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64화 (363/434)

제364화

긴 테이블과 그 위에 쌓인 수많은 음식들. 그러나 신오가문의 식사 자리에는 단 3명뿐이었고, 식기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릴 뿐 아무런 대화도 없이 정적만이 흘렀다.

신하윤이 즐기는 건 식사가 시작된 직후 가장 맛있는 첫 몇 입뿐. 결국 식기가 움직이는 소리마저 멎고 말았다.

신하윤은 자신이 쥔 포크로 느릿하게 그릇을 긁었다. 끼이익- 듣기 싫은 소리에 인상을 쓴 신강윤과 유민서의 시선이 신하윤에게로 몰렸다.

“벌써 7급 공략을 성공했다라…… 참 활약이 눈부시네요. 역시 두 분의 자식이라 그렇겠죠?”

그냥 넘기기에는 뼈가 있는 말.

신하윤은 가주인 신강윤은 물론이고 어머니인 유민서까지 웃음을 흘리며 비꼬고 있었다. 무해한 얼굴로 싱글싱글 웃지만 너무나 악의로 가득 찬 신하윤의 미소.

“그 중에선 꽤 재미있는 기사도 있더군요. 유성이와 권왕이 만난 고아원에…… 신오가문의 가주가 방문한 기록이 있다는…… 어쩌면 유성이를 고아원에 버린 게 신오가문일지 모른다는 이야기.”

신하윤은 흥미가 동한 듯 접시에 포크를 놓으며 신강윤을 본 채 턱을 괬다. 자신의 부모였고, 어떻게 보면 자신의 상급자였지만 신하윤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야 흔한 유명인의 가십거리로 치부되고 있지만…….”

오히려 너무나 나긋한 목소리로 상대를 추궁하고 있었다.

“걱정이네요. 이런 이야기는 부풀려지기 마련이니까요. 유성이의 능력을 알아본 권왕…… 그러지 못한 신오가문이라며 분명 비교되겠죠?”

신하윤은 아아- 하고 과장되게 한탄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아들이 가진 잠재력조차 알지 못했는데……. 한국을 이끌어갈 헌터 협회장이 될 수 있는 재목인지 분명 의심하겠죠?”

걱정 어린 말투로 말을 하지만 신하윤의 목소리와 제스처는 하나하나 신강윤의 속을 긁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바로 신오가문의 방식이었다.

야생의 짐승들이 싸움으로 우두머리를 정해 무리의 미래를 맡기듯, 신오가문도 언제나 가문의 ‘최강’이 가주를 맡게 되었다.

그렇기에 신하윤은 묻고 있었다.

지금 신강윤은 어떠한가? 그는 정말 의심의 여지 없는 최강의 존재일까?

신강윤은 협회장이 되기엔 신유성의 출생과 관련된 리스크를 지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신유성의 활약이 더해갈 때마다 가문 내에서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었다.

“최연소 7급 보스 공략자가 될 재목을 알아보지 못하고 고아원에 보내다니. 그것도 헌터 명가를 자처하는 신오가문에서…… 확실히 비웃음거리긴 하죠?”

“……하윤아?”

낮게 깔린 유민서의 부름에 신하윤은 이번에도 무해한 얼굴로 그저 웃어보였다.

“네?”

자신을 내비치지 않으면서 상대의 약점을 헐뜯는다.

유민서는 그런 신하윤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부모를 쏙 빼닮았을까, 자신들의 가르침 덕분일까? 아니면 타고난 성정 때문일까?

유민서는 신하윤을 보고 있자면 신유성이 보여준 올곧음이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걱정 마렴. 그저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니까.”

눈을 감은 유민서는 천천히 홍차를 음미했다. 신강윤의 목표가 헌터 협회장이라면 자신은 또 다른 꿈이 있었다.

그건 헌터로서의 꿈이자, 어머니로서의 꿈이었다.

‘8급.’

그건 인류 중 단 몇 명만 도달한 최강의 경지. 비록 유민서 자신은 7급의 벽에서 좌절하고 말았지만 자신의 핏줄만큼은 그 벽을 깨부수길 바랐다.

그게 그녀가 신강윤이라는 헌터와 결혼한 이유였다. 신강윤은 그녀의 이상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헌터였으니 후회는 없었다.

“……우리 유성이는 특성이란 굴레를, 헌터가 타고나는 운명을 벗어날 정도로 뛰어났을 뿐이야.”

“불량품인지 알고 버렸지만. 실은 보석이었다. 그러니 돌아와 달라고 말할 셈인가요?”

신하윤은 사람이 가장 아플 만한 장소를 예리하게 찔러오는 재능이 있었다. 이미 지금의 상황이 엎질러진 물이라는 건 유민서도 잘 알고 있었다. 신유성이 계속 헌터로서의 활약을 이어나가며 모두가 원하는 블루칩이 된 지금.

“유수 컴퍼니의 지분마저 거절했는데 그런 호소는 이제 통하지 않을 거예요.”

신하윤의 말처럼 유민서의 제안은 메리트를 잃은 지 오래였다.

툭-

식기를 내려놓은 신강윤은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럼 넌 어떻게 생각하지?”

같은 핏줄인 자신마저 위협할 정도로 기분 나쁜 딸이지만 신강윤은 신하윤의 수완을 믿고 있었다.

“음~”

아니나 다를까 신하윤은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한 듯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역시 이 사람들은 아직도 신유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용에게는 역린이 있듯, 신유성에게도 역린이 있다는 걸 왜 알지 못할까. 신하윤이 본 신유성은 자신과 관련된 일은 한없이 강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관련된 일에는 한없이 약해졌다.

전쟁에서 굳이 무너져가는 성벽을 두고 단단한 성벽을 무너트릴 이유가 있을까? 신유성을 통해 승낙을 받을 수 없다면, 그 옆에 있는 약점을 건드리면 되는 일이다.

“회유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가온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신유성이라면 불가능한 방법. 하지만 하산한 신유성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만들었으며 마음과 정을 주었고 하나의 거대한 유대를 이루었다.

‘혼자라면 너무 강하지만 누군가 관계되면 한없이 약해지지…….’

지금까지 신하윤은 신유성이 ‘동료’라는 이름으로 약점을 만드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신하윤은 동료란 이름을 유대란 이름을 믿지 않았다.

신하윤이 숭상하는 건 항상 ‘힘’ 그 자체였다. 힘이란 모든 가치를 상회했고, 모든 관계를 위와 아래를 나누어 편하게 적립하게끔 도와준다.

‘아직도 어린아이에 멈춰있구나. 유성아. 그건 사랑을 갈구하며 받은 짧은 관심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신하윤은 신유성의 약점을 파고들 생각이었다. 기꺼이 역린을 건드리고 분노로 자제력을 잃은 신유성을 손쉽게 굴복시킬 생각이었다.

* * *

턱!

식탁에 걸터앉은 김은아는 식빵을 우물거렸다. 스미레가 준비한 식빵은 버터를 발라 굽고 그 위에 딸기잼만 얹었을 뿐인데 이상할 정도로 맛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가끔 이게 생각난단 말이지…….’

자신 몰래 식빵에 비밀의 재료라도 넣은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나 맛있는 걸까. 특히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곁들일 때면 김은아는 소소한 행복마저 느꼈다.

“맛있어…….”

볼에 가득 찬 식빵을 우물거리며 행복에 찬 감탄을 흘리는 김은아. 하지만 혼자 있다고 생각한 부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가요…….”

김은아는 몸을 움츠렸다.

너무나 생기 없는 억양에 얼핏 상대가 귀신일까 의심되는 목소리였다.

“뭐, 뭐야 아무도 없는데…….”

주말이 되자마자 스미레는 동생을 보러 가겠다며 일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고, 이시우도 사쿠라의 도장에 가버렸다. 심지어 아델라는 S반의 연말결산 때문에 방학인데도 불려 나갔다.

‘이상하다. 유성이도 벨벳이랑 학원 도시에 놀러 나갔는데…….’

김은아는 겁에 질린 채 조심스레 목소리가 들려온 소파로 다가갔다.

꿀꺽.

김은아는 몰려오는 긴장감에 입술을 잘근거리는 대신, 입에 문 식빵을 먹어 치우며 천천히 소리의 실체를 확인했다.

“뭐야, 놀래라…….”

의문의 소리를 낸 정체불명의 누군가는 교복을 입은 채 소파에 누워 깊은 잠에 든 아델라였다.

“얘, 연말결산 간다고 했는데 이러고 있어도 되나?”

피곤했던 탓일까 루인성에서 돌아온 이후 아델라는 걸핏하면 낮잠에 들었다. 오늘만 해도 결산 참여에 준비를 하다 이렇게 잠에든 모양이었다.

“이렇게 잘 자고 있으니 깨우기도 뭣하고…….”

김은아가 쯔쯔- 혀를 차며 테이블로 돌아가려는 찰나 아델라는 마치 깨어있는 사람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네 맞아요.”

“……으응?”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아델라는 오늘 따라 유독 잠꼬대가 심했다. 하지만 테이블로 돌아가려는 김은아의 마음과 달리 힘없이 중얼거리는 아델라의 잠꼬대는 이번에도 김은아를 붙잡았다.

“저도, 요. 보고…… 싶었어요.”

김은아는 지금 아델라가 꾸고 있는 꿈이 뭔지 모르지만 이게 아주 중요한 꿈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델라……. 너…….”

김은아는 복잡한 감정을 품에 안은 채로 아델라를 보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당연히 안쓰러움과 동정. 김은아가 가장 취약한 감정이었다.

화악!

잠에 든 아델라가 갑자기 활짝 양팔을 펼쳤다. 김은아는 움찔- 하고 놀랐지만 아델라는 개의치 않고 당혹스러운 행동을 요구했다.

“저, ……안아줘요.”

“모, 뭐어?”

김은아는 당연히 싫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잠든 아델라는 어딘가 서운한 얼굴로 풀이 죽었다.

‘뭐야 이거, 내가 안아주지 않으면 꿈에서도 거절당하는 거야?’

김은아가 추리하건데 아델라의 단꿈을 이루어주기 위해선 아무래도 정말 현실에서 아델라의 몸을 안아줘야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대낮부터 라이벌이었던 아델라를 껴안으라니?

김은아가 찝찝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진 그 순간. 아델라는 쐐기를 박았다.

“아…… 안 되나요?”

잠꼬대 주제에 너무나 풍부한 감정을 가진 아델라의 목소리에 김은아는 선택지가 없어지고 말았다.

아델라가 누구와 만나는 꿈을 꾸고 있는지는 당연한 이야기였고 이왕 꾸는 꿈을 해피엔딩으로 장식해주고 싶은 건 김은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씨 진짜…….”

처업-!

결국 김은아는 무릎을 꿇은 채 여전히 찝찝한 표정으로 소파에 잠든 아델라를 끌어안아 주었다.

“아……. 무척, 따뜻합니다.”

김은아의 귓가에 만족한 아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힘껏 끌어안는지 숨통이 막혀올 지경이었다.

“그, 그래에…… 나도 조앗…….”

그제야 아델라는 만족한 얼굴로 더욱 깊은 잠에 빠졌다. 덕분에 김은아는 한동안 어정쩡한 자세로 소파 앞에서 굳어 있어야 했다.

“으, 음…….”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아델라가 깨어난 건 한참 뒤의 이야기.

“흡-!”

아델라는 상쾌하게 기지개를 펼치며 일어났다. 반면 김은아는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 새치름한 표정으로 아델라를 보며 물었다.

“잘 잤냐?”

아델라는 그런 김은아의 질문에 보기 드문 미소를 지었다.

“네. 무척 좋은…… 행복한 꿈을 꿨거든요.”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아델라의 미소에 하루종일 고생을 한 김은아의 기분도 결국 풀리고 말았다.

아델라를 위해서 꽤나 고생을 했음에도 김은아는 그저 평소처럼 새치름한 표정으로 이렇게 투덜거릴 뿐이었다.

“……그래? 그럼 됐고.”

역시 솔직하게 표현하진 못해도 김은아의 성정은 명확했다. 친한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너무나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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