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26화 (425/434)

제426화

델타 타워 1층.

시티가드가 포위진을 구성한 베이스캠프에는 생존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었다.

“일단 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긴급 처리실로 보내! 헌터들은 마나 재활 캡슐로! 아 그리고 혹시 사망자 보고는?”

“실종자 중에선 아직 1명도 없습니다!”

“후…… 밴시인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생존자들을 치료하느라 움직이는 구급대원들만큼이나 바쁘게 김진철은 누군가를 애타게 찾으며 돌아다녔다.

“제발…… 분명히 여기 있다고 했는데…….”

베이스캠프에 생존자들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김진철은 애타게 달려왔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일반인은 입장이 불가능했지만 시티가드의 높은 사람에게 부탁까지 했다.

그는 그만큼 절박했다.

“대표님! 여기입니다!”

김진철은 수행비서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아아…….”

김진철은 탄식을 흘렸다. 도심 속 평범한 백화점이었던 델타 타워에 게이트가 열리며 하나뿐인 외동딸이 실종된 순간 그날. 바로 그날부터 김진철은 단 하루도 악몽을 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진하야!”

“아빠…….”

무뚝뚝한 수행비서조차 눈물을 훔칠 정도로 감격의 상봉.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밴시에 비 명소리를 들으면 미치는 게 과반수인데…… 보청기가 고장 난 게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천운이 도왔습니다. 아가씨께선 비교적 상태가 괜찮으신 편이라 면회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파견을 나온 의사와 안도하는 수행비서의 말에 김진철은 딸의 귀를 살폈다. 김진하는 원래 끼고 있던 보청기가 아닌, 새 보청기를 귀에 꽂고 있었다.

“그거참 다행이구나! 어디 불편한 곳은 없니?”

“응! 괜찮아! 아빠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버지를 먼저 생각하는 착한 딸을 보며 김진철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럼 환자분의 정신 감정을 해봐야 하니 잠시 이동하겠습니다.”

“몬스터 중에서도 밴시의 경우는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진철은 의사들이 김진하를 데려가려 양해를 구하자 도리어 넙죽! 고개까지 숙이며 호탕하게 외쳤다.

“제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정 중에 필요하신 게 있다면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아빠! 정말~ 창피하다니까.”

김진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재밌는지 하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김진철은 그런 딸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한참 동안 손을 흔들어주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대표님의 곁에서 식사조차 거르시는 모습을 본 입장으로선 얼마나 안도했던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 델타 타워에 들어간 헌터가 누구라고 했지?”

“6급 헌터 유라. 그리고 신유성이라는 학생입니다.”

“둘 다 익숙한 이름이군.”

“유라야 이쪽 지역에선 워낙 유명한 헌터지만. 대표님께서 루키 이름까지 알고 계셨다니.”

헌터 바이온은 헌터 용품과 군수품을 대량으로 납품하는 회사였다. 그러니 대부분의 인맥은 길드마스터나 시티가드 같은 물주와 연관되어 있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루키들에게는 관심도 인연도 없었다. 당연히 김진철이 신유성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헌터와 관련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 쪽엔 소문이 파다해서 말이야. 신성그룹의 아가씨께서 정해둔 남자가 신유성 그 학생이라는 소문이 있거든.”

“예? 신성그룹이라면 혹시 김은아 아씨 말이십니까?”

“아마 확실할 거야. 차기 협회장으로 만든다는 소문도 있고, 신유성을 위해 회장님께서 직접 움직이고 계신 정황도 있으니까.”

“복잡하군요. 정계와 헌터계의 만남이라고 할지…….”

아무래도 수행비서는 김진철의 이야기를 굉장히 정치적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얼굴이라도 터볼까 생각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아. 이번에 준비한 것들은 전부 녹음의 숲으로 입금해주게.”

“네. 명월 쪽에 보낼 파기금과 공문에 걸었던 의뢰금을 더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우리 딸아이의 목숨을 구했는데 겨우 그깟 푼돈으론 모자라지. 0을 하나 더 붙이도록 해. 어차피 상대가 명월이었어도 우리 아이만 무사했다면 따로 줄 생각이었네.”

김진철이 제시한 건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었다. 기본적으로 헌터들의 의뢰금 자체가 높은 걸 생각하면 기본급의 10배는 상식을 벗어났다.

하지만 그들이 구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그럴 만했다.

델타 타워에 갇혀 있던 건 굴지의 기업 헌터 바이온의 대표 김진철의 외동딸이었다.

“무리한 거 같아도 난 돈밖에 없는 기업가 아닌가? 그런데 은인을 상대로 푼돈에 연연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아.”

“……역시 대표님. 그릇이 다르십니다. 당장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은인을 향한 김진철의 호의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김진철은 백번의 감사보다 실질적인 행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여기선 내 역량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김진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브릴리언트의 길드 소속 진성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진성아 씨.”

- 네 대표님! 아니, 이렇게 직접 전화를 다 주시고…….

진성아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헌터 바이온과 관련된 계약은 모두 임원들이 처리했었다. 이렇게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거는 경우는 적어도 브릴리언트에선 유례가 없었다.

헌터 바이온의 대표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신오, 유수, 명월, 흑산, 진산처럼 흔히 말하는 ‘체급’이 큰 길드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 혹시 이번에 신제품 건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이번 계약은 계약금 대신 다른 쪽으로 계약을 맺고 싶어서 말입니다.”

- 네! 뭐든 말씀해주세요!

눈치가 빠른 진성아는 김진철의 행동에서 일종의 돈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계약금의 일부는 인력 지원으로 받아도 되겠습니까? 돈 대신 브릴리언트가 녹음의 숲에 헌터를 지원하는 형태로.”

길드는 돈을 받고 헌터를 파견하는 이익 집단이었다.

인력 지원만큼 그 값만 제대로 측정해준다면 진성아의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의뢰가 없어 놀고 있는 몇몇의 헌터를 제값 받고 파견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무조건 이득인 계약이었다.

-그럼요! 대표님께서 직접 부탁하시는 일인데 보고할 것도 없이 손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진철은 통화가 끝나자 책상에 앉아 손깍지를 꼈다. 지금까지 굳이 익숙한 거래처를 바꾼 적은 없었다. 어차피 헌터계는 대부분 계약금이 실적과 비슷하게 정해져 있었다.

‘지금까진 몰아줬지만. 생각을 바꿔야겠군.’

김진철은 이번 사건으로 명월에 크게 당한 게 있었다. 자신의 딸이 위험하니 당장 델타 타워에 헌터들을 보내라고 했지만, 명월은 3급 헌터들을 보냈다.

델타 타워의 첫 측정 당시 난이도가 3급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렇게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고층에서 밴시 퀸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달라졌다. 리셋 된 난이도는 3급에서 5급으로 껑충 뛰었고, 결국 명월은 김진하를 구해내는 데 실패했다.

김진철이 엄청난 의뢰금을 건 만큼 처음부터 확실한 사람들을 보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였다.

그러니 김진철은 본보기를 보여야 했다. 자신의 의뢰를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줘야 했다.

‘이번 일도 있으니, 거래처를 바꾼다면 역시 녹음의 숲이 좋겠지.’

* * *

인생무상.

로쟈는 1미터도 넘는 마나석을 힘껏 끌어안은 채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명색이 길드마스터이건만 일단 몸이 아프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재활을 빙자해 뒹굴거리기는 게 인생의 낙.

“하늘에서 어디 돈 안 떨어지나?”

로쟈가 이렇게 헛소리나 하며 시간을 축내고 있는 동안 일에 업무로 찌들어 있던 비서는 당황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로, 로쟈 니이이임-!”

“그래. 목소리를 들으니 필립이구나. 세상에 진짜 너만큼 호들갑을 떠는 애가 있을까? 또 별일 아닌 일이면…… 오늘 내가 그냥 너를 죽여 버려야겠다.”

하지만 여전히 방을 뒹굴거리는 로쟈는 필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필립이 호들갑을 떠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마나도 없으시면서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진짜 이번에는 진짜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너무나 억울해 보이는 필립의 목소리에 로쟈는 세상만사 모든 게 귀찮은 얼굴로 일어났다.

“오냐. 어디 보자. 컴온. 이리 와서 설명해 별거 아니면 내 손으로 재워버리게.”

비서인 필립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대답 대신 한숨을 쉬며 홀로그램 하나를 보여주었다.

로쟈는 무감한 얼굴로 숫자를 셌다. 겨우 의뢰금이 들어온 걸로 이 호들갑을 떨다니 본인이 직접 필립의 왼발과 오른발의 위치를 바꿔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응?”

하지만 로쟈는 이내 표정에 의문을 띄웠다.

“혹시 잘못 입금한 거 아니야? 내가 생각한 거보다 0이 한 자리 많은데?”

“전화까지 걸어서 확인했습니다. 문제없다고 합니다.”

“아니, 이건 커도 너무 큰데?”

“헌터 바이온의 대표님께서 따님분을 구해주신 보답이라고…….”

“정말이야? 아니 그래도 통이 큰 건 알겠는데 10배라니.”

“개인 의뢰는 협회에 수수료도 안 떼니까. 엄청 남겠네요. 한동안은 걱정 없겠습니다!”

신유성이 들어온 첫날부터 이렇게 일이 잘 풀리다니 로쟈는 역시 운이라는 게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성 그 녀석이 역시 복덩이인 모양이네. 걔랑 있으면 뭔가 운이 좋다니까? 배까지 뚫렸는데 살아남은 걸 봐.”

로쟈는 신유성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며 흡족해 했다.

“어찌 보면 아직은 외부인이니까. 신유성 몫은 화끈하게 줘버려. 물론 유라는 뗄 거 다 떼고.”

이렇게 보니 역시 신유성은 재정위기에 닥친 녹음의 숲을 구하러 온 구세주였다.

‘그리고 보니 동료 많다던데. 걔들은 얼마나 강할지 기대되네.’

로쟈는 그런 기회를 거절할 성격이 아니었다.

파이브 스타로서 신유성의 자질을 확인하는 겸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로쟈가 생각하는 윈윈 전략.

‘물론 내 결정으로 승패가 바뀔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신성그룹 쪽에서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있어도 신강윤 쪽에는 이미 파이브 스타가 2명이나 붙었다. 그 불리한 승패를 바꿀 수 있는 건 오롯이 신유성의 역량.

자신은 중립에서 신유성의 능력을 샅샅이 살펴보겠다고 로쟈가 생각한 순간.

[브릴리언트(싸가지)]

[통화 신청 중…….]

브릴리언트의 진성아가 로쟈에게 직접 연락했다.

“뭐야, 브릴리언트가 왜 갑자기 전화를 해? 올해만 인원 좀 빌려달라니까 싸가지 없이 전부 거부하더니.”

녹음의 숲과 브릴리언트와 딱히 악연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로쟈 쪽에서 일방적으로 지원을 요청하고 일방적으로 거절당한 게 전부였다.

이전이라면 도움을 줄 수도 있었지만 로쟈가 다치고 녹음의 숲이 기울자 브릴리언트 쪽에선 로쟈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안녕하세요?

“우린 더 할 이야기가 없을 텐데. 웬일이야?”

-로쟈 님께선 참 재주가 좋으시네요. 운이 따른다고 해야 할지.

“시비 걸려고 전화했냐? 이젠 5급 따리들도 나랑 맞먹으려고 하네? 마나가 회복되는 대로 죽여 버린다?”

-아, 아뇨! 그게 아니고 헌터 바이온 대표님이랑 이야기 하신 거 아니었어요?

“무슨 이야기?”

- 이번에 큰돈 쓰셨던데요. 인원 요청을 10명이나 해주셨던데요? 그것도 3달이나.

“응?”

- 로쟈 님이 부탁하신 줄 알았는데 정말 모르셨나 보네? 자세한 건 좀 있다 명단을 보낼 테니 확인하세요.

폭풍처럼 지나간 엄청난 이야기들에 로쟈는 얼떨떨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그저 운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건 체급이 달랐다.

“……안 풀리던 일들이 걔가 오고 하루 만에 다 풀려버리네.”

아무래도 운명의 여신이란 게 있다면 그녀는 정말 신유성을 좋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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