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4화
현역 헌터가 되면 많은 헌터와 합을 맞추게 되었다. 덕분에 유라는 본의 아니게 지금까지 많은 헌터를 본적이 있다.
그 중에는 특성의 능력이 뛰어난 헌터도 있었고, 전투 센스가 좋은 쪽도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달랐다.
‘……움직임이 어떻게 이래?’
유라가 본 신유성은 마치 1초 정도 앞의 미래를 보는 사람 같았다. 밴시들이 손톱을 휘두르면 종이 한 장처럼 얇은 차이로 피해 정확히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무투파는 언데드에게 약한 게 상식인데…….’
단적으로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생물은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약점이랄 게 있었다. 정교한 기계처럼 전부 파괴되지 않더라도 중요한 부품이 망가지면 당연히 작동을 멈췄다.
하지만 언데드는 종족의 특성상 물리력을 대부분 무시했다. 구울이나 좀비 같은 언데드는 몸을 베여도 움직였고, 영체인 밴시는 아예 단순한 물리력은 통하지 않았다.
탕-!
하지만 신유성의 푸른 마나에 감싸인 주먹이 밴시의 복부를 치자 균열이 일어났다. 사제들이 언데드를 정화하듯 신유성의 주먹은 닿자마자 밴시를 ‘소멸’ 시켰다.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소멸이었다.
- 끼이이엑!
처음은 그냥 성속성 아티팩트라도 가져온 줄 알았지만 유라는 이내 원리가 뭔지 파악했다.
‘단순히 마나 폭발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야.’
신유성은 밴시와 같은 파장의 마나를 내부에서 터트리고 있었다. 소리를 공명시켜 유리잔을 깨트리듯 영체인 밴시를 터트렸다.
“이번 층에선 다섯 정도가 숨어 있었네요. 나머지는 벽에 숨어 위층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곤 이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신유성이 손에 묻은 밴시의 잔해를 털어내자. 유라는 오싹한 기분이 전율했다.
‘알겠다. ……이 녀석의 눈에는 보이는 구나?’
유라가 출동하기 전 녹음의 숲 길드마스터인 로쟈는 일러둔 이야기가 있었다.
[신유성을 지켜보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내게 전부 보고해. 던전 공략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처음엔 7급 헌터인 로쟈가 이제 막 들어온 신입에 대해 직접 물어본다는 게 신기했다. 신유성과 같은 6급인 유라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신유성이 직접 전투하는 모습을 보니 유라는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신유성은 아직도 원석이었다.
지금 보여주는 막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보석으로 제련되지 않은 원물이었다.
여기서 데이터를 통해 자신만의 색과 스타일이 더해지면 전설의 헌터조차 따라올 수 없는 역사가 될 수 있었다.
로쟈는 진작 그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겠지.
‘로쟈 님은 파이브 스타니까.’
밴시 퀸 공략에 대해 오더를 내리려 했던 유라는 생각을 거두고 신유성을 보았다.
‘그럼 부족한 건 센스나 경험이려나? 한 번 떠볼까.’
원래대로라면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었지만 이젠 먼저 신유성의 생각을 엿보고 싶어졌다.
“문제는 위층부터는 퀸의 영역이라는 점이지. 심지어 델타 타워에 있는 녀석은 텔레파시까지 사용하는 특수 개체야.”
“보고서를 확인하긴 했습니다.”
그건 포켓에 적힌 데이터에도 적혀 있는 부분이긴 했다.
[상세-델타 타워의 밴시 퀸은 특수 개체로 확인됨. 돌연변이 능력인 텔레파시 사용 가능으로 밝혀짐.]
[상세-4인의 헌터 전원 소리 차단 귀마개를 사용했지만 공략에 실패하여 추가 증원 신청 중.]
유라는 신유성이 해당 사항을 이미 확인했다는 사실에 은근한 기대를 가지며 물었다.
“그럼 공략 방법도 생각해뒀어?”
솔직히 이렇게 물어도 여기서부턴 유라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신유성 같은 무투파는 전투력이 높기만 하면 그 자체가 큰 메리트였다. 이런 특수 케이스를 공략하는 건 결국 특성의 영역이었다.
당연히 유라가 이번 공략에 배정 받은 이유도 밴시 퀸에 대응 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준비해온 공략법은 [리셋]과 [롤백].’
현혹은 거리가 멀어지면 풀려버린다. 하지만 유라는 공간 전이를 능력을 통해 지정해둔 장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1. 밴시가 현혹을 사용하게 만든다.]
[2. 현혹에 걸린 동료를 공간 전이로 교회로 이동시킨다.]
[3. 교회의 사제들이 현혹을 풀어주면 다시 델타 타워로 롤백 시킨다.]
물론 허점도 많았다.
밴시 퀸의 마나가 떨어지거나 이쪽에서 타격을 입힐 때까지 이 지루 한과정을 지독할 정도로 반복해야 했다. 공간 전이를 사용해야 할 유라가 먼저 당한다면 전복의 위험도 있었다.
‘그런데 무투파인 네가 방법이 있을까?’
잡졸들을 상대할 때처럼 무식하게 돌진한다면 높은 확률로 당하고 만다. 밴시의 텔레파시로 광기에 물드는 순간 동료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네. 생각해둔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신유성의 답변은 유라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둔 방법이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네 특성은 이런 쪽이랑 관련이 없을 텐데?”
유라는 흥미가 돋았다. 신유성이 어떤 방식으로 공략법을 준비했을지 궁금해졌다.
“나한테 들려줄 수 있어?”
“그럼요. 다만 정석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독제독(以毒制毒)에 가깝죠.”
이독제독.
독으로써 오히려 몸에 퍼진 독성을 멈추게 한다는 뜻으로, 원인을 악(惡)으로 정한다면 다른 악을 수단으로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했다.
“저는 밴시 퀸이 사용하는 스킬이 현혹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밴시는 특유의 비명을 통해 광기를 전염시키죠.”
“맞아. 밴시의 비명을 들은 자는 미치고 말아. 치료를 받는다면 살 수 있지만 계속 정기를 빨린다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지.”
그래서 밴시는 위험하다.
아무리 신체가 강한 사람이라도 일단 밴시의 비명을 듣는다면 바로 무력화할 수 있었다.
오히려 현혹에 당한 상대를 조종해 그 힘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현혹에 당한 상태라면 어떨까요?”
신유성의 입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유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
상대가 불을 쏠지 모르니 몸에 불을 지르고 달려들자는 거랑 뭐가 다른 이야기인가?
“말장난을 하는 거라면 멈춰. 1분 1초가 바쁜 상황이니까.”
미간을 찌푸린 유라는 신유성이 장난을 친다고 착각했다. 생존자들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선 용납 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혹의 약점을 파고 든 번뜩임에 가까웠다.
“……현혹에는 여러 상태가 있습니다. 밴시의 경우처럼 광기 상태일 수도 있고, 포자 골렘처럼 환각 상태일 수도 있고, 매혹 상태일 수도 있죠. 현혹이라는 한 단어로 묶고 있지만 분류를 나누다 보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현혹은 정확히 분류하자면 정신적 상태 이상을 말했다.
몸에 마나를 침범시켜 뇌가 되었든 근육이 되었든 시전자가 원하는 형태와 상황으로 하여금 이상 상태에 빠트리는 걸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광기에 빠진 매혹 상태라는 게 있을까요?”
정확히 분류하자면 광기는 인지 상태를 망가트리는 현혹 스킬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매혹은 자신을 매혹시킨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야 유지가 되는 스킬이었다.
“둘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야. 이런 시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니까.”
녹음의 숲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다크베놈이라는 머리가 아홉 달린 히드라를 공략하기 위해 미리 같은 종류의 신경 독에 일부러 감염된 적이 있었다.
물론 다크베놈의 경우는 항체가 없지만 녹음의 숲에서 준비한 신경 독은 항체가 있었다.
덕분에 이미 신경 독에 전염된 몸에는 다크베놈의 독이 훨씬 효과가 반감되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아니야. 현혹 같은 정신계 상태 이상은 입맛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이미 준비했습니다.”
신유성은 주섬주섬 아무렇지 않게 포켓에서 마나석을 꺼냈다. 묘하게 핑크빛이 감도는 마나석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미리 마법을 인챈트 해둔 모양이었다.
“설마 마나석에 미리 매혹 스킬을 걸어둔 거야? 대체 어떻게?”
“서큐버스 퀸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니! 서큐버스 퀸!? 잠깐! 만일에 하나 그 서큐버스가 배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밴시와 달리 이미 사령술사와 계약된 사역마기에 저희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도 없죠.”
유라는 이독제독이라며 스스로 에게 매혹을 걸겠다는 신유성의 행동에서 모종의 광기를 느꼈다. 이미 밴시한테 당한 게 아닐지 의심 될 정도였다.
“그,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아!?”
“……네? 위험할 일이 있나요?”
신유성은 오히려 유라의 반응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매혹은 밴시에 비하면 경미한 상태 이상이고, 훨씬 안전한걸요.”
유라는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생각해보았다. 매혹에 걸린다면 다른 정신계 상태 이상에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진짜 아닌 거 같은데…….’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위험도를 따지자면 유라가 준비한 [리셋]과 [롤백] 작전보다 신유성의 작전 쪽이 훨씬 안전했다.
전자의 경우는 당사자인 유라가 현혹당하면 최악의 결말로 향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밴시의 광기에 전염된다는 가능성 자체가 없었다.
‘분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저 녀석 작전이 성공률이 높은 게 사실이야.’
유라는 마음을 다잡았다.
방법은 주먹구구식에 너무나 이상하지만 결과 자체는 신유성의 작전이 너무 좋았다.
‘뭐 큰 상태 이상도 아니잖아. 기껏해야 매혹일 뿐이고, 따지고 보면 이쪽에서 조절하는 거라 강도도 낮췄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은 인정해야 했다. 현역 헌터에게 작전의 성공률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좋아. 해보자. 네 작전이 더 안전하다는 건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수많은 저울질 끝에 결국 스스로를 설득한 유라는 결의에 찬 얼굴로 신유성을 보았다.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어차피 실제 매혹 스킬의 강도에 비하면 한참 희석된 수준이니까요.”
신유성은 유라의 대답에 기다렸다는 듯 한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마나석을 터트렸다.
펑!
마나석이 분홍빛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이내 그 가루는 릴리스의 형상이 되었다.
쪽-
릴리스의 형상이 신유성과 유라를 향해 손키스를 날리자 매혹의 빛이 둘을 감쌌다.
원본의 매혹은 아예 시전자의 말만 따르는 완벽한 포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만, 신유성의 말처럼 매혹의 효과는 경미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긴 하지만 이 정도는 참을 만해.’
다만 유라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매혹의 대상이 시전자인 릴리스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
그래. 왜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했을까? 매혹의 시전자인 릴리스가 곁에 없다면 그 효과는 가장 가까운 대상에게 적용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유라의 곁에 있는 건 오직 신유성뿐이었다.
유라는 신유성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마주친 순간 깨달았다.
‘이, 이건…… 다른 의미로 위험해.’
홱!
얼굴이 붉어진 유라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오, 올라가자 위층으로…….”
현역 헌터가 학생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되다니. 이건 유라의 헌터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