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66화 (365/434)

제366화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스미레는 장을 보기 위해 집 앞의 마트를 들렀을 뿐이건만 자신의 변해버린 유명세를 실감했다.

“하나지마 언니다! 스구하한테 매일 이야기 들었어요!”

“우와! 국가대항전 우승한 그 누나 맞지!? 저랑 같이 사진 좀 찍어줘요!”

“허허허, 우리 동네 사람들은 하나지마 양이 나오는 경기는 다 보았을 겁니다! 드디어 오키나와에서 유명 헌터가 나왔다고 다들 얼마나 좋아하던지…….”

날씨가 추운 겨울인 탓에 제법 옷을 껴입었음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스미레를 알아보았다. 대체 자신은 얼마나 유명해져 버린 걸까.

“혹시 집에 돌아는 길이라면 이것도 몇 개 받아주게나. 특산물인 히라미 레몬인데 음료를 만들면 정말 맛있다우!”

“그럼 이 자색 고구마도! 우리 가게에서 유명한 건데…….”

어르신들의 선물 공세를 거절하지 못한 스미레의 품에는 한가득 선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 네엣-! 정말 감사합니다!”

포켓을 집에 두고 온 스미레는 짐을 가득 쥔 채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하지만 이 주택가만 지나치면 곧 집이 나올 거라는 기대와 달리 스미레는 또 익숙한 얼굴을 만나버렸다.

“어? 저거. 하나지마 아니야?”

“맞네! 저 보라색 머리가 또 있을 리가 없지!”

손가락질하는 남학생 2명.

“오~ 돌아왔나 보네?”

“이야, 한국의 유명인을 이런 곳에서 다 보네?”

불량한 자세로 벽에 기댄 채 스미레를 보는 여학생이 2명. 너무나 익숙한 얼굴들은 스미레가 도망치듯 나온 중등부에서 같은 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스미레를 발견한 학생들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 흥미로워하며 다가왔다.

“너 장난 아니더라, 국가대항전에 나갈 정도로 강했어?”

“아니, 왜~ 그럴 수도 있지 선생님도 다칠 뻔 했는데.”

2명의 남학생들이 서로 낄낄거리며 운을 띄우자 한 여학생은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뭐 하나지마를 탓 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땐 얼마나 난리였는데~ 그렇지?”

“맞아 너무했어. 친구들이 다쳤는데 사과도 없이 도망치고, 던전에서 언데드가 폭주한 건 어떻게 보면 네 탓이었잖아.”

“게다가 갑자기 파티원이 빠져서 잇신이 얼마나 곤란해 했는데?”

여학생들은 주거니 받거니 번갈아가며 자연스럽게 스미레를 추궁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스미레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스미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만. 사과 할 것 없다.”

키리시마 잇신.

쵸텐의 3인조 중 하나이자 예민한 성격이라는 악명으로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본 최고의 루키 중 하나. 그런 잇신이 스미레를 돕자 남학생과 여학생들은 몸을 움츠렸다.

“이, 잇신!”

“아, 아니 그냥 우리는~ 하나지마도 자기가 저지른 일에는 책임감이 좀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아카데미의 격차가 크지 않았던 중등부에선 같은 학교였을지라도 잇신과 스미레를 괴롭히던 패거리는 급의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잇신이 단순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기세에 눌려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힘과 능력이 곧 법인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 실력은 어기지 못할 위계질서.

“너흰 같은 반도 아니었던 방관자들 주제에 대체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잇신이 인상을 찡그리며 학생들을 몰아붙이자 스미레는 오히려 잇신을 말렸다.

“키리시마 씨…….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래도 제가 잘못한 게 맞는 걸요.”

스미레는 어느새 여유를 되찾았다. 자신을 추궁하던 학생들을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라진 분위기 때문일까? 그건 비굴한 사과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돋보였다.

“그때의 전 도망친 게 맞아요. 제 능력이 폭주해서 많은 사람이 다쳤는데도…… 전 그 잘못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어요. 학교를 가는 것조차 무서워서……. 그렇게 도망까지 쳤어요.”

스미레의 진솔한 이야기에 학생들은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닫았다. 잇신은 얼핏 웃으며 기억을 더듬는 스미레를 보고 있자면 숙연한 기분마저 들었다.

“거기다 전학을 간 후, 가온에서의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어느새 잊고 말았어요.”

대체 왜일까. 진솔한 이야기와 함께 스미레가 지어 보이는 약간의 미소에 잇신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어요. 그건 모두 제가 겁쟁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이렇게 서로 눈을 맞추고 사과를 할 수 있게 된 건, 과거를 되돌아볼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겠죠.”

외유내강.

가온에서의 경험으로 스미레의 내면은 이미 완성되고 있었다. 스미레의 속은 부드러웠고 단단했다.

“특히, 키리시마 씨에게는 꼭…… 사과하고 싶었어요. 저를 파티에 넣어주셨는데도 저는 말없이 일본을 떠났으니까요.”

그러나 스미레의 사과에 잇신은 오히려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 그…… 이야기는 됐다. 이미 지난 일이고 너한테 사과를 받자고 찾아온 것도 아니니…….”

잇신이 괜찮다며 사과를 받아주자 눈치를 살피던 학생들은 하나둘 스미레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우, 우리도 미안!”

“맞아. 우리가 너무 몰아세운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학생들이 잇신의 눈치를 보며 순식간에 자리를 떠나자. 스미레는 다시 내려둔 짐을 들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키리시마 씨를 오키나와에서 뵙는 건 처음이네요.”

분명 스미레는 사쿠라에게 잇신이 세이지와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분명 당분간 보기 힘들 거라고 했건만 쵸텐 아카데미도 아닌 오키나와의 집 주변에서 잇신을 만나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 그렇군. 너와 오키나와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군. 중등부에선 제법 가까운 거리인데도 말이야.”

잇신은 볼을 긁적이더니 스미레가 든 짐을 향해 눈을 흘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짐이 많은 거 같은데,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만…….”

“아, 괜찮아요! 유성 씨에게 일상생활에서도 마나를 쓰는 법을 배웠거든요. 엄청 가벼워요!”

“아, 그렇군……. 확실히, 너는 헌터니…… 그 정도 짐이 무겁진 않겠지.”

잇신은 이전의 날카로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뭐가 문제인지 스미레의 말에 쩔쩔 매며 계속 주변을 맴돌았다.

“아 그런데 키리시마 씨는 오키나와에 어쩐 일로…….”

스미레의 일상적인 질문에 잇신은 잘못이라도 들킨 마냥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아, 그건…… 음. 그렇지, 바다가 보고 싶어서?”

냉철하기로 소문난 자신이 기껏 머리를 굴린 게 겨우 이딴 답변이라니 잇신은 자신도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돌렸다.

“그…… 하나지마 넌 우리가 중등부 시절에 다니던 아카데미에 돌아 가본 적 있나?”

하지만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기에는 이번에도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오랜만에 우연을 가장해 만난 스미레에게 갑자기 중학교에 돌아 가본 적이 있냐고 묻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목적이 다분한 작위적인 질문이었다.

“네? ……아뇨.”

결국 좀처럼 잇신의 의도를 알지 못한 스미레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잇신은 결국 정공법을 고수했다.

“1, 1년 남짓한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돌아가 보니 꽤 많은 게 변했더군. 뭐, 하나지마 네가 관리하던 화단은 아직 그대로였다만…….”

“아, 제비꽃이 무척 예뻤죠!”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 듯 스미레가 기뻐하자 잇신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크게 용기를 냈다.

“네가 시간이 괜찮으면 같이 들러보지 않겠나?”

“아, 죄송해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오늘은 동생들이랑 같이 보내기로 해서…….”

그러나 결과는 정중한 거절.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타격이 컸음에도 잇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바쁘다면 그럼 내일은 어떠하지? 나는…… 상관없다만.”

사실 잇신이 오키나와에 바다를 보러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스미레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잇신은 대낮부터 스미레의 집주변을 돌아다녔다. 즉 이건 우연을 가장한 만남. 스스로는 사과를 하기 위해서라고 위안을 삼고 있지만 진실은 명확했다.

“거기도 가까우니 아주, 잠깐이면 괜찮을 거 같군…….”

어린 시절부터 잇신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남녀에 구분을 두지 않고 언제나 주변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잇신은 오히려 그런 주변의 관심이 귀찮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구차하게 매달리는 건 스미레가 처음.

“점심 전, 오전 시간이라던가?”

이젠 비굴함마저 느껴지는 잇신의 부탁에 스미레는 이번에도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 내일 오전은 부모님과 가기로 약속한 곳이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게도 잇신이 부탁한 시간에는 이미 스미레는 부모님과 선약이 있었다.

“그럼 오후는…….”

“죄송해요. 그때도 가족들이랑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오후에도 이미 선약이 있었다.

“그 다음날은?”

“아…… 주말이 끝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라.”

그 다음 날에도 선약이 있었다.

“그, 그렇군…….”

잇신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오랜만에 스미레를 만났건만 약속은커녕 곧 집에 들어가면 다시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하나지마.”

속으로 대체 무엇을 결단한 걸까, 표정이 변한 잇신은 진지한 목소리로 스미레를 불렀다.

“네?”

대답을 하는 스미레는, 지금 잇신이 마주한 스미레는 중등부 때처럼, 어쩌면 그때보다 훨씬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잘 지내고 있나?”

그럼에도 잇신은 물었다.

가온으로 떠난 스미레가 어떻게 지냈는지, 어떻게 대답할지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물었다.

“네. ……무척요. 너무 행복한 일투성이라 가끔은 두려워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그럴 자격이 있는 걸까…… 하고.”

예전처럼 미소를 되찾은, 너무나 담담하게 웃는 스미레를 보며 잇신은 안도한 듯 웃었다.

“다행이군.”

스미레를 정면으로 마주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얼굴을 마주하는 게 힘든지 몸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이젠 시간이 없다. 진심을 말하려면 지금뿐이다.

그런 생각이 잇신을 다급하게 재촉하고 있었다.

“아까, 너에게 사과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는 말은 진심이다. 오히려…… 사과를 하고 싶은 건 내 쪽이거든.”

잇신을 시린 날씨지만 너무나 화창한 하늘을 올려 보았다. 스미레가 떠난 후, 이렇게 화창한 날씨를 보면 어딘가 가슴에 찝찝함이 남았다. 화창하지 않고 비가 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날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따금 잇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문제였다.

그건 가끔씩 떠오르는 후회와 책망으로 얼룩진 모든 감정의 근원을, 그 모든 죗값을, 스미레에게 돌려버린 자신의 나약함이었다.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 나아가는 것도 버거워서 급급했지. 파티장이라는 사람이, 파티원하나 감싸주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지 못했다.”

잇신은 그 사건 이후 급격히 어두워진 스미레를 떠올렸다. 신유성과 함께 있으며 행복해하는 스미레를 떠올렸다.

“아마 그건, 그게 편했기 때문이겠지. 누군가를 위로하는 건 한 번도 내가 해본 적 없는 일이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은 무엇 하나 스미레를 위한 적이 없었다. 자신은 스미레를 믿을 수 있는 파티원보다는 지켜줘야 할 존재이자,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가대항전의 스미레를 보며 알게 됐다.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자신은 파티장임에도 스미레의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한 바보였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떠한가?

어두웠던 스미레를 밝게 웃도록 만들어준 사람은 아쉽게도 자신이 아니었다. 잇신은 스스로를 잘 알았다. 참으로 이기적인 자신은 그런 재주 따윈 없었다.

그저 시간을 준다는 보기 좋은 허울로 기다렸을 뿐이다.

“……그런 민망한 짓을 하지 않아도 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 평소처럼 웃고, 화단에 핀 제비꽃을 보며 행복해할 줄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뭐든 자기 입맛에 맞춰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의 잇신은 스미레를 이해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도망치고 가온으로 떠난 건 분명 어떻게든 살기 위한 스미레의 간절한 선택이었겠지.

“……지금까지 미안했다.”

잇신은 그 말을 끝으로 발을 내딛었다. 몸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돋은 듯 발걸음이 가벼워진 착각마저 들었다.

“저! 키리시마 씨!”

아름다운 제비꽃이 핀 봄.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여름.

후회의 가을.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

잇신은 궁금했다. 왜 스미레와 있었던 기억들은 하나의 계절로서 완성되는 걸까?

“응.”

깊은 감정에도 불구하고 잇신의 대답은 너무나 짧았다. 마음속 이 복잡한 감정을 음미하기에 아직 잇신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저는…… 저도 키리시마씨도 모두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스스로를 실수투성이에 한심한데다 민폐만 끼치는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잇신은 알 수 있었다.

“유성 씨가 믿어준 자신을 믿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알게 되었어요.”

인간은 동전의 양면과 다르다는 걸, 유약함과 강함은 공존할 수 있으며 지독한 좌절 속에서도 따뜻하고 상냥한 마음은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분명 키리시마 씨도 마찬가지겠죠. 누구나 지난날을 돌이키며 후회하지만. ……저흰 모두 착실히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마주할 용기조차 없어 목소리밖엔 들리지 않지만 스미레가 그 증명이었다.

“……배워가는, 나아가는, 과정이라. 응. 그렇군.”

작별의 인사를 건네진 않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잇신은 눈과 비가 내리던 1년에게 작별했다.

지금은 너무도 시리지만 잇신은 이 추위가 평생토록 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이것 또한 스미레의 말처럼 더 나은 헌터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 믿으며 혼자만이 들릴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고마웠다. 하나지마 스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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