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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14화 (413/434)

제414화

아무리 연회라 하여도 회장인 김석한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선택 받은 소수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건 신오가문의 가주인 신강윤이라 하여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도 김석한은 어려운 상대였다.

고작 ‘헌터’라는 단 1가지의 분야에서만 두각을 드러낸 신오가문과 사회 전반에 모든 영향을 끼치는 신성그룹의 체급은 달랐으니까.

“……따로 이런 자리까지 마련해주시다니 영광이군요.”

그러나 김석한에 버금가는 ‘헌터 협회장’이라는 위치까지 이제 단 한걸음 남은 지금. 신강윤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난 시끄러운 곳은 영…… 맞지 않아서 말이야. 한참 연회를 즐기고 있었을 텐데 미안하군.”

신강윤은 김석한이 웃으며 한 손으로 따르는 잔을 두 손으로 받들었다. 조르륵- 뜨겁게 데운 술이 잔에 가득 채워지고 약간의 침묵이 방안의 여백을 채웠다.

신강윤은 조용한 침묵에서 오는 이 묘한 압박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 장면과 이 호흡. 그리고 뒤에 이어질 한 마디는 하나의 약속이었다.

“요즘 참 바빠 보이더군. 자네를 돕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말이야.”

최근 신강윤은 자신의 편이 되어줄 세력들을 병합하며 신오가문의 덩치를 부풀렸다. 내부에서 잡음이 새어 나오는 지금 신강윤은 찬물 더운물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신오가문에 호의적이고 조금이라도 입지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든 자신의 세력으로 편입시켰다.

목표는 당연히 곧 공석이 될 차기 헌터 협회장의 자리.

“선거가 시작하기도 전에 자네가 바쁘게 쏘다니는 걸 보니 세월이 참 야속하게만 느껴지더군.”

김석한은 당연하게도 그런 신강윤의 의도를 꿰뚫고 있었다.

“전대 가주의 손을 잡고 우리 저택에 방문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세월을 탓하기엔 회장님께선 아직 너무 정정하지 않으십니까? 그때와 달리 달라진 게 없으시니 말입니다.”

냉랭함마저 느껴지는 겨우 몇 마디의 말에 불꽃이 튀었다. 세상에는 이처럼 시끄러운 정적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렇지. 반면에 자네는 너무 많이 변했군. 그 꼬마에게…… 이렇게 큰 야망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저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죠.”

김석한은 날카로운 가시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신강윤의 말에 한 방 먹은 표정으로 그렇군- 하고 담담하게 웃었다.

이렇게 에둘러 말했지만 자신이 어찌 모를까? 신강윤은 야생의 늑대 같은 남자였다. 아무리 통제하려 목줄을 메어도 타고난 야생성을 잠재울 순 없는 법이다.

“그래. 내가 어떻게 그 마음을 모르겠나? 자네를 쭉 지켜봤는데 그럴 순 없지. ……자네는 아주 대단한 인물이야.”

김석한은 신강윤을 보았다. 그리곤 허허- 하고 사람 좋게 웃으며 잔을 들이켰다. 그리곤 연신 잔에 담긴 술맛을 칭찬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거대한 야망에 끝을 모를 잠재력까지 겸비했으니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인물이지.”

김석한은 칭찬이 끝나자마자 마치 전쟁을 선포하듯 탁- 소리가 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그 증거로 아비조차 가주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F급으로 태어났다면 자식조차 버리는 결단력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리곤 본론을 위해 운을 띄우는 대신 정면승부를 걸었다. 그 신강윤조차 표정이 굳으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벌써부터 너무 날을 세울 필요는 없네. 다만 이 늙은이가 보기에 자네는 너무 위험한 인물이라네.”

신강윤의 눈 밑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지만 아쉬운 건 자신이었다. 이제 곧 헌터 협회장 선거라는 대업을 앞둔 신강윤이 어떻게 김석한을 적으로 돌릴 수 있을까?

“자네가 헌터 협회장이 된다 한들 만족할 수 있겠나? 도대체 어떤 자리에 앉아야 그 허기가 채워지겠나?”

반면 김석한은 나름대로의 이유로 신강윤을 견제하고 있었다. 김석한은 어린 시절부터 신강윤을 보았고 그를 알았다. 김석한이 본 신강윤은 헌터 협회장이라는 자리를 도착점이 아닌 시작점으로 생각할 인간이었다.

“문제는…… 그 끝없는 욕망이 아니라네 전부 삼키더라도 소화만 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 하지만…… 자네는 스스로를 너무 과신하지.”

김석한의 말들은 하나하나 신강윤의 살을 파고들어 뼈를 취하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논검에 가까운 이야기의 정점을 찍은 말은 따로 있었다.

“자네는 이미 틀린 결정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증거가 바로 자네 아들인 ……신유성이고.”

김석한은 신강윤을 보며 마치 길게 이어진 체스게임에 체크메이트를 찍듯 너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신오가문의 가주가 신유성을 버린 사실이 세간에 퍼진다면 누가 협회장의 안목을 믿겠나? 의심이 난무하는 단체에게 대업을 바랄 순 없는 노릇이지.”

하나하나 김석한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신강윤의 속을 긁지 않는 말이 없었다. 김석한은 신강윤이 대업을 이루기 위해 가장 숨기고 싶었을 치부를 적나라하게 마주하도록 만들었다.

“제게 원하시는 대답이 뭡니까?”

표정 관리조차 실패한 신강윤은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좋은 제안을 하고 싶다네.”

“제안?”

“여기서 욕심을 내는 건 너무 추한 일이지 않은가? 차라리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시대에 다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지.”

김석한의 말을 요약하자면 헌터 협회장이라는 자리를 곱게 쥐여 주기엔 신강윤은 너무 꺼림칙한 인간이니 좋게 포기하라는 이야기였다.

“협회장님의 의견도 같습니까?”

“몇 없는 경험이었지. 오랜만에 그 녀석과 생각이 맞아서 기분이 참 좋았다네.”

게다가 협회장인 강유찬까지 한통속이라는 이야기에 신강윤은 헛웃음을 지었다. 7급 헌터인 자신을 제외하고 협회를 이끌 인물이 대체 누가 있단 말인가?

“재미있군요. 제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유성이라네.”

그러나 곧이어 김석한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신강윤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협회장이 자신이 버린 아들을 차기 협회장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니?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아직 아카데미의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을…….”

“농담이 아니라네. 최근 유성이가 보여준 활약을 생각한다면 억지도 아니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성이는…….”

약간의 침묵.

“내 손녀가 너무 좋아한다네.”

그 뒤 이어진 김석한의 말은 신강윤을 으득- 힘껏 어금니를 갈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네는 무척 싫어하지.”

* * *

리벨리온이 나타났다며 난동을 부리는 에이미를 막는데 필요한 건 짧은 한마디였다.

“……역시 베어버리는 게 좋겠군.”

스릉- 부드럽게 검집에서 검이 뽑아져 나오는 금속음과 함께 에이미는 움직임을 멈췄다. 머쓱하게 류진을 바라보는 에이미.

“제, 제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네요. 그, 그렇죠?”

류진은 조용해진 에이미를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베어버리겠다는 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닌 모양이었다.

“어, 음……. 저기, 은아네 연회는 어쩐 일로?”

“…….”

류진은 에이미의 질문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했다. 평소 같으면 시끄러운 에이미를 버려두고 자리를 피하겠지만 네임리스나 아지트의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이 장소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흉악한 계획을 꾸미고 있기에……. 말도 못할 정돈가요? 헉, 설마, 은아한테 위협이 가는 행동!?”

류진에게 뒷덜미를 잡힌 에이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뒷덜미를 잡힌 탓에 그 시선이 닿는 일은 없었다.

“제 친구를 건드리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저 이래 봬도 세븐 넘버! 인…… 파티장님의 동료니까!”

그러나 에이미의 위협이 마천루 아카데미의 1위였던 류진에게 통할 리는 없었다.

“……조용히 있어라. 질문은 받지 않는다.”

“계속 무시하면 떠들 거예요.”

“그럼 베겠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베겠다는 말은 마치 에이미가 조용해지는 마법의 주문과 같았다. 칼집에 손만 얹으며 말을 듣는다니 이 얼마나 편리한 적인가?

‘……근데 이 녀석.’

다만 류진이 한 가지 짚이는 게 있다면 에이미의 얼굴은 묘하게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저기, 근데, 아까 펐던 음식만 가져와도 될까요? 식으면 맛없는데…….”

그 때문인지 에이미가 이상한 부탁을 해도 류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러라는 손짓을 했다.

“……접시만 가져오도록. 허튼 수작하지 마라. 내 검은 소리보다 빠르니까.”

“아, 네…….”

에이미는 쯧- 혀를 차며 자신의 접시를 가져왔다.

“아휴, 오랜만에 휴일인데 이게 뭐람…… 놀지도 못하고…….”

그리곤 류진이 들으라는 듯 푸념을 늘어놓으며 접시에 담아온 뷔페 음식을 쩝쩝거렸다.

스윽-

그러나 혼자서 계속 음식만 먹기엔 어색했던 탓일까, 에이미는 류진의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다.

“근데 그 쪽은 안 먹어요? 이거 맛있는데…….”

“…….”

그러나 이번에도 돌아온 반응은 무시. 에이미는 그러거나 말거나 혼잣말을 떠들어댔다.

“예전에 아카데미에서 내준 숙제를 밀린 적이 있어요. 교수님이 내준 숙제인데 사실 완성한 파일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더니 찾아 주시겠다고 ID를 알려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

“근데 거짓말이 들킬까 봐 포켓 ID도 잊어버려서 알려 드릴 수 없다고 했더니 엄청 걱정하시면서 센터로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

류진은 에이미를 간과했다.

그냥 무시하면 조용해질 거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그걸 3번은 더 반복했더니 나중에는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이 되고 더더 큰 거짓말이 돼서…….”

에이미는 약 30분 가까이를 혼자서 떠들었다. 류진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조용한 인간이라면 에이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수다스러운 인간 같았다.

“……해서! 결국 더더더 크게 혼났다는 사건이에요! 근데 이 이야기의 교훈이 뭔지 알아요?”

“네 입을 다물게 만들려면 대체 뭐가 필요하지?”

거기다 이젠 30분간 떠들며 류진과 친해졌다고 생각하는지 에이미에겐 베겠다는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교훈까지만 들어요! 중요한 이야기니까!”

오히려 에이미는 화를 내며 류진을 가르치려 들었다.

“나쁜 짓은 나쁜 짓으로 덮을 수 없어요. 범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없고요!”

엄청난 일장연설을 끝낸 에이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후우- 하고 긴 한숨을 쉬며 테이블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니까, 되도록 자수하시고 더 이상 나쁜 일은 하지 마세요.”

하마터면 류진조차 속아버릴 수도 있을만큼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이렇게 시끄러운 인간이라면 보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약간의 고민마저 들었다.

하지만 류진은 에이미가 신고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에이미를 보내줄 수 없었다.

“앉아.”

“넵.”

적어도 이번 연회가 끝날 때까지는 에이미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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