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20화 (419/434)

제420화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는 약속된 풍경이 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줄을 잇고 경적 소리와 홀로그램 광고판으로 시끄러운 도시의 풍경은 현대인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러나 녹음의 숲은 그런 대도시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차가운 건물들 사이에서도 거대한 고목의 형태를 자랑했고, 주변에는 풀과 나무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가장 신기한 건 내부였다. 녹음의 숲은 엘프들의 아지트 같았다. 거대한 나무를 깎아 만든 내부는 모두 목재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보기 드문 자연의 정령들이 개미처럼 줄을 이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빙글-

바닥에 대 자로 엎드려 누워버린 로쟈는 손가락으로 정령의 볼을 찌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야 칼잡이. 헌터 협회가 사람을 보내준다고 한 지가 언제지?”

마스터인 로쟈의 물음에도 정장차림의 미남자는 여전히 서류만 훑어보며 힘없이 답했다.

“한 달.”

“뭐, 한 달?”

“하고도 25일입니다.”

“두 달이네. 씨이…….”

바닥에 퍼진 로쟈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대로는 머리가 지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너구리 같은 영감. 지원이 어쩌니 보상이 어쩌니 지껄이더니 이렇게 방치한다 이거지?”

“토사구팽이군요.”

“뭔데 그게.”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 쉽게 말하면 마스터가 쓸모를 다했으니 협회장님께 버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로쟈는 몰려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역시 칼잡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성질을 긁었다.

“그 뒤로 두 달이나 지원이 없는 걸 보면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지. 내가 사도닉스에 리벨리온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로쟈는 네임리스의 기습에 당해 아티팩트로 체내의 마나가 전부 날아갔다. 그걸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만 무려 반년, 덕분에 녹음의 숲은 7급 헌터인 로쟈의 빈자리를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쪽 업계는 소문이 너무 빨라요. 길드 마스터가 병신이 되었다는 소문 때문에 큰 의뢰는 대부분이 끊겼습니다.”

칼잡이는 칼을 닦으며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우린 어쩌지? 이 괘씸한 협회 새끼들……. 그냥 내가 찾아가서 다 죽여 버릴까?”

“그럴 힘도 없으시잖아요. 신급 정령들은 소환도 응해주지 않으신다면서요.”

로쟈는 우린 망했다며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청의 사도인 아벤티노가 살아있다면 기꺼이 교회에서 지원군을 보내줬을 테지만 이제 로쟈의 곁에는 아벤티노가 없었다.

“하…….”

로쟈는 긴 한숨을 내쉬며 나무로 된 문을 바라보았다.

“이럴 때 하늘에서 지원군이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실력은 6급 정도에다 말도 잘 듣고 하루에 3건은 뛸 수 있는 강철 체력까지…….”

로쟈는 산타의 선물을 바라는 아이처럼 꿈같은 지원군을 기원하며 눈을 감았다.

* * *

협회장의 자리를 위해서 신유성은 파이브 스타인 로쟈에게 ‘자연스럽게’ 접촉해야 했다.

이미 2명의 파이브 스타가 신강윤의 편에 선 지금. 로쟈의 지지는 신유성이 꼭 얻어내야 할 보물이었다.

‘건물이 아닌 거목을 아지트로 삼다니…… 역시 정령사는 다르구나.’

녹음의 숲에 찾아온 신유성이 귀빈석에 앉아 로쟈를 기다리자 중절모를 쓴 노인은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협회에서 오신 분이었다니. 하하, 교복을 입고 계셔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유성을 환대하는 노인과 달리 동그란 링 귀걸이를 차고 손톱을 관리 중인 흑발 여성은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전에는 써먹지도 못할 4급을 보내더니 이젠 학생이라니. 협회도 참 많이 타락했네요.”

“왜 그러십니까, 유라 양. 이미 이분의 실력은 포켓으로 확인하시지 않았습니까?”

협회가 신유성에게 발부해준 건 공인 6급. 계속 손톱을 관리 중인 유라와 같은 급수였다.

“6급이라고 다 같은 6급이 아니죠. 아직 아카데미도 졸업 못 한 병아리인데.”

그러나 유라는 신유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머리를 찰랑 털어내며 도도하게 신유성을 지나치자 노인은 귓속말을 했다.

“……유성 군. 마음 쓰지 마십시오. 유라 양이 원래 텃세가 심하시거든요. 사도닉스 공략 참여에 20층까지 정복하셨다면 저희 녹음의 숲에서도 상급의 커리어이십니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현역들 중에선 원래 날이 선 사람이 많았다. 미디어는 헌터들의 삶에서 밝은 부분만을 포장해 비추지만 사실 따지자면 헌터는 늘 동료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는 거나 다름없다.

오히려 이런 삶을 지속한다면 날카로워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지금은 유라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신유성에게 중요한 건 로쟈의 눈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아 로쟈 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업무가 끝나셨나보군요.”

신유성은 노인의 안내를 따라 조심스레 계단을 올랐다. 진열대에 그 귀한 만드라고라로 담근 술 병이 빼곡한 걸 보니 로쟈는 대단한 술꾼인 모양이었다.

‘이건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네.’

신유성은 아지트의 모든 걸 힌트처럼 생각하며 로쟈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화악!

로쟈의 사무실은 정령들 탓인지 비가 온 다음 날 숲속에서 맡았던 피톤치드 향이 강하게 풍겨져 나왔다.

“이렇게 또 볼지는 몰랐네?”

장난스러웠던 첫 만남과 달리 길드마스터의 자리에 앉은 로쟈는 신유성을 보며 품위 있게 웃었다.

“근데 협회에선 2명을 보낸다고 들었는데. 1명만 왔네?”

“추가적인 지원군이 필요할 땐 제 동료들이 돕기로 했습니다.”

로쟈는 신유성의 대답에 흥미롭다는 듯 음- 하고 장난스러운 소리를 냈다. 보낸다던 2인이 신유성과 세트였다니 물론 같은 파티 출신이면 합이 좋을 테니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다만 로쟈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파티원들의 실력.

“아무리 네 동료라도 약한 애들은 곤란해. 최소 5급인데 괜찮겠어?”

녹음의 숲에서 받는 의뢰 난이도를 생각하면 신유성의 동료들이 최소 5급은 되어야 했다. 만약 4급이라면 써먹지도 못했다.

“2명 모두 최근 협회의 평가에서 6급을 판정받았습니다.”

그러나 6급의 실력자가 무려 둘이나 더 있다는 신유성의 대답에 로쟈는 귀가 쫑긋 했다.

“아니, 진짜? 둘이나 더 있어?”

“그럼 6급을 셋이나 보냈다는 건데…… 이거 신종 사기 아닙니까? 그리고 무슨 학생 중에 6급이 셋이나 있습니까?”

결국 옆에 서있던 칼잡이가 도저히 못 믿겠다는 얼굴로 의심을 하자 로쟈는 쉿- 하고 그를 조용히 시켰다.

“혹시 그 중 하나가 아델라야? 소문으론 네 파티에 있다던데.”

“맞습니다.”

아델라가 워낙 유명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지라 로쟈는 아델라의 소식에 더욱 빠삭했다.

“그렇군. 이탈리아의 공주님이 행차하신다면 나야 환영이지. 근데 나머지 하나는?”

홀로그램으로 띄워주었다.

[이름: 하나지마 스미레]

[AGE: 17]

[특성: 망자의 관리자(F)]

[최근 활동]

[……….]

스미레의 특성은 편린을 흡수하며 마녀의 사령술로 격상했지만 홀로그램엔 그런 세세한 정보까진 나오지 않았다.

“사령술은…… 특성 의존도가 높은 헌터인데 F급이 6급이라. 특이하네? 편린 보유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로쟈는 순식간에 스미레의 상태를 짚어냈다.

“네, 맞습니다.”

신유성은 그런 추리력에 짐짓 놀랐지만 로쟈는 아무렇지 않게 더욱 어려운 부분까지 짚어냈다.

“기록을 보니 열등생에서 1년 사이에 6급이 됐네? 그럼 적어도 7급 편린을 흡수했다는 건데 동화율이 떨어질 테니 사령왕은 아닐 테고…… 아크 리치 중에선 6급이 없고……. 여자애니까, 남은 건 마녀네?”

7급 헌터인 로쟈의 경험과 지식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결국 그녀는 정답에 도달하고 말았다.

“얘가 흡수한 거 라플라스의 편린이구나?”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여 순순히 인정했다. 굳이 편린의 정보를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 목숨을 맡겨야 하는 동료에게 숨길 필요는 없었다.

“맞습니다. 스미레는 라플라스의 편린을 흡수했습니다. 덕분에 F급 특성인 망자의 관리자가 마녀의 흑마술로 격상했고요.”

“역병의 마녀 라플라스…….”

충격적인 이야기에 그 칼잡이조차 놀라 안색이 변했다.

‘편린의 선택을 받는 건, 헌터 중에서도 극소수. 그런데 7급 보스의 편린을 흡수했다라…….’

거기다 스미레는 라플라스와 동화율까지 높았다. 이건 운이 좋다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정말 운명이라는 말이 딱 옳았다.

‘권왕의 제자와 이탈리아의 공주님. 라플라스의 대리인이라. 이거 생각보다…… 엄청난 거물들이 들어왔네?’

이쯤 되니 로쟈는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다음 세대의 주역은 신유성의 파티겠지.

잠재력만 생각한다면 신유성의 파티는 전설의 헌터들보다도 강해질 수도 있었다.

‘마음 편히 지원만 받아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가르쳐 줄 게 많겠는데.’

일순 로쟈의 눈빛과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로쟈는 오히려 길드의 일보다 신유성의 파티에 관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아…….’

로쟈는 그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 말았다. 강유찬. 그 구렁이 같은 영감이 왜 신유성을 여기로 보냈을까? 왜 지금까지는 일부러 4급과 5급 인원만을 지원했을까?

로쟈는 강유찬을 알았다.

그 인간에게 절대 이유 없는 행동은 없었다. 무언가 특이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 모든 게 강유찬의 수 싸움이었다.

‘지금 그 영감은 내게 원하는 게 있어.’

아니 정확히는 로쟈가 신유성에게 ‘무언가’를 해주길 원하고 있을 것이다. 첫째는 현역들의 경험을 신유성의 파티가 전수 받으며 성장하는 일. 그리고 두 번째는…….

‘아, 그런 생각이었나……. 이 영감은 진짜 무섭단 말이지.’

로쟈는 질렸다는 얼굴로 신유성을 보았다.

“한 가지 약속할게. 네가 이번 일이 도와주는 만큼, 나갈 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이건 허세가 아니었다.

강유찬이 신유성을 로쟈에게 보냄으로서 응당 받아 야할 첫 번째 ‘몫’이니까.

“녹음의 숲은 너희들에게 부족한 ‘경험’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가지고 있거든.”

“……감사합니다. 로쟈 님.”

신유성도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호의적인 로쟈의 태도에 안도했다.

저벅저벅-

로쟈는 신유성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신유성만이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근데 너…… 내가 파이브 스타라는 걸 알고 있지?”

신유성은 고개를 돌려 로쟈를 보았다. 약간의 장난스러움에 광기마저 더해진 로쟈의 눈빛은 혼돈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 구렁이가 택한 차기 헌터 협회장이 너였구나?”

강유찬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낸 로쟈는 싱긋 웃었다. 그녀는 절대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해~? 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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