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0화
에이미가 학생회장이 된 이후 겨우 3일이 지난 날, 신유성은 자신과 주변에 벌어지는 이상 현상을 인지했다.
“부실 앞에 언제부터…‥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지?”
이렇게 가지가 곧게 뻗고 웅장한 나무는 존재 자체가 희귀했다. 그러니 가격도 원하는 사람에 따라 천정부지로 솟는 게 이치.
‘심지어 겨울인데도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고, 푸릇해…….’
겨울잠을 자는 건 동물만이 아니다. 겨울에는 수분이 부족해지고 온도가 낮아지기에 나무도 잎을 떨어트린 초라한 모습으로 겨울잠을 잔다.
그러나 부실 앞에 심어진 나무는 달랐다. 겨울에도 나뭇잎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무신산에서도…… 이렇게 멋진 나무는 본 적이 없어.”
그러나 이건 신유성에게 닥친 변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잔여 외출권 32일]
[현재 SP(School point) 3,204]
오후의 어느 시각.
포켓으로 아카데미의 사이트에 접속한 신유성은 의아함을 가졌다. 자신의 외출권과 SP가 언제 이렇게 많아졌을까?
물론 외출권과 SP를 지급한 부서는 전부 학생회였다.
[아카데미의 우수 학생 - 150P]
[학생회장 활동 지원 - 100P]
[모범 파티 지정 - 150P]
[…….]
‘이게 뭐지…….’
의아한 얼굴로 포켓을 바라보던 신유성은 시끄러운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오르카 준비대찌! 오늘은 겨울 낚시야!”
“역시 가온은 통이 크네요! 화끈한 지원입니다!”
노란 오리 보트에 이젠 수레까지 동원해 낚시용품을 싣고 길을 떠나는 벨벳과 오르카가 보였다.
저런 취미와는 문외한인 신유성이 보기에도 벨벳이 지닌 낚시용품은 보통 가격이 아닌 듯 보였다.
‘스미레가…… 벨벳에게 저런 걸 사준 적이 있던가?’
심지어 벨벳이 끌고 가는 오리 보트에는 [학생회 지원]이라는 정체불명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신하윤이 자퇴하고 새로운 학생회장 에이미의 부임 이후, 가온 아카데미에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 * *
마치 악의 아지트처럼 불이 꺼진 학생회에 정체불명의 로브를 입은 소녀가 들어왔다. 소녀는 조심스레 머리를 가린 로브를 벗더니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학생회장님. 회장님이 부임한 이후, 가온 아카데미의 재정 효율이 얼마나 증가했는지에 관한 신문을 퍼트렸습니다.”
로브를 입은 소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신문부의 실세 이설아였다. 무려 교내 언론이 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에이미와 결탁한 것이다.
“음음, 아카데미의 안정화에 아주 훌륭한 일을 해줬어! 이렇게 불안정한 시기일수록!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법이니까!”
“후후…… 아닙니다. 그저 사실만을 전했을 뿐…….”
“그렇지…… 그게 언론의 역할이니까 음음.”
언론과 정계의 무시무시한 결탁.
심지어 에이미는 자신의 사람을 포섭하는 실력이 아주 능했다.
“헤헤, 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신문부라면 예산을 올려도 좋을 것 같은데! 다른 학생회 일원들은 생각이 어떠신가!?”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학생회는 이미 에이미의 손에 장악이 끝나 있었다. 그나마 에이미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건 박민아 정도였다.
“하지만 학생회장님. 신문부는 충분히 예산이 많지 않습니까? 예산을 늘리지 않아도 활동에는 전혀 문제가…….”
지금까지 신하윤의 곁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민아의 이야기는 언제나 옳았다. 그러나 에이미는 논리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지금에 안주하면 그렇지! 하지만 큰일을 하려면, 투자와 도전이 필요한 법이야! 난 신문부의 가능성을 믿고 응원하고 싶은 거야! 그게 학생회장의 역할이니까!”
에이미와 입씨름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교내에 없었다. 양옆의 간신들은 박수를 쳤고 그 깐깐한 박민아조차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군요…….”
“그리고 난 신문부랑 할 일이 많거든. 가온에서 크게 준비 중인 일도 있고…….”
신하윤이 철두철미하고 원칙주의에 모든 일에서 실리를 추구한다면 에이미는 전혀 다른 학생회장이었다. 기분파인데다 일단 일을 크게 벌였다. 신하윤과는 다른 의미로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감사합니다. 학생회장님! 저희 신문부는 평생 학생회와 학생회장님에게 충성하겠습니다!”
에이미는 언제나 학생회와 반대된 의견만 기사에 실던 교내 언론의 충성을 순식간에 받아냈다.
똑똑.
“……학생회장님. S반의 민성혁입니다. 이채현과 함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럼. 그럼. 들어와.”
테이블 위에 촛불을 둔 에이미는 이채현과 민성혁을 훑어보았다. 그리곤 암흑계 거물처럼 미소를 지었다.
“근데…… 학생회장이 된 건 알겠는데 진짜 이렇게 에이미한테 예의를 차려야 해?”
물론 이채현은 하찮은 이미지였던 에이미에게 이렇게 예를 차리는 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에이미는 이제 엄연히 가온의 학생회장. 민성혁은 에이미라는 절대 권력에 고개를 조아렸다.
“갑자기 부르신 이유가?”
“헤헤, 이제 슬슬 값을 치러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딱!
에이미가 검지와 엄지를 맞대 멋들어진 소리를 내자 옆에 있던 학생회의 간신들은 고급스러운 보석함을 열었다.
“이, 이건…….”
“하윤 선배가 쓰던…….”
에이미는 놀란 민성혁과 이채현의 모습에 뿌듯하게 웃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헌터부를 관리할 수 있는 ID카드! 원래는 하나였지만 총 2개로 만들었어.”
“그렇다는 건, 이제 우리가 헌터부의 부장이라는 이야기야?”
“은아한테 들었어. 채현이 너한테 빚진 게 있다고~”
민성혁은 사람 좋게 웃는 에이미의 모습에서 무서움을 느꼈다.
“이채현은 이해해. 김은아에게 협력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야기가 다르잖아? 그냥 아델라에게 패배했을 뿐이고…….”
“에이~ 너도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
“그, 그래도…….”
당황한 민성혁은 학생회장인 에이미에게 존댓말조차 잊어버렸다. 그러자 에이미는 입을 가린 채 너무나 귀여운 얼굴로 하찮은 웃음을 흘렸다.
“큰 의미는 없다니까~ 나는 전대 회장인 신하윤과 다르니까. 너희에게 겁을 주기 보단……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지. 신하윤 다음으로 헌터부를 잘 알고 있는 건 너희 둘이잖아?”
“지금은 사소한 감정보단 신하윤 학생회장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가온 아카데미가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거구나?”
민성혁의 말에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미의 수완은 신하윤과 전혀 다른 의미로 위협적이었다. 어떻게 저런 토끼처럼 무해한 모습으로 저 정도로 뛰어난 계산을 하는 걸까?
“학생회장님? 방금 비국 아카데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온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이런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이노 아카데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차기 학생회장인 나지혜가 직접 찾아뵙고 싶다고…….”
심지어 에이미는 전대 학생회장을 신하윤이 맡고 있었을 땐 교류가 없던 아카데미와도 먼저 손을 잡았다.
신하윤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절대 왕정을 구축했다면 에이미는 주변의 모든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흠,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어. 이렇게 한 달이면 학생회도 헌터부도 가온 아카데미도 전부 안정화가 될 거야.”
탁!
에이미가 테이블에서 일어나자 커튼이 걷히며 햇살이 쏟아졌다. 다리가 짧아 멋은 없었지만 양옆에 도열한 학생회의 일원들은 기꺼이 새로운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역시 이분이…… 차기 학생회장이 된 건 가온의 행운이었어.’
‘신하윤과는 다르지만 의외의 곳에서 천재성이 있으니까.’
‘충분히 믿고 따를 가치가 있어.’
하지만 에이미 같은 절대 권력자에게도 위는 있었다.
벌컥!
“야 에이미!”
“엉? 은아야~!”
“우리 봄 되기 전에 부실 앞에 꽃 좀 심어줘.”
“꽃?”
“저번에 보니까 벨벳이 자꾸 숲까지 보러 가. 매일 벨벳 찾느라 엄청 고생 했어.”
“그럼~ 그럼~ 당연하지~ 원예부한테 말해둘게.”
에이미는 같은 파티원인 김은아의 부탁엔 한없이 너그러웠다. 파티원이기 전부터 묘하게 친한 관계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 그리고 여름 되기 전에 테라스 근처에 나무도 좀 심어줘. 유리로 비치는 볕이 너무 강하더라. 겨울에도 살아남는 애로. 그 마나석 먹고 자라는…… 알지?”
“그럼~ 그럼~ 맡겨 둬~”
김은아의 부탁이라면 일단 OK.
“그런 나무는 가격이 엄청날 텐데 괜찮습니까? 학생회장.”
박민아가 말려도 에이미는 듣지 않았다.
“부실 지원도 다 필요한 일이야! 우리 가온의 자랑인데 그 정도 지원은 싼 거지.”
오히려 에이미가 한마디를 꺼내면 옆에 있던 간신들이 더욱 거들었다.
“박민아 선배님. 에이미 학생회장님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김은아 학생의 조부께서 가온의 이사장님이라는 걸 잊으셨습니까?”
“그리고 파티의 활약을 생각하면 저도 이 정도 지원금은 당연히 아카데미 단위에서 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와 박민아가 무슨 힘을 쓸 수 있을까?
“야, 에이미. 궁도부 시설이 너무 없던데 예산 좀 늘려줄 수 있어?”
“암암, 헌터에게 궁술은 중요하지! 예산은 2배 정도면 괜찮아?”
“화끈하네.”
이시우가 궁도부 예산을 늘려달라고 해도 바로 OK였고.
“그리고 우리 사쿠라도 ID카드 좀 만들어 줘. 간간히 오면 같이 트레이닝 룸 좀 쓰게.”
“특별 게스트 용으로 하나 만들어 둘 게.”
ID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해도 당연히 OK였다. 아니, 이젠 같은 파티원도 아닌.
“저기 은아 마님의 말씀을 듣고 왔는데…… 강가에 돌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둥글고 큰 걸로요!”
“좋아. 우리 부실원들은 조경사업에 관심이 많구만~”
그냥 벨벳의 단짝 친구 오르카가 말을 해도 OK였다.
“아! 어린이 낚싯대도 필요합니다! 작은 주인님의 새로운 취미시거든요. 다른 캠핑 용품도 있으면 좋겠어요.”
“좋아좋아~”
물론 에이미가 OK 하는 건 예산만이 아니었다.
“저어…… 에이미 씨? 워프 되는 식자재 종류가 너무 적은 거 같아서…….”
스미레의 경우처럼 특정 업무와 관련된 부탁이라도 부원들의 경우는 무조건 우선 처리였다.
“헉!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음식보다 중요한 건 없지! 우리 식자재 워프 관리하는 쪽이 어디였지?”
“학원 도시에서 가까운 상점가 일 겁니다. 당번인 교수님들이 의견을 모아 리스트를 전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명령이 가능한 이유는 정말 에이미가 일 처리를 잘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리스트 작성은 학생들이 하면 되겠네. 교수님들도 편해서 좋아하시겠다. 어, 아니지~ 리스트는 스미레가 직접 작성하면 되겠네. 원하는 걸로 전부 골라~!”
“헉, 저, 정말이신가요?”
“그럼!”
가온은 어떤 학생보다 말을 잘하며, 어떤 학생보다 일 처리를 잘하며 어떤 학생보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에이미의 독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