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7화
헌터 협회에는 여러 가지 사무국이 있다. 물론 더욱 정확히는 협회장의 산하가 아닌, 장관급 의원의 산하에 소속되어 있으며 게이트 관리, 난이도 측정, 마나 분포도 등 다양한 헌터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모두가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통칭 [측정국].
풀네임으로는 변환 던전 및 도심 출몰형 게이트 난이도 측정국의 업무는 그 무게가 달랐다.
“난이도 분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우리 조사와 판단에 헌터들의 목숨이 달렸다! 그런데 이런 실수를 해!”
턱수염을 기른 거한의 남자가 스테인 재질로 된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자 얼마나 힘이 강한지 주먹 형태가 남았다.
덕분에 그 위압감에 질린 사무국 공무원은 몸을 벌벌 떨며 말을 흘렸다.
“그, 그게…… 5급 보스가 나타났다고 해서 난이도를 승격시킨 건 맞지만 다시 측정해도 측정 결과는 3급이 맞습니다. 마나 분포도는 아직 변함이 없습니다. 아주 미비한 수준입니다.”
사무국 공무원이 억울한 듯 홀로그램을 띄워 자료를 보여주자. 사무국 국장인 도리온은 턱수염을 손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마나 분포도가 변함이 없다라? 6급 헌터들이 2명이나 출동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들의 마나는 측정이 되고 있나?”
“네! 측정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5층 이후입니다. 5층에서 옥상까지의 마나 분포도가 매우 낮게 검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장의 헌터들은 밴시 퀸을 본 게 틀림없다고?”
“그들이 정밀한 자료를 제출한 건 아니지만 3급 4급 헌터들이 공략에 실패했다는 상황으로 보아 잠정적으로…… 예, 결론을 내렸습니다!”
“흐음.”
도리온 국장은 계속 턱수염을 훝었다. 도리온 그는 분명 어딘가에서 이와 비슷한 케이스를 본 기억이 있었다.
“……3급 밴시들의 마나만 검출되는 게이트. 그럼에도 고위 헌터가 실종 되고 보스의 마나는 검출 되지 않는다? 이거 분명 어디서 본 레파토리인데 말이야.”
서서히 기억을 더듬던 도리온은 유레카를 외치듯 갑자기 테이블을 내려쳤다.
“분명 핀란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11년 전이지만 말이야.”
“11년 전 핀란드?”
“자네는 측정국에 오기 전 일이니 모르겠군. 기밀로 처리했으니 말이야.”
도리온은 국장은 이젠 때가 되었다며 홀로그램으로 기밀 중 하나였던 기록번호 S7-3 자료에 접속했다.
[기록번호: S7-3]
[항목 - 핀란드 요정의 숲 사건]
도리온이 보여준 기밀 자료에는 울창한 숲이 보였다. 핀란드 자체가 워낙 울창한 숲으로 유명한 국가라 이미지만으로 어디인지를 유추하는 건 힘들었다.
그러나 이미지 속에는 거대한 나무를 기점으로 모인 특별한 생명체들이 있었다.
“정령수(精靈獸). 흔히 동물의 형태를 한 정령들을 말하지. 3급으로 분류되었지.”
“측정국에서 일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녀석들이네요.”
“워낙 희귀하거든. 근데 문제는 따로 있지, 아까 내가 말해준 기록 번호를 기억하나?
“S7-3번이었습니다.”
“핀란드의 사무국에선 난이도를 측정할 때 우리처럼 급수를 매기는 대신 ‘별’을 새기고 있지. 자, 그럼 S7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겠지?”
“……비밀로 감춰진 핀란드 역사상 3번째 7급 보스의 게이트.”
도리온 국장은 공무원의 얼굴에 피식하고 웃었다. 7급 게이트의 이름을 들어도 겁을 먹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흥미가 감도는 표정을 보니 어엿한 사무국 출신이었다.
“못 믿겠지만 이 숲의 첫 측정 난이도도 3급이었다.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7급 보스 [태초의 섬]이 나타났고……. 음, 결과는 말 안 해도 알겠지?”
국장은 부하에게 이게 [태초의 섬]의 사진이라며 산보다 큰 거북이를 보여주었다.
“웃기게 생겼어도 다른 차원에선 가이아라 불리며 신으로 추앙받던 놈이야. 전설의 헌터들이 아니었으면 피해자가 엄청났겠지.”
그런 사건을 기밀로 처리한 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도리온 국장은 왜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래도 그건 지금 사건과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사무국 공무원은 지금의 밴시 소동과 핀란드의 거대 거북이 사건을 최대한 연계해 보았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국장처럼 빠르게 돌아가지 않았다. 국장은 지난 경험을 통해 이번 사건의 이유를 추측하고 있었다.
“한 번 자네가 거대한 거북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그 녀석은 한 번 식사를 마치면 100년이 넘게 잠을 자는 놈이었지.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인간들에게 숙면을 방해받지 않겠나?”
“……숨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지.”
국장 바리온은 뒷짐을 지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최근에 나타났던 아종 여울룡의 자료를 거대한 화면에 띄웠다.
“헌터계에선 특정 아종들을 돌연변이 취급을 하지.”
전기 공격에 취약한 여울룡의 호수에 뱀장어 괴수가 많아지자 전기에 저항하는 성질을 가지게 되고, 숲의 묘지에 언데드가 출몰하자 정령수들이 뿔에서 성속성 빛을 발하게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엄연한 진화네! 거대한 거북이가 잠을 자기 위해 껍질에 마나 반사체를 코팅했듯이!”
“그건 7급 괴수였기에 가능한 진화입니다. 밴시 퀸이 그런 능력을 가질 확률은…….”
“델타 타워에 밴시 퀸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밴시 퀸만 있는 게 아니라면?”
국장의 말처럼 생각을 바꿔보자 사무국 공무원은 아- 하고 탄식을 터트렸다.
“지금, 델타 타워에 있는 게 밴시 퀸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그 말씀이십니까?”
“있다고 확신하는 건 아니네, 하지만 없을 거라고 확신도 할 수 없겠지. 내가 생각하는 확률은 절반. 그리고…… 그 규모는 최소 6급에서, 최악의 경우 7급이겠지.”
도리온 국장의 말에 공무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모든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그저 고장이 나 이상 현상이라 생각했던 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지금 델타 타워 근처에 강한 헌터는 누가 있지?”
“호, 호출 가능한 7급 헌터가 있긴 합니다만 그게…….”
도리온 국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호출 가능한 헌터 명단에 있는 건 다름 아닌 로쟈였다.
“로쟈는 리벨리온에 당해 몸이 망가졌다고 하지 않았나?”
“재활하려면 최소 반년에서 1년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6급은?”
“통칭 [칼잡이]가 있긴 합니다.”
국장은 6급조차 시원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국장이 생각한 만일의 만일을 대비하려면 7급 헌터 정도는 나와 줘야 했다.
“당장 7급 헌터를 호출하는 게 쉬울 리가 없지. 역시 그분께 연락할 수밖에 없겠군.”
공무원은 7급 헌터 중에 도리온 국장이 극존칭을 사용하는 상대가 누구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후보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보를 7급이 아닌 8급으로 바꾼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아니나 다를까, 이번만큼은 자신의 예상이 정확했다.
“예 협회장님. 측정국의 도리온 국장입니다.”
-오! 자네가 웬일인가?
도리온 국장이 연락을 한 상대는 전설의 헌터 권왕의 동료이자 헌터 협회의 협회장 강유찬이었다.
* * *
- 통신 장애 상태입니다.
- 현재 전파가 닿지 않습니다.
- AS를 원하신다면 가까운 헌터 용품 샵을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유성이 4층에 도착한 순간부터 포켓은 전파장애를 일으키며 작동하지 않았다.
“위층은 벌써 느낌이 좋지 않네. 마나가 읽히지도 않고.”
그건 유라도 마찬가지인지 걱정스런 얼굴로 포켓을 확인했다.
신유성이라고 해도 들리는 건 간간히 찢어지는 비명이 전부였다. 그러나 베테랑 헌터답게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기에 유라는 대비책이 있었다.
“자~ 받아둬.”
유라는 신유성에게 검은색 무전기를 던져주었다. 탑의 기적과 과학의 산물인 포켓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무전기는 너무나 아날로그한 제품이었다.
“버튼 하나로 작동하는 물건이니까 사용법은 간단해.”
“그런데 선배.”
하지만 신유성이 지금 문제로 생각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계신가요?”
무투파도 아니면서 유라는 왜 자신의 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걸까? 유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신유성은 딱 붙어 있는 게 효율이 좋았다.
하지만 얼굴이 붉어진 유라는 신유성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결계로 선을 그었다.
“네가 밴시보다 위험하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매혹이 걸린 유라에게 신유성의 존재는 밴시보다 위험했다. 괜히 자신을 구하겠답시고 가까이 다가오면 긴장해서 몸이 굳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확실한 선을 그은 채 신유성과 유라는 4층을 서서히 수색했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 3층에선 비명으로 가득했는데…….”
“오히려 4층이 조용하네요.”
4층에는 생존자들을 봉인한 그림도 보이지 않았다. 밴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불이 꺼진 매장과 옷이 벗겨진 마네킹들이 음산하게만 느껴졌다.
“여긴 꽝이려나?”
그렇게 왔던 길을 돌아가려던 유라는 감춰진 벽에서 특이한 문양을 발견했다. 붉은색 피로 물들여진 문양은 백화점이었던 델타 타워와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잠깐. 멈춰봐.”
유라는 결계를 풀고 신유성을 곁으로 불렀다. 유라가 가리킨 곳에는 붉은색 피로 특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결계식인가? ……아니네 이거 마나도 아니고 그냥 진짜 피로 그린 문양이야.”
“뒤까지 이어져 있네요.”
시력이 좋은 신유성은 그 피가 모퉁이를 돌아 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ζΨ──]
가느다란 핏줄기를 타고 이어진 길 끝에 새겨진 건 정체불명의 상형문자였다.
정체불명의 문양.
읽을 수 없는 언어.
게이트에서 이게 뜻하는 바는 단 한 가지였다. 눈앞의 그림은 다른 차원의 언어였다.
“포켓이 멀쩡했으면 해석해 봤을 텐데…….”
하다못해 필기에 뛰어난 스미레 정도만 되어도 이 문자의 뜻을 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이런 분야에서 전문가는 아니었다. 다른 차원의 고어를 포켓의 번역기 없이 읽으려면 교수급은 되어야 했다.
“걱정 마. 내가 읽을 수 있어.”
하지만 유라는 당당히 걸어 나왔다. 검지에 마나로 된 불꽃을 피워 라이트처럼 만들고 다른 차원의 문자를 읽어나갔다.
“잉, 태를 축하하라. 죽음의 어머니? 아니, 망자들의 어머니인가?”
물론 100% 완벽한 수준의 번역은 아니었지만 이정도만 하여도 전문가 수준이었다.
“돌이켜보라, 여왕의 강림, 영원한 밤의 축제를……. 타고 건너라, 돌아 올 수 없는 약속의 강을.”
지금 유라가 읽고 있는 용어들은 절대 밴시 퀸을 경배하는 문장이 아니었다. 여왕. 영원한 밤. 약속의 강.
“아…….”
문장의 뒤를 읽던 유라의 얼굴에 절망이 감돌았다. 유라는 신유성을 보며 초점이 없는 눈으로 힘없이 읊조렸다.
“……여기 델타 타워에 있는 건 밴시 퀸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