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9화
강유찬 협회장은 헌터계의 전설이었다. 8급 헌터라는 실력과 이루어낸 업적이 그걸 증명했다.
다만 협회장이란 직함은 실무에서 게이트를 공략하는 헌터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헌터 협회는 국가 기관과 독립된 자리에 존재하며 상호를 보완하는 단체였다.
협회장의 진짜 업무는 헌터들의 상징이자 대표자로서 다른 모든 외부 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함에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게이트 공략으로 협회장에게 직속으로 연락을 취하는 건 극히 드문 일.
“……현재 델타 타워에 나타난 게이트가 7급일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로군?”
하지만 그 게이트가 7급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심지어 도심지의 중심에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만약 정말 7급 보스가 델타 타워에 존재하고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며 쏟아져 나온다면 그 피해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루이스 단 1명의 보스가 볼테라를 황폐화시킨 전례만 보아도 도시 하나는 족히 날려 버릴 위력이었다.
- 네! 측정 장비를 바꾸어도 측정한 마나량이 동일한 걸로 보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으니 더욱 그렇게 생각하겠군.”
-예 맞습니다.
도리온 국장의 보고에 강유찬은 흥미가 동했다.
‘……유성이가 간 던전에 7급 보스가 나타날 수 있다.’
강유찬은 헌터를 보는 눈이 정확했다. 그가 판단을 내리면 어떤 헌터도 그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권왕에게 기본기를 배워온 신유성은 스펀지와 같았다.
공략을 거듭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성장의 속도가 엄청났다.
‘첫 평가는 4급. 그다음 평가는 6급…… 물론 혼자서 7급 보스를 이길 순 없겠지만 어디까지 성장했을지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지.’
동료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신유성은 그 신하윤을 이겼다. 신하윤은 신오가문이 만든 괴물. 학생인 주제에 7급에 가까운 잠재력을 가진 헌터였다.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군.’
강유찬은 웃었다.
“내가 출동하도록 하지. 혼란을 야기할 테니 기관에는 보고할 필요 없네.”
그의 권력이라면 협회장의 이름으로 순식간에 7급 헌터들을 게이트에 편성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8급 헌터는 존재 자체로 1인 군단. 강유찬이 나선다면 그 어떤 절차도 필요하지 않았으며 누구의 서포트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절대 권력.
강유찬은 스스로가 원하는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었다. 설령 그게 아무리 삐뚤어지고, 아무리 잘못된 신념이라 하여도 관철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시작부터 결국은 끝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이야기가 운명처럼 이어지는군.’
강유찬은 출동을 앞에 뒀음에도 너무나 여유롭게 서재를 둘러보았다. 그의 서재에는 책들이 빼곡했지만 평범한 책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고대어로 적힌 고서들이었고, 그 중에선 강유찬이 직접 탑에서 구한 공개되지 않는 금서도 있었다.
‘난 바뀐 게 아니다.’
강유찬은 눈을 감고 서재에서 먼지 쌓인 책 하나를 뽑았다. 이 서재는 비서인 메이린조차 다가오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저…… 인류가 진리에 도달할 유일한 방법을 알았을 뿐.’
강유찬은 ‘진리’를 발견한 이후, 그 유일한 방법을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을 쏟아부었다.
무엇이 목적이냐 묻는다면 탑에서 본 진리이며 인류의 구원이라 답할 것이다.
‘그래. 그러니…… 신중히 확인해야지.’
강유찬은 눈을 떴다.
이제 곧 찾아올 선택의 순간은 20년을, 인생을, 수없이 많은 생명들을 실험체로 갈아 넣어 만들어낸 기회였다.
‘이건 인류를 초월할 최초의 역사니까.’
* * *
신유성은 유라를 몰랐다.
그녀에게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마 이런 판단을 내리기까지 제법 많은 사건이 유라를 괴롭혔을 것이다.
[……넌 여기 남아. 위층엔 나 혼자 갈게.]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이건 신유성이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이건 동료를 위한 희생도 아니었고, 죽음을 각오한 헌터의 숭고함 같은 게 아니었다.
“……제 스승님께선 네가 헌터를 꿈꾼다면 언제나 죽음을 각오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유성은 위층으로 향하려던 유라의 팔목을 붙잡았다. 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하지만, 선배님. 그 각오라는 게 절대 이런 형태를 말씀하신 건 아니었겠죠.”
신유성은 델타 타워에 찾아온 악신이 누구인지, 유라가 어떤 이름을 보았는지 모른다.
“선배님이 보신 이름이 무엇이더라도 동료를 사지에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유성은 유라를 말렸다. 팔목을 잡아당겨 암흑만이 가득한 계단이 아닌 자신을 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유라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응답했다.
“……신참 주제에, 건방 떨지 마.”
유라의 목소리에선 분노마저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설명했잖아! 게이트에 대해선 내가 더 잘 알아! 이게 단순한 결계 같아?”
분개한 유라는 소리를 지르더니 네모난 결계를 부메랑처럼 만들어 창문에 던졌다.
델타 타워의 유리는 총알도 막아내도록 특수 제작되었지만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쾅-!
유라는 신유성을 노려보며 부서진 유리를 향해 삿대질했다.
“자! 어디 한 번 봐! 네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부서진 유리 너머에 있는 건 이미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니었다. 순수한 악(惡)이 공간의 형태가 되어 진득한 액체를 계속해서 뿜어내고 있었다.
- 살려줘…….
- 원망스러워!
- 앞이 안 보여, 제발 누구라도.
- 그 살인마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사실 밖이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 지금 유라와 신유성이 있는 장소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델타 타워조차 아닐지도 몰랐다. 이 공간의 진실은 원념(怨念)이며 위층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는 건 그 원념들의 주인이었다.
“내가 겁쟁이라고 생각하니?”
유라는 신유성이 잡은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만약 이번에도 자신을 막는다면 후배라 하여도 전면전까지 벌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라는 자신의 마지막을 그렇게 장식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끝까지 신유성을 설득하려 했다.
“이번 상대는 지금까지 네가 상대해온 적들과 달라. ……네 용기는 무지에서 오는 거야. 만약 나처럼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다면…….”
유라는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그녀는 신유성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겨우 잠깐의 만남이지만 좋은 재능에 착한 마음씨를 가진 헌터니까, 분명 대단한 일을 해낼 재목이었다.
그러니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의 계약 때문에 죄도 없는 신유성이 함께 죽는 것은 사양이었다.
“하지만 의식은 절대적이야. 저 악신을 강림시킨 게 내가 맺은 계약 때문이라면……. 대가는 나 하나로 족해.”
“그러니 혼자서 가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그게 내가 질 수 있는 유일한 책임이니까.”
신유성은 유라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유라의 눈에서 얼핏 비친 불빛은 절대 오늘 만들어진 신념이 아니었다.
[마스터는 널 인정했는지 몰라도 난 아니야.]
신유성은 차가웠던 유라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유라가 자신에게 했던 그 냉담한 반응은 단순히 실력을 증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라가 인정하는 사람이란 자신을 지킬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라의 곁에서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북적이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왜 동료를 밀어내려 할까?
자신의 안위만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왜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줄까? 그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선배님은 겁쟁이시네요.”
신유성은 학생 주제에 선배인 유라를 보며 인자하게 웃어주었다. 유라가 잔혹한 현실을 빙자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면 신유성은 자신이 지켜본 유라에 관해 쏟아낼 차례였다.
“이해해요. 마음 한 곳에 비밀을 간직하고 계셨으니 모든 게 본인의 탓 같아 힘들었겠죠.”
유라는 신유성의 도발에 무언가를 외치려다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만해.”
“아무래도 여기 남아야 하는 건 당신 같습니다.”
이제 신유성은 유라를 선배로 취급해주지도 않았다.
“정을 준 사람이 다치는 게 싫고, 겁나는 주제에…… 헌터를 하고 계시잖아요?”
유라가 숨겨 왔던 마음 한구석을 너무나 아프게 콕콕 찔러왔다. 유라가 감싸고 있던 껍질을 차분하게 벗겨냈다.
“전 그런 안일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어요.”
오히려 신유성이 먼저 발걸음을 뗐다. 저벅저벅- 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향해 두 걸음 정도 걸었을 때 유라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냥 귀찮았을 뿐이야……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방해만 되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가 편하니까…….”
신유성은 유라가 감싼 두꺼운 껍질이 한 꺼풀 벗겨진 느낌이었다. 그녀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된 느낌이었다.
솔직하지 못하고, 누구보다 정에 약한 주제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점이 꼭 닮아 있었다.
“전 혼자서 죽겠다는 말을 용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그냥 도망치는 거잖아요?”
등을 돌린 신유성은 유라에게 웃어주었다. 그리곤 힘겹게 자신의 옷깃을 잡은 유라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주었다.
“같이 싸워요 선배님.”
유라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래서야 어쩌면 은아보다 더 울보가 아닐까?
“……그랬다간, 우리 모두 죽을 거야. 너한테는 너를 기다리는 동료가 있잖아.”
그러나 신유성은 즉답했다.
“죽지 않을게요.”
“제발. 약속하지 마……. 그건 절대로 몰라.”
“절대 이 모든 게 선배님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절대 지지 않을게요.”
유라가 신유성을 데려온 건 어디까지나 5급 게이트기 때문이었다. 정말 누군가를 믿어야 하고, 동료로 여기게 될 장소라면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누군가를 믿게 될 일 따위 절대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유성의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단 한 번만 더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 ……누군가를 믿게 될 줄이야. 근데 그 한 번에 진짜 목숨이 걸려있네?”
유라는 힘없이 웃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볼을 양손으로 합장해 짝- 소리 나게 때리더니 다시금 신유성에게 인사했다.
“……겁쟁이에 외로움도 많이 타는 부족한 동료지만.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