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1화
준 7급 보스 루이스 공략 성공.
이 타이틀은 ‘역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신유성도 자신이 해낸 일이 엄청난 일이라는 자각 정도는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신유성은 부실의 베란다 너머로 길게 이어진 구름 같은 인파를 보았다. 엄청난 인원은 복도를 넘어 본관 입구부터 부실에 이르기까지 줄을 서 있었다.
‘일단. 문을 열어볼까.’
잠에서 깬 이상 계속 기다리던 사람들을 문전박대 할 순 없는 노릇 하지만 신유성이 부실의 문을 열자마자.
“오랜만이야! 나 기억하지!? K채널의 메인 캐스터 유한나! 짧은 인터뷰 한 번만…… 으햣! 거기! 밀치지 마요!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요!?”
“아덴 님께서 표명하신 의견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리벨리온 퇴치의 주력 멤버로 참여하신다는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십니까!?”
부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엄청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벨벳 이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이야! 에이타보다 더 많아!”
벨벳은 사람이 많은 게 신기한지 살랑살랑 꼬리까지 흔들며 반길 정도. 그러나 에이미는 근엄하게 고개를 저었다.
“크흐음! 다들 진정해주세요! 파티장님은 이제 막 깨어나셔서 아직 회복을 취하고 계신 상태입니다! 그러니 인터뷰에 관련한 방문자들은 저를 따라와 주시죠!”
파티에는 이미 방송과 인터뷰에 관련해선 전문가인 에이미가 있었다. 분명 에이미라면 신유성이 나서지 않아도 명석한 답변으로 최고의 인터뷰를 해줄 게 확실했다.
“자자! 그럼 줄 맞춰서 저를 따라와 주세요! 인원도 많으니까 공원이 좋겠네요.”
그렇게 에이미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기자들을 이끌고 함께 사라지는 동안 김은아는 슬쩍 고개를 들어 뒷줄을 확인했다.
“뭐야, 저렇게 사람이 빠졌는데도 이렇게 줄이 길어?”
“저, 저기!”
그때 모범생이 쓸 법한 동그란 안경을 쓴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네리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의 가온으로 유학을 온 유학생이었다.
“혹시…… 저, 아직 동아리에 안 가입했다고 들었는데…… 원예부에 가입하지 않을래?”
네리타는 입구에 선 신유성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간절한 얼굴로 원예부의 장점을 어필했다.
“우리 동아리에는 우담바라도 있다? 일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데다 어지간한 원예부에선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꽃이고……. 아! 교외의 연구소도 주목하고 있어서 지원금도 엄청 많아!”
신유성은 그런 네리타의 제안에 희귀한 품종의 화초를 다루는 일에 왜 자신이 필요한 걸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원예부요?”
결국 신유성이 네리타의 제안에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저기 그게…….”
네리타는 이실직고를 했다.
“저, 우리 부원들이…… 전부 비전투형 헌터들이거든. 무기를 다루기보단 버프에 가까운……. 그래서 조금만 던전이 난이도가 높아도 채집을 가지도 못하고…….”
원예부에는 엄청난 고민이 있었다. 네리타를 포함한 5명의 부원 중 3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헌터가 아무도 없다는 것. 덕분에 조금만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면 채집을 나가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부분 희귀한 품종의 화초나 씨앗은 던전에서 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구하는 게 위험하지 않다면 애당초 그 품종이 희귀해질 일이 없는 것이다.
덥썩!
“네가 와주면 엄청 도움이 될 거야! 원예부는 대부분이 여자라서 어색할 수도 있지만……. 내가 적응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계속 힘써볼게!”
결국 네리타가 신유성의 손을 잡으며 더욱 간절하게 어필하자 김은아는 참지 못하고 입술이 씰룩거렸다.
“그 손은 좀 놓고 이야기하지?”
김은아는 역시 조금도 한눈을 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은아는 신유성이 무슨 동아리에 가입하고 활동하든 자유라고 생각했지만 여자만 가득한 원예부라면 그건 이야기가 달랐다.
김은아의 라이벌은 이미 충분히 충분히 많았다. 더 이상 라이벌을 늘리는 건 사양이었다.
“저기 어떻게 안 될까!? 네가 가입하면 모두 환영해 줄 거야! 딱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와줘도 같이 던전도 가고…….”
“원예부라…….”
그러나 신유성은 오히려 너무나 간절한 네리타의 부탁에 마음이 동하는 모양이었다.
“안 돼.”
그러나 김은아의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무의미.
“나 꽃가루 알레르기 있어.”
“뭐!?”
“난 유성이랑 항상 붙어 있는데 하루종일 기침만 할 순 없잖아?”
“왜 동아리 활동은 자유지! 어차피 너도 단순한 파티원 아니야? 뭐 여자 친구 그런 거야?”
네리타의 반격에 김은아는 읍- 하고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지금 바로 인정하기엔 부실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 단순한 파티원보다는 좀 더 가깝고…… 자주 같이 있는…… 그런 사이라는 거지…….”
“저기, 사귀는 사이 정도가 아니라면 빠져 줄래? 우리 원예부의 미래가 걸려 있으니까!”
그러나 김은아는 선배인 네리타의 기세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강한 헌터가 꼭 유성이일 필요는 없잖아. 유성이가 얼마나 바쁜데!”
“참견은! 네가 와줄 거도 아니잖아! 넌 꽃가루 알레르기라며!”
김은아와 네리타가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으르렁거리던 그 순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미레가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했다.
“두, 두 분 모두 진정하세요! 저기 원예부라고 하셨죠? 혹시 그러면…….”
“어, 뭐야 스미레 네가 대신 가입해주게?”
“아! 그 소문의 사령술사!? 국가대항전에서 봤어! 너라면 대환영이지!”
물론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라면 김은아와 네리타의 예측도 그럴싸했지만 스미레는 고개를 저었다.
“원예부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건 맞지만 제가 가입하는 건 아니에요. 저를 대신해서 나가주실 분이 있거든요!”
스메리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네리타는 음산한 기분에 뒤를 보았다. 거기에 서 있는 건 머리를 되찾아 듀라한으로 상격의 존재가 된 데스나이트였다.
“저는 주, 인님, 의 뜻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어떤 명령이든 내려 주십시오.”
듀라한이 된 데런은 머리가 생겨서 그런지 의사소통이 제법 원활해졌다. 게다가 이젠 사령술사의 거리가 멀어져도 자신의 지능으로 임무를 수행할 머리가 있었다.
“저, 안 그래도 부실을 장식할 화분을 사뒀었거든요. 원예부라면 예쁜 꽃의 씨앗을 잔뜩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스미레의 명령에 데런은 네리타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디 주인님에게 좋은 씨앗을…….”
“어, 네, 네? 아! 네! 알겠어요! 씨앗은 잔뜩 드릴게요!”
원예부의 5인의 여학생과 머리 있는 듀라한의 극전인 조합이 완성 된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에 김은아는 박수로 주목을 끌며 다음 순번을 불렀다.
“자! 다음 순번 나와!”
그러자 다음 차례로 얼른 튀어나온 여학생은 가온의 교복을 입고 있는 게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학생이었다.
“저기! 안녕! 나 웨이린이야 기억하고 있지? 마천루 아카데미의!”
갑작스런 웨이린의 등장에 김은아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유학생에 이어 이젠 전학생이냐?’
신유성의 곁에는 왜 이렇게 여자가 끊이질 않는 걸까.
“설마 유성이에게 반해서 전학을 왔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왜 그럼 안 돼?”
“자 다음 순번!”
“아아아! 진짜아아! 그러지 말고! 장난이야!”
웨이린은 단호한 김은아의 행동에 신유성을 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류진이 그렇게 간 후…… 우리 파티도 해체되고……. 계속 남아 있기에는 류진 생각도 나고 그래서 한국에 온 거란 말이야.”
웨이린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김은아는 정작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겐 매몰차게 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게 뭔데?”
“저도 파티에 넣어주세요!”
웨이린은 자존심도 없이 넙죽 고개를 숙였다. 웨이린은 마천루 아카데미에서 세븐 넘버급이었던 자신이 가입할 파티는 신유성의 파티뿐이라고 생각했다.
“한설아 걔는 쵸텐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파티에 들어갔는데. 나는 아직 초대가 오는 곳도 없고…….”
그러나 이번에 웨이린의 부탁을 거절한 건 김은아가 아닌 오히려 신유성이었다.
“미안. 그건 안 되겠어.”
신유성은 당분간 파티원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기존의 파티원들과 내실을 다질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활동은 점점 난이도가 어려워지겠지.’
자신의 파티는 더욱 위험하고 더욱 어려운 임무를 해나가야 했다.
그렇기에 신뢰를 쌓고 팀플레이를 맞춰온 파티원이 아니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역시…… 그렇지?”
결국 웨이린도 평소와 달리 기가 죽은 모습으로 돌아가려던 그 순간.
“캬항! 잠까안-!”
벨벳이 웨이린을 불러 세웠다.
“뭐야, 이 꼬마가 날 부른 거야?”
웨이린은 뜬금없는 상황에 얼떨떨한 모양이었지만 벨벳은 너무나 진지했다. 아무래도 벨벳은 파티 가입을 거절당한 웨이린을 가엽게 여긴 모양이었다.
“그럼 벨벳의 파티에 넣어주께!”
“작은 주인님께서 친히 허락해주신 거니 영광으로 여겨라! 파티에 가입하면 넌 내 후임인 걸 잊지 말고!”
웨이린은 벨벳의 호의와 오르카의 텃세에 멍한 얼굴로 눈 밑을 파르르 떨었다.
“내가 무슨 소꿉놀이나 하려고 헌터가 된 줄 알아!? 그리고 대체 이 범고래 인형은 어떻게 말을 하는 거야?”
“아니야 오르카랑 나도 진지하게 모험을 하고 이써!”
벨벳은 자신의 모험을 소꿉놀이로 폄훼하는 웨이린의 말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벨벳은 언젠가 오르카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지구 반대편을 탐험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지금은 개울가에서 돌을 줍고 하천을 트레이닝장 삼아 그 연습을 하고 있을 뿐.
“모험은 무슨! 기껏해야 동네 하천이나 돌아다니겠지.”
하지만 웨이린의 너무나 정확한 예측에 벨벳은 입을 가리며 놀라고 말았다.
“호곡, 어떠케…… 아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