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4화
전설의 헌터 아덴의 손녀.
아델라의 재능은 어릴 때부터 빛났다. 무엇을 배우든 머리가 좋아 빠르게 깨우쳤고, 양부모님의 재능을 물려받은 천재였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며 무언가를 깨우침에 있어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델라는 지금 홀로그램 테블릿에 필기까지 하며 뒤늦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작을 끊은 건 당연 신유성의 말 때문이었다.
[어려운 이야기네……. 아델라는 충분히 매력적인걸? 레니아의 미소나 벨벳의 귀여움과는 다른 장점이 있으니까.]
매력.
사전적 의미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힘. 물론 그런 의미를 안다고 해서 아델라가 자신이 가진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매력…….’
머리를 묶은 아델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도수가 없는 안경을 손끝으로 올렸다. 한 가지 안심이 되는 사실은 자신의 매력이 뭔지는 모르지만 타인의 매력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스미레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신유성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파티에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을 숙소에 초대해줘 재밌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하지만 전…….’
스미레와는 달랐다. 그렇게 상냥하게 웃을 줄도 몰랐고, 무뚝뚝했으며 맛있는 요리는커녕 아무리 맛있는 식사를 먹어도 반응이 희미한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모두 저에겐 없는 장점들. 스미레에겐…… 배울 점이 많군요.’
아델라는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무표정의 얼굴로 홀로그램 태블릿에 하나하나 스미레의 매력을 써내려갔다.
[1. 뛰어난 요리 실력]
[2. 상냥한 미소와 배려]
다음으로 아델라가 배울 점을 찾을 타겟은 김은아였다. 아델라는 항상 김은아의 풍부한 표정 변화를 부러워했다.
[뭐라는 거야!]
화가 나면 오히려 조용해지는 아델라와 달리 김은아는 조금만 짜증이 나도 표정으로 그 감정이 비쳤다. 물론 기쁠 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뭐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선물?]
[은아한테 잘 어울릴 거 같아서.]
[뭐, 싸구려 머리끈이긴 한데…… 그래도 예쁘긴 하네.]
아델라가 본 김은아는 표정만 봐도 감정이 드러났다. 입으로는 시큰둥한 척 말했지만 얼굴에선 기쁘다는 감정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자신이 그런 선물을 받아봐야 분명 ‘감사합니다.’ 같은 단조롭고 짤막한 인사로 답했겠지.
‘그리고…….’
아델라도 한 번밖에 본 적 없지만 김은아에겐 무시무시한 필살기가 있었다. 그건 바로 애교.
물론 필살기라는 이름처럼 자주 볼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특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발휘 되는 고급 기술이었다.
[유성이다아~ 흐흥, 우리 유성이이이~]
혀가 짧아진 목소리를 내며 연신 껴안기를 시전하는 김은아를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누가 있을까?
아델라에게 애교란 태어나서 한 번도 도전해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1. 뛰어난 요리 실력]
[2. 상냥한 미소]
[3. 풍부한 감정표현]
[4. 필살 애교]
그래. 자신도 이 정도만 깨우친다면 신유성이 말했던 ‘매력’이란 무엇인지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
공부를 끝낸 아델라는 안경을 벗고 머리를 풀었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저도…….’
공부를 통해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노라고.
* * *
하얀 대리석이 깔린 바닥.
각이 잡힌 물건들이 너무나 깔끔하게 정리된 방을 둘러보며 신유성은 생각했다.
‘아델라가 요리를 해주겠다고 숙소에 초대를 해주다니…… 정말 처음 있는 일이네.’
주말이라 다행이지 심지어 숙소에 초대해준 시간도 너무나 애매했다. 아침밥을 먹을 이른 오전도 아니고, 점심을 먹은 시간도 아닌 오전 10시라는 정말 애매한 시간이었다.
심지어 뭐라고 해야 할까? 뒤에서 바라본 아델라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했다.
‘머리끈으로 묶어 길게 늘어트린 머리나 저 특유의 앞치마…….’
신유성은 오래 되짚어볼 필요도 없었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앞치마를 두르는 특유의 스타일은 스미레가 요리를 할 때 하는 차림새와 너무나 똑같았다.
심지어 오늘 아델라가 만들고 있는 카레는 스미레가 정말 자주 만드는 메뉴였다.
“여기…… 있습니다.”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접시에 담은 카레를 내미는 아델라. 하지만 신유성은 묘한 위화감에 숟가락으로 카레를 뜨기 전 묻고 말았다.
“저기, 아델라? 이 당근이랑 감자는……. 원래 통째로 카레에 넣는 거야?”
아델라는 신유성의 물음에 반창고를 붙인 손을 보여주며 말했다.
“제가 아직 칼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요리가 처음인 아델라가 스미레처럼 맛있는 카레를 만들 수 있을 리 없었다.
신유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예전 스승님이 만들어 주신 음식들도 지금에 와서 맛이 뛰어나다 말할 순 없었지만 음식에 담긴 마음만큼은 어디에도 지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
스윽- 텁-
그러나 숟가락을 입에 문 순간 신유성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달아.’
기분 좋게 단 게 아니라 너무 달았다. 덜 익은 야채의 풋내가 섞인 초콜릿 죽을 숟가락 채 퍼먹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맛이 없으면 신유성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에서 중요한 건 마음이 아니라. 맛이었구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신유성은 꿀꺽 억지로 카레를 삼켰다. 카레 형상을 한 야채 초콜릿 죽은 식도에서 화려한 존재감을 펼쳤다.
‘맛이 너무 충격적이라 몰랐는데, 이거…… 엄청 매워.’
왜 이제야 눈치챈 걸까? 아델라식 카레는 엄청 달달한데 입 안이 따끔거리고 혀가 아릴 정도로 매웠다.
벌컥벌컥!
재빠르게 물을 먹은 신유성은 얼굴 앞에 양손을 맞대고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졌다. 묻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걸 조리 있게 정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저기, 아델라……. 이 카레는 무슨 재료가 들어간 거야?”
그 물음에 아델라는 열심히 공부한 레시피를 홀로그램으로 펼쳐 신유성에게 보여주었다.
“아, 모두 레시피대로 했습니다. 버터로 양파를 볶고……. 구운 고기에 야채를 넣어서……. 한 가지 특별한 재료라면 초콜릿을 넣었습니다.”
“초콜릿?”
“네 카레에 초콜릿을 넣으면 풍미와 맛이 좋다고 하더군요.”
아델라는 신유성이 보는 앞에서 벨벳의 간식 중 하나인 대형 초콜릿 봉투를 자랑스레 꺼냈다.
“그래서 전부 넣었습니다. 당신은 단 음식을 좋아하니까요.”
“그럼…… 이, 매운 맛은?”
신유성의 두 번째 질문에 아델라는 텅 빈 플라스틱 병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적힌 ‘페페론치노’라는 5글자와 ‘아주 매움’이라는 경고는 따로 이해를 위한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자주 쓰이는 향신료를 넣었습니다.”
“그렇구나.”
신유성은 다시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이 카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미숙한 실력입니다만. 당신……. 카레 맛은 어떠십니까?”
심지어 아델라의 얼굴은 어쩐지 덤덤한 표정 속에서도 묘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신유성은 이 독극물을 맛있게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벌써부터 앞치마를 입은 스미레가 그리워지는 식사였다.
“그게…….”
신유성이 대답을 망설이자 아델라는 숟가락을 가져와 자신도 카레의 맛을 보려 했다.
“저기, 아델라!”
합-
신유성이 말릴 새도 없이 입에 넣었다. 곧 아델라는 평소보다 몇 배는 커진 동공으로 자신이 만든 독극물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설익은 야채와 아주 달고, 혀가 아릴 정도로 매운 자신의 카레는 이미 음식이 아니었다. 이미 벌칙에 가까웠다.
“아…….”
아델라는 외마디 단말마와 함께 신유성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그 끔찍한 카레를 한술 더 떠 입에 넣었다.
“아델라…….”
신유성은 그런 아델라의 모습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델라는 말없이 자신의 카레를 보았다.
그 뒤에 찾아온 건 너무나 긴 침묵의 1분. 아델라는 자신이 만든 독극물을 보며 힘없이 말했다.
“스미레…… 그녀가 만든 음식을 당신과 벨벳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내심 부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아델라의 요리는 대실패였다. 만약 벨벳에게 이런 걸 먹인다면 적어도 3일은 침대에 몸져누워서 일어날 수 없었겠지.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꿰맨 아델라는 물끄러미 신유성만 보았다.
‘아, 아델라…….’
신유성은 그런 아델라의 표정에서 속내를 읽고 말았다. 아델라는 마치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작부터 내가 망쳐 버렸어.]
[이 다음은 준비한 게 없어.]
그래서 그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신유성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스미레 특유의 분위기 같은 건 흉내지 못했다. 아델라의 작전은 대실패였다.
결국 여기서 아델라에게 손을 뻗어줄 사람은 신유성 밖에 없었다.
‘대체 아델라는…… 뭘 고민하고 있는 걸까?’
아델라는 가온의 얼음 여제였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동경의 대상이자, 이탈리아 국민들의 기대주였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만들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건 아델라의 역할이 아니었다.
거기다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델라는 다른 이들이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그건 마치 절벽에 핀 고고한 꽃 같아서 범인들은 다가서기 힘든 존재였다.
‘그러니 미숙할 수밖에…….’
신유성은 숟가락을 잡은 아델라의 창백할 정도로 하얀 손을 감쌌다. 신유성은 아델라의 차가운 피부 너머로 그 속에 감춰진 따뜻한 온기와 박동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흉내 낼 필요는 없어. 아델라에겐 아델라의 장점이 있으니까.”
아델라는 신유성의 위로에 고개를 들었다. 신비로운 붉은 눈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덕분에 도욱 도드라졌다.
“저의 장점……. 그런 게 정말 있을까요? 저는 스미레처럼 맛있는 요리를 하는 방법도 당신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는 법도 모릅니다.”
아델라는 신유성과 눈을 마주쳤다. 아델라는 스미레처럼 낮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단점을 토로하는 게 아니었다. 아델라는 정말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김은아, 그녀처럼 표정이 풍부하지도 않고…… 재미있는 반응으로 당신을 웃게 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델라의 이야기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아델라나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아. 가끔은 후회의 순간이 떠오르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 그저 말하지 않을 뿐이야.”
신유성은 아델라의 손을 놓았다.
대신 아델라의 뒤로 다가가 따뜻하게 끌어 안아주었다.
“난 아델라처럼 다른 사람에게 솔직한 감정을 털어 놓을 용기가 없거든.”
신유성은 아델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델라는 하얀 눈 같다.’ 신유성은 자신의 단점이라 생각했던 무미건조함조차 장점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군요.”
아침부터 이렇게 좋은 깨달음을 얻다니, 아델라는 웃었다. 카레는 망쳤지만 좋은 식사였다.
“더 준비한 건 없지?”
신유성의 물음에 아델라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환히 웃으며 답했다.
“……하나 있습니다. 다음 작전은 애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