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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87화 (386/434)

제387화

김은아는 신유성과 함께 블루베어를 공략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다. 물론 그 대가로 지금은 온몸에 몸살이나 신유성의 등에 업힌 처지였다.

음. 분명. 이 느낌은 언젠가 받은 적이 있었다.

‘뭐 그땐 이렇게 화기애애하진 않았지만…….’

그래. 떠올린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기억이다.

[……오빠만 확인하고. 진짜 바로 치료받을게 진짜. 지금 헤어지면 언제 볼지 모른단 말이야…….]

리벨리온의 습격 이후, 김은아는 긴장과 피로로 다리가 떨려 왔지만 오빠의 상태부터 확인하려 했다.

[……업혀. 데려다줄 테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신유성이 각별한 존재가 되어버린 건 그날부터겠지. 김은아는 임무를 뒷전에 두고 무턱대고 병원으로 달려왔지만 신유성은 그런 자신의 오빠를 구해주고 위로해줬으니까.

신유성은 김은아가 강한 척 굴어도 아슬아슬했던 부분을 채워주는 알맞은 조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방한테 그런 기억이 없다는 건 참 서운한 일이었다.

“근데 은아는 왜 나를 도와줘써?”

자신에게 해줬던 일들을 함께했던 일을 어린 유성이는 기억하지 못한다. 응, 그래. 그건 미래의 일이니까.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게…… 왜 그런 거 같아?”

“잘 모르겠어.”

신유성은 그날처럼 김은아를 업은 채였지만 기억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럴 땐 내가 말해주면 되는 거니까. 현재의 신유성이 얼마나 멋진 녀석이고,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말해주면 될 일이었다.

“유성이 너도 날 구해줬거든.”

“진짜? 내가 은아를?”

“응. 악당한테서 오빠랑 나를 구해주고……. 이렇게 지금처럼 업어줬어.”

처음엔 부끄러워서 툴툴 거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은 기억이다.

“난 그날부터 유성이가 좋아써, 하루가 지날수록 조금씩 더 좋아져서. 그 뒤로 너만 생각해. 네가 다른 사람이랑 있으면 질투도 해.”

어린 신유성은 김은아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건지 기쁜건지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렇구나. 은아는 날 좋아했구나!”

“이제 이해가 됐어?”

“응 좋아하는 사람이면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걸.”

신유성은 별다른 말 없이 김은아를 업은 채 묵묵히 걸었다. 다시 김은아에게 질문을 던진 건 수풀을 넘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이후였다.

“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어써?”

“흠…….”

역시 아무리 고민해봐도 한마디로 신유성을 표현하긴 힘들었다. 김은아가 본 신유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부탁하면 다 들어주는 바보에 쓸데없이 아무한테나 다정하고…….”

너무 착해서 바보 같고, 어떤 날은 둔해서 너무 서운하고. 그런데도 촉은 날카로워서 감정을 억누르고 애써 티내지 않으려는 자신을 파헤친다.

“거기다…… 목소리도 멋지고, 눈도 멋지고, 입도 멋지고, 코도 멋지고, 귀도 멋져.”

“아하…….”

어린 신유성은 김은아의 칭찬에 묘한 반응을 보였다.

“바부야, 반응이 뭐 그래? 기쁜 거 맞지?”

결국 어려진 김은아가 볼을 잡아 당기며 도끼눈을 뜨자 신유성은 배시시 웃었다.

“응. 무척 기뻐. 미래의 나한테는 은아 같은 멋진 친구가 있구나. 싶어서…….”

“응……. 많아. 가온은 물론이고 다들 널 좋아해. 뭐, 주변에 여자애들이 많은 건 맘에 안 들지만.”

슬픈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김은아는 자신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외로운 과거는 빨리 떨쳐버리고, 얼른 돌아와…….”

김은아는 입술을 질끈 물며 눈을 감았다. 두 손으로 따뜻하게 신유성을 감싸주었다.

“모두 널 기다리고 있어.”

그저 기억의 파편 속을 떠돌기엔 신유성에겐 지켜야 할 게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돌아가자. 악마 같은 신하윤에게 한 방 크게 먹여주고 다시 행복하고 평온했던 나날로…….

신유성은 그렇게 눈을 질끈 감은 김은아를 바위에 앉혀주었다. 그리곤 흐를 듯 말 듯 촉촉해진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은아 너는 어릴 때도 지금도 여전히 울보구나.”

김은아는 자신을 부르는 신유성의 목소리가 변한 게 느껴졌다. 눈가를 닦아주는 손가락이 커진 게 느껴졌다.

와락-!

“바보야…… 무턱대고 신하윤한테 당하면 어떻게 해? 네가 못 돌아오면 어쩌지 하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드디어 기억을 되찾았구나.

긴장이 풀린 김은아는 서러운 목소리로 잔뜩 불만들을 털어놓았다.

“훌쩍, 그리고 이거…….”

코가 먹먹해진 정도로 훌쩍인 김은아는 신유성에게 머리끈을 내밀었다. 이건 분명 신하윤과 결전을 하기 전 신유성이 풀었던 머리끈이었다. 왜 이게 김은아의 손에 있는 걸까?

“……땅에 있었어. 네 것 맞지?”

“응……. 스승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야.”

“그럼 잊어버리지 마. 바보야.”

김은아는 눈물을 훌쩍이면서도 신유성을 타박하면서도 손수 머리끈을 매주었다.

“너는…… 너일 때 가장 강해.”

신유성이 신유성이 될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신유성은 그런 김은아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 자신의 솔직함을 지켜본 지금 신유성은 김은아에게 할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좋아해. 은아야.”

흩어진 기억들의 조각이 제자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3개의 행성이 하나의 부품이 되어 서로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 * *

몽환 속에선 현실과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의지와 가능성만 존재한다면 어떤 흐름도 가능하다.

“아무리 그래도…… 천박하게 일을 끝내마자 곧장 달려온 거야? 왜 나에게 자랑이라도 하려고?”

그러니 모르간이 된 신하윤 앞에 라플라스가 나타나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지 네 기술도 별게 아니었군…… 싶어서 말이다. 이미 되찾은 기억이 3개. 속이 좀 타들어가겠구나?”

스미레의 몸을 빌린 라플라스는 신하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온몸이 저릴 정도의 살기를 뿜어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비웃음을 흘렸다.

“후훗, 그 웃음, 설마 너희가 이겼다고 생각해?”

신하윤의 미소에 라플라스는 본래의 스미레라면 절대 짓지 않을 도발적인 미소로 답했다.

“아니, 그저…… 우스워서 웃었을 뿐이다. 마녀들은 하나 같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구나 싶어서.”

“……그게 무슨 이야기지?”

물론 그럼에도 시치미를 떼는 신하윤의 반응에 라플라스는 질릴 지경이었다.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까?

“넌 항상 그랬지. 꼭 쓴 이야기를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가보구나.”

라플라스는 스미레의 내면 세계에 만들어 두었던 성으로 신하윤을 초대했다. 인큐버스 집사와 고풍스러운 가구가 있는 침실은 생전에 라플라스가 살던 성과 비슷했다.

“원본의 삶을 동경하는 건 이해를 해.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애써 부정하는 건 구차한 일이지.”

그러나 신하윤은 라플라스를 풋- 하고 비웃었다. 겨우 편린 조각인 라플라스와 자신을 같은 취급 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음, 그래? 그건 너 같은 편린들이나 그렇겠지……. 가짜들의 삶 따위 알게 뭐야? 난 완전한 모르간이 되었는데.”

라플라스는 신하윤의 대답에 여유롭게 인큐버스가 내어준 홍차로 입을 적셨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쿠키 한 조각을 들어 와작- 소리까지 내며 맛보았다. 손님을 앞에 두고 대화보다 간식을 앞세우는 건 무례한 일이지만 이건 라플라스 나름의 표현이었다.

“참 영양가 없는 대화군. 차라리 이 쿠키를 한 번 더 맛보는 게 의미가 있겠어. 멍청한 건지…… 아니면 외면하는 건지.”

쾅-!

라플라스는 식탁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유리로 된 잔이 떨어지고 쿠키들이 쏟아지며 바닥이 엉망이 됐지만 라플라스는 여전히 신하윤을 노려보고 있었다.

“넌 모르간이 아니야.”

“마지막 발악으로 보이네? 우겨도 소용없어. 지금 보고 있는 몽환의 힘이 그 증거니까.”

라플라스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인큐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을 치웠고 새로운 디저트를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이번 메뉴는 푸딩.

“이미 5조각 중 3조각을 되찾은 그 힘? 신유성은 깨어날 거다. 그리고 넌 패배하겠지.”

라플라스는 고풍스러운 숟가락으로 푸딩을 떠 입에 넣었다. 신하윤 따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참 디저트를 맛본 뒤 이야기를 이었다.

“이 디저트는 가짜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결국 내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결국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라플라스와 모르간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느니라. 편린이 기억의 조각이라면 너 또한 다르지 않아.”

역병의 마녀 라플라스는 몽환의 마녀 모르간이 가장 아픈 곳을 파헤쳤다. 그건 같은 마녀만이 알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

“내가 라플라스가 아니듯, 너도 모르간이 아니지. 결국 가짜라는 이야기다.”

역린을 건드린 라플라스의 공격에 모르간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악하지 마. 너흴 기다리고 있는 건 비참한 패배야. 물론 그 끝에 너희를 기다리는 건 비참한 악몽이지. 너흰 내가 특별히 관리해줄 테니까.”

천천히 다가온 모르간은 스미레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너흰 가장 비참하게 능욕해줄게. 차라리 죽음은 자비롭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지금 스미레의 몸에 들어 있는 건 라플라스였다. 압도적인 모르간의 위압감에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푸딩을 입에 넣었다.

“마녀에겐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있고…… 초월의 지식이 있는데도. 왜 인간이 이겼던 줄 아느냐?”

라플라스의 이야기에 모르간의 인상은 무섭게 일그러졌다.

“……재밌는 주제네. 왜지?”

“그야…… 초월의 존재는 외롭기 때문이니라. 외로움은 영리했던 마녀도 독선적이고 거만하게 만들거든. 곧 일어난 일의 본질을 알지 못하게 하지.”

라플라스는 마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둘의 관계를 지켜보았다. 지독한 역병의 마녀는 수많은 죽음과 동시에 수많은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반면 인간들은 타인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함을 인정한 존재다. 그렇기에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고, 더욱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지.”

결국 라플라스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인간은 어떤 위험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그건 초월의 대가로 마녀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였다.

그건 초월의 마녀들이 나약한 인간에게 패배한 이유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인간을 이길 수 없는 이유였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모르간? 마녀에겐 내일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모르간은 인정하지 않았다. 라플라스가 만들어낸 차원을 분리하고 찢어발기며.

“지켜봐. 이번엔 다를 테니까.”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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