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71화 (370/434)

제371화

마녀는 지식을 사랑한다는 말처럼 어린 시절부터 신하윤은 책을 읽었다. 신오가문의 거대한 서재에서 신하윤이 읽지 않은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물론 신하윤이 그중에서 최고로 꼽는 책은 언제나 같았다.

[몽환의 마녀 모르간 전기]

학자들이나 읽을 수 있는 고대어로 쓰였음에도 마치 어린아이가 읽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처럼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르간은 부유한 왕국의 첫째 공주로 태어났답니다. 국민들은 그녀의 탄생에 기뻐하며 축복을 마지않았어요.]

초월의 경험이 마녀를 만든다.

하지만 그 계기는 대부분 불행을 촉매로 하기에, 일국의 공주로 태어난 모르간은 재앙의 마녀들 중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다.

[모르간의 재능은 정말 뛰어났습니다. 그녀는 5살의 나이에 마법사들과 비견될 정도로 마나를 다뤘고, 왕국의 책사들도 감탄할 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유능한 국왕이었던 아버지와 마탑 최고의 마법사였던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모르간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했다.

7살의 나이엔 왕실 마법사보다 마나를 다루는 실력이 뛰어났고, 전략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국왕뿐만이 아닌, 왕국 전체의 총애를 받으며 엘릭서와 비약을 물처럼 마시며 폭주하듯 강해졌다.

11살의 나이에는 그런 모르간을 견제하기 위해 경쟁 왕국의 암살자들이 침공을 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았다는 듯 여유롭게 대처한 모르간에게 모두 죽었다.

국민들은 그런 비범한 모르간의 일화를 영웅이라 칭송했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사를 암살한 베테랑의 암살자가 몰살당하다니 그건 재능을 논할 영역이 아니었다.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왕국은 모르간을 신의 사자라 칭송했지만 왕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왕국 제일의 마법사였던 그녀는 자신의 딸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왕비였던 어머니는 모르간이 유일하게 인정한 유능한 사람. 하지만 그런 어머니조차 모르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는지는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어. 내가 강해질 수 있었던 비밀을.’

모처럼 떠올린 오랜 기억에 신하윤은 웃었다. 모르간은 초월을 하기 이전부터, 마녀가 되기 이전부터 몽환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모르간이 그 힘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도 고서에는 적혀 있지 않은 사실이었다.

마녀 모르간의 진실을 알고 있는 건 세상에서 오직 신하윤뿐.

‘상상조차 못 했겠지. 내 강함은 그저 셀 수 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반복했기 때문이니까.’

모르간이 처음 몽환의 힘을 사용한 대상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었다. 모르간의 능력으로 오감을 모두 구현한 고도의 시뮬레이션은 현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매 순간 모든 문제를 혼자서 풀어야 하는 막막한 시험이었지만 데이터는 무한했다.

마법을 수련하고 싶다면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시뮬레이션 속에서 마나를 연산하면 될 일이었다.

암살자들이 기습한다면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과정이 나올 때까지 몇백 번이고 시뮬레이션하면 될 일이었다.

모르간은 마나를 소모하지 않고도 이해력이 늘었으며 아무런 상처 없이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모르간은 습관이 되어버린 능력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는 것.

이건 대가 없는 축복이 아니었다.

모르간은 물을 마시는 간단한 행동도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어떤 날은 숨을 쉬는 것조차 반복한 탓에 시간이 멈추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가장 고역이었던 건, 잠을 자는 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한 날이었다.

10시간은 족히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건만 현실의 시간은 그대로였다. 피곤한 몸도 그대로였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꿈과 정신의 세계에는 점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물론 모르간의 상상일 뿐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머리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렇게 18살의 생일이 되던 날 모르간은 생각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현실에선 18년의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이 체감으로 겪은 시간은 과연 얼마일까?

50년? 100년? 아니 이미 모르간이 겪은 시간은 숫자놀음이 가능한 수치가 아니었다.

모르간이 반복하는 건 일년도, 한 달도, 일주일도, 하루도 아니었다. 모르간은 삶의 장면을, 순간을 반복하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점점 길어지는 하루와 반복되는 순간들 속에서 진작 미쳐버렸을 것이다.

[모르간이 18살이 되던 날. 왕국은 모르간의 정체를 뒤늦게 깨닫고 말았어요! 사실 모르간은 정체를 숨긴 재앙의 마녀였습니다!]

그러니 이건 틀린 말이다.

모르간은 정체를 숨긴 게 아니었다. 그저 인간을 초월한 경험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선택’ 받았을 뿐이었다.

참으로 다행인 점은 몽환의 마녀가 된 이후 신하윤은 반복되는 세상에서 지루함이 아닌 안락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규칙한 세상의 혼돈보다 정제된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왜 모르는 걸까?’

완벽히 통제된 세계의 아름다움, 단 한 사람의 의도대로 마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흘러가는 조각품 같은 세상. 그건 신하윤이, 아니 모르간이 오래도록 꿈꿔온 유토피아였다.

“……이혁.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어?”

신하윤의 나지막한 물음에 이혁은 얼핏 웃어보였다.

“분명. 세상의 상식에 반하는 일이겠지. ……하윤이. 네 소망을 이루기 위해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겠지.”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관계라면 절대로 돕지 못했겠지만 이혁은 신하윤을 도왔다. 이 모든 상황을 어렴풋이 예측했음에도 신하윤을 도왔다.

“그걸 알면서, 왜 날 도왔어?”

이번 건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토록 위험한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신하윤을 도와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신하윤이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꿈꾸든 이건 이미 타산이 맞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혁은 이 말 한 마디로 모든 걸 설명했다.

“원래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은 동물이야.”

“재밌네. 더 말해줄 수 있어?”

이혁이 신하윤을 따르게 된 건 합리를 추구한 결과고 이성의 판단이었지만 지금의 행동은 이성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냥 하윤이 널 동경했을 뿐이야. 난 내 한계를 알고 있었으니 2인자로 족했거든.”

“그래서?”

자신은 무엇을 기대한 걸까, 이혁은 신하윤의 흥미롭다는 표정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그다음엔 널 동경하게 되었어. 넌 내가 상상도 못 한 일들을 쉽다는 듯 처리해버리고, 어떤 순간에도 여유로웠으니까.”

이혁은 신하윤을 보았다.

신하윤은 자신을 보고 있지만 어쩐지 텅 빈 듯 느껴졌다. 무감각한 수준이 아닌, 신하윤은 자신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듯 보였다.

1년을 신하윤만 보필해 온 이혁의 솔직한 심경조차, 신하윤에겐 그저 재밌는 유흥거리에 불과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야.”

그러나 이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신하윤이고 자신은 그런 신하윤을 좋아했다.

“지금의 난, 유일한 네 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넌 외로움 같은 건, 타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만큼은 널 이해하고 싶었거든.”

덤덤한 이혁의 반응에 신하윤은 풋- 하고 웃었다.

“정말 이해할 수 있어? 난 지금부터 모두 내 몽환 속을 방황하도록 영원히 풀리지 않는 저주를 만들 거야.”

신하윤은 이혁이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은 모두 자신이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시끄럽거든……. 그러니 나는 온전하고 완벽한 조각품처럼. 하나의 세상을 만들 거야.”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이혁은 신하윤의 세계 정복 같은 계획에 기꺼이 참가할 몽상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상식을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현실적인 인간이었다.

그러니 이혁은 지금의 판단은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인간이라는 종이 본래 합리적이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말했잖아. 네 편이 되기로 정했다고. 하윤이 네가 그렇게 정했다면 그게 어떤 꿈이든 상관없어.”

이쯤 되면 감동을 받을 법도 하건만 신하윤은 이혁의 일방적인 순애보에도 입을 가린 채 고고하게 웃었다.

“……너도 참 어리석구나.”

그리고 그건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이혁은 웃었다. 왜 대체 자신은 이런 위험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걸까.

“동감이야.”

글래스하트의 힘으로 섬은 점점 하늘 위로 올라갔고, 섬 주위의 바다는 매서운 파도가 요동쳤다.

그저 힘을 개방한 정도로 기상을 악화시킬 정도라니 글래스하트에 담긴 마나가 얼마나 흉악한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유성아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같아.’

신유성은 성장했지만 그건 신하윤도 마찬가지였다. 재앙의 마녀로 군림하던 전성기만큼은 아니었지만 신하윤에겐 염동력이 있었으며, 벨벳의 마나를 봉인한 글래스하트가 있었다.

이건, 신하윤이 기억을 되찾은 이래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나는 소망한다.”

벨벳의 마나가 담긴 글래스 하트가 허공에서 빛을 뿜어냈다.

“αιώνιο όνειρο.”

신하윤의 오른손에서 붉은색 보석 [해왕의 저주]가 흩어졌다. 왼손에 쥔 목걸이 아우로라는 글래스 하트와 공명하며 보랏빛 마나를 내뿜었다.

“αιώνια απόγνωση.”

나는 소망한다.

영원한 꿈.

영원한 절망을.

‘미안하지만. 유성아. 이번에도 바뀌는 건 없어’

신하윤은 비가 오던 그날, 고아원 앞에서 지었던 표정처럼 다시금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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