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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82화 (381/434)

제382화

라플라스는 자신의 말을 들은 스미레가 절망할 줄 알았다. 라플라스가 본 스미레에게 신유성은 태양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라플라스의 예상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라플라스 님은 유성 씨를 구할 방법을…… 알고 계시는 거죠?”

오히려 신유성에게 위기가 닥치자 스미레는 무서울 정도로 차분해졌다.

-편린에 불과해도 나는 마녀다. 당연히 방법은 알고 있지. 하지만 그건 해변에서 모래알을 찾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알려주세요.”

물론 변한 스미레의 모습은 라플라스를 기쁘게 했지만, 다른 일면으로 그녀는 씁쓸함도 느꼈다.

그 가능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대가가 뭔지 알게 되면 스미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라플라스는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했다. 그 저울의 한쪽에 놓인 건, 스미레의 전부인 신유성이었고 다른 한쪽에 놓인 건 가짜에 불과한 자신이었다.

- ……그래.

짧은 침묵 끝에 라플라스는 입을 열었다. 라플라스는 무엇이 스미레가 원하는 일인지 알고 있었다.

- 네 말대로 방법은 있단다.

스미레의 머리에 달아둔 꽃 장식이 빛을 뿜었다. 라플라스는 몸을 빌리는 게 아닌 영체의 모습으로 현신했다.

- 하지만 그건 앞서 말했듯 위험하고 어렵지.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아.

이미 답은 정해져 있음에도 라플라스는 스미레에게 일러주었다.

- 만약 찾지 못한다면 대가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너도 꿈의 주민이 될 거다. 모르간에게 지배받게 되겠지.

모르간에게 맞서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몽환에 잠식된 공간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일러주었다.

“유성 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스스로를 믿지 못했을 거예요. 유성 씨는…… 이미 저를 구해주신 거나 마찬가지에요.”

그러나 예상했던 것처럼 명확한 스미레의 대답에 라플라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렇겠지.

편린과 주인.

그렇게만 본다면 그저 계약에 의거한 관계이며 둘은 이렇게까지 마음을 쓸 필요는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라플라스는 왜 자신이 스미레를 끔찍할 정도로 아끼게 되었는지 돌이켜 본 적이 있었다.

영겁의 시간을 산 라플라스가 해보지 않았던 일은 몇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해봤던 일들에 흥미가 생길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라플라스는 자신을 똑 닮은 스미레를 보며 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인간을 초월한 라플라스가 겪어보지 못한 인간의 삶, 평범한 여자의 삶.

그냥 평범한 계약자 정도로 생각했다면 좋았건만 이젠 자신을 투영해가며 스미레를 자식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을 똑 닮은 스미레를 보며 만약 내가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았다면……. 아이를 낳았다면 이런 모습일까? 하고 상상하게 된 것이다.

- ……모르간은 상대를 자신의 몽환 속에 가둬 에너지를 빨아먹는단다. 그럼에도 상대는 꿈이라고 자각하지 못하지. 왜 그런 줄 알고 있느냐?

라플라스의 물음에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해본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너무…… 꿈이 현실처럼 생생해서 그런가요?”

- 아니. 모르간은 그 무수한 기억 속에서도 상대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반복시키거든.

이건 오직 라플라스만이 알고 있는 지식. 같은 재앙의 마녀가 아니라면 이건 완벽한 신하윤의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 희망에 찬 인간은 강하단다. 모르간의 손아귀가 끼어들 여지가 없지. 하지만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절망의 순간은 온단다.

그러나 신유성은 스미레를 구원했고, 스미레는 라플라스의 편린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젠 스미레가 신유성을 구할 차례였다.

“모르간은…… 상대가 약해진 순간을 파고드는군요?”

-그래. 그러니 스미레 네가 그 순간을 찾아가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신유성의 마음을 바꿔주면 되느니라.

라플라스는 암흑에 삼켜진 공간 속에서 은하수처럼 펼쳐진 빛무리를 둘러보았다. 모르간이 선보인 세상은 무한한 우주를 모방했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5개의 행성이 있었다.

이건 모르간의 공간에서 가장 방대한 기억의 덩어리.

- 겨우 5개인가. 역시 신유성이라고 할지……. 생각보단 일이 쉽게 풀리겠어.

원본의 정신이 100개 1000개로 조각나버리면 방법이 없다. 하지만 몽환의 힘으로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에도 신유성은 제대로 정신을 묶어둔 모양이었다.

“유성 씨…….”

- 물론 안심하긴 이르다. 네가 나눠진 정신 중 하나를 되찾더라도 네 동료들이 나머지를 찾지 못하면 의미는 없느니라.

“전…… 동료들을 믿어요.”

스미레가 주먹을 굳게 쥐자 라플라스는 그 귀여운 모습에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아이야. 동료를 믿는 것보다 이 사실을 알리는 게 먼저 아니더냐?

라플라스의 말에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스미레는 포켓을 보았다.

[데이터 전송 불가]

그러나 몽환의 결계에 갇힌 탓인지 스미레의 포켓은 메시지를 보낼 수 없는 상태였다.

“어, 흐, 흐엣…….”

당황한 스미레가 이리저리 홀로그램의 버튼을 누르지만.

[신호가 닿지 않습니다.]

[데이터 전송 불가]

[KimSilverA 님은 메시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현재 스미레 님의 포켓은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이용하실 수 있는 서비스는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동작 가능한…….]

포켓은 요지부동.

“흐, 흐익! 라플라스 님 어떻게 하죠!? 이대로는 유성 씨를 구할 방법을 모두에게 알릴 수가…….”

결국 이번에도 당황한 스미레가 만능 해결사인 라플라스에게 부탁을 하자, 아니나 다를까 라플라스는 이 상황을 간단하게 해결해버렸다.

- 으휴, 걱정 말거라. 마녀가 된다면 몇 명 정도는 텔레파시로 소통이 가능하니라.

* * *

보랏빛 몽환경이 자신을 덮친 순간, 신유성은 모르간의 말이 비유가 아님을 깨달았다.

[널 여러 차원에 흩어 놓는다면…… 네 친구들이 널 찾을 수나 있을까?]

처음은 빛이 쏟아진 순간 시야가 조각나기 시작했다. 몸의 감각이 나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정신이 여러 갈래로 분열하기 시작했다.

‘마치 편린처럼.’

지금의 난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개별의 나도 아니다. 긴 끈을 가위로 제멋대로 잘라두어도 그게 끈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편린 또한 그렇다. 하나의 기억이 장면으로 변해 뒤죽박죽 섞이더라도 그게 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건.

‘잊지 않는 것.’

눈앞의 눈부신 빛에 손이 갈라지는 순간. 신유성은 스스로를 붙잡았다. 유리 파편처럼 잘게 부서지지 않도록 정신을 붙잡았다.

몽환의 빛에 잠식된 순간 몸은 사라졌지만 정신은 온전한 형태로 붙잡으려 애썼다.

몸이 원자 단위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다. 거대한 칼날이 머릿속을 헤집는 감각이다.

하지만 신유성은 그럴수록 떠올렸다. 버림받았던 자신을 거둬주었던 순간을, 스미레의 용기를, 은아의 부탁을……. 아델라의 눈물을.

‘미안하지만. 난 절대 잊지 않아.’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에이미. 사려 깊은 이시우. 물건을 빌려간 뒤 자주 깜빡하지만 마음은 착한 레니아와 자신을 믿는 모든 이들을.

- 아빠…….

병실에 쓰러진 채 자신만 기다리고 있는 벨벳을.

쩌적-!

자신의 몸에 균열이 생기며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파편이 아니라 덩어리로 쪼개지도록 정신을 붙잡았다는 증거.

탕!

몸과 마음이 5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진 순간. 신유성의 눈앞에는 각기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신오가문에서 신유성이 홀로 시간을 보내던 나무 그루터기. 신유성이 버림받았던 그날 비가 오던 보육원. 무신산의 동굴. 힘없이 식사를 했던 보육원의 식당.

‘……5조각. 끝까지 정신을 붙잡은 덕분인가.’

이제 신유성이 할 일은 동료들이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며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지금 동료들을 만난 가온의 신유성을 잊지 않아야 했다. 남은 건 동료들의 몫.

“모두…… 미안.”

신유성은 들릴 일 없는 공허에 읊조렸다.

분노는 곧은 직선과 같아 주변을 보지 못한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잊게 만들고, 자신을 과신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신유성은 이 순간을 기억해야 했다. 불리해진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조각난 자신을 되찾아야 했다

“내가 무거운 짐을…….”

삐이이-

시끄러운 수신음과 함께 신유성은 눈을 감았다. 조각난 정신들은 긴 잠에 빠진 듯 평온해졌다.

* * *

어두워진 세상.

끝없는 암흑이 펼쳐진 우주 속에서 아델라에게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주위를 둘러 보거라. 시간이 없으니 짧게 설명하마.

귀를 통해 소리가 전달되는 아닌 머릿속을 헤집는 느낌. 목소리는 스미레를 닮았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성격은 전혀 달랐다.

“……아, 라플라스라고 했었지.”

이전의 파티원들과 달리 벨벳이 부화한 이후 같은 파티가 된 아델라에게 라플라스는 좀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메신저가 누구인지보다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 신유성이 위험하다. 구하려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아델라는 지금 신유성이 위험하다는 소식에 아- 하고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터트렸다.

“당신…….”

애써 떨쳐버리려 해도 불길한 생각이 천천히 머리를 스며들자 아델라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소중한 사람의 생명이 위협 당하고 있다는 건 아델라에게 절대적인 공포였다.

‘지금은…… 떨쳐버려야 해.’

아델라는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았다. 이성을 되찾아 상황을 분석하려 애썼다.

‘공간이 이렇게 변한 걸 보면 결국 신하윤은 루이스 때처럼 마녀의 힘을 각성한 상황…….’

신하윤이 촉매로 사용한 건 무려 드래곤인 벨벳의 마나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루이스조차 이긴 신유성이 위험에 처할 정도라는 건 믿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당신을 위협할 정도로 강한 신하윤은 루이스와 동급이거나…… 더 강하다는 이야기겠죠.’

아무리 학생회장이라도 신유성과 비교하자면 신하윤이 대외적으로 보여준 활약은 미비했다. 그렇다면 신하윤은 지금까지 능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 되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신유성을 찾는 게 우선이다. 신유성 없이 루이스보다 강한 힘을 가진 상대를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이 명확해진 아델라는 넓어진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 신하윤이 숨겨둔 신유성의 기억을 찾아라. 눈속임으로 숨기기엔 방대한 크기의 기억이니 찾기 어렵지 않을 거다.

아델라는 커다란 5개의 행성이 보였다. 라플라스의 말대로라면 저건 신하윤이 나눠둔 5개의 기억.

조바심이 나는 듯 입술을 물던 아델라는 문득 벨벳을 떠올렸다.

루이스의 악몽에 갇힌 자신을 보며 벨벳은 아마 똑같은 기분이었겠지. 겉으론 해맑게 웃었어도 속은 그렇지 못했겠지.

“……이런 기분이었나요 벨벳.”

이젠 어머니인 아델라가 모범을 보일 차례. 캄캄한 어둠 속 빛을 뿜는 행성을 향해 아델라가 손을 뻗자 선택 받은 행성은 무시무시한 중력으로 그녀를 빨아들였다.

처음으로 신유성의 기억을 들여다 볼 차례인 것이다.

“이번에는 제 차례인 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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