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401화 (400/434)

제401화

“주인님! 오늘도 돌을 주으러 가시나요?”

“캬항! 맞아! 틈이 날 때마다 열심히 모았더니 벨벳은 돈도 마나석도 엄청 모아써! 이제 부자야!”

범고래 인형이었던 오르카가 갑자기 10살 남짓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후, 아델라는 난데없는 고민에 빠졌다.

‘벨벳…….’

아델라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육아의 선생이라도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었다. 소중한 딸이 연상의 남자 아이와 친하게 지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지어 점점 개학 시즌이 다가오며 아델라가 A반의 업무 때문에 불려가는 시간이 많아지자 벨벳은 오르카와 붙어 있는 시간이 훨씬 늘었다.

스멀스멀.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인형일 때는 느껴보지 못한 냉기가 점점 온몸에 스며드는 기분에 오르카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오르카가 고개를 돌린 곳에 서 있는 건 빼꼼- 머리를 내민 무표정한 얼굴의 아델라였다.

‘나 뭔가 잘못한 걸까?’

오르카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치를 보았지만 다행히도 아델라가 얼음으로 공격을 퍼붓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아델라의 몸 안에 새겨진 딸 바보의 DNA가 오르카를 견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오르카 가쟈! 캬항!”

“네, 넷 주인님!”

오르카는 벨벳의 손을 잡고 지그시- 바라보는 아델라의 눈빛을 피해 빠르게 부실을 벗어났다.

* * *

4인의 헌터 위원으로 당당히 뽑힌 유민서는 협회의 초대에 응해 드레스 코드까지 맞추어주었다.

유명인사나 헌터들 사이에선 물론 배우 같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유민서의 압도적인 미모는 단연 빛이 났다.

“……전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협회의 부름에 응했을 뿐입니다. 헌터계의 밝은 미래와 후대를 위하는 것도 헌터의 덕목이니까요.”

유수 가문이 낳은 천재.

한국의 몇 없는 7급 헌터.

거기에 ‘미모’라는 스타성을 지닌 유민서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녀가 기자회견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기자들은 물론 가드라인을 뚫은 일반인으로 인파가 바글바글할 정도였다.

“엄청나군. 헌터인지 연예인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야.”

“저분한테 연예인이 비할 바가 되겠어요? 여기가 단순히 회견장이라 그렇지 월드스타도 유민서 님 같은 인기는 절대 구가하지 못할 겁니다.”

미소를 지은 유민서는 관계자들의 인도를 받으며 회장을 벗어났다. 7급은 물론 협회장인 강유찬까지 모인 이 장소에 시티가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협회의 기자 회견장은 아무리 리벨리온이라고 해도 건드리지 않을 거대 벌집이었다.

“오늘은 경호원이 없어서 편하네. 우리 둘만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많은 대답은 못 해줘. 내가 알고 있는 건 이미 누나도 예상할 사실들뿐이야.”

유월의 대답은 유민서와 벽을 긋는 듯 보였다. 정말 정보가 얼마 없다는 의미보단 무엇을 알고 있든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는 선언 같았다.

“걱정 마렴. 하윤이가 뭘 계획했는지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아. 네가 뭘 숨기고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고. 다만…‥.”

그러나 다행이도 유민서가 궁금해하는 건 신하윤의 ‘비밀’에 관한 것도, 아카데미를 그만둔 신하윤의 선택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유성이가 하윤이를 이긴 거야? 그…… 하윤이를?”

유민서는 그저 신유성이 신하윤을 이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신하윤이 얼마나 강한지는 어머니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부모인 자신조차 그 아이가 얼마나 힘을 숨기고 있는지 한계를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대로 두었다면 자신과 같은 7급은 물론 빠른 시일 내에 최강의 헌터 후보로 손꼽혔겠지.

“믿어도 좋아. 내가 직접 확인했으니까. 신유성은 신하윤을 이겼어. 그건…… 하윤이가 숨겨온 힘조차 신유성에겐 통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하지만 유월의 충격적인 이야기에도 유민서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에 싸늘함이 더해졌다.

“권왕, 유원학…… 그 사람이랑 나의 차이는 뭘까, 난 왜 7급을 벗어날 수 없고, 그 사람은 8급이 될 수 있었을까? 유성이의 잠재력은 어떻게 알아봤을까?

유민서는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무서울 정도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약간의 광기까지 어린 모습이지만 이전부터 지켜봐 온 유월은 새삼 놀라지 않았다.

“중요한 건 누나는 모든 패를 잃었다는 사실이지. 신하윤에게 거는 기대가 꽤 컸잖아?”

유월은 유민서의 아픈 부분을 긁어 놓았다. 신하윤이라는 카드를 잃은 유민서가 평소처럼 여유롭게 자신의 도발을 받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유민서는 예상을 뒤엎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거는 기대가 컸지. 하지만 모든 패를 잃었다니…… 그건 아니잖아?”

“설마…….”

유월은 경멸이 섞인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유월은 유민서는 자신의 누나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맞아. 유성이도 내 아이니까.”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유성이는 이미 신오가문도 유수가문의 사람도 아니잖아. 그렇게 떠나 보낸 건 다름아닌…….”

“아니. 그건 달라.”

“뭐?”

“그때는 몰라서 그런 선택을 했던 거니까. 지금은 다르다고. 나한테도 그이한테도 지금은 유성이가 필요해.”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한 유민서의 대답. 유월은 유민서가 자신과 같은 핏줄이라는 게 환멸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웃고 있는 유민서의 미모는 동생인 자신이 보아도 섬뜩할 정도로 예뻤다.

그 모습이 신유성의 외견과 닮았다는 건, 같은 피를 나눴다는 건 절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좋아. 그럼 무슨 수로? 비온 뒤 굳은 땅처럼 분열도 통하지 않을 테고, 협박한다고 그물에 담길 물고기가 아니야. 이미 너무 덩치가 커버렸으니까. 유성이의 뒷배가 누구인지는 누나도 알고 있지?”

“그래. 알고 있어……. 정말 거슬리는 사람이지.”

그렇게 언급하지 않아도 잠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열등감을 가지는 상대를 어떻게 잊을까.

유민서는 자신의 아들을 빼앗아간 유원학이 미웠다.

“내가 버린 돌이 보석인 줄 알았다면 돌려줄 생각을 했어야지. 그걸 냉큼 주워 가다니. 그, 염치없는 인간…….”

유월은 유민서의 싸늘한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유월은 자신의 누나가 무슨 짓을 벌일지는 몰라도, 원하는 걸 가지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니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진 마. 억지로 뱃속에 집어넣다간 찢어지고 말아.”

“충고. 고마워. 물론 리벨리온의 개가 된 겁쟁이에게 들을 말은 아니지만…….”

유민서는 어디서 꺼냈는지 부채를 탁- 하고 펼쳐 웃음을 가렸다. 궁지에 몰린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의 아픈 곳을 물어뜯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유월은 신하윤의 성격이 누굴 닮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성이가 누나의 얼굴은 닮아도 성격은 닮지 않아 다행이야.’

* * *

“은아 누나는 이 영화 본 적 없댔지? 우리는 100번은 돌려 본 거 같아. 우린 10초 뒤 대사까지 아는 수준이야. 베티! 얼른 총을 찾아! 그 녀석이 우릴 찾기 전에!”

스이토는 손님의 방문에 신이 났는지 영화의 대사를 따라하며 떠들어댔다.

- 베티! 얼른 총을 찾아! 그 녀석이 우릴 찾기 전에!

돈을 아끼느라 같은 영화만 몇 번이고 다시 본 탓에 정말 영화의 내용에 통달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김은아는 다른 이유로 영화에 집중 할 수 없었다.

“유성 씨, 여기…….”

스미레는 귀엽게 토끼 모양으로 손수 깎은 사과를 포크로 집어 신유성에게 먹여주었다.

와작!

물론 신유성은 그걸 또 좋다고 입으로 받아먹는 모습을 보니 김은아는 괜히 눈이 가늘어졌다.

심지어 예전에는 신유성의 눈만 마주쳐도 부끄러워하던 스미레는 어디 가고 이젠 아예 팔에 착 달라붙어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아주 깨가 쏟아지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웠다.

지금까지 쌓아온 체면만 아니라면 자신도 사과를 먹여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이었다.

“야.”

다만 스미레가 깎아온 사과를 신유성에게 먹이는 건 뭔가 모양새가 우스우니 김은아는 아까 마트에서 사온 과자로 타협했다.

“이거도…… 먹어.”

“응? 난 괜찮아. 과자보단 사과가 입에 맞는 것 같아.”

하지만 신유성은 김은아의 호의를 너무나 당연하게 거절했다. 그래. 인정한다. 마트 과자가 손수 깎은 토끼 사과한테 지는 건 필연이겠지.

“그, 그래?”

신유성의 거절에 시무룩해진 김은아는 괜히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스미레는 같은 파티원인 김은아를 그렇게 가만히 둘 사람이 아니었다.

“……은아 씨.”

소곤소곤.

스미레는 영화시청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김은아를 부르더니 조심스레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스미레……. 이건…….”

그건 바로 포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스미레가 신유성의 입에 사과를 먹여주던 포크였다.

‘나, 주는 거야?’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포크를 바라보던 김은아는 스미레에게 눈으로 말했다. 자신이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유성이 질린다고만 말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이 포크로 사과를 먹였을 것이다. 그런데 스미레는 김은아를 위해 그 포크를 양보했다. 그게 자신과 스미레의 다른 점이었다.

콕-

김은아는 스미레가 준 포크로 스미레가 깎은 사과를 집었다. 솔직히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부러워 할 정도로 귀여운 토끼 모양이다.

손재주가 없는 자신이라면 분명 삐뚤삐뚤 이상한 모양으로 깎아 놨겠지.

“……자, 유성아. 여기.”

김은아를 포크를 신유성의 입에 들이밀었다. 영화에 집중한 신유성은 곧이곧대로 받아먹었고 김은아는 만감이 교차했다.

김은아는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스미레를 보았다. 어쩐지 눈이 찡해지고, 가슴이 빠르게 뛰는 기분이 들었다.

‘……스미레.’

김은아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입모양으로 말했다. 자신은 오늘의 일을, 스미레의 따뜻함을 잊지 않겠노라 그렇게 말했다.

‘나…….’

그래. 그게 김은아의 방식이고 김석한이 알려준 신성그룹의 방식이었다. 신성그룹은 절대 빚을 잊지 않는다. 기껏해야 싸구려 포크와 사과 한 점이라도 김은아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알고 있었다.

‘절대 잊지 않을 게.’

신유성이 아닌, 두 여인의 사이가 점점 돈독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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