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28화 (427/434)

제428화

관측(觀測)

이 단어가 가진 사전적 용어를 말하는 건 지루한 일이었다. 하지만 헌터계가 관측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너무 설쳐버렸네. 우리가 상대를 인지한 순간, 상대도 우리를 인지했어.”

유라가 벽에 새겨진 글귀를 해석한 순간, 델타 타워 전체에 보랏빛 파도가 일렁였고 유라는 절망했다.

“인지했다는 게 무슨 말씀이죠?”

“보스 중에선 모습을 숨기는 놈이 있어. 사무국에서 녀석을 찾아냈을 땐 [관측에 성공했다.] 라고 말하지.”

유라는 결계를 펼쳐 신유성을 가뒀다. 아까 구했던 생존자들처럼 베이스캠프로 보내려고 했지만 신유성은 이동하지 않았다.

“방금 전부터 내 능력이 작동하지 않아. 보라색 파동이 일어난 뒤로 좌표를 읽을 수 없게 됐거든.”

“단순한 결계가 아니군요.”

유라는 신유성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가 사용하는 워프는 공간의 이동이지, 차원의 이동이 아니었다.

만약 탑에 올라가 차원이동을 하게 된 경우, 해당 층의 같은 차원에선 이동 할 수 있지만 곧바로 지구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잘 봐. 이 층을, 아까 전과 모습이 다르지 않아?”

신유성은 유라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상황이 갑작스러워 인지하지 못했지만 벽에 새겨진 문양도 없어졌고 기괴한 마네킹도 없었다.

오히려 여긴 백화점보다는 예술품이 전시된 미술관 같았다.

“우리가 있었던 곳은 4층. 미술관은 델타 타워의 5층이야. 정체를 들킨 이상, 곱게 돌려보내진 않겠다는 거지.”

“그럼 선배님. 아까, 일렁인 빛은 뭐죠? 그건 마나가 아니었습니다.”

마나도 없이 사람을 원하는 장소에 이동시킨다는 건, 헌터들이 지금까지 배운 상식으론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그건,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래. 너한테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했으니까.”

‘용서 받을 수 없는 잘못?’

“전부 설명해줄게.”

하지만 유라는 달랐다.

유라는 아카데미에서 필기 수석을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수재였다. 물론 10개가 넘는 필기 과목 중 가장 좋아하는 건, ‘고대 언어’와 각 차원의 ‘전설’에 관한 공부.

“……넌, 1학년이라고 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나처럼 이 분야에 미친 변태는 졸업반 중에서도 본 적 없으니까.”

유라는 어디선가 분필을 꺼냈다. 아날로그한 무전기처럼 지금 시대에선 보기 드문 물건이었다.

“잘 봐.”

그러나 유라는 동료를 가르쳐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 암석으로 만들어진 예술품에 능숙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나에 대한 개념은 어디까지나 헌터의 관점에서 통용되는 설명이야.”

유라는 암석에 죽죽- 선을 그어 마나를 사용하고 있는 헌터의 모습을 그렸다.

“헌터들 대부분은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사용해. 덕분에 묶어 두는 촉매가 없어도 힘의 발산은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져.”

유라가 그린 귀여운 그림체의 헌터는 [마나]라고 적힌 물총을 괴수에게 쏘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가지고 있는 마나를 넘어 외부에 있는 힘을 사용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에 유라가 그린 헌터는 [마나]라고 적힌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마치 갓 문명을 이룩해 강물을 어떻게 이용해야 인간에게 이로울지 생각하는 지도자의 모습 같았다.

“마나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줄 촉매를 만든다거나……. 그런 게 아닐까요?”

유라가 원한 대답은 아니지만 신유성의 해답은 꽤 그럴싸했다.

“그렇지 드래곤 하트처럼 변환 기관이 있거나, 비슷한 아티팩트가 있다면 그게 해답이겠지.”

유라는 암석에 물총이 없는 평범한 인간을 그렸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건 사실 마나를 사용 할 수 없는 대다수의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보통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 사람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거나 드래곤이 아니라. 몸에 한 방울의 마나도 없는 일반인이야.”

유라는 다시 분필로 그림을 그렸다. 일반인은 인위적인 담을 쌓았고 원하는 길목으로 강물이 흐르게 만들었다.

“그때 필요한 게 의식(儀式)이야. 규칙과 구조물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떠다니던 마나를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거지.”

“의식…….”

“문제는 그 힘을 좋은 곳에만 쓰는 게 아니라는 거지.”

점점 길어진 유라의 그림은 미술품 너머로 이어졌다. 거대한 홍수가 마을을 집어삼켰다. 귀여운 그림체였지만 만약 현실이라면 끔찍한 결과였다.

“사실 우리 세계도 마찬가지잖아? 악신을 숭배하는 곳은 많아. 재앙신, 오귀, 저승신, 아스터교의 최초의 악에 이르기까지 악(惡)을 이용한 의식은 끊인 적이 없어.”

“그런 의식이 다른 차원에서도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응. 의식이라는 건 과학이 발달한 세계보다 마법이 발달한 세계에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거든.”

유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곤 제물과 저주와 의식을 동그라미로 묶어 하나의 공동선상에 두었다.

“그 차원은 우리처럼 시티가드 가드가 있는 세계도 아니고, 치안이 확립 되지도 않은 혼돈스러운 세계야. ……마법과 힘이 전부인 세계지.”

그럴수록 사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복수하기 위해서 더욱 의식의 힘에 매달린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산 제물을 바치고, 복수를 위해 저주하고, 우리가 가정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거야.”

“그래도 의식을 저주에만 사용하란 법은 없잖아요?”

“그렇지 근데 선한 의식은 기껏해야 축복 정도지만. 저주의 의식은 너무 다양하거든.”

유라는 적장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용감한 용병을 그렸다. 그러나 저주라는 동그라미에 닿자. 그는 쓰러졌다.

“저주 중에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결국 죽여 버리는 노쇠의 저주도 있고.”

이번에는 평범한 사람이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장소에 가는 일은 없었다. 그가 갇힌 건 같은 장소만 무한히 반복되는 끔찍한 저주였다.

“영원히 상대를 다른 차원에 유배 시키는 행방불명의 의식도 있고, 시키는 의식도 있어.”

유라는 신유성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소년은 악의에 물든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추악한지 모르고 있었다.

“이게 끝일 거 같아? 저주의 의식이라는 게 얼마나 편리한데? 그 세계에서 의식은 수천 년이 넘게 쌓인 역사이자 문화야.”

유라는 그렇게 믿었다.

인간이라는 건 말 한 마디를 하여도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에 익숙하며 선함보다는 악한 영향에 취약한 게 인간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힘은 대단해. 결국 여신(Devi)을 악신으로 만들었거든. 적어도 그 차원에선 가장 강한 악신일 거야.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지.”

신유성은 자신을 보며 씁쓸하게 웃는 유라의 미소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유라의 얼굴에 감도는 감정은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후회나 회한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마치…… 직접 보신 듯한, 말투시네요. 선배님?”

설명을 멈춘 유라는 닳아버린 분필을 떨어트렸다. 그리곤 신유성의 턱을 잡아 자신의 얼굴 가까이 당겼다. 어딘가 사라진 초점. 유라는 매혹이 풀린 지 오래였다.

“……그럼. 봤지.”

아련하게 웃는 유라의 눈빛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미리 사과할게. 너까지 휘말리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

난데없이 신유성에게 사과를 한 유라는 품 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계속 가지고 다니길 잘했네.”

그리곤 담배에 마나로 깔끔하게 불을 붙인 후, 그걸 신유성의 눈앞에서 흔들며 강조했다.

“넌 절대 이런 거 피우지 마.”

아무래도 유라가 신유성에게 이 모든 설명을 한 이유는 보스를 공략하기 위함이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은 호기심이었어.”

“담배 말씀이신가요?”

“풋, 아니 그거 말고.”

처음은 호기심이었다.

유라는 워낙 고대어와 전설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으니까,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따라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하나 꺼내 계단으로 이동해라. 13번째 계단을 밟았을 때,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13초를 세어라…….”

유라는 기억을 더듬었다. 유라가 내뱉는 이야기는 마치 잘 만들어진 학교 괴담 같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출처는 유라가 다니고 있던 아카데미가 아니었다. 책을 쓴 게 누구인지도 모를 다른 차원의 고서였다.

“13초를 세었으면,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여전히 눈을 감은 채 14개의 계단을 내려가라…….”

이야기를 끝낸 유라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곤 연기를 한 모금 들이쉬더니 미친 듯 콜록거렸다.

“켁, 콜록-! 콜록! 아, 오랜만에 하니까 안 받네…….”

“그 이야기 평범한 괴담 같네요. 저희 가온에서도 비슷한 괴담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지.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야.”

피우던 담배를 땅에 내다 버린 유라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날 내가 올라간 건, 13개의 계단일 뿐인데, 정말 14개의 계단을 내려갔어. 믿어지니?”

유라는 신유성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지.”

신유성이 자신의 말을 믿을지, 믿지 않을지 그런 건 관계없었다. 유라는 이미 마음의 정리를 끝낸 후였다.

“투명한 레이스를 뒤집어쓴 여성이 보였지. 몸의 반은 해골이고, 반은 너무나 아름다운…….”

소원을 말해라.

그녀는 유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이룰지, 무엇을 빌지, 유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단순히 답했다.

[강해지고 싶어요.]

그렇게 꿈에서 깼다.

유라가 누워 있는 곳은 양호실의 침대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유라의 몸에는 정체불명의 힘이 넘쳐흘렀다. 동기 중에선 가장 이른 나이로 6급 헌터가 되었다.

“……언제나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근데 오늘 알게 된 거지 이제 그녀를 만난 값을 치를 때라는 걸.”

이미 모든 걸 포기한 유라는 한숨을 쉬었다.

“넌, 동료가 있다고 했지?”

“네.”

신유성은 유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베테랑이자 현역 헌터인 선배가 자신에게 뭘 말할지 궁금했다.

“……넌 여기 남아. 위층엔 나 혼자 갈게.”

그러나 유라의 입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포기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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