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18화 (417/434)

제418화

이야기를 마친 신유성이 방을 나오자 문 앞에선 한쪽 다리를 드러낸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보였다. 지금껏 신유성의 인생에서 이런 옷차림을 한 사람은 한 명밖에 본 적이 없었다.

“메이린 씨?”

“오랜만이네요. 저번의 연구소 건은……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부디 나쁜 감정은 없으시길.”

신유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이자 메이린은 먼저 길을 나섰다.

“협회장님의 명령에 따라 당신의 결정을 기다렸습니다. 만약, 거절하셨다면 저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겠죠.”

그러나 신유성은 협회장이 바란 대로 차기 협회장의 자리를 쟁취하겠노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메이린은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혹여, 한 가지만 제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번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편히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메이린은 신유성의 사무적인 말투에 오히려 마음을 놓았다.

“차기 협회장의 자리를 쟁취하시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복수 때문이신가요? 그게 아니면…… 야망?”

처음 무신산을 내려올 때만 하여도 ‘최강의 헌터’라는 단어는 그저 막연한 목표였다. 그러나 지금은 점점 손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 목표는 결국 스승님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건 저를 가르치신 스승님의 목표이자, 저의 야망이겠죠.”

“전설의 헌터인…… 권왕을 뛰어넘는다. 좋습니다. 차기 협회장을 노리는 헌터라면 그 정도 포부는 가져야겠죠. 다만…….”

메이린은 신유성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언제나 사무적인 대화만 주고받았던 메이린은 오늘만큼은 사견을 담아 신유성에게 충고했다.

“높이 날아오르는 만큼 당신은 주목받게 될 것입니다. 견제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당신이라 하여도 추락을 두려워하게 되겠죠.”

그러나 신유성은 이제 새내기에 불과했던 1학년이 아니었다. 지부장인 메이린조차 컨트롤 할 수 없는 완성된 헌터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신유성은 메이린의 충고에 흔들리지 않았다.

“제일 두려워하는 건, 추락하는 순간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이미 잡았던 목표를 더욱 굳게 세울 뿐이었다. 의도치 않게 주변에서 신유성의 성장을 지켜봐온 메이린은 그만 속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이 아이, 꽤 남자다워졌구나.’

메이린 처음 본 신유성이 세상물정 모르는 귀여운 강아지였다면 지금의 신유성은 어딘가 날카로운 늑대가 된 느낌이었다.

물론 겉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분위기 같은 게 묘하게 달랐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여자의 감이었다.

“흥미로운 답변이네요. 당신과 협회장님께서 닮은 점이 있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겉모습, 말씀이신가요?”

“푸훗! 아뇨…… 야망이라거나 포부 같은 그런……. 걸 말씀드린 겁니다.”

메이린은 신유성의 대답에 웃음을 억누르느라 눈물이 새어나올 지경이었다. 공과사가 철저한 그녀에게 감히 유머를 날리는 남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덕분에 메이린은 웃음에 대한 면역력이 제로였다.

“물론…… 지금 보니 눈빛은 그분과 조금 닮긴 했네요. 음, 설명하기 어려우니 목표를 향해 달리는 남자의 눈빛이라고 해두죠.”

말을 마친 메이린은 싱긋 웃더니 신유성을 보좌하기 위해 준비해온 자료를 홀로그램으로 펼쳤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공간 결계 A형.”

팡-! 사아아!

푸른 입자가 휘날리며 신유성과 메이린을 제외한 공간이 흐릿하게 변했다. 이 결계 공간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마치 신유성과 메이린이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행동했다.

“자료 열람 112번.”

맑고도 청아한 메이린의 목소리가 결계 안에 울려 퍼졌다.

[ID 인식 중 - No33250]

[자료 항목 112번]

[해당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선 7급 헌터 이상, 혹은 지부장 3인의 공동 승인, 혹은 협회장 1인의 권한 승인이 필요합니다.]

포켓에서 발산되는 기계음은 그에 대비되어 오히려 묵직하게 느껴졌다.

“권한 승인 허가 요청. 강유찬.”

[인식 완료. 권한 허가 요청이 전달되었습니다.]

포켓은 메이린의 목소리를 통해 허가 요청을 강유찬에게 전달했다. 혹여 강유찬이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이 신호는 탑의 기술로 개발된 정보 송신탑을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전달되었다.

[허가되었습니다.]

“12초라. 지금까지 권한 허가 요청 중 신기록이네요. 참고로 협회장님이 늦으실 때는 3시간도 기다려 봤답니다.”

“좋은 건가요?”

“네. 그만큼 협회장님께서 이번 일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이야기니까요.”

[파이브 스타(Five star)]

[5인의 정보가 열람되었습니다. 전용 하드웨어 장치를 통해 패스워드를 입력해주세요.]

“복잡하기도 해라.”

메이린이 오직 지부장 급에게만 허가되는 하드웨어 장치를 홀로그램 화면에 횃불처럼 가져다 대자. 홀로그램은 삐비빅- 소리를 내며 엄청난 속도로 패스워드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참 까다롭죠?”

“지금 보여주실 정보가 그만큼 중요한가 보네요.”

신유성은 포켓이 패스워드를 연산하는 시간 동안 메이린에게 와인 잔을 건넸다. 은아나 신유성이 마셔온 무알코올 음료가 아닌 성인을 위한 진짜 와인이었다.

홀짝-

업무 중에는 절대 금주가 원칙이지만 이번만큼은 메이린도 입을 적셨다. 솔직히 애주가인 그녀도 신성그룹에서 제공하는 최고급 와인이 탐이 나던 참이었다.

“그렇죠. 원래 파이브 스타의 신상을 선거 참가자에게 공개하는 건 불법이니까요. 원칙상 협회장님이 아닌 다른 사람은 누구도 파이브 스타에 대해 알아선 안 되죠.”

“그렇다는 건…….”

신유성의 걱정 어린 표정을 안주 삼아 메이린은 홀짝- 다시 한번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불리한 게임이니 편을 드시겠단 이야기죠. 그리고 괜찮아요. 규칙을 어긴 건 저쪽이 먼저니까.”

차기 협회장을 결정하는 위원회 파이브 스타의 신상은 선거의 결말이 나올 때까지 절대 비공개로 유지된다. 그전까지 파이브 스타의 신상을 캐거나, 접촉하는 건 절대 금지였다.

하지만 협회장을 노리는 사람 중에 그런 시시콜콜한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파이브 스타 중 2명은 신오가문. 그러니까 신강윤의 사람이라 보아도 무방하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5명의 위원 중, 2명이 포섭되었다는 건…… 나머지 3명에게 전부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뜻.”

메이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이제 테이블 위에 있던 큐브 치즈까지 입에 털어 넣으며 와인을 들이켰다.

“합- 냠…… 한마디로 시작부터 당신의 출발점은 꽤나 불리한 지점이라 거죠.”

신유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지만 메이린은 어디서 챙겨왔는지 와인 병을 직접 가져와 자신의 잔에 가득 부었다.

“아, 흠, 진짜 향이 좋네……. 세계수를 개량해서 전용 와이너리를 만들었다더니…….”

메이린은 감탄했다. 탑에서 보상으로 얻어낸 세계수 뿌리를 헌터 협회는 기껏해야 정령의 축복이 걸린 활로 만들었다. 그런데 신성그룹은 그걸 개량해 세계수표 포도 품종을 만들어낼 생각을 했다.

심지어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수 와이너리라는 기업까지 만들어 최상의 품종을 가진 와인들을 세상에 공표했다.

“역시…… 신성그룹이 돈을 쓸어 담는 이유가 있다니까.”

“……저, 메이린 씨. 정보 열람이 끝난 거 같은데요.”

“아, 아?”

신유성이 홀로그램을 가르치자 메이린은 마치 잠에서 깬 듯 입을 가린 채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음? 공간 결계 A형…… 자료 열람 112번…….”

“이미 하셨어요.”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와인이 향이 너무 좋아서 심취해버렸군요. 이 와인, 평범한 와인이 아니랍니다. 신성그룹이…… 세계수를 이용해서 와이너리를 만들었거든요.”

신유성은 그 이야기도 이미 했다고 메이린에게 지적해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판도라의 상자를 건넨 모양이었다.

그러나 메이린이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신유성 쪽에서도 작전이 있었다.

“파이브 스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계셨어요.”

“아…….”

메이린은 정신을 차린 걸까 곧장 다시 홀로그램을 조작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네. 신강윤의 편으로 돌아선 2명의 파이브 스타를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2인은 접촉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선 3인의 투표가 필요한 거 아닌가요?”

무엇을 숨기는 걸까? 신유성의 물음에 메이린은 취기 때문인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네. 하지만 신유성 학생이 그 중에서 포섭해야 할 사람은 단 2명입니다. 왜인지는…… 그때가 오면 아시게 될 겁니다.”

메이린은 신유성의 질문에도 나머지 1인의 정체는 끝까지 비밀을 고수했다. 그게 미래의 서프라이즈를 위해서인지, 이 또한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이 사람과 협회장님을 믿는 수밖에.’

그러나 지금 신유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신뢰였다. 김석한의 명령 때문이 아니더라도 신유성은 협회장의 자리를 신강윤에게 넘겨줄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신강윤은 결과와 야망을 위해서라면 자식조차 버리는 남자였다.

그런 사람에게 헌터 협회를 넘긴다면 헌터계의 미래와 이미 눈엣가시가 된 신유성의 앞날은 불 보듯 뻔했다.

“좋습니다.”

“자, 첫 번째 파이브 스타는 구면이실 겁니다.”

[Five star-로쟈 체칠리아]

[공인-7급 헌터]

[출신 국가-이탈리아]

[소속- 녹음의 숲]

[직책 - 길드마스터]

[활동 현황]

[7급 사도닉스 레이드]

[6급 바르바돈 포획대]

[녹음의 숲 창설]

“이 사람은…….”

“네. 당신과 함께 사도닉스 레이드에 참여했던 7급 헌터죠. 파이브 스타 중에서 국내가 아닌 외부 자문이 있는 경우는 흔합니다. 당연히 신강윤도 외부 자문인 로쟈 님에게는 손을 뻗지 못했고요.”

메이린은 와인 잔을 한 번 더 가득 채웠다. 그리곤 다시 와인을 홀짝이며 웃었다.

“최근 녹음의 숲은 로쟈 님의 부상으로 협회에 헬퍼 요청을 했습니다. 그 자리엔 당신이 가게 될 겁니다. 자연스러운 만남이죠.”

“……참, 노골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만남 같은데요.”

신유성의 장난스런 대꾸에도 메이린은 너무나 진지했다.

“비록 부상을 당하셨어도 로쟈 님은 최고의 헌터 중 한 분입니다. 직접 당신을 본다면 그 무한한 잠재력을 알아보시겠죠.

신유성의 라인에 타게 된 이상 정치적인 이유로 목숨이 걸린 건 메이린도 마찬가지였다. 차기 협회장이 신강윤이 된다면 반대파였던 메이린도 무사할 순 없었다.

“그리고 다음은…… 운명의 장난 같군요. 이 사람은 파이브 스타로 뽑힌 건 1년 전이지만, 의도치 않게 당신과도 신강윤과도 모두 연결 고리가 있으니까요.”

[Five star-유월]

[공인-6급 헌터]

[출신 국가-한국]

[소속- 제3 정찰 기관]

[직책 - 기관장]

[활동 현황]

[빌런 단체 침투 체포조]

유월은 유수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유민서와 신강윤의 포섭에 응했을지, 응하지 않았을지 그조차도 확실하지 않았다.

‘……어려운 상대가 되겠군.’

메이린은 고민에 빠진 신유성을 보며 야릇하게 웃었다. 와인의 열기 때문인지 볼은 붉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리곤 직접 신유성의 볼에 묻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준 뒤, 와인 잔을 신유성의 입가에 건네며 이렇게 속삭였다.

“참고로 이 와인을 위해 신성그룹은…… 세계수를 이용해서 와이너리를 만들었답니다.”

정말이지 그건 오늘만 3번은 족히 들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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