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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90화 (389/434)

제390화

재앙의 마녀 중 누구도 처음부터 마녀의 삶을 선택한 사람은 없었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초월을 경험했을 때야 마녀는 비로소 탄생한다.

그 확률은 몇억 분의 일.

아니 어쩌면 더 극악한 확률이었다. 대신 마녀는 영생에 가까운 삶을 누리고 태초의 기록인 아카식 레코드를 엿보며 인간은 감히 닿지 못할 지식을 가진다.

덕분에 루이스는 겨울이라는 계절에 닿았고, 라플라스는 죽음과 닿았으며 모르간은 무의식의 세계와 닿았다.

초월이란 그런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금지된 영역이었다.

“왜, 또…… 너 같은 게 네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거야? 왜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아?”

신하윤은 반복되는 몽환을 통해 몇백, 몇천의 수를 보았고 수십의 해답을 보았다. 모르간의 힘을 통해 진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변수 속에서 그 수많은 시뮬레이션 속에서 자신이 신유성에게 패배하는 미래는 없었다.

“평범한 인간 주제에! 그 중에서도 F급 특성을 가진 불량품 주제에-!”

신하윤은 이제 더 이상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가온의 파티를 분산시키고 꾀어내기 위해 제단에 글래스하트를 흩어놓았으니.

신하윤은 자신이 보유한 마나를 염두 해두며 싸우는 게 옳았다.

그러나 신하윤은 또다시 보라색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전부 잊게 만들어줄게. 이름도 모습도 온전치 않을 테니 네 친구들도 절대 너를 못 찾겠지.”

쾅-!

인간은 뇌에 기억을 저장한다.

꿈이란 뇌가 그 기억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그 현상을 통해 정리해야할 진짜 기억 대신, 의미 없는 기억을 덧씌운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양이 원본의 몇 백배 몇천 배로 방대하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도 자신이 살았던 세계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도 모두 잊게 되겠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하게 말을 하는 법이나 사고의 방식조차 잊게 될지 모른다.

망각의 빛(Light of oblivion)

모르간이 만들어낸 빛은 지옥의 빛이었다. 죽음보다 무서운 망각이란 이름을 가지고 산 자에게 걸어오는 지옥.

화악-!

보라색 빛이 신유성을 덮쳤다.

그러나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응시할 뿐 마나를 발휘하지도 반격을 하지도 않았다.

“이제 끝났어. ……내가, 이긴 거야. 그렇지?”

정말 승리를 확신했다면 이렇게 물어봤을 리가 없다. 여느 때처럼 여유롭고 고고하게 무방비한 뒷모습을 보였겠지.

하지만 고개를 비스듬하게 꺾은 신하윤의 눈에는 신유성을 향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이번에도 통하지 않으면 다음은 뭘 해야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 눈. 이미 패배한 사람의 눈이야. 그때의 나처럼.”

아니나 다를까 신유성은 자신을 잊지 않았다. 오래된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왜…….”

과거와 달리 이번에 절망한 건 신하윤이었다. 신하윤이 현실을 부정하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자.

“신유성은 이미 자신의 괴로운 기억까지도 모두 품었느니라. 그러니 더는 조각나지도 않으며, 더는 망각할 리 없다.”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라플라스가 신하윤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모르간.”

모르간. 라플라스는 절망하는 신하윤을 모르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좌절한 동생을 바라보듯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제 그만 포기하라 일렀다.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이번 기회도 너의 패배라는 걸.”

“닥쳐……. 마녀의 기억을 가진 내가, 겨우 인간 따위에게…… 패배했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마녀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외톨이인 너는 모르겠지.”

신하윤은 라플라스에게 소리쳤다.

“너, 기껏해야 가짜 따위가 잘난 척 설교를…….”

“가짜라.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나는 가짜라는 그 말이 그리 싫지 않구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 라플라스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라플라스는 인정했다. 어쩌면 이런 무른 생각을 하는 건 스미레와 너무 오래 교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유대는 인간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 마녀인 내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건 나도 모르는 사이 스미레를 닮고 말았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스미레가 편린을 얻은 그 순간 자신은 역병의 마녀 라플라스가 아니었다. 라플라스와 스미레 사이에 놓인 ‘무언가’였다.

“그래. 그러니 마녀인 내가 이런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것이겠지.”

참 재밌는 여흥이었다.

스미레의 마음의 땅에서 성을 짓고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가끔은 스미레를 지켜보며 응원도 하게 되었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콰악-!

라플라스는 자신의 손을 영체로 만들어 왼쪽 가슴에 찔러 넣었다. 그리곤 심장이 있을 장소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 그만 둬! 뭘 하려는 거야?”

라플라스가 자신의 가슴에서 꺼낸 건 마치 심장처럼 붉은 유리 세공품.

“당연히 나를 닮아 침침한 색일 줄 알았건만. 붉구나. 마치 인간의 것처럼…….”

라플라스는 만족한 듯 웃었다.

“스미레-!”

아니 웃음에서 그치지 않고 라플라스는 너무나 기쁜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부디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거라! 너의 따뜻한 마음으로 타인을 아끼고. 네 열렬한 사랑으로 어떻게든 쟁취하거라!”

마녀 라플라스는 편린이 아닌 한 명의 어머니로서 자신을 닮은 스미레에게 충고했다.

“인간의 시간은 짧으니 부디 솔직하거라!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어도 된다. 인간의 삶은 완벽 할 수 없기에 소중한 것이다.”

역병의 마녀 라플라스도.

스미레도 아닌 그 존재는 그 말을 끝으로 심장에서 꺼낸 유리 세공품을 자랑스레 내밀었다. 아름다운 진홍빛 유리는 블랙홀처럼 신하윤의 몸에서 마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이, 익! 이런 짓을 하면, 너도, 너도오-! 온전치 못할 텐데! 왜!”

신하윤의 말처럼 라플라스의 몸도 서서히 흐려지며 유리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야…… 난 이미 만족했느니라. 더 이상의 여한은 없다.”

벨벳의 붉은 마나가 흘러나오며 연료를 잃은 모르간의 아우로라는 빛을 잃었다. 라플라스는 드래곤 하트를 대신해 자신의 심장에 벨벳의 마나를 봉인시켰다.

“그러니 비록 그 대가가 진정한 소멸이라 하여도……. 나는 기쁘게 웃을 수 있느니라.”

라플라스의 몸이 흐려졌다.

마나를 흡수한 심장은 더욱 붉은 빛깔을 뛰었다.

‘정말 끝이구나.’

라플라스는 자신의 존재가 흐려짐에도 그 힘에 거스르지 않고 평안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보너스로 얻은 인생에 무슨 정리할 기억이 있을까?

그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미레의 얼굴을 못보고 간다는 것 정도였다.

‘이제 작별이구나. 나의 아이야.’

파도가 스친다.

소리가 스친다.

[……항상 감사해요. 라플라스 님.]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머리에 떠오르고.

[- 새삼스럽게 그게 무슨 말이더냐. 너는 나의 편린을 가진 존재.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하거늘.]

그날의 질문도 떠오른다.

[저, 가끔씩은 궁금해지곤 해요. 라플라스 님이 왜, 역병의 마녀로 불리셨는지.]

자신과는 다른 착한 아이.

[아! 라플라스 님을 탓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에요! 그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너무나 다르지만 실은 너무나 닮은 아이.

[라플라스 님과 제 동화율이 높았던 건……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에요.]

[- ……예를 들어?]

라플라스는 단호하게 대답했던 그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마지막 한숨을 쉬었다.

[저도 제 능력 때문에 누군가를 다치게 했지만……. 그건 제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라플라스 님도 실은 오해가 있지 않을까 하고…….]

[- 아니, 그런 일은 없다. ……난 나의 의지로 역병을 퍼트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갑작스레 이별을 맞이할 줄 알았더라면.

[-그러니 다시 그 순간이 오더라도. 분명 같은 선택을 할 생각이란다.]

‘한 번쯤은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구나.’

손에든 유리가 무거워진다.

점점 기억은 삐걱거렸다.

‘만약…… 내 이야기를 해준다면 어떻게 해줘야 좋을까?’

그래. 진지하게 말했다간 괜히 그 아이가 눈물을 터트릴 테니 동화처럼 들려주자.

“……신유성.”

라플라스는 몸을 비틀거렸다. 심장을 만들어낼 때 라플라스가 사용한 건 단순히 마나가 아닌, 마녀로서의 힘 그 자체다.

그러니 눈을 감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할진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이 가벼운 유리를 드는 것도 버거울 정도니까.’

그러니 라플라스는 신유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곤 벨벳의 마나가 담긴 자신의 심장을 건네주었다.

“이건 너를 위한 선물이다. 스미레를…… 잘 부탁하마.”

그리곤 라플라스는 힘겨운 숨을 몰아쉬며 마나를 일으켰다. 라플라스가 만들어낸 보라색 새는 한 권의 동화책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건. 스미레를 위한 선물이다. 후후, 부디 벨벳과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라…….”

사아-

라플라스는 마지막 말조차 남기지 못한 채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신유성에게 남은 건 한 권의 동화책과 벨벳의 마나가 담긴 유리.

“왜-! 내가 아닌, 인간 따위를-! 같은 마녀면서!”

몸 안의 마나를 잃은 신하윤은 악을 쓰며 발악했다.

“겨우, 너 같은 쓰레기 때문에-!”

모르간의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신하윤이 의지하는 건 결국 염동력이었다.

콰앙!

무형의 염동력이 신유성을 덮쳤다. 건물조차 찌그러뜨릴 엄청난 힘이지만 의미는 없었다.

신유성은 마나공명을 통해 염동력이 가진 힘의 근간을 끊어버렸다. 염동력은 형체가 없는 힘이지만 근간을 이루는 마나는 당연히 존재했다.

“그만 둬. 나에겐 이미 보여.”

신유성은 그 마나를 볼 수 있었다. ‘집중력 강화’라는 F급에 불과한 의미 없는 특성은 결국 신유성에게 초감각을 일깨워주었다.

신유성에겐 흐름이 보였다. 파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흐름과 파장을 끊어낼 수 있었다. 신하윤의 S급 특성인 염동력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성이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전부 통하지 않는 거야! 왜엣! 너 같은 불량품이 그런 힘을!”

신하윤이 목이 쉬어라 소리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신유성은 자신을 노린 염동력을 비틀어내며 서서히 신하윤에게 다가갔다.

언제나 타인의 머리 위에서 군림하던 신하윤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절망에 찬 목소리로 신유성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자신이 두려워한 누나는 오직 힘의 논리로 세상의 모든 걸 이해하기에 힘이 없다면 이렇게나 연약한 존재였다.

“죽어, 죽어엇! 죽으라고-!”

그 모습은 마치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미 무너진 신하윤을 상대하는데 힘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톡-

신유성은 무감각한 표정으로 신하윤의 이마를 건드렸다. 방금 전 동작으로 신하윤에게 주입된 마나는 피부를 통해 몸에 스며들겠지.

그리고 이질적인 마나는 원래 몸 안을 채운 마나의 흐름을 간단하게 막아버릴 것이다.

“아…….”

신유성을 향해 마구잡이로 손을 뻗던 신하윤은 더 이상 자신의 몸에서 마나가 발휘되지 않는 걸 깨달았다. 이건 마나와 특성에만 의지하는 헌터의 말로.

“내가, 내가아…….”

물론 마녀의 지식이 있으니 시간만 있다면 몸에 스며든 신유성의 마나를 빼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신하윤은 고장이 난 장난감처럼 중얼거릴 뿐이었다.

“어째서…….”

“……누나는 늘 혼자고 아무도 믿지 않으니까.”

신유성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신하윤의 비참한 패배. 길고 긴 악연의 끝이 다가온 그 순간.

퍼억!

가속과 가속을 거듭해 신유성조차 반응하지 못한 쾌속의 검이 신하윤의 몸을 꿰뚫었다.

“허억-!”

문자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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