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81화 (380/434)

제381화

신하윤이 해신의 저주가 보랏빛을 하늘로 쏘아 올린 순간. 오직 천공섬만을 가두고 있던 결계가 바다를 포함한 시야가 닿는 반경 전체로 확대됐다.

이제 이곳은 모르간의 영토나 다름없다.

가온의 파티 중에서 결계를 부수고 모르간을 이길 수 있는 건 마나공명을 가진 신유성 정도였다.

“후훗, 하지만……. 넌 이제 이 세상에 없지. 절대,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거야.”

진정한 의미로 힘을 되찾은 신하윤의 눈앞에 신유성은 없었다. 힘을 개방한 순간 모르간의 눈부신 빛이 세계를 감싼 순간 신유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건 한때 신유성을 이루고 있던 푸르고 붉은 마나뿐.

“말했잖아. 태생부터 격이 다르다고, 주먹질 따위로 마녀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신하윤은 미소 지었다.

지금은 내 목소리가 들리겠지. 하지만 그 자아마저 점점 옅어질 거다.

물론 몽환의 힘이 절대적인 건 오직 꿈의 경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해신의 저주가 그 영역을 세계 전체로 넓혀간다면 어떻게 될까?

“유성이 넌 시작일 뿐이야. 곧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내 꿈의 주민이 될 거야.”

신하윤은 텅 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신유성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꿈의 주민이 되었다. 이 현상을 관측하는 사람이 없다면, 신유성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영원히 지워지겠지.

“조금만 더 있으면 넌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테고, 네 자신을 잃게 될 거야. 영원히 꿈속을 부유한 끝에……. 사람들은 네 존재조차 잊게 되겠지.”

물론 그 대가로 당분간은 몽환의 힘을 발휘하는 데 제약이 많아지겠지만. 신하윤에게 신유성을 처리하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니 진작 자신을 따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하윤은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신유성을 용서할 순 없었다. 강자에게 머리를 숙이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다. 주제를 모르고 이빨을 드러낸다면 결국 구축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참, 죽음보다 끔찍한 결말이지?”

그러나 골칫거리였던 신유성을 처리했음에도 신하윤은 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네 파티가 뭉칠 일은 없을 거야. 난 방심하지 않거든.”

스윽-

신하윤이 허공에 손을 긋자 차원이 찢어지며 여러 차원의 우주가 중첩된 채 생겨났다.

“시공간을 조작하는 차원이동은 탑의 기적 정돈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꿈속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거든.”

신유성의 자아는 이미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꿈의 세계 속에 녹아버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신하윤은 그 갈래를 다른 시공간에 숨길 생각이었다.

“널 여러 차원에 흩어 놓는다면…… 네 친구들이 널 찾을 수나 있을까?”

갈라진 차원의 틈새에서 몽환적인 빛이 새어나왔다. 그건 어찌 보면 빛이었고, 어찌 보면 우주였다.

쩌억-

찢어진 공간은 거대한 입을 벌려 푸르고도 붉은 빛을 삼켰다. 아니 천공섬 전체를 삼키려 했다.

“풋, 푸훗-! 가엾은 유성이. 이런 보잘것없는 결말을 위해 그렇게나 노력했니?”

잘게 쪼갠 자아가 완전히 소멸하기까지 걸리는 건 대략 현실에서 3시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이미 승리가 굳어졌다 생각했는지 신하윤은 흡족한 듯 웃었다.

* * *

S반은 독보적인 1위 아델라를 제외하면 민성혁과 이채현을 비롯한 4인의 학생들이 그 밑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러나 A반에서 김은아를 제외하고 부반장으로 꼽힐 만한 실질적 실력자는 오직 박수현 정도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박수…….”

“박수? 짝짝치는 그 박수?”

“아니. 만수였나? 뭔가 같은 학교에서 얼굴 보던 사이를 둘이서 이렇게 만드니까 미안하긴 하네.”

“음~ 나도 찝찝하긴 한데 이번 일은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니까. 그래도…… 좀 과했나?”

하지만 박수현은 이시우와 사쿠라의 2대1 콤비네이션 앞에 처참하게 무릎을 꿇었다. ‘사랑의 힘’을 가장한 비겁한 몰매는 박수현도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이런 비겁한……. 큭, 내 등, 아니 척추가…….”

쓰러진 박수현이 등을 보인 채 숨을 헐떡이자 사쿠라는 미안한 감정이 들 정도였다.

“아니 무슨 척추야~ 괜찮아~ 그냥 근육이 놀라서 그래. 두드려주면 풀릴 걸?”

옆에 쪼그려 앉은 사쿠라가 자신은 약손이라며 손수 등을 두드려주자. 고개를 숙인 박수현은 약간의 고마움과 함께 묘한 굴욕감이 피어올랐다.

“너흰 헌터라는 녀석들이…… 비겁하게 다굴을 놔? 창피한 줄 알으아악-! 허, 허리!”

박수현이 안경까지 땅에 떨어트리며 괴성을 지르는 걸 보니 사쿠라의 바람에 등을 제대로 맞은 모양이었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 주위에 물웅덩이까지 만들어뒀으니 1대1이었다면 압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시우의 총알을 막으면 사쿠라의 화살이 날아오고, 이시우의 움직임을 신경쓰면 사쿠라의 포탄 같은 바람이 날아왔다.

“인원수 상 당연히 1명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겁하게 쵸텐 애들을 불러오다니…….”

“지금 비겁한 게 문제가 아니야. 너 학생회장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돕는 거야?”

이시우가 경멸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혀를 쯧- 하고 차자. 박수현은 무언가 이상한 기류를 읽었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이라니? 나는 그냥 자기를 도우면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거라고…….”

“불쌍하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용만 당한 거야?”

“이용을 당했다고? 내가? 또 그 터무니 없는 헛소리냐?”

등의 아픔조차 잊었는지 땅을 짚으며 일어나려던 박수현은 으억- 소리를 내며 다시 엎어졌다.

“내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회장이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게. 일개 학생회장의 목표가 세계 정복이라니 가온은 역시 스케일이 크구나.”

제단에서 글래스하트를 빼낸 사쿠라는 포켓에 넣었다.

“회장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리가…….”

박수현은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에 당연히 부정을 했지만 이시우의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보랏빛 결계는 하늘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시우야. 저건…….”

이시우는 신유성이 갔으니 당연히 결계가 파괴될 거라 믿었다. 신하윤이 아무리 강해도 신유성의 패배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신유성은 언제나 든든히 파티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자 기둥 같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결계의 힘에 당황한 이시우는 천리안을 사용했다.

아직 몽환의 틈새에게 먹히기 전이니 이시우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하지만 상황을 확인한 이시우의 입에서 나온 건 현실을 부정하는 짧은 단말마였다.

“유성이가…… 없어.”

가온에 입학한 이래 신유성의 패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시우를 비롯한 파티원은 신유성을 홀로 보냈다. 신유성을 믿었으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시우야? 쓰러진 게 아니라, 사라졌다고? 그럼 진…… 거야?”

당혹감이라는 불이 옮겨 붙은 사쿠라 팔을 붙잡으며 황급히 물었지만 이시우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유성이가 천공섬에 없다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사쿠라 지금은……. 어, 사쿠라?”

천리안으로 바라보고 있던 공간이 점점 멀어지는 기분에 이상한 기분이 든 이시우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이시우는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 자신의 옆에 펼쳐진 건 마치 우주와 가까운 끝없는 공허. 다만 칠흑 같은 우주에 은하수 대신 펼쳐진 건 누군가의 것으로 보이는 기억이었다.

이시우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워 보이는 그 기억들을 보며 질린 듯 중얼거렸다.

“대, 대체 여긴 어디야?”

* * *

일본에서 아카데미를 다니던 시절. 스미레는 수영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잘 헤엄치진 못하지만 물에 둥둥- 떠있으면 마냥 기분이 좋았다.

“마치 그때 같아요. 배경이 우주라는 게 좀 다르지만…….”

교복을 입은 스미레는 느릿하지만 몸이 뱅글뱅글 도는 탓에 치마를 붙잡았다. 우주를 배경으로 은하수를 보며 수영을 한다고 생각하면 꽤 로맨틱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중심을 잡는 것도 힘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라플라스 님은 알고 계신 거죠?”

-그게…… 말이다.

라플라스는 그토록 아끼는 스미레의 물음에도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아니 그토록 아끼는 스미레의 물음이기에 오히려 대답할 수 없었다.

“……라플라스 님?”

라플라스는 스미레의 추궁에도 긴 침묵만을 유지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기에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스미레의 표정이 굳어갔다.

“부탁드릴게요. 말씀해주세요. 라플라스 님은…… 알고 계신 거죠?”

점점 간절해지는 스미레의 간청에 묵묵히 숨어 있던 라플라스는 결국 입을 열었다.

-아이야. ……나는 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싫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주마.

라플라스는 모르간과 같은 재앙의 마녀다. 편린에 불과하지만 기억은 온전하기에 이게 무슨 기술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녀들에겐 영역이 있다. 사령술사인 내 공간 결계가 역병의 땅인 것처럼 모르간도 자신의 그라운드가 있지. 그리고 그건 바로 꿈…….

몽환의 지배자인 모르간은 꿈의 세계에서 대적자가 없다. 현실에선 그 힘이 반감된다.

-하지만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건, 역병의 땅처럼 장소를 바꾸는 간단한 일이 아니란다. 모르간은 다른 재앙의 마녀처럼 공간 결계를 사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 적어도 한동안은…….

모르간은 방법을 찾았다.

물론 그 방식은 다른 마녀처럼 공간 결계를 펼치는 게 아닌, 일종의 저주였다.

- 모르간의 결계는 ‘장소’를 빠트리는 대신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모든 인간을 꿈에 빠지도록 만드는 ‘저주’란다. 그 힘을 발휘하는 건…… 전성기에나 가능했지.

라플라스가 신유성이 천공섬으로 가는 걸 막지 않은 이유는 모르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도 아직 상대는 신하윤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능력이 발휘됐다는 건 모르간의 힘을 전성기 급으로 각성했다는 이야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라플라스는 그게 얼마나 절망적인 일인지 스미레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상대가 강한지 알게 된다면 스미레의 마음이 꺾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이었다.

-원래 모르간은 우리 재앙의 마녀 중 가장 약한 마녀였다. 우리의 전쟁터는 꿈의 세계가 아닌 현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전성기의 힘을 되찾을 가능성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신하윤은 자신의 방식으로 해내고 말았다.

그 천재성을 예측하지 못한 걸 방심이라 말할 수 있을까?

-능력을 각성한 모르간은……. 다른 모든 재앙의 마녀를 합친 것보다 강했단다.

하지만 라플라스는 그럼에도 괴로움을 참고 말했다.

-신유성은 아마 패배했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