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12화 (411/434)

제412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대로 검사 게이트를 통과해주시면 됩니다.”

언제 입어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정장 차림으로 신유성은 몸수색과 신원 검사를 받았다.

‘역시 은아네 저택이라고 해야 할까. 경비를 서고 있는 시티가드 숫자만 해도 엄청난걸…….’

물론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은아의 저택에 찾아온 손님이 신유성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랜만이군요.”

“진산에 꽤 기쁜 소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식이 빠르시군요. 하지만 오늘은 업무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 합시다. 지금은 회장님을 뵙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하하! 맞습니다. 이런 자리에 초대해 주셨으니 저희가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게 응당 옳지요.”

당장 눈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만 하더라도 진산과 명월의 길드장이었다. 유민서의 유수가문과 신강윤이 관리 중인 신오가문과 함께 5대 길드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물론 초대받은 게 헌터 관련 인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어머~ 우리 대스타님이 여기에 계셨네? 해외 스케줄로 바쁘시다 들었는데 국내에는 어쩐 일로?”

“회장님이 마련해주신 자리인데 스케줄이 문제인가요? 제가 신세 진 게 얼마나 많은데요.”

얼굴만 봐도 알만한 유명 연예인부터 정치계의 거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심지어 그런 유명인사들로 이 거대 저택 전체가 북적일 정도니 신성그룹의 회장 김석한의 입지가 얼마나 큰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신유성은 이런 유명인사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김은아가 직접 초대한 VIP였다.

“신유성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연회에서 신유성씨의 안내를 맡게 된 자일입니다!”

덕분에 김은아는 전용 안내원까지 신유성에게 보냈다. 고풍스러운 턱시도 차림에 헤어젤을 바른 남자는 90도로 직각 인사를 하며 신유성을 반겼다.

“반갑습니다.”

“역시…… 소문대로 엄청난 미남이시네요. 수많은 연회에 참여했지만 정말…… 독보적이십니다.”

자일은 신유성을 보자마자 진심으로 감탄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신성그룹의 아가씨가 가온의 남학생에게 제대로 꽂힌 이야기는 사교계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아무리 신유성이 헌터계를 주름잡고 있는 신예라고 하여도 사교계의 주목도는 김은아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남학생이 그 콧대 높기로 유명한 말괄량이 아가씨를 사로잡았나 했더니…… 직접 보니 알 거 같군.’

오히려 자일은 신유성의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헌터계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외모는 마주한 것으로 순식간에 자일을 납득하게 만들었다.

“그럼 아가씨가 오실 때까지 연회장의 소개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자일은 눈웃음과 함께 양손으로 연회장 안쪽을 가리키며 신유성을 이끌었다. 잔디 위에 놓인 테이블 위엔 신유성이 처음 보는 음식과 음료들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세팅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뷔페 파티지만 만약 음식들이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안내위원에게 따로 메뉴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

자일은 혹여 파티 음식이 신유성의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신유성은 그런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신유성은 아예 자리를 잡고 디저트인 카나페부터 바비큐 샌드위치에 이르기까지 수십여 종의 음식을 끊임없이 먹었다.

‘엄청나네……. 홈 파티에서 이렇게 각 잡고 식사하는 손님은 처음인걸…….’

덕분에 안내를 맡으러 온 자일이 직접 신유성의 수발을 들며 음료까지 대령할 정도였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정말 맛있어. 스미레에겐 미안하지만……. 몇몇 요리는…….’

죄악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회의 요리 중 몇몇은 스미레의 요리보다 맛있었다. 사실 최상급 재료를 최상급 셰프들이 조리하니 스미레로선 이길 도리가 없는 게 옳았다.

‘……잘 먹었습니다.’

30분 동안 아예 각을 잡고 식사를 끝낸 신유성은 스미레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가지며 인사를 올렸다. 눈치가 빠른 자일은 신유성의 식사가 끝나자마자 옆 테이블을 가리켰다.

“저쪽에선 이미 테이블 게임을 하고 있군요. 뭐, 요즘 H&M이라는 게임이 워낙 인기가 많으니까요.”

“에이치, 엠?”

“설마 모르시는 건가요? 신성그룹에서 최근 발표한 홀로그램 테이블 게임! 출시와 동시에 오프라인 매장과 포켓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한!”

아무래도 자일은 HM인지 뭔지의 열렬한 광팬인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흥분해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유성은 기꺼이 먼저 제안했다.

“그럼, 한 번 해볼까요?”

“옷! 정말이십니까?”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 남자가 같이 테이블 게임을 해주겠다는 이야기만으로 이렇게 기뻐하는데 못 해줄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신유성이 웃으며 옆 테이블로 향하자 자일은 신이 난 듯 설명을 계속했다.

“H&M은 헌터 앤 몬스터즈의 약자입니다! 진행 방법도 심플합니다. 몬스터 카드와 헌터 카드를 이용해 상대의 포인트를 0으로 만들면 끝! 정말 간단하죠?”

신유성은 안내원에게 간략한 룰을 숙지 받고 자리에 앉았다. 상대는 안경을 쓴 중년의 남성이었다.

“아니 근데, 저 촌스러운 중절모는…… 저 사람 혹시…….”

아직 게임이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자일은 신유성 앞의 남자를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미스터 첸?”

“앗, 진짜다! 미스터 첸이다!”

아무래도 신유성의 상대는 이 테이블 게임에서 꽤나 유명인사인 모양이었다.

“하하, 이거 참…… 유명해도 문제라니까. 자네 초심자라고 들었는데 괜찮겠나?”

미스터 첸은 신성그룹이 개최한 H&M 월드 챔피언십의 1차 프로 대회 우승자였다. 게다가 유명 포커플레이어로 심리전에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 452번 테이블에서 배틀을 시작하겠습니다.

- 헌터 플레이어는 ID넘버 16 미스터 첸 선수.

- 몬스터 플레이어는 ID넘버 9403924 신유성 선수.

- 그럼 펼쳐진 홀로그램 중 카드 테마를 선택해주세요.

사악!

테이블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설명이 끝나자 신유성의 포켓이 빛을 발했고 엄청난 숫자의 카드 테마가 펼쳐졌다.

“초심자에게는 곰 가족 카드 테마를 추천합니다! 차례대로 곰을 소환만 해도 상대를 압박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일은 H&M이라는 게임에서 꽤 실력이 뛰어난 모양이었다. 초심자인 신유성의 입장에선 충고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몬스터 측 곰 가족 카드 테마.

- 헌터 측 트랩 헌터 카드 테마.

- 5초 뒤 게임을 진행하겠습니다. 이번 게임의 선공은 몬스터 플레이어입니다.

위잉!

듀얼이 시작됐다. 눈이 부실 정도로 엄청난 빛과 함께 신유성의 손에는 5장의 카드가 주어졌다.

[배고픈 곰]

[코스트1 공격력 3 방어력5]

[효과: 소환한 뒤 1턴 후, 배부른 곰이 된다.]

[아기 곰]

[코스트1 공격력 1 방어력6]

[효과: 전투로 파괴될 경우 카드 테마에서 엄마 곰을 소환한다.]

[화목한 곰 가족]

[콤보 카드]

[효과:곰 몬스터 카드를 소환했을 때, 이 턴에 한하여 같은 코스의 곰 몬스터 카드를 한 장 더 소환할 수 있다.]

[아빠 곰]

[코스트4 공격력 5 방어력 11]

[효과:몬스터 필드에 곰 카드가 2장이라면 이 카드를 코스트 없이 소환할 수 있다.]

[꿀단지]

[콤보 카드]

[필드에 곰이 3마리라면 전투로는 곰 카드가 파괴되지 않는다.]

H&M에는 비기너 럭이라는 말이 있다. 막 입문한 초심자에게 엄청난 행운이 따른다는 뜻으로 신유성의 패는 포커로 치면 포카드에 필적한 조합이었다.

“엄청난 전개야……. 콤보 카드로 아기곰과 배고픈 곰을 동시에 소환하고, 아빠 곰까지 첫 턴에 전개하다니……. 게다가 전투 파괴 방지까지!”

신유성은 그저 게임기의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카드를 냈을 뿐이지만 그 엄청난 강운에 자일은 감탄했다. 주변에서도 몇몇 구경꾼들에게서 함성이 터지는 걸 보면 신유성은 제대로 게임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음, 이번 게임은 운이 좋지 않군요……. 카드 2장을 미리 깔고 차례를 넘기겠습니다.”

반면 미스터 첸은 표정이 어두운 걸 보아 운이 좋지 않은 듯 보였다. 어쩌면 이번 게임은 신유성이 승리 할 수도 있어 보였다.

‘……이 게임 엄청 재밌어.’

신유성의 마음에선 묘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H&M은 신유성 인생에서 첫 홀로그램 게임이었다. 덕분에 이젠 김은아와의 약속도 잊고 신유성과 자일 모두 푹 게임에 빠져 있었다.

-아빠 곰이 콤보 카드로 베어너클을 장착합니다. 공격력이 7 증가했습니다.

신유성은 마성의 게임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이길 수 있어…….”

“맞아요! 이길 수 있습니다! 신유성 씨 당장 끝내버려요!”

첫 게임부터 대회 우승자를 이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자일까지 흥분해서 외쳤다.

“큭…….”

분해 보이는 자일의 표정에 신유성은 홀로그램의 공격 버튼을 과감히 눌렀다.

하지만 그 순간 공기가 변했다.

“후우…… 역시 트랩 카드 테마를 상대로 의심 한번 없이 공격 버튼을 누르다니…… 운이 좋아도 초보자는 초보자군요.”

자일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깔아둔 콤보 카드를 발동시켰다.

[반사 배리어]

[콤보 카드]

[효과: 플레이어가 받은 공격을 상대 몬스터 전체에게 1.5배의 공격력으로 반사합니다.]

쾅!

아빠 곰의 붉은 손톱이 푸른 반사 배리어를 가격했다. 반사된 붉은 빛은 곰 가족들을 향해 폭사하듯 쏟아져 내렸다. 콤보 카드의 힘 앞에선 꿀단지조차 무의미했다.

- 키에엑!

- 캬악!

신유성은 죽어가는 곰들의 비명을 들으며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서 승리를 좌절당한 신유성은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곰 가족이…….”

“이럴 수가……. 하필 저 카드가 있었다니…….”

그 뒤의 전개는 당연했다.

- 당신은 패배했습니다.

- 승리 플레이어, 미스터 첸.

신유성은 패배했고 미스터 첸은 승리했다. 신유성은 홀린 듯 이어서 3번의 게임을 더 했지만 더 이상의 반전은 없었다.

“허허, 의지는 제법이지만 이건 마음만으로 되는 게임이 아니랍니다. 이게 다~ 고도의 두뇌 싸움이 필요하단 말이지요.”

신유성은 미스터 첸의 훈수까지 들으며 망연자실하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신유성 씨, 이만하면…… 됐습니다. 첫 게임에 이 정도면 정말 잘하신 거예요.”

이젠 한 명의 동료가 된 자일조차 고개를 저었다. 자일은 안타까운 마음에 더는 무참히 패배하는 신유성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너희, 뭐 하냐? 밥 먹고 있을 줄 알았더니 대체 어디 있나 엄청 찾았잖아.”

김은아의 등장은 게임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한곳에 모았다..

“아 이거 그건가? 오빠가 총괄해서 만들었다는 그 카드 게임? 너 몇 번 이겼어?”

“그게…….”

만약 주제가 전투라면 신유성은 순식간에 미스터 첸의 척추를 반으로 접어 버렸겠지만 이건 카드 게임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이 분야의 프로, 승부의 세계는 패자에게 냉혹한 법이었다.

“4번 전부 졌어.”

“뭐? 4번 다? 안 되겠네. 유성이를 4번이나 이겨?”

김은아는 신유성이 당했다는 소식에 미스터 첸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괜히 테이블 게임을 했다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미스터 첸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냥 게임이니까요…….”

하지만 다행히 미스터 첸이 시티가드에게 쫓겨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김은아는 너무나 의외의 제안을 건넸다.

“나랑 붙어.”

신유성의 걱정 어린 표정에도 김은아는 성큼성큼 테이블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기 전, 신유성에게 등을 보인 김은아는 이렇게 말했다.

“대신 이 게임에서…… 내가 이기면. 유성이 너는 하루종일 나랑 있어야 해, 알았지?”

마치 고난도의 던전에 떠나는 헌터처럼 결의에 찬 이야기였다.

“……응.”

신유성은 그제야 웃었다.

김은아는 포기하지 앉는 마음을 배웠다. 그걸 가르쳐 준 건 신유성이었다.

“카드 테마는 보물 고블린.”

김은아는 비주류 카드 테마를 선택했다. 보물 고블린은 모든 카드가 확률과 운에 기대는 불안정한 효과 탓에 인기가 없는 카드 테마였다.

그러나 김은아는 중요한 순간 이상할 정도로 강운이 따랐다. 촉이 지나치게 좋았다.

그건 단순한 운의 범주를 벗어난 탓에 재능이라 불러도 좋았다.

퍼엉-! 펑!

하늘을 향해 아름다운 승부의 폭죽이 터졌다. 게임이 모두 끝났을 때 김은아는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의 수 놓인 별을 보며 불현듯 웃었다.

“아, 생각보다 어렵네…….”

김은아는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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