흑염소와 소녀는 싸울 의지가 없어보였다.

- ……이젠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입니다. 어머니의 힘을 돌려주세요.

소녀는 ‘무언가’를 돌려달라며 손을 뻗었다. 분명 그건 유라의 목숨이었다.

“날 제물로 삼겠다는데 그렇게 말하면 좋게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어?”

유라는 결계를 펼쳐 염소와 소녀를 가뒀다. 위협적인 적이라면 공격했겠지만 상대방에게선 아무런 전투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 어리석은 인간. 이 모든 상황이 너의 욕심에서 자처한 멸망이라는 걸 모르겠느냐?

- 저희들이 직접 찾아온 건, 어머니께서 베푸신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 끝까지 반항한다면 여왕께서 직접 행차하실 것이다.

유라의 예상은 맞았다. 그들은 어머니이자 여왕인 악신의 말을 전하러 온 사신(使臣)이었다.

“다행인 건…… 생존자 대부분을 구출했고, 선배님도 아직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촉매가 없다면 제대로 현신할 수 없겠죠.”

흑룡포를 입은 신유성이 마나를 두르자 푸른 물결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유라가 언제 그랬냐는 착 달라붙었다.

“미안. 못난 선배를 만나서 처음부터 7급 보스라니…… 우리 둘 다 목숨이 위태위태하네.”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7급 공략이라니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남은 건 악신의 행차.

결계에 갇힌 소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주문처럼 읊조렸다.

- 삶이란 영원의 윤회이며 저주의 굴레다. 우리의 어머니는 그 고리를 끊어 너희를 영원토록 자유롭게 하리라.

소녀의 주문이 끝나자 그림 속에서 기다란 팔이 기어 나왔다.

- 2개의 태양과 2개의 달이 뜬 날. 2명의 사자(死者)가 종언의 시를 읊조릴 것이다.

흑염소의 중얼거림이 끝나자 이번에는 그림 속에서 반대쪽 팔이 기어 나왔다.

쨍그랑-!

거대한 손은 결계를 부수며 흑염소와 소녀를 움켜쥐었다. 건물의 붕괴도 버티는 결계가 유리처럼 간단히 부서지자 유라는 침음을 흘렸다.

“……무식한 힘이야.”

신유성은 그림에서 손이 뻗어 나온 것만으로 상대방의 힘을 감지했다. 같은 차원에 놓이게 되자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레드 드래곤 사도닉스는 전투로 공략한 게 아니었고, 겨울의 마녀 루이스는 동료들과 로렐라이가 모시는 여신의 도움이 있었다.

이렇게 정면으로 힘과 힘으로서 마주하게 된 건 거의 처음이라 볼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긴급하게 벌어진 상황이라 조사가 너무 부족해. 어떤 공격을 해올지도 예상이 되지 않아.’

하지만 유라의 목숨을 바치고 악신을 현신시키는 건 처음부터 신유성에게 없던 선택지였다.

옆에 있는 동료도 지켜내지 못할 힘이라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콰작-!

그림에서 얼굴이 튀어나와 소녀와 흑염소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죽음 그 자체인 여신은 그림처럼 만연한 미소를 지은 채 유라를 바라보았다.

“……모티스(Mortis).”

적을 정면에서 마주한 유라는 드디어 상대의 이름을 읊조렸다.

“자기 차원에선 죽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야. 평범한 여신이었지만 신봉하는 사람들이 악인인지라 지금은 악신이 되었고…….”

사도닉스와 루이스가 드래곤과 마녀였다면 이번에 상대해야 하는 건 다른 차원에서 온 악신이었다.

- ───────.

모티스는 유라를 바라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내 결계 뒤로 숨어-!”

그게 무슨 공격인진 모르지만 유라는 일단 결계를 펼쳤다. 일단 적의 공격이 마나라면 배리어를 펼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계는 통하지 않았다.

“아?”

유라의 배는 동그라미의 형태로 깔끔하게 뻥 뚫려있었다.

“읏, 윽으…….”

유라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건 물리적으로 공격 받은 게 아니었다. 유라의 몸은 동그라미의 형태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이건 마나가 아닌 저주였다.

‘카미카쿠시(神隠し)인가…….’

모티스가 온 차원이 다른 만큼 분명 다른 이름을 가진 저주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저주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고스트 타입의 보스들은 길을 잃게 하는 정도의 저주지만 모티스는 그 궤가 차원이 달랐다.

‘내 몸에서…… 더 이상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모티스는 유라의 몸에서 마나를 생산하는 부분을 행방불명 시켰다.

‘이렇게…… 압도적이라고?’

악신 모티스를 이길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유라도 6급 보스를 경험한 적은 많았다. 겨우 1급이 오른 것만으로 이런 힘의 차이를 느낄 줄이야.

모티스가 한 번 중얼거린 것만으로 몸이 날아갔다. 다음 저주를 읊조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역시 이길 수, 없어…….”

유라는 절망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신유성은 꺾이지 않았다.

포기는커녕 오히려 너무나 차분하게 유라를 진정시켰다.

“이길 필요 같은 건 없어요.”

이렇게 신유성이 침착할 수 있는 이유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 유성아. 실체가 없는 공격을 피하는 법. 궁금하지 않느냐?

지금 신유성의 머릿속에선 아주 듬직한 누군가가 공략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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