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5화
신유성은 홀로 무신산을 올랐다.
약 1년에 조금 모자란 시간만의 복귀였고, 반면 무신산은 신유성이 5살 때부터 12년을 보낸 고향 같은 장소였다.
첨벙-
익숙한 돌계단에선 빗물이 첨벙였고, 산새들은 떨어지는 비를 피해 나무 밑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었다.
‘무신산을 떠난 지 겨우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참 길게 느껴지는걸.’
신유성은 유원학의 손을 잡고 처음 계단을 오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롭고 어려웠지만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에 이내 익숙해질 수 있었다.
“아, 여긴…….”
신유성은 빗물로 불어난 개울가를 보았다. 개울가를 건너기 위해선 돌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넘어가야 했지만 어렸던 자신은 물을 무서워한 탓에 유원학이 들쳐업고 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은 그렇게 미약했다. 무엇이 될지 몰랐고, 무엇도 될 수 있었으며, 무엇도 될 수 없었다.
‘가능성은 품고 있지만…… 아무런 이름도 없는 돌덩이.’
누군가 F급 특성을 타고난 불량품이라 칭한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분명 평생 자신의 가치를 모른 채 스스로를 돌덩이라 여기며 살아갔을 것이다.
부모에게도 버림받았으니 어찌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유원학은 신유성을 보석이라 칭하였다. 가치를 알아주고 이름조차 없던 돌덩이를 갈고 닦아주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신유성은 신오가문에 버림받은 꼬마가 아닌 권왕에게 선택 받은 헌터였다. 최강의 헌터가 키운 유일한 제자였다.
사람들은 지금 신유성을 최고의 루키라 불렀다. 헌터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수없이 많은 학생들 중 신유성을 한국을 이끌 최고의 인재로 꼽은 것이다.
10년이 넘는 긴 시간이 지난 만큼 처음 무신산을 올랐을 때와 지금의 자신은 너무나 많은 게 달라졌다.
“아…….”
비가 그쳤다.
신유성의 어깨 위에는 한 마리의 파랑새가 손가에 날아 앉았다. 신유성은 그게 마치 오랜만에 돌아온 자신을 환영해주는 것 같아서 미소를 지었다.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자신이 머무르던 동굴을 바라보며 신유성이 말했다. 나무 위에선 기다렸다는 듯 짙은 저음의 목소리가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배웠느냐.”
권왕 유원학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가뿐한 몸짓으로 신유성의 눈앞에 착지했다.
“음…….”
눈앞에서 유원학을 마주한 신유성은 말을 멈췄다. 1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간추리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동료를 믿는 법을 배웠습니다.”
스승인 유원학이 자신을 믿어준 것처럼 신유성은 일련의 사건으로 자존감이 낮아졌던 스미레를 진심으로 믿어주었다.
그 결과 지금 스미레는 최고의 사령술사로서 신유성의 동료가 되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유원학이 흡족하게 웃으며 묻자.
신유성은 하나하나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무신산에선 느낄 수 없던 감정들을 느끼며 기뻐하고, 분노하며, 슬퍼하며, 부드러움을……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유원학은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약간은 빗물을 머금은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너의 목숨마저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들을 만들었느냐?”
스미레. 김은아. 아델라. 이시우. 에이미에 신유성은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료를 만들었고 함께 유대를 쌓아나갔다. 신유성은 동료를 믿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었다.
그러니 유원학의 물음에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답했다.
“……예. 스승님.”
신유성의 단 하나의 의심도 없이 오직 신뢰만이 담긴 명쾌한 대답에 유원학은 두터운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신유성은 그런 유원학의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았다. 처음 본 유원학은 엄한 스승이었지만 신유성은 그런 면모만이 유원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스승인 유원학은 외로움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가 생기고 미련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마녀와의 평온한 삶 대신 헌터의 길을 택한 남자였다.
지독히도 고독한 최강의 길을 걸으려 한 남자였다.
“이젠 너만의 투신류를…… 너만의 길을 걷고 있느냐?”
신유성은 눈을 감았다.
한줄기 마른 바람을 따라 손끝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는 과연 시간의 흐름일까?
잘게 흩어진 사진들이 감긴 눈앞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건…….”
신유성은 말끝을 흐렸다.
신유성에게 주어진 1년은 배움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힘을 이용해 누군가를 구하는 법을 배웠고, 옳은 힘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계속하여 물었다.
“대답할 수 없느냐?”
호수에 뜬 달이 너무도 아름답던 날,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마나의 빛깔을 보았고, 평소와 다른 신체가 되었기에 그 차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분명 신유성은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건 타고난 재능과 경험이 합쳐진 오직 신유성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었고, 유원학이 걸어온 길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래. 가르침이란 그런 것이겠지.
스승에서 제자로.
아버지에게 아들로.
그리고 그건 비단 인간만의 일이 아니겠지. 어떤 형태로든 가르침은 이어지겠지.
“……아니오 스승님. 저는 저만의 투신류를 찾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를 거치며 새롭게 변모하고 창조된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물감처럼 퍼진 빛깔들은 검게 변하고 흐려지진 않는다. 제 각각의 빛깔로 아름답게 반짝일 뿐이었다. 허투루 사라지는 것은 없다. 무언가는 남기 마련이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에 저는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신유성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건 그저 감사였다. 말이란 자신의 감정은 모두 담아낼 수 없기에 도리어 꾹꾹- 벅차오르는 감정을 담담하게 눌러낸 제자의 인사였다.
반면 유원학의 목소리엔 너무나 외롭고도 벅찬 감정이 들어있었다.
“후회가 되는구나.”
신유성은 이리도 나약한 문장은 지금까지 유원학의 입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신유성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스승의 눈을 마주쳤다.
유원학은 그런 신유성의 머리에 손을 얹어주었다. 신유성이 5살의 꼬마였던 그날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리도 기쁜 일을 조금 더 일찍 맛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유성은 믿을 수 없었다. 무엇도 대답 할 수 없었다. 신유성에게 유원학은 언제나 강인한 존재였다. 최강의 존재였다. 엄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유성아.”
너무도 인자한, 이젠 노년에 닿은 스승의 목소리.
“……네 스승님.”
고개를 숙인 탓일까, 신유성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건 최강의 헌터인 권왕 유원학이 아니었다. 그저 노년의 남자에 불과했다.
“나는 한평생을 행복을 피해 도망친 겁쟁이였다. 동료를 만들기까지도……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 그것마저 나에겐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단다.”
유원학은 신유성의 양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주 본 유원학의 두 눈에는 신뢰만이 가득했다.
“너는 나와 다르다.”
유원학은 나뭇잎 사이로 으스러진 빛줄기를 움켜쥐었다. 거대한 손아귀에 빛줄기는 잡힐 듯 말 듯 했지만 결국 손을 벗어났다.
“너는 나보다 나은, 더 강한 헌터가 될 거란다. 유성아 너만의 길을 걸어가거라.”
신유성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스승이 제자에게 내리는 마지막 가르침. 무신산을 진정으로 하산하는 과정이었다.
“네가 탑의 진실에 도달하는 날. 헌터의 비원에 도달하는 그날…… 나는 유성이 너의 선택을 믿으마.”
비록 너무도 급작스럽지만 언젠간 다가올 순간이었다.
“하산하여라.”
이제 더 이상 가르침은 없다.
그러니 신유성은 무신산을 내려가야 했다. 자신만의 산을 찾고 오르며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시간이었다. 그 앞에는 얼마나 많은 만남이 기다릴까, 얼마나 많은 기쁨이 기다릴까, 얼마나 많은 슬픔을 겪게 될까.
그러나 신유성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처억!
자리에서 일어난 신유성은 유원학을 보며 예를 갖추어 포권을 취했다.
“지금까지……. 정말.”
기억이 흩어진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신유성의 기억은 온통 무신산의 것이었다.
어떤 날은 나무에 올라가 잠을 청했고, 멧돼지를 피해 도망쳤으며, 모닥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주먹을 지르는 법을 배웠고, 발차기를 배웠다.
칭찬을 받았고, 꾸짖음을 받았고, 예의를 배웠고, 존경을 알았다.
신유성은 알고 있었다.
상처받은 자신이 치유 받을 수 있었던 건, 유원학의 덕분이라는 걸.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유원학은 이제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최강의 헌터를 만들고 투신류를 이어갈 제자를 받는 게 목적이었던 그의 행동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아주 늦은 노년.
그냥 어느새 포기했던 행복을 되찾았을 뿐이었다.
“감사할 것 없다. 정말이지 즐거운 시간이었으니…… 기억을 더듬으면 모조리 네 녀석만 떠오르건만. 이리도 짧게 느껴지니 원…….”
처억-!
유원학은 어쩐지 기운을 잃은 신유성의 등을 두드려주며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소리쳤다.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거라! 유성아 네가 못 오를 벽은 없다. 너는 너를 가로막는 벽은 부숴서라도 길을 개척할 헌터다.”
“스승님…….”
그렇게 신유성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신유성은 무신산을 처음 하산하던 날을 기억했다. 고대하던 미래 때문에 도저히 심장의 두근거림을 감출 수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기쁨과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잠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턱. 저벅. 턱. 첨벙.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신유성은 너무도 무거운 발걸음을 마음으로 재촉하며 한걸음마다 기억과 의미를 새로이 새겼다.
이젠 꽤 긴 시간이 지나 퇴색될 법도 한 오래된 가르침을 품에 지닌 채로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권왕은 그런 신유성의 뒷모습을 보며 인자한 얼굴로 읊조렸다.
“내가 권왕이라면 유성이 너는 투신(鬪神)이다. 너의 두 주먹으로 이 세상을 구해낼 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