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3화
겨울 방학이 끝나기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S반에서 밀린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아델라는 복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쫑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안녕~ 유성아~ 하이하이!”
“안녕 레니아. 엄청 기뻐 보이네 좋은 일이라도 있어?”
“나 방학 동안 생각보다 점수를 엄청 벌었더라고! 하급반 전체에서 상위권이야!”
“축하해 레니아. 웃는 게 무척 보기 좋아.”
웃는 게 보기 좋다. 그건 그냥 평범한 칭찬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신유성은 복도를 지나쳤다.
‘……웃는 게 보기 좋다.’
신유성의 입장에선 그저 평소처럼 평범한 칭찬이었지만 아델라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난…… 항상 어떤 표정이었지?’
아델라는 책상 옆에 누군가 두고 간 손거울을 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무표정했다. 차가움마저 느껴졌다.
“흠…….”
하지만 아직은 짧은 감탄사로 끝.
아델라는 다시 업무를 재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부실의 소파에 앉아 있던 아델라는 벨벳의 서재에 들어가는 신유성을 보았다.
“캬항-! 충격적이야! 사실은 처음 나온 주인공이 나쁜 사람 이어써! 반전! 서술 트릭! 벨벳만큼은 아니지만 천재적이야!”
서재에선 또 무슨 어려운 책을 읽은 건지 벨벳이 진심으로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벳. 엄청 재밌는 이야기를 읽었나보네?”
“캬우……. 너무 재밌어! 벨벳은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이대론 멈출 수가 업써…….”
“재미있으면 더 읽어야지.”
“조아, 그럼 두 권만 더!”
에이타 킨더가든의 숙제 따윈 미뤄버리라는 신유성의 허락에 신난 벨벳은 서재에서 다음 시리즈를 꺼내 쥐고 쫄래쫄래 달려갔다.
아델라는 신유성이 서재에서 나오는 순간까지도 귀를 쫑긋거린 채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스윽-
문을 닫고 나온 신유성은 홍차를 마시고 있는 아델라에게 언제 꺼내 온 건지 모를 과자를 내밀었다.
김은아가 준비해둔 과자는 아델라도 인정한 최고급품이었다.
“벨벳은 기뻐하는 모습이 참 귀여운 거 같아.”
벨벳이 귀엽다니 그건 아델라가 늘상 생각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늘 복도에서 들렸던 이야기 때문일까? 아델라는 그 말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기뻐하는 모습…….’
아델라는 가만히 신유성이 건넨 과자를 보았다. 혹여 신유성이 무안할까 곧바로 손으로 과자를 받았지만 벨벳처럼 기쁜 반응을 보일 순 없었다.
“감사합니다.”
자신은 그저 이런 형식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유성은 그런 아델라를 보며 싱긋 웃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기 좋다거나, 귀엽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생각이 깊어지는 밤. 기숙사에 돌아온 아델라는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며 거울을 보았다.
[축하해 레니아. 웃는 게 무척 보기 좋아.]
신유성이 복도에서 했던 말을 되짚으며 아델라는 어설프게 웃어보았다.
‘……이렇게 웃는 거군요.’
아델라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 무언가 깨달음을 느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음은 두 번째 차례였다.
[벨벳은 기뻐하는 모습이 참 귀여운 거 같아.]
아델라는 신유성의 말을 떠올리며 벨벳이 기뻐하는 표정을 떠올렸다. 아마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눈은 평소보다 커지고 초롱초롱한데다 이렇게 입을 벌린 채…….
‘……이거군요.’
끄덕끄덕.
확신을 가진 아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나는 연습 끝에 자신은 레니아의 보기 좋은 웃음과 벨벳의 귀여움을 가지게 되었다고 아델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럼, 내일은 꼭…….’
아델라는 침대에 누웠다.
폭신한 이불로 몸을 덮은 아델라는 내일의 자신을 달라지리라. 모두에게 새롭게 배운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 * *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 방학 동안 밀린 업무를 마치는 건 가온의 상급반 학생들에게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 진짜 뭐냐고…….”
하지만 S반의 학생들이 제출한 서류를 확인하던 이채현은 당황한 듯 손톱을 질근거렸다.
“미치겠네. 이거 예산도 안 맞고 인원도 다른데? 뭔가 누락된 건 맞는 거 같은데……. 도저히 그게 누구인지 알 수가 없네…….”
대체 어디서 빠트린 걸까?
솔직히 포켓의 메시지 함을 다 뒤져서 일일이 대조하지 않은 이상 문제점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 솔직히 여기까진 큰일이 아니었다. 어제 이 사실을 알았다면 문제는 귀찮음의 영역이었으니까.
‘심지어 어제 소해정 교수님한테 제출까지 끝냈는데……. 갑자기 수정하겠다고 하면…….’
소해정 교수는 100% 이 일을 추궁할 것이다. 귀찮음에 설렁설렁 업무를 처리했다는 게 들키면 싫은 소리로 끝날 리가 없었다.
특히 이채현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건 S반의 반장인 아델라였다. 표정만 보아선 좀처럼 기분을 알 수가 없었기에 화를 내면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었다.
예전에 대전 중 에이미를 얼렸던 것처럼 자신을 얼려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이번에는 그냥 얼버무리자. 솔직히 아델라가 어떻게 알겠어?’
결국 이채현은 아델라에게 얼버무리고 일을 숨기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이번만 넘어간다면 괜찮다. 다음부터는 열심히 일을 처리하면 되지 않은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S반의 문을 열었다.
‘……아침부터 표정 좀 봐라. 나까지 얼어붙을 거 같네.’
이채현은 마음속으로 뒷담 아닌 뒷담을 하며 아델라에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저, 저기 반장. 여기~ 방학 동안 우리 반 애들 의뢰비 결산해왔어. 내, 내가 몇 번이나 봤으니까. 따로 확인 안 해도 돼.”
나쁜 짓을 했다는 자각 때문에 긴장했기 때문일까. 이채현은 말까지 더듬었다.
1초. 10초. 30초. 60초.
꿀꺽.
이채현을 마른침을 삼켰다.
1년 같은 1분이 지나고 아델라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채현을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그래. 이번 한 번은 넘어가는 거겠지? 아무리 아델라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서류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후우, 진짜 괜히 걱정 했…….’
우뚝-
안도하려던 이채현은 아델라의 표정을 확인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책상에 앉은 아델라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채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씨익-
아델라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반쯤 게슴츠레 감긴 눈은 마치 질문을 하는 듯 보였다. 그건 기쁨의 웃음 같은 게 아니었다.
“참. 잘했네요.”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생처음 보는 아델라의 표정에 이채현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자신이 가온의 얼음 여제에게 무슨 결례를 했는지 깨달았다.
“아, 아…….”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냉혹한 눈. 그럼에도 자신을 우습게 본 이채현에게 흥미를 느낀 듯, 아델라의 입은 웃고 있었다.
털썩!
이채현은 뱀을 본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다. 절망에 찬 표정을 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 반장 그게…….”
등골에 소름이 돋으며 몸이 얼어붙는 기분. 이채현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안, 잘못했어……. 내가 사과할 게 반장…….”
저벅저벅.
공포에 질린 이채현의 사과에도 가온의 얼음 여제 아델라는 여전히 경멸에 찬 표정을 지으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리곤 이채현의 귓가에 밤바람처럼 스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신 덕분에 무척 기쁜데…….”
이채현은 아델라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신유성이 나타나기 이전, 아델라는 가온의 유일한 여제였다. 1학년 중 그 누구도 아델라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은 방금 그런 아델라를 건드린 것이다. 아델라의 역량을 우습게 보고 속이려 했다.
그래, 재밌겠지, 아델라가 전투에 미쳤다는 건 단순한 헛소문이 아니었으니까.
탓, 타닥-!
겁에 질린 이채현은 뒤로 짚은 손을 이용해 아델라에게서 멀어졌다. 아델라는 이채현의 입장에선 여전히 소름 끼치는 표정을 지은 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체 왜……. 도망치는 겁니까? 그저 저는 당신을 칭찬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채현은 아델라의 말에 찔끔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이채현의 입장에서 아델라의 말은 이렇게 들렸다.
[칭찬할게.]
[감히 겁도 없이 나에게 덤빈, 바보 같은 네 용기를.]
이채현은 아델라를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붉은 눈은 광기에 물든 미소와 함께 자신을 반겨주었다.
“그게, 아니야. 반장……. 나는, 너를 속이거나, 너에게 덤비려는 게 아니라……. 그, 그냥 실수였어. 아니…… 실수가 아니지. 속이려는 건 맞았으니까……. 딸꾹!”
하지만 아델라의 입장에서 이채현의 반응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이채현은 자신의 표정을 보고 겁에 질려 뒤로 도망치더니 고해성사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아델라는 그저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거나, 귀엽다는 말과 비슷한 칭찬을 듣고 싶을 뿐이었다.
“제 표정이 어때 보이십니까?”
아델라는 혹여 자신이 착각했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이채현에게 확인 절차를 거쳤다.
“무서워. 절대…… 용서해주지 않을 거 같아. 나 같은 건, 순식간에 얼려서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어 하는 표정이야.”
물론 반전은 없었다.
아델라가 연습까지 하며 지었던 가장 밝고, 가장 귀여운 표정은 이채현에게 가장 무서운 표정이었다.
‘아…….’
망연자실한 듯 입까지 벌리며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실망하는 아델라.
“미안, 반장! 당장 고쳐서 올게!”
이채현은 그 틈을 타 S반 밖으로 몸을 던지듯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손을 뻗은 아델라는 멀어져가는 이채현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그러고 보니……. 아직 아델라가 교실에 있을 시간이네.’
가온의 반장들은 바쁘다. S반처럼 상급반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혹시 아델라는 지금도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걸까? 교장실로 향하던 신유성은 S반 너머로 슬쩍 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신유성의 눈엔 홀로 책상에 앉아 있는 아델라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일이 남았나 보네?”
물론 신유성이 아델라의 일을 도와주는 건 무리였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아델라의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것뿐.
“아마…… 30분 정도면 끝날 거 같습니다.”
신유성은 자신과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은 아델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곤 무표정한 아델라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은 듯 언제나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델라. 고민이 있구나?”
아델라는 짐짓 놀란 듯 보였다.
신유성은 평소처럼 알기 힘든 자신의 표정에서 어떻게 감정을 읽은 건지 궁금했다.
“네……. 그저, 바보 같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뭘?”
신유성의 물음에 아델라는 그제야 시선을 맞췄다. 이런 부분에서 아델라는 김은아처럼 부끄러움을 타거나,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차별적인 직진에 가까웠다.
“어떻게 해야. 저도 레니아처럼 밝게 웃을 수 있을지…….”
그래서 아델라는 당사자인 신유성을 앞에 두고.
“그리고 벨벳처럼……. 당신에게 귀엽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줄곧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