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8화
필멸의 보석 해왕의 저주.
모르간의 목걸이 아우로라.
신하윤은 자신의 계획에 필요했던 3개의 아티팩트 중 2개의 아티팩트를 찾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부품은 저주의 연료가 될 방대한 마나를 가진 드래곤 하트.
“안녕?”
벨벳에게 다가간 신하윤이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돌을 줍고 있던 벨벳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캬항! 안녕-!”
이렇게 오르카와 돌아다니며 돌을 줍고 있으면 벨벳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많았다. 덕분에 벨벳은 신하윤도 그런 학생들 중 한 명인 줄 알았다.
“난, 유성이의 누나야. 혹시 알고 있니?”
하지만 신유성의 가족이라는 신하윤의 말에 벨벳은 흥미가 돋은 듯 귀가 쫑긋 움직였다.
“호걱, 아빠의 누나!?”
“저런, 역시 말해주지 않았나보 구나. 그래.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귀를 쫑긋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벨벳의 모습에 신하윤은 웃음을 참으려 입을 가렸다.
어린아이를 속여 사탕을 빼앗는 것보다 쉬운 일이 있을까? 어린 드래곤을 속여 드래곤하트의 마나를 빼앗는 것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응! 아빠가 아직 벨벳한테는 말해준 적 없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유성이는 나를 싫어하니까.”
벨벳에게 신유성은 언제나 자상한 아빠였다. 그런 신유성이 누군가를, 그것도 가족을 싫어한다니? 표정이 심각해진 벨벳이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신하윤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이해해, 나와 부모님은…… 어린 아이였던 유성이에게 정말 큰 잘못을 했거든.”
“아, 아빠한테!? 아빠가 얼마나 착한데……. 못대써!”
신하윤이 신유성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에 벨벳은 도끼눈을 한 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김은아가 삐졌을 때 보이는 표정과 제스처로 벨벳이 어깨너머로 배운 모양이었다.
“응 맞아. 정말 착하지, 바보처럼 착해. 그래서 내 쪽에서 꼭, 사과하고 싶거든.”
신하윤은 준비해둔 글래스하트를 내밀며 벨벳에게 조심스레 부탁했다.
“혹시, 네가 도와줄래?”
벨벳은 이런 부분에서 신유성과 스미레를 닮아 있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한데다 곤란한 사람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아빠한테 사과할 선물……. 캬항, 좋아! 스미레 엄마가 그랬어! 잘못을 하면 사과해야 한다고!”
자신만만하게 허리춤에 손을 얹은 벨벳은 당당한 자세로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벨벳한테 뭐든, 부탁해! 벨벳은 천재야!”
“그래? 정말 고마워. 확실히 너는 유성이를 닮았구나.”
신하윤은 그런 벨벳의 모습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끅끅- 소리 내어 웃었다.
“……바보같이 착해빠진, 쓸모없는 부분까지 말이야.”
신하윤은 글래스하트를 벨벳에게 가져다 댔다. 옷 위에 닿은 글래스하트는 순식간에 벨벳의 몸에 흡수되며 사라졌다.
풀썩!
벨벳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캬, 캬향? 우읏, 벨벳 몸이 이상해 마나가 업서지고 이써……”
“자, 작은 주인님!?”
이상을 눈치챈 오르카가 쥐고 있던 돌 더미를 내던지고 지느러미를 바삐 움직이며 달려왔지만 사태는 이미 끝나 있었다.
“아, 참고로 내가 한 실수는 유성이를 버린 거란다. 불량품이라 믿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유능해서 후회하고 있단다.”
벨벳은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으며 끄으으- 소리를 내며 다리를 비틀었다.
“우으, 오르카, 아파……. 힘이 업서지고 이써…….”
“너, 대체! 작은 주인님한테 무슨 짓을!”
화가 난 오르카가 인형의 몸체로 애를 쓰며 달려들었지만 상대는 그 신하윤.
“……장난감 주제에.”
화악!
신하윤의 손짓 한 번에 오르카의 몸은 돌무더기가 있는 곳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다. 바닥을 미끄러지며 날아가는 도중 날카로운 돌에 몸이 찢어져 솜털이 새어 나왔지만 오르카는 멈추지 않았다.
“너, 작은 주인님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 같아? 우리, 마님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어떻게든 너에게…….”
만신창이가 된 몸을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오르카. 신하윤은 그런 오르카를 경멸에 찬 눈초리로 훑어보았다.
“지금, 네가…… 감히 누구에게 설교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니?”
신하윤은 검지와 엄지를 맞대더니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크윽, 케엑-!”
공중에 뜬 오르카의 몸은 신하윤이 만들어낸 염력에 의해 너무나 쉽게 반으로 찢어지고 있었다.
“……기껏해야 3급 이하인 쓰레기가 주제도 모르고. 인형의 몸에 숨으면 네가 널 못 죽일 줄 알았니?”
인형으로 이루어진 오르카의 몸은 신하윤의 의지에 따라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했다.
오르카는 죽음이 두렵진 않았다.
자신은 신하윤의 말대로 그냥 몬스터였으니까,
하지만 후회는 있었다. 처음에는 시중을 드는 것 같아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오르카는 벨벳을 따라다니며 하는 모험이 좋았다.
토이킹이라는 이름보다 오르카라는 이름이 좋았다.
이전까진 이곳저곳 장난감을 옮겨 다닐 뿐이었지만, 오르카는 달랐다. 누군가 밤을 지새우는 노력으로 만든 소중한 봉제인형이었고, 김은아가 신유성에게 선물 받은 추억이 담긴 인형이었으며, 벨벳의 하나뿐인 친구였다.
신하윤은 자신을 한낱 3급 보스라 비웃겠지만 오르카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토이킹이 아닌 오르카로 죽는 건 그에게 의미가 있었다.
“난 너에게 화를 내야 해. 넌 작은 주인님에게…… 내 소중한 친구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이니까.”
“그래?”
“작은 주인님은 네가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믿었어. 이 멍청한 자식, 그건 나 같은 버림받은 장난감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건 바보 같은 부분이 아니야!”
그러나 토이킹은 오르카로 죽을 수 없었다. 토이킹은 신하윤을 향해 소리쳤다.
“난 버림받은 장난감들의 왕이다. 넌 주인에게 버림받은 장난감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아이들은 결국 어른이 된다.
어린 시절의 장난감은 결국 버림받고 만다. 토이킹은 토이왕국의 왕이라고 거들먹거렸지만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쓰레기의 사정 따윈 알고 싶지 않은데……. 음, 복수인가?”
“처음에는 그랬지.”
자신은 아직 더 친구와 놀고 싶은, 버림받은 장난감들의 원령. 이곳저곳 다른 장난감의 몸을 떠돌아다닌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오르카라는 인형에 들어와 벨벳과 놀며 진정으로 원한 게 무엇인지 깨닫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장난감은 장난감이야. 우린 친구와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오르카는 범고래의 입을 크게 벌린 채 벨벳과 함께 웃던 어느 때처럼 캬캬캬- 하고 너무나 기분 좋게 웃었다.
오르카는 진심으로 신하윤이 불쌍했다. 친구와 노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 그녀는 동심과 함께 소중한 걸 잃은 게 분명했다.
“넌 평생 모를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친구 하나 없는 가여운 바보니까!”
오르카는 고개를 틀어 마지막으로 벨벳의 모습을 두 눈에 새겼다.
나의 작은 주인님.
나의 작은 친구.
“……이 망할 쓰레기가!”
신하윤은 자신을 쓰레기라 칭했지만 오르카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있었다.
버림받은 장난감이기에, 이곳저곳 여러 장난감을 돌아다니며 관심을 갈구한 외톨이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아니, 후회는 없다! 잘 봐둬! 나 토이킹은 작은 주인님의 친구! 오르카로 죽는다!”
부욱-
인형이 찢어지고 이곳저곳 솜털이 삐져나왔다. 신하윤의 거친 마나에 영향을 받아 토이킹의 마나는 유리구슬이 깨지듯 부서졌다.
하지만 딱 그 정도면 족했다.
행복한 장난감에겐 친구를 위해서 온전하지 않은 마나로도 어지러운 정신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쉬익!
토이킹은 벨벳의 몸에 있는 글래스하트를 향해 들어갔다. 토이킹이 빙의한 글래스하트는 스르륵- 벨벳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마나가 비산하며 형체가 사라지는 와중에도 토이킹은 마지막 염원으로 글래스하트를 벨벳의 몸에서 빼낸 것이다.
“크윽-! 이 망할 쓰레기이이-! 아직 7할 정도밖에 흡수하지 못했는데!”
신하윤은 자신의 계획이 토이킹 따위에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으득- 이를 갈며 길길이 날뛰었다.
친구를 잃은 장난감보단, 친구를 지킨 장난감의 삶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토이킹은 스스로를 희생해 벨벳을 살렸다. 신하윤은 바보 같은 점이라고 깔보았던 유대를, 토이킹은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다.
“쯧……. 그래도 7할 정도면, 다른 아티팩트로 충당할 수 있으니까.”
신하윤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바닥에 떨어진 글래스하트를 줍는 순간.
턱!
정신을 차린 벨벳은 신하윤의 손을 붙잡았다.
“안대……. 오르카를 돌려조……. 내 친구 돌려죠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지 알고는 있는 걸까? 신하윤은 벨벳을 보며 풋- 하고 비웃었다.
드래곤에게 마나는 혈액과 같다.
드래곤하트의 마나를 7할이나 빼앗겼다는 건, 목숨이 경각에 다다랐단 이야기. 신하윤에게 벨벳의 생명은 꺼져가는 불씨처럼 보였다.
탁!
벨벳의 손을 매섭게 쳐낸 신하윤은 글래스하트를 들어 햇빛에 비춰보았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무지개처럼 빛을 내뿜는 농도 높은 드래곤의 마나는 신하윤이 마녀였던 시절에도 얻지 못한 엄청난 보물이었다.
“음, 그리…… 외로워하지 마. 너도 곧 그 쓰레기 인형을 따라가지 않겠니?”
벨벳은 멀어지는 신하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곤 마나를 빼앗긴 아픔이 아닌, 친구를 슬픔에 눈물을 훌쩍거렸다.
“캬우으, 오르카……. 훌쩍…….”
그러나 벨벳이 아무리 훌쩍거려도 바뀌는 건 없었다. 소중한 친구의 영혼은 글래스하트에 담겨 있었고, 벨벳에게 남겨진 생명의 불꽃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 * *
상업의 천재 B반의 김진성.
봉제인형 달인 B반의 황인영.
둘은 방학에도 텅 빈 가온의 부지를 돌아다니며 더욱 뛰어난 봉제인형 제작에 힘을 쓰고 있었다.
“난 이 황금 같은 방학까지 학교에서 쓰고 싶지 않았어. 으아아- 이런 산책은 평일에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아님, 평일에는 관찰을 못 함. 귀여운 봉제인형을 만들기 위해선 자연에서 힌트를 얻어야 함.”
그러나 황인영이 발견한 건 새로운 봉제인형을 만들기 위한 영감이 아닌, 이리저리 널브러진 오르카의 잔해였다.
“헉, 이럴 수가, 내 걸작 오르카가 찢어져 있음.”
반면 김진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진 벨벳을 보며 소리쳤다.
“그,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 벨벳이! 들짐승이라도 만난 거 아니야!?”
“헉, 진짜임. 이, 이거 어, 어떻게 해야 함!?”
“일단 유성이…… 아, 아니지 일단 병원부터!”
둘의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잃었던 벨벳은 힘겹게 눈을 떴다. 똑똑한 벨벳은 자신의 상태가 병원에서 치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캬후, 쿨럭! 벨벳을, 아빠한테 데려다죠.”
지금은 일단 신유성에게 상황을 말하는 게 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