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1화
[그럼 자세한 사항은 오늘 오후부터 인수인계 받도록 해. 유라가 자세하게 설명해 줄 거야.]
자세하게 설명 해줄 거란 로쟈의 말과 달리 유라는 도심을 걷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결국 신유성이 먼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내자 유라는 옅게 인상을 찌푸렸다.
“미리 말할게.”
유라는 신유성을 향해 확- 몸을 돌렸다. 유라의 몸짓을 따라 긴 흑발이 찰랑였고 어깨에 걸친 정장을 타고 흘렀다.
분명 이 장면을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에 신유성이 데자뷰를 느끼는 순간 유라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마스터는 널 인정했는지 몰라도 난 아니야.”
어느새 정장 차림을 한 신유성은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한 몸을 만져보았다. 녹음의 숲의 헌터들은 적어도 도심을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정장이 기본 복장인 듯 보였다.
최악의 경우 몬스터를 잡아야 하건만 이렇게 불편한 옷을 입고 움직여야 하다니.
“이해해요.”
이전의 신유성이라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신유성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거추장스러운 정장은 물론이고 유라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이해해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겐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없다. 그런 이야기죠?”
날 선 자신의 태도에 당장이라도 쏘아붙일 줄 알았건만 너무나 여유로운 신유성의 대처에 유라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어…… 그렇지.”
유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학생 주제에 왜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걸까? 마치 어디 산에라도 들어가서 속세를 초월해버린 종교인처럼 신유성은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너 몇 살이랬지.”
“이제 곧 2학년입니다.”
“……그러냐?”
김이 새버린 듯 한풀 꺾인 유라는 다시 길을 걸었다. 유명인인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특유의 날 선 인상 때문에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툭-
유라는 폐허가 된 건물 쪽으로 자갈을 발로 찼다.
“저기다. 보이지? 시티가드들이 봉쇄해둔 거.”
유라의 말처럼 시티가드들이 폴리스 라인으로 봉쇄한 건물은 유독 음산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도심 한 가운데 이런 건물이 있다는 건 보통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이야기였다.
“5급 보스가 나온 곳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는 거 보면. 참 사람들이 겁도 없어.”
“바로 진입하나요?”
건물에 숨어 있는 게 5급 보스라면 강함은 딱 릴리스 정도였다. 지금의 신유성이라면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는 보스였다.
“아니 이번 보스는 밤에만 나와. 그러니까, 2시간 뒤에 여기로 모여 그때까진 마음대로 하고.”
그 말을 끝으로 유라가 자리를 떠나가려고 했다. 2시간 뒤에 만나자는 약속이었지만 신유성은 유라를 따라 담담하게 걸었다.
처음은 유라도 그냥 길이 겹친거라 생각했지만 골목을 꺾고 나서도 신유성이 한참을 따라오자 결국 또 인상을 찌푸렸다.
“너, 왜 따라오냐?”
역시 유라는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신유성은 이미 이런 성격의 동료를 겪어본 적이 있었다.
‘묘하게…… 닮았어.’
그래. 마치 갑각류와 같다.
이리도 단단한 껍질로 보호하고 있다는 건 연약한 속내를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신유성은 유라가 신입에게 이렇게 날선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선배님과 같이 있으려고요.”
“아니 뭐가 좋다고? 딱 봐도 텃세 부리는 거 안보여?”
물론 유라가 이렇게 살갑게 굴어준 사람은 신유성이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신입은 까칠한 유라의 모습에 거리를 두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게 유라도 편했다.
‘근데 이 녀석은 뭐야?’
오히려 신유성의 눈은 유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 보였다. 단순히 능글맞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 오싹했다.
“같이 있으려는 이유는?”
결국 오히려 유라 쪽에서 거리를 두려 신유성에게서 한걸음 멀어지자.
저벅.
신유성은 오히려 유라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저도 상대를 신뢰해야. 제 등을 맡길 수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선배를 이해해야 하니까요.”
이제 막 하산했던 세상에 순박한 소년은 이미 없었다. 신유성은 동료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람을 다루는 법에 통달해 있었다.
유라의 입장에선 이 정도로 말한 상대를 돌려보내면 그게 또 억지를 부리는 게 되어버렸다.
“그, 그렇지……. 근데 너, 곧 2학년이 된다고 했나?”
“네.”
“……그래?”
왜 아직 성인도 아닌 주제에 그렇게나 여유롭고 연장자처럼 구는 걸까. 유라는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건 유치하게 패배를 인정 것 같아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마음대로 해. 그럼 따라오던가. 어차피 식사만 할 거니까.”
결국 신유성은 유라의 텃세에서 순식간에 포인트를 따냈다. 신유성은 첫날부터 식사를 같이하러 간 유일한 신입이었다.
* * *
신유성은 유라가 선택할 식당은 도심에서 은닉된 조용한 곳 일거라 유추했지만 실상은 평범한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디너 타임이라 가족 단위의 방문도 잦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도 들려왔다.
“너 세간에서 유명하더라.”
유라는 어린아이들의 인기 메뉴인 햄버그스테이크를 나이프와 포크로 솜씨 좋게 썰며 말했다.
“그럼 제가 길드 마스터님과 상담하는 동안 찾아보신 건가요?”
“응, 그렇지.”
유라는 긴 머리카락이 방해되는 듯 어깨 너머로 넘겼다. 그리곤 포크로 집었던 햄버그스테이크를 입 안이 보이지 않도록 꾹 다문 채 우물우물 씹었다.
“나 잡아봐라~!”
“내 장난감이야! 돌려줘!”
한동안 온전히 음식에만 집중하던 유라는 시끄럽게 떠들며 자신을 지나치는 아이들을 보더니 옅게 웃었다.
“‥…너 파티가 있다고 했지?”
“네.”
“동료들이랑 얼마나 친해?”
“동료를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을 정도예요.
“그래?”
유라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유라는 다시 햄버그스테이크만 말없이 먹었다. 그 와중에 남의 새우튀김에 자연스레 젓가락까지 뻗었지만 신유성은 탁! 하고 솜씨 좋게 막아냈다.
“이런 말 하면 꼰대 같은데……. 넌 좋은 녀석 같으니까. 경고할게. 파티원이랑 너무 친해지지 마.”
식사를 끝낸 유라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었다. 이렇게 보니 신유성은 유라가 정말 은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완벽히 다른 점이 있다면 피부가 드러난 목과 옷 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생채기들이었다. 그건 유라가 현역 헌터로서 자잘한 상처가 나을 새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되니 신유성도 유라를 그냥 둘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대화는 단순히 팀플레이를 위해서였지만 어쩐지 유라가 위태로워 보여 그냥 둘 수 없었다.
“이유? 당연히 그딴 마음은 임무를 깨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지. 동료를 너무 소중히 여기면 말이야…….”
유라는 웃으며 새우튀김 하나를 집었다. 그러자 튀김끼리 엉겨 붙은 모양인지 새우튀김이 위태위태하게 하나 더 따라 올라왔다. 유라는 새우튀김을 꼬리까지 왁- 하고 한입에 넣었다.
그리곤 우물우물- 타르타르소스조차 바르지 않고 새우튀김 두 개는 그걸로 끝.
“부러질 때도 ……같이 꺾이고 말아. 무슨 말인지 알아?”
신유성은 사라진 새우튀김의 자리를 보았다. 넉넉하게 3개였던 새우튀김이 유라의 단 한 번의 손짓으로 1개만 남았다. 만약 이게 파티였다면 끔찍한 결과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참았다. 시간은 충분하다. 모자란 새우튀김은 다시 시키면 되었다.
“선배님은 길드에 들어오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죠?”
“대답 안 할래. 하루에 받아주는 질문은 딱 하나야. 그냥 나도 파티가 있었다는 것만 말해줄게.”
그러나 유라는 염치도 없이 새우튀김을 2개나 축낸 주제에 성심성의껏 답변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신유성의 질문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씁쓸한 얼굴로 빈 접시를 바라보는 유라는 분명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물론 너처럼 목숨만큼 소중한 동료도 있었고…….”
유라는 눈을 감았다.
유라의 귓가에는 들릴 일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라야. 남은 건 이 방법뿐이야.]
몸의 상처는 금방 낫는다. 몸이 다쳤다면 생채기가 생겼다면 병원에서 치료하면 된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지울 수 없는 흉터였다.
“이렇게 말하니까. 그 녀석이 죽은 거 같네. 이젠…… 깨어나서 잘살고 있다던데.”
유라는 아하하 애써 억지로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군.’
짧은 대화였지만 신유성은 지금까지 보인 유라의 행동이 무엇 때문인지 알아냈다. 짧게 드러난 정보만으로 그녀를 이해했다.
물론 그 해답이 완벽한 건 아니었다. 간략하게 두 줄로 설명하자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 등을 맡겨도 될 사람이라는 것.
‘지금은 딱 그 정도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 * *
약속했던 공략 시간.
신유성과 폐허가 된 건물을 보았다. 그러자 1분 1초의 오차도 없이 하늘이 어두워지며 이내 포켓이 반응했다.
《Warning》
─게이트 발동 위험도 5급
─종류:[게이트]
─던전 이름:팬텀 댄스
ㅡ위치: 델타타워
“시작 됐군. 역시 시간 약속은 칼 같단 말이지.”
유라가 포켓을 터치하자 빛의 입자가 뿜어지며 순식간에 헌터 장비들로 변했다.
“넌 장비 필요 없어?”
유라가 턱끝을 움직이며 마나 머신건 한정을 건네려고 하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전 맨손과 편안한 옷 한 벌이면 충분해요.”
화아악-!
흑룡포(黑龍袍)
신유성의 몸에는 불편했던 정장대신 검은 도복이 덧입혀졌다. 유라처럼 최신 무기로 무장을 한 건 아니지만 이건 신유성이 전력을 보일 수 있는 상태였다.
“입장을 위해 신분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델타 타워를 포위하고 있던 시티가드 중 한 명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와 신분을 요구하자. 유라는 너무나 익숙한 듯 이번에도 터치 한 번으로 홀로그램을 띄웠다.
“6급 헌터…… 녹음의 숲 길드. 네! 확인 되었습니다”
시티가드는 6급이라는 글자를 보자 놀란 얼굴로 반응했다. 유라가 건물에 들어갈 때는 서로 소속이 다름에도 경례까지 했다.
이건 현장에서 목숨을 거는 헌터들을 향한 일종의 예우였다.
“걱정되긴 하지만 이번 던전에선 네 실력확인을 위주로 할 거야. 괜찮지?”
이건 유라가 하향지원으로 5급 던전을 택한 이유였다. 이번 시험에서 신유성이 인정받아야 6급 던전을 포함한 진짜 임무에 투입 될 수 있었다.
신유성은 괜찮겠냐는 유라의 질문에 팔 전체에 푸른 마나를 두르며 말했다.
“네. 금방 끝내겠습니다.”
‘금방 끝내겠다.’ 누군가는 분명 허세라 여길 수 있겠지만 이건 절대 허세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신유성에겐 아주 겸손한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