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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86화 (385/434)

제386화

산에서 사는 괴수는 위험이 가득한 숲속을 거닐기 때문에 항상 예민하다. 인간의 체취와 기척은 물론이고 새들의 지저귐에도 귀를 쫑긋거리며 반응할 정도였다.

“이런 장소에선 자연물을 이용하는 게 좋아! 나뭇가지나 나뭇잎 같은 걸로 몸을 숨기는 거야.”

신유성은 김은아의 작전대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주어와 어미 새가 둥지를 만들 듯 세심하게 은신처를 꾸몄다.

“은아야! 여기 푹신한 나뭇잎에 앉아. 내가 벌레가 있는지 전부 확인해써!”

어린 신유성은 같은 나이의 친구가 생긴 게 무척 기뻐 보였다.

“바부야. 무슨, 소꿉놀이하냐? 푹신한 나뭇잎은 무슨…….”

그런 신유성의 태도에 김은아는 새침하게 굴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현실의 신유성도 이만큼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은아는 어디서 이런 걸 배워써?”

김은아는 임무를 떠나 신유성이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사소한 행동에도 관심을 가지는 게 참 마음에 들었다.

“으휴, 평소의 네가 지금의 반만 관심을 주면 얼마나 조을카…….”

김은아는 짤막한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며 어른처럼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으응, 평소의 나?”

“……네가 어른이 대면 얼마나 무심한지 알아? 사람을 길가의 돌보듯 하고 어떠케 예쁘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업서…….”

어차피 지금의 상황은 전부 기억의 파편에 불과하기에 김은아는 지금까지 참았던 서운함을 토로하자 신유성은 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갑작스럽게 김은아의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들어 올린 채 맑은 눈동자로 눈을 맞췄다.

김은아는 지금껏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얼이 나갔지만 신유성은 순수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은아는 이러케 예쁜데.”

김은아는 생각했다.

이 녀석 사실 기억이 돌아왔는데 연기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무기로 이렇게 무자비한 공격을 할 수 있는 걸까?

“모, 모라는 거야 지짜!”

당황한 김은아의 귀가 잔뜩 붉어진 걸 보면 어린 신유성의 공격은 치명타였다. 이쯤 되면 김은아도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사실 지금 어린 신유성의 마음이 진심이 아닐까?

무신산의 생활에 익숙해지며 사회나 여자와 멀어지기 이전의 신유성이라면 사실 좋은 게 아닐까?

“……어디가 그러케 예쁜데?”

“응? 은아는 눈도 예쁘고, 입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귀도 예뻐!”

신유성은 기다렸다는 듯 진지하게 김은아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순수한 얼굴로 내뱉는 솔직한 칭찬은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

만약 김은아가 벨벳처럼 꼬리가 있다면 지금쯤 살랑살랑- 흔들고 있지 않을까?

“더 없어?”

“머리카락도 찰랑거리고, 기분 좋은 냄새도 나…….

“바부야. 냄새가 아니라 향기라고 해야지! 그리고?”

“흐움, 귀여워.”

“……얼마나?”

“엄청!”

지금쯤 김은아가 꼬리가 있다면 너무 세차게 흔들어서 부채처럼 바람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난 은아보다 예쁜 친구는 한 명도 업서!”

“진짜지?”

끄덕끄덕!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린 신유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은아는 이때가 기회라는 듯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나중에 커서 딴소리하면 안 된다? 내가 너한테 최고 맞지?”

“응! 은아 최고!”

무슨 말을 해도 마냥 고개를 끄덕이는 신유성과 지금까지 받지 못했던 애정 표현을 이자까지 받아내는 김은아.

툭툭-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 같지만 꽤 의미가 컸다. 김은아는 만약 신유성이 무신산에서 사회와 단절되지 않았다면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엿본 기분이었다.

“흐흥, 보는 눈은 이써가지구……. 유성이 너 여기 앉아!”

흡족한 미소를 지은 김은아는 푹신한 나뭇잎 자리를 신유성에게 양보했다.

“헉, 은아 자리인데 갠차나?”

“갠차나. 아까 따둔 산딸기인데 이거 먹으면서 얌전히 쉬고 있어.”

어린 신유성은 본의 아니게 당근 대신 칭찬 세례로 김은아를 조련해버렸다. 남은 건 산딸기를 먹으며 나뭇잎에 누워 푹 쉬는 것 뿐.

“푹신해……. 은아야. 산딸기도 달고 맛있서……. 하암.”

1분. 3분. 5분.

얼마쯤 시간이 지났는지는 몰라도 잠에 든 신유성은 그 뒤 기억이 없었다.

그저 달콤한 산딸기의 맛을 기억하며 입을 오물거리고 있던 순간.

“야, 유성아 일어나. 왔어!”

다급한 김은아의 목소리에 신유성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으, 으웅? 미안. 은아야. 나, 잠들었구나…….”

“갠찬으니까 저거 바!”

바다의 일렁이는 물결처럼 짙은 청색의 털과 악마처럼 보이는 붉은 눈. 블루베어를 본 김은아는 조심스레 신유성에게 속삭였다.

“유성이 너 왜 블루베어의 털이 청색인지 알아?”

“으응? 몰라…….”

“……원래 청색은 산에 사는 동물들이 잘 가지지 않는 색깔이야. 푸른색은 눈에 잘 띄어서 사냥감들이 도망가거든.”

그럼에도 블루베어의 짙은 청색 털이 유지되었다는 건 여러 의미를 시사했다.

“……그런데도 푸른 털이 유지되었다는 거는, 사냥감이 먼저 블루베어를 발견해도 도망칠 수 업섰다는 이야기야.”

김은아는 발음이 새는 와중에도 너무나 진지하게 설명했다. 잠에서 덜 깬 상태라 상황 파악이 안 됐던 신유성 또한 비릿한 피 냄새에 정신을 되찾았다.

“저건…….”

블루베어는 3미터는 족히 넘을 거대한 사슴을 입에 문 채 질질 바닥에 끌고 있었다. 그건 평범한 사슴의 2배 정도의 크기로 몬스터라는 증거였다.

“투구 사슴이야. 장수풍뎅이의 형질을 닮아 있어서 헤라클레스 디어라고도 불러.”

김은아의 말처럼 사슴의 머리는 투구처럼 경질된 갑피가 있었다.

“투구 사슴은 단단한 머리랑 거대한 체급으로 박치기를 해서 사냥감을 죽이는 육식사슴이야! 당연히 위험 괴수로 분류되었고…….”

김은아는 가온에서 배운 내용들을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투구 사슴은 김은아가 공부한 수많은 몬스터 중 하나일 뿐이지만 기억에 남는 사실이 있었다.

“……위험도 분류는 3급. 블루베어랑 같아.”

“은아야. 그러타는 건…….”

“저 블루베어는 동일종보다 강한 변종이라는 거야. 같은 3급을 먹이로 삼은 걸 보면 3급보다 강하게찌…….”

지금 김은아는 평범한 5살이 아니었다. 17살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탓에 다른 아이들에겐 없는 뛰어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유성이 네가 질 만도 해. 물론 상대를 알아보지 못한 건 잘못이지만…….”

“으, 은아야. 머싯서…….”

김은아가 블루베어를 보며 진지하게 분석을 하는 그 순간에도 신유성은 눈을 크게 뜬 채 오직 옆에 앉은 원피스를 입은 예쁜 꼬마 숙녀만을 바라보았다.

“……야, 부담스럽게 왜 그렇게 빤히 쳐다 봐?”

이상하게 여긴 김은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추궁했지만 이미 어린 신유성은 김은아의 매력에 완전 푹 빠져 있었다.

“은아는 예쁘기만 한 게 아니야. 똑똑하고- 믿음직 해. 나…… 은아가 너무 좋아.”

아무래도 자신에게 잘해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일까? 대체 이 꼬마 유성이는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현실의 신유성이 둔감해서 문제라면 어린 신유성은 너무 금방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었다.

“아, 알았으니까…… 지금은 블루베어한테 집중해.”

“응!”

“너 블루베어를 공격 가능한 기술 이써? 마나를 사용하는 기술이면 더 좋고.”

마음 같아선 현실의 신유성처럼 폭룡암쇄장이라도 사용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 막 무신산에 들어온 5살에게 그런 기술을 바랄 순 없었다.

“나는 정권 지르기! 아니면…… 몸통 박치기?”

“야! 바부야! 몸통 박치기는 무슨! 그런 게 통하겠어? 내가 없을 땐 뭘 믿고 블루베어한테 덤빈 거야?”

“……아니야 은아야. 내 몸통 박치기는 정말 강해. 스승님이 가르쳐 주셨어!”

거대한 블루베어에게 몸통 박치기를 사용하겠다는 말을 진지한 얼굴로 하고 있으니 김은아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곤 믿어달라며 입을 앙다물고 있다니…….’

아무리 귀여워도 이걸 허용해준다면 신유성은 블루베어의 거대한 앞발 한 방에 투구 사슴의 뒤를 따라가게 되겠지.

“바부야. 블루베어는 강력한 괴수야. 근방의 포식자들을 다 잡아먹었다구. 정면에서 싸워줄 이유가 없어!”

비교적 똑똑한 김은아가 누나처럼 교육을 시작하자 신유성은 말 잘 듣는 동생처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해했어!”

“이럴 땐 상대의 힘을 이용해야 해. 블루베어의 강한 힘이 오히려 해가 되도록!”

“아하!”

“물론 그러기 위해선 블루베어보다 네가 앞서나가야겠지. 블루베어보다 느리다면 따라 잡힐 테니까.”

블루베어를 이길 명안을 떠올리기 위해 김은아는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어린 신유성은 혼자라면 블루베어를 이길 수 없다.

지금 블루베어에게 패배하는 게 정해진 미래고 변수라면 오직 김은아 자신뿐이었다.

“유성아.”

정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왜 신하윤은 제단까지 만들며 동료들을 흩어지게 만들어 신유성을 혼자 오도록 만들었을까?

그렇게 강한 모르간의 힘을 가졌음에도 신하윤이 두려워 한 게 무엇일까? 신유성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 무엇일까?

“바보처럼 왜 진작 이 작전을 떠올리지 못해찌?”

어린 김은아의 전기는 블루베어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다. 어린 신유성의 힘은 3급 괴수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둘이 따로 따로 덤빈다면 그저 투구 사슴의 뒤를 따를 뿐이다.

‘하지만.’

김은아의 전기와 신유성의 힘을 합친다면?

“알았다.”

결단을 내린 김은아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곤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손을 뻗으며 이렇게 말했다.

“……유성아! 업어줘!”

* * *

블루베어는 아지트인 동굴로 투구 사슴을 질질 끌며 데려가고 있었다.

자신은 더 짙은 색을 띠고 더 강한 신체 능력을 가졌다. 이른 바 종의 한계를 초월한 변종.

가는 곳마다 주변 지역을 초토화 시킨 포식자였다. 그런 자신에게 다른 동물이나 괴수가 덤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르르…….”

하지만 그런 블루베어의 앞을 어제 봤던 인간 꼬마가 다시 당당하게 앞을 막아섰다.

심지어 이번에는 등에 다른 인간 여자아이를 업고 있었다.

“그르르르…….”

블루베어는 입에서 흐르는 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나를 품은 인간의 고기는 어떤 괴수라도 탐을 내는 극상의 상품이었다.

다만 그런 인간은 헌터가 된다.

몇몇 인간은 3급 괴수인 블루베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존재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블루베어의 본능은 더더욱 소리치고 있었다.

이건 마나를 가진 인간을 잡아먹을 마지막 기회.

타닥! 타다닥!

블루베어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신유성에게 엄청난 속력으로 돌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제와 달라진 변수가 있었다.

“준비 대찌? 유성아?”

신유성의 등에는 전기 특성을 가진 김은아가 있다는 것. 결국 생물의 움직임이란 뇌가 보내는 신호에 불과하다.

달리 말하자면 그 신호를 해석 할 수 있다면 더욱 빠르게 달리는 것도 가능하고, 마나를 주입해 강화 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가자 유성아! 달려!”

파지직-!

김은아는 신유성의 몸에 전기를 주입했다. 아직 짧은 다리로 더욱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부족한 힘을 채우기 위해 온몸에 김은아가 가진 마나를 전부 주입했다.

전기를 주입 받은 신유성은 김은아를 업고도 마치 탄환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무신산에서 빠르기로 유명한 블루베어조차 신유성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르릉-!”

블루베어는 신유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욕심을 냈다. 등에 있는 여자아이까지 합치면 헌터가 될 인간이 2명이었다. 저 정도 마나를 가진 고기를 먹으면 4급 괴수로 격상이 될 수 있었다.

블루베어에게 이건 두 번 다시는 없을 기회!

파앗-!

시야를 가린 수풀을 헤치며 블루베어가 돌진했다. 빠른 속도로 나무를 지나친 그 순간. 블루베어의 눈앞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뻥 뚫린 하늘이 보였다.

“그릉-?”

하지만 이제 와서 이상함을 눈치 채도 늦었다. 블루베어의 뒤엔 신유성이 있었고, 등에는 전기를 주입시켜주는 김은아가 있었다.

“유성아!”

“응!”

무신산의 포식자.

블루베어가 겨우 5살 꼬마 아이에게 뒤를 잡힌 것이다. 하지만 무시하긴 이르다. 아이의 손은 단단한 가죽은 뚫을 수 없지만 중심을 잃은 곰을 밀어버리는 것 정돈 가능했다. 심지어 여긴 몇백 미터 높이의 절벽이었다.

“──!”

위기를 느낀 블루베어는 귀가 찢어져라 포효했다. 겁을 먹은 사냥감이 물러서라는 의지였지만 김은아와 신유성은 또렷하게 블루베어를 노려보고 있었다.

“몸통박치기-!”

“응-!”

신유성은 어린아이라곤 믿기 힘든 엄청난 힘으로 블루베어에게 몸을 날렸다.

쿵!

묵직한 충격에 블루베어의 거대한 몸체가 흔들린다. 이 정도는 블루베어를 죽일 순 없는 타격이다. 몇 초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장이라도 눈앞의 꼬마를 찢어발길 수 있었다.

하지만 블루베어를 죽이는 건 몸통박치기의 충격이 아니었다.

“그, 그웡-!”

몸이 기울어진 포식자는 떨어졌다.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블루베어는 새가 아니었다.

콰앙-!

무신산이 흔들릴 정도로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커다란 소리가 절벽 아래에서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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