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09화 (408/434)

제409화

가온 아카데미에는 학년 별로 이용하는 3개의 강당과 아주 큰 연례 행사에만 사용되는 대강당이 있다. 넓이는 다른 3개의 강당을 합친 것보다 컸지만 전 학년이 도열하니 빈자리 없이 빼곡했다.

그러나 왜 자신이 강당에 모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온 아카데미에서 이만한 인원을 모을 만한 사건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학생회 임원 박민아입니다. 신하윤 학생회장께서 돌연 자퇴를 결정하시게 되어……. 학생회의 활동에 차질이 생긴 건 모두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박민아는 차분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정해진 대본을 읊었다.

“사실 부회장이라도 계셨다면 이렇게 급하게 선거 진행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혁 부회장도 같은 선택을 하게 된 바……. 긴급 선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기계처럼 높낮이 없는 어조에 대본의 요점만을 읊은 박민아는 5개의 홀로그램을 대강당에 띄웠다.

“첫 번째 후보는 2학년 S반의 플라시 도밍고. 특이 사항은 스페인에서 개최한 아카데미 통합 대련에서 우승 전적이 있습니다.”

이런 정적인 행사에서 학생들의 이름을 연호하거나 환호하는 사람은 없다. 학생들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오직 강당을 울리는 박수 소리였다.

그렇게 계산한다면 도밍고의 인기는 평범한 수준. 이번 회장 선거의 다크호스는 아니었다.

“두 번째 후보는 2학년 A반의 성석제. 특이 사항은 A반의 반장을 맡고 있습니다.”

오히려 강력한 후보는 세븐넘버면서 A반의 반장까지 맡고 있는 성석제였다. 그는 신하윤과 이혁이 아니라면 차기 학생회장에 가장 가까운 남자.

짝짝짝짝짝짝-!

A반은 물론 2학년 전체가 강당이 떠나가라 쳐대는 엄청난 박수 소리에 몇몇 1학년은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말았다.

“여, 역시…… 차기 학생회장은 성석제 선배인가.”

“아무래도 1학년들은 힘들지. 하윤 선배가 특이한 케이스였잖아. 이제 곧 졸업인 3학년들이 말을 따를 거 같지도 않고…….”

신하윤은 사실상 1학년에 학생회장을 인계 받고 2학년부터 학생회장 업무에 매진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다. 대부분은 곧 3학년이 될 2학년 중에서 학생회장이 뽑히는 경우가 많았다.

“1학년이 참여하기나 하려나?”

“유성이 정도면 몰라…….”

“그렇지. 근데 유성이는 학생회장 자리에 관심이 없잖아. 선거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물론 신유성처럼 대외적으로 엄청난 활약을 하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런 이변은 없었다. 신유성은 이미 다른 활동으로 바쁜 탓에 학생회장직에 도전하지 않았다.

“세 번째 후보는 1학년 A반의 박수현. 특이 사항은 A반의 부반장을 맡고 있습니다.”

결국 나선 건 A반의 박수현.

일처리도 빠르고 따르는 사람도 많은데다 스마트로 유명한 덕분에 응원의 박수가 제법 컸다.

“역시 2학년한테는 안 되네. 대부분의 선배들은 박수를 쳐주지도 않아.”

레니아가 주변의 반응을 슥- 훑으며 말하자 이시우는 당연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텃세지 뭐. 1학년이 학생회장이 되는 걸 곱게 볼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번 선거는 엄청난 활약이나 특별한 점이 있는 게 아닌 이상 1학년 중에서 차기 후보가 뽑히는 건 힘들어 보였다.

“네 번째 후보는 1학년 S반의 이채현. 특이 사항은 입학 때부터 학생회에 입부한 학생입니다.”

S반의 이채현도 다른 학생에 비하면 꽤 활약이 두드러졌지만 반응은 너무나 아쉬웠다. 아니 어쩌면 당연했다. 전투력으로 비교하자면 이채현은 성석제를 이길 수 없었고, 성석제처럼 학생들을 압도할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석제를 이기기 위해 필요한 건 그걸 넘어서는 인망과 힘.

“이런 상황이면 2번 후보로 확정이네.”

“호랑이가 없는 굴은 여우가 왕이라는 건가? 신하윤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던 성석제가 차기 회장이라니.”

“전대 회장과 부회장이 모든 면에서 성석제보다 낫긴 했지.”

전대 학생회장인 신하윤과 부회장인 이혁에겐 있었지만 지금 선거에 출전한 1학년은 아직 그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후보는…….”

무반응으로 대본을 읊기만 하던 박민아는 의외의 참가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했다. 마지막 참가자는 학생회장의 이미지와 너무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1학년 A반의 에, 에이미 로즈. 특이사항으론…… 방송 활동을 통해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에이미가 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했는지 몰랐던 학생들도 있는 탓일까. 너무나 충격적인 발표에 잠깐 강당에는 정적이 일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의미로 박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기 학생회장으로 인정해서가 아닌, 몇몇 학생들은 그냥 에이미를 단순히 좋아해서 박수를 쳤다.

웅성웅성!

“에, 에이미다!”

“쟤 엄청 바쁘던데 학생회장 자리를 맡아도 괜찮은 거야?”

“무슨 상관이야. 유명인도 엄청 많이 알던데 행사 때 데려올지도?”

“그치~ 설아한테는 쇼이치 씨도 만나게 해줬대!”

“아무리 그래도 대대로 학생회장은 좀…… 저런 이미지랑은…… 거리가 멀지 않아?”

하지만 에이미의 역량을 학생들이 의심하는 건 당연한 수순. 학생회장 자리는 단순한 인기투표가 아니었다.

“그럼…… 학생회장 선거는 지금부터 진행할 학생 투표를 포함해 총 4개의 투표 결과를 모아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온의 학생회장 투표는 헌터계의 미래가 영향을 받을 큰 자리인 만큼 박민아 말처럼 아주 신중히 결정됐다.

“아, 물론…… 가온의 현직 교수님들이 참여하는 교수 투표. 헌터 협회의 헌터분이 참여하는 협회 투표. 학원 도시에 주거 중인 인구가 참여하는 시민 투표는 모두 집계가 끝난 상태입니다.”

물론 투표 자체는 현직 교수가 15%의 지분을 협회 임원이 15% 시민 투표가 15%로 총 45%를 차지했다.

“오늘 대강당에서 진행하는 건 약 50%의 결정권을 가진 학생 투표만입니다.”

학생 투표가 55%의 영향력을 가진 걸 생각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미비한 수준이었다.

“그럼…… 투표를 진행하기 전 학생 회장 선거에 출마한 학생들의 마지막 포부를 들어 보겠습니다.”

박민아의 부름에 출전한 학생들은 하나 둘 대강당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커튼 뒤에 암막으로 가려진 공간에서 박민아는 에이미를 마주봤다.

“……너 무슨 생각이니?”

방금 전의 발표에 사용된 목소리가 무감정하다면 이건 너무나 싸늘한 목소리.

“엣, 네?”

당황한 에이미에게 박민아는 약간의 경멸을 담아 한숨을 쉬었다.

“회장 선거는 네 쇼프로도, 장난치는 곳도 아니야. 정말 네가 뽑힐 거 생각하고 출전했니?”

박민아는 출전한 학생들 중 에이미를 콕 짚어 공격했다. 이건 정신적인 공격을 퍼부어 에이미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기 위한 마음도 있었다.

“저는 진지해요.”

“우리 입장도 생각해야지? 광대를 믿고 따를 사람이 있을까? 우리 학생회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차라리 너희 파티장이라도 데려오지 그랬니?”

박민아는 에이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박민아는 신하윤의 밑에서 보고 배운 학생회의 인원이었다. 상급자인 2학년의 기세는 1학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그러나 에이미는 그까짓 텃세에 꺾이지 않았다.

“아뇨,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진지하게 제가 만들고 싶은 학교가 있어요.”

[제가 학생회장이 되면…….]

커튼 밖에서 4번 째 후보인 이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에이미 차례.

“남이 비웃고 우습다거 해도 제가 바꾸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오히려 박민아의 공격은 역효과였다. 결의를 다진 에이미는 힘차게 대강당으로 걸어 나갔다.

“흠…….”

누군가 미리 준비해둔 디딤돌에 올라간 에이미는 많은 인파가 모인 대강당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긴장은 없었다. 이 까짓 대강당에 사람이 많아 봤자, 얼마나 많을까?

에이미는 방송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때 긴장이 아니라, 오히려 고양감을 느끼는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에이미입니다!”

에이미는 마치 방송처럼 활짝 웃어 송곳니를 자랑하며 해맑게 인사했다. 다른 학생들은 기껏해야 짧은 포부를 밝히고 내려왔지만 에이미는 이야기의 시작점부터 달랐다.

“가온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곧 겨울 방학이 끝나면 2학년이 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에이미는 영리했다. 매운 음식만 잘 먹는 게 아니었다. 에이미의 장점은 철두철미한 일 처리나 카리스마가 아니기에, 자신이 불리한 주제를 유리한 주제로 끌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학생회장 선거에 참여 하는 것도, 처음엔 상상조차 못했어요. 저와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느꼈거든요.”

에이미는 타고난 탤런트이자 스토리텔러였다. 자신의 캐릭터와 이야기로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들과 파티원과 많은 모험을 하면서 오히려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듣던 박민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학생회장 발표에 끼어드는 건 진행자로서 절대 해선 안 될 행동이지만 물음을 던졌다.

“……당신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죠?”

그러나 에이미에게 ‘대화’로 승부를 건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방송인으로 다져진 에이미에게 말로 이길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

“그 전에 여쭤 봐도 될까요?”

에이미는 타고난 달변가였다.

발표에서 토론의 흐름이 만들어졌다는 건 오히려 에이미를 돋보이게 만드는 기회였다.

“……뭔가요?”

“박민아 선배님은 1년 간 가온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가온은 헌터 아카데미입니다. 당연히 헌터로서의 업무를 배웠죠.”

박민아의 대답에 에이미는 웃었다. 그건 상대가 자신의 거미줄에 걸렸을 때 짓는 승리의 미소였다.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아카데미는 강한 헌터가 되는 법은 가르쳐 주지만…… 강한 헌터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으니까요.”

저벅저벅-

대강당의 뒤편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아무리 가온 아카데미라도 학생회장 선거 따위의 행사에 직접 행차하기에는 너무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강한 헌터가 지니고 있는 마음이라……. 재미있군.”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에이미의 옆에 걸어 나온 건 헌터 협회장인 강유찬.

“그게 무엇인지 들을 수 있겠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눈이 커진 채 우뚝- 굳어 버린 와중에 에이미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강한 헌터는…… 초월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뭘 해도 잘하고, 슬퍼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그런 사람이요!”

“오호라, 그렇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나?”

“네 지금은 아무리 강한 헌터도 늘 강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에이미의 달변은 강유찬을 상대로도 멈추지 않았다.

“어떤 날은 실수할 수도 있고, 슬퍼할 수도 있고, 절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흠, 그래서야…… 평범한 사람과 같을 텐데?”

강유찬이 한 걸음 다가오자 박민아는 뒤로 물러났다. 자신은 강유찬의 위압감에 굳어 입도 뻥긋 못하고 있는데 마주선 에이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

외유내강(外柔內剛)

에이미를 우습게 본 건 자신이었다. 겉이 유하다고 속내가 약할 것이라 생각한 건 그저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증거로.

“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그다음, 어떻게 극복하는지……. 라고 느꼈어요.”

에이미는 강유찬을 설득하고 있었다.

“극복이라……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나?”

“네, 멋진 동료들을 봤거든요. 스스로의 실패도, 슬픔도, 절망도 결국 극복해낸 강한 헌터들이요!”

강유찬은 에이미의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야기의 상대는 강유찬이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 에이미는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저는 최고로 일을 잘하는, 최고로 똑똑한, 최고로 강한 학생회장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차분하게 발표를 이어가는 에이미의 모습은 지금까지 본 에이미의 모습이 아니었다.

“……제가 지켜본 것들을, 제가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로, 가온 아카데미를 바꾸고 싶어요.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여러분과 함께 정하고 싶어요.”

그야말로 압도(壓倒).

발표를 끝낸 에이미를 향해 학생들을 대강당이 떠나갈 정도의 큰 박수로 응답했다.

“……그, 그럼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기세에 밀린 박민아는 아직 학생 투표가 집계 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누가 차기 학생회장인지 알고 말았다.

[협회 투표 1위 성석제]

[21인 중 7인 33.3%]

[교수 투표 1위 성석제]

[14인 중 7인 50%]

협회와 교수 투표에선 이미 1등으로 성석제가 집계됐지만 다른 투표는 이야기가 달랐다.

[시민 투표 1위 에이미]

[52만 표 97.5% ]

이미 집계되었던 시민 투표는 에이미의 팬들이 참여하며 압도적인 인기 투표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고 가장 중요한 학생 투표도 마찬가지였다. 대강당에선 이미 1학년과 2학년을 나눌 것 없이 에이미의 이름을 외치며 연호했다.

“진짜 감동했어! 에이미!”

“에이미! 힘내!”

“네가 차기 학생회장이다!”

헌터지만 무기도 아니고, 마나도 아닌, 입과 혓바닥으로 쟁쟁한 후보를 모두 꺾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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