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60화 (359/434)

제360화

겨울 방학.

헌터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이 4글자는 사뭇 의미가 남달랐다. 휴일이 긴 만큼 상위권 학생들만 받을 수 있는 교외 활동 허가를 받지 않고도 장기간 외출에 나설 수 있었고, 그때 벌인 활약은 곧 헌터의 인지도로 이어진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협회에서 지급하는 포인트…….”

헌터 협회는 학생들의 외부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공략한 임무의 난이도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했다.

“아하핫! 이번 랭킹 1위는 따놓은 거나 다름없지!”

목소리의 주인은 이노 아카데미의 나지혜였다. 비록 선발전에선 아델라에게 참패를 당해 주목받지 못했지만 외부 활동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헌터 협회의 랭킹은 강자를 뽑는 게 아니다.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임무를 클리어하는 게 중요했다.

겨울 방학이 시작한 건 겨우 며칠에 불과했지만 나지혜에게 그 시간은 아주 길었다.

“진짜 얼마나 힘들었는지…….”

감기에 걸린 나지혜는 콧물을 훌쩍이며 지난 시간을 하나둘 떠올렸다. 단신으로 흡혈 말벌들의 군집을 부수고, 에이타 킨더가든의 어린아이들과 던전 견학을 가고, 4급 보스 백귀묘(白鬼喵)가 출몰하는 설산에 올라 희귀한 약초도 구했다.

물론 이외에도 총 6개의 임무를 순식간에 해치우는 등, 나지혜의 근성은 상식을 뛰어넘었다.

“겨우 6일 동안 6개야!”

나지혜는 들뜬 마음으로 얼른 자신의 점수를 확인했다.

“당연히 1등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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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혜 [이노 아카데미]

포인트 :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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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에 적혀 있는 자신의 점수는 무려 125P였다. 그건 3급 난이도 임무를 2개, 2급 난이도 임무를 4개나 클리어해야 하는 엄청난 점수. 게다가 그걸 겨울 방학이 시작한 지 며칠 만에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카데미 별 포인트 랭킹]

1위 : 신유성 [가온]

포인트 : 722P

2위 : 로렐라이[시계탑]

포인트 : 715P

공동 3위 : 아델라 [가온]

포인트 : 705P

안젤라 [시계탑]

포인트 : 705P

“뭐야 이건…….”

나지혜는 믿기 힘든 충격에 양봉장에서 선물 받은 벌꿀조차 놓은 채 무릎을 꿇었다.

“……722포인트? 그런 점수가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아, 알겠다! 전산 오류라거나! 그런 건가!?”

나지혜는 현실을 부정하며 부실에 엎드려 멍하니 포켓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점수나 랭킹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부실에 들른 파티원이 나지혜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아, 대장…… 산에 있느라 몰랐겠구나. 걔들 지금 뉴스도 나오고 해외에서 대서특필되고 장난 아닌데…….”

“뭐!? 대체 왜!?”

백번 양보해서 그럴 실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지금 주어진 건 기껏해야 며칠도 안 되는 시간이지 않은가.

좀처럼 믿기 힘들어하는 나지혜의 표정에 파티원은 대답 대신 방송을 틀어주었다.

[공략한 재앙의 마녀 루이스는 공략 난이도가 6급에서 준 7급이라고 합니다! 역대 기록 중에서도 이례적인…….]

삑!

[공략에서 베테랑인 6급 헌터들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건 도리어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삑!

[가온의 신유성과 시계탑의 로렐라이 학생……. 어리지만 뛰어난 파티장들이 미래에는 어떤 결과를 달성할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삑!

[신유성 학생은 아직 아카데미를 재학 중이지만 신성그룹의 산하 길드 중에선 이미 스카웃 제의를 한 곳도…….]

삑!

[K채널의 유한나 리포터입니다! 가온 아카데미 학생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결계가 해제된 볼테라의 전경은 보시다시피 완전히 얼음이 녹아버렸고 루인성의 형체는 온데 간데 없이…….]

정말 파티원의 말처럼 어떤 채널의 방송을 틀어도 세상은 온통 신유성과 아델라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자신이 흡혈 말벌을 처리하고 어린애들 뒤치다꺼리를 하는 동안 아델라는 7급 보스를 공략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일까?

“으, 으으……. 또, 또 졌어…….”

가혹한 스케줄 때문일까.

아니면 1등을 차지하지 못한 실망감 때문일까. 나지혜는 시름시름 앓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누구보다 근성이 뛰어난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 * *

고된 공략 때문일까.

신유성과 아델라는 볼테라에서 돌아온 이후 하루를 꼬박 잠이 들어 일어나지 않았다. 대규모 공략을 끝낸 헌터가 병원의 검사를 받는 건 필수 과정이었기에 따로 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엄청 피곤하긴 했나 봐. 하루가 지났는데도 이렇게 곤히 자는 걸 보면…….”

처음 신유성이 아델라를 안고 왔을 때만 하더라도 김은아는 은근한 질투의 시선을 보냈지만 지금은 안쓰러운 감정이 앞섰다.

“뭐, 이번에는 헌터 협회가 백번 잘못했지. 뒤늦게 분석하고 보니 보스가 7급 이상이라니……. 정말 유성이어서 다행이지.”

헌터 협회가 부활한 루이스의 전투력을 6급 수준으로 예측한 덕에 신유성과 공략대는 적정 수준에 한참 모자란 인원으로 루이스 공략에 나섰다.

만일의 만일 신유성이 공략에 실패했다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 김은아는 그 상황을 가정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네…… 정말 다행이에요. 분명 유성 씨와 아델라 씨에게도 힘겨운 전투였겠죠. 우으, 다행이에요!”

최근 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스미레도 돌아온 신유성과 아델라를 보며 걱정을 놓았다며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렇게 위험한 공략인 줄 알았다면 김은아와 스미레는 절대 신유성과 아델라 둘만 공략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루이스 원정대는 7급이 단 1명도 없는 편성부터 기껏해야 6명에 불과한 인원수를 가진 완전히 데이터 예측에 실패한 공략이었다.

이번 공략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유성의 전투력과 로렐라이를 지키기 위한 시간의 여신 크로노아의 희생 덕분.

스윽-

그런데 왜 이 녀석은 이 사이에 끼어서 이러고 있는 걸까?

“근데 고생은 유성이랑 아델라가 다 했는데 얜 왜 이러고 있어?”

김은아는 신유성과 아델라 사이를 보았다. 그 좁은 공간엔 다름 아닌 벨벳이 너무나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벨벳을 이럴 자격이 이써…….”

비록 김은아가 알아주진 않았지만 벨벳은 너무나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가 빠져 있던 환각은 무려 마녀 루이스가 건 ‘악몽의 저주’로 설령 전설의 헌터라도 아티팩트의 도움이 없다면 쉽사리 풀 수 없는 고도의 기술이었다.

벨벳이 아무런 도움 없이 꿈의 세계로 개입해 아델라를 깨울 수 있었던 건 알에서 부화하기 전부터 쌓아온 유대와 드래곤 특유의 성질 때문이었다.

“캬으…… 어제 벨벳은 정말 대단해써, 오직 벨벳만 할 수 있는 일이어써!”

그러나 김은아는 미덥잖다는 눈으로 벨벳을 보았고 스미레도 벨벳이 귀여운 허풍을 떤다고 생각할 뿐 누구도 벨벳의 활약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벨벳은 아델라 엄마랑 아빠 품에서 마나를 회복하고 이써써…….”

벨벳은 행복한 듯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김은아와 스미레가 어떻게 벨벳의 활약을 알아줄까?

“저도 봤습니다! 작은 주인님이 마님의 몸에 손을 대니까 스야약! 빛이 나더니! 갑자기 정신을…….”

그저 같이 포탈을 타고 루인성에 갔었던 오르카만이 김은아의 옆에서 열띤 변호를 할 뿐이었다.

“됐고 잠도 깼으면 얼른 나와. 밥 먹을 시간이니까.”

“안대. 벨벳은 1시간은 더 침대에 있어야 해……. 충전이 끝나지 않아써…….”

“충전은 네가 무슨 배터리야?”

결국 강제집행을 결심한 김은아가 꼬리를 잡아들자 벨벳은 베개를 껴안으며 버텼다.

“크, 캬우으- 안대에에- 멀어진다아아!”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결국 힘에 부친 김은아는 스미레에게 시선을 옮겨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미레는 어쩐지 평소와 다른 굳은 표정으로 신유성과 아델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스미레?”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김은아는 벨벳의 꼬리를 놓아주었다. 그리곤 스미레의 이름을 다시금 불렀지만 스미레는 듣지 못한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결국 그렇게 되었나.”

겉모습은 같지만 김은아가 알던 평소의 스미레가 아니었다. 눈빛도 말투도 분위기도 어딘가 달랐다.

“루이스 너는 끝까지……. 그래 그렇군. 그럴 만도 하지. 넌 누구보다……. 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스미레는 김은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김은아는 스미레의 눈동자를 마주한 것만으로 심해의 단면을 본 듯 자신도 모르게 ‘깊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식의 만남은 처음이구나. 미안하다. 옛 친구와 닮은 얼굴을 보니 참을 수 없어서 말이야.”

지금 스미레의 몸을 조종하는 건 편린인 라플라스의 인격. 편린에 불과한 그녀가 이런 식으로 몸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건 아주 드문, 아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라플라스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숨소리만 내쉬는 아델라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라플라스는 자신이 지금부터 뱉을 말을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조심스레 운을 뗐다.

“너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 다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단편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니 해답을 기대하진 말거라.”

라플라스는 스미레의 몸을 통해 신유성과 아델라를 그리고 김은아를 보았다.

라플라스는 무언가를 숨긴 사람 같았다. 마음 같아선 정답을 말해주고 싶지만 규칙을 위해 입을 꾹 다문 채 비밀을 지키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흠.”

라플라스는 탄식을 흘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벨벳과 이야기에 집중한 오르카의 시선에 결국 김은아의 귓가로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속삭였다.

“……마녀란 족속은 비열하고 잔혹한 존재이니 한순간도 방심해선 안 된다. 그게 설령…… 동료라 하여도.”

라플라스가 김은아에게 줄 수 있는 건, 딱 이 정도의 힌트.

“뭐? 갑자기 그게 대체 무슨 말…….”

오직 찝찝함만을 남기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에 김은아는 다급하게 라플라스를 불렀지만 스미레의 또렷한 눈동자는 동그랗게 변하더니 곧이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은아 씨?”

스미레는 김은아가 왜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김은아는 벨벳과 오르카를 보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섣불리 이야기를 꺼낼 순 없었다. 라플라스가 편린을 가진 스미레도 아닌 오직 김은아에게만 이야기를 전달했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아, 아니야! 그, 그냥 항상 고맙다고!”

결국 그냥 김은아가 멋쩍게 웃으며 이야기를 넘기고 말자 진실을 모르는 스미레는 김은아와 같이 싱긋 웃어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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