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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58화 (357/434)

제358화

부모님이 돌아오신 걸까 아니면 위험에 처한 이웃일까? 아델라는 그게 누구든 좋았다. 지금은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나 그리웠기에 얼른 현관으로 나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끼익-

그러나 밖에서 아델라를 기다리고 있는 건 부모님도 아니었으며 이웃도 아니었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는 벨벳이었다.

“넌…… 누구야?”

아델라는 방문자의 모습이 신기했다. 자신과 같은 어린 아이였지만 뿔과 꼬리는 동화책에 나온 드래곤을 닮기도 했다.

물론 벨벳은 그런 아델라의 태도가 여간 충격인 모양이었다.

“넌 누구야?”

“커헉! 캬, 캬오…… 엄마가 벨벳을 잊어써…….”

“엄마?”

벨벳의 말에 아델라는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하지만 난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자신이 어떻게 엄마라는 걸까? 아델라가 난해함을 드러내자 벨벳은 비밀이라는 듯 허리를 곧게 펴고 근엄한 얼굴로 선언했다.

“……캬항! 사실 벨벳은 미래에서 와써! 아델라 엄마는 벨벳이랑 가야 해! 모두를 데리러 미래에서 와써!”

“……미래?”

“응! 지금 미래에선 아빠가 아델라 엄마만 잔뜩 기다리고 이써! 돌아오지 않으면 모두 슬퍼할 거야!”

벨벳의 말은 미래에서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는 너무나 생경한 이야기였지만 어린 아델라는 무언가 떠오른 듯 이마에 손을 짚었다.

“나를…….”

지금 아델라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절대 기억해선 안 되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우읏…….”

그 사람의 이름이 뭐였지?

왜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델라는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벨벳의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럼 벨벳 넌, 나를 데리러…… 온 거야?”

아델라는 한쪽 손으로는 곰돌이의 손을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은 채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왜?”

어쩌면 벨벳은 아델라와 같이 이 허상의 세계에 갇힐지도 몰랐다. 아무리 단단한 교감으로 이어져 있어도 타인의 꿈속을 방문한다는 건 그런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위험한 세계를 아무런 고민도 없이 방문했냐고 묻는다면 벨벳은 단숨에 답할 수 있었다.

“벨벳은! 이렇게 커다란 알이어써! 너무 더워서 힘드러써……. 하지만!”

벨벳은 그런 성큼성큼 다가가 갑자기 꽈악- 하고 안아주었다.

“아델라 엄마는 항상 이렇게 벨벳을 안아줬어! 무척 차갑고, 시원해서 정말 기분 좋아써!”

조그마한 벨벳의 품은 부모님과는 달랐다. 그러나 아델라에겐 참으로 그리운 온기였다.

[캬항! 벨벳 불 뿜기!]

[……항상 고마워. 아델라.]

[말했지, 네 라이벌은 나야!]

[여기예요! 아델라 씨!]

언젠가 들었던 그리운 목소리들이 아델라를 얼핏 얼핏 지나쳤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두고 온 미래가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았으나 그 목소리만큼은 명확했다.

척!

벨벳은 얼른 잡으라며 아델라에게 손을 건넸다.

“돌아가쟈! 엄마!”

아델라는 그런 벨벳의 손을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홀린 듯 손을 잡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에는 아델라와 벨벳만 있는 게 아니었다. 또 한 명의 불청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불청객은 아델라가 집을 떠나는 게 아주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못 가!”

아델라가 쥐고 있던 곰 인형은 복도로 짧은 나가 양팔을 위협적으로 펼치며 막아섰다.

“……론?”

“머야, 오르카처럼 곰 인형이 말을 하고 이써-!”

아델라의 곰 인형인 론은 벨벳이 놀라거나 말거나 주장을 펼쳤다.

“여기가 네 집이야! 어딜 가겠다는 거야! 아델라! 부모님을 기다려야지? 네 친구인 론보다 설마 저 꼬마를 믿는 거야?”

“하지만 그래도…….”

“저 꼬마가 나쁜 녀석이면 어쩌려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널 데리고 가려는 못 된 사람이면 어떻게 해? 여기서 부모님을 기다리자!”

곰 인형 론이 짤막한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강력하게 주장을 하자 서서히 아델라가 벨벳을 잡은 손에서 힘이 풀렸다.

“벨벳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믿을 수 없어! 꼬리에 뿔에 수상하다고! 아델라를 한입에 삼키려는 나쁜 드래곤 아니야?”

“캬, 캬오…… 벨벳 못 참게써, 곰 인형한테 불 뿜기 해줄 거야!”

유창한 론의 말솜씨에 밀린 벨벳은 결국 실력행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선택을 하는 건 어디까지나 아델라의 몫.

“……나는 가볼래. 론.”

아델라는 벨벳이 아니더라도 오늘 이 집을 떠나고 싶었다. 홀로 남은 집을 지키는 건 이제 너무 외로웠다.

“잊은 거야 아델라!? 바깥에는 위험한 눈 괴물들이 있다고!”

론은 힘껏 나가려는 아델라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아델라는 마음을 굳혔다. 결국 벨벳의 손을 따라 문을 나서는 아델라.

“갠차나! 아델라 엄마는 벨벳이 지켜 줄 거니까!”

벨벳은 아델라의 손을 잡은 채 문을 열었다. 곰 인형 론은 짤막한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그런 둘을 따라왔다.

“아델라 나, 나도 같이 가!”

하지만 역시 여긴 꿈 속 세상이었다. 꿈의 주인인 아델라가 깨어나면 이 세계가 붕괴되기 때문일까? 아델라가 용기를 내고 집밖을 나오자마자 기다리는 건 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괴물이었다.

과아아아-!

괴물은 메기 같은 거대한 입을 쩌억 벌려 거친 바람을 내뿜으며 위협했다. 하지만 벨벳은 그런 위협에 물러서지 않았다.

“벨벳 불 뿜기-!”

콰아-!

벨벳은 조그마한 입에서 눈 괴물의 최대 약점인 불을 화염방사기처럼 내뿜으며 전진했다.

루인성에서나 볼 법한 얼음 병사들이 병장기를 들고 덮쳐도 벨벳은 물러서지 않았다.

“벨벳은 이제 강해! 이제 벨벳이 아델라 엄마를 지켜줄게!”

신유성에게 배운 정권 지르기로 끝없이 쏟아지는 병사들의 머리를 터트리며 계속 전진했다.

눈밭에서 거대한 물고기가 벨벳을 향해 튀어 올랐다. 눈 괴물 중에서도 유일하게 눈에 모습을 숨길 수 있는 희귀한 몬스터였다.

화아악-!

그러나 물고기 형태를 한 눈 괴물 또한 벨벳의 불에 너무나 힘없이 녹아내렸다. 지금 벨벳은 누구에게도 질 수 없었다. 벨벳은 아델라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행복한 미래를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꿈의 세상에서는 용기가 중요했다. 믿음이 곧 결과였다.

그러니 이긴다.

“벨벳은 아델라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가 제일 재미있었어!”

벨벳에겐 아델라와 함께 했던 행복한 과거 있었고 약속된 미래가 있었다. 머리가 좋은 벨벳은 그 행복을 모두 기억했다. 그게 얼마나 즐거운 기억인지 하루 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델라 엄마가 기억하지 못해도 갠차나! 벨벳이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래. 설령 아델라가 잊는다고 하여도 상관없었다. 벨벳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언제가 된다고 하여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잊을 리가 없었다.

알에서 깨어나 모두를 만난 그 순간은 벨벳에게 똑똑히 각인되어 있었다.

“벨벳…….”

기억을 되찾은 걸까.

아델라가 자신도 모르게 벨벳의 이름을 읊조렸다.

“응! 돌아가쟈! 엄마!”

아델라는 잊었던 벨벳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을 위로해준 신유성의 모습이 떠올랐으며 자상하고 상냥한 스미레가 떠올랐고, 자존심 강한 라이벌 김은아가 떠올랐다.

대체 왜 이 소중한 기억들을 잊고 있었을까?

주위를 둘러싼 눈 괴물들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아델라의 몸도 이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지 오래였다.

“……응, 돌아가자. 벨벳.”

이번에는 아델라가 벨벳을 안아주었다. 아델라는 기억을 되찾았다. 아픔에 무뎌지기 위해 행복을 포기하다니 그런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할 수는 없었다.

“캬항…….”

하늘에서 볼테라를 향해 투명한 계단이 내려왔다. 이제 길었던 악몽과는 작별할 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어. 성장했구나. 아델라.”

짤막한 손을 세차게 흔드는 론의 인사에 아델라는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응. 고마웠어 론.”

“아니 네가 떠나는 건 슬프지만 난 언제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어!”

론은 자신의 오래된 친구에게 담담하게 인사했다.

“곰 인형의 역할이 원래 그것인걸? 인형 놀이는 그만 졸업할 시기라는 거지!”

자신의 친구가 행복하길 빌며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아델라는 벨벳의 손을 잡은 채로 계단을 밟았다.

“미안. 벨벳. 기다렸지?”

“응! 아빠도 아델라 엄마만 잔뜩 기다리고 이써!”

아델라는 웃으며 발걸음을 뗐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렇게 몇 걸음을 걸었을까? 아델라는 미처 아득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볼테라의 풍경을 눈 안에 담으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푸훗…….”

아델라는 그만 웃고 말았다.

아래에선 론은 물론이고 방금 자신을 덮친 눈 괴물들까지 아델라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얼른 이 세계를 떠나라는 듯, 더 이상은 이런 악몽에 찾아오지 말라는 응원 같아서 아델라는 그만 웃고 말았다.

아델라는 저도 모르게 벨벳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델라, 엄마…….”

벨벳이 아델라를 불렀다.

쭈욱-

벨벳이 검지를 뻗은 곳에는 아델라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부모님도 있었다.

“만나지 않아도 갠차나?”

“……응.”

뚝. 뚝.

눈물을 떨어트리며 아델라는 슬프게 웃었다. 이젠 그만 헤어질 시간이었다. 떠나간 과거를 붙잡으려 얼마나 많은 슬픔 속에서 헤맸던가?

추운 눈밭 속에서 부모님을 찾아 헤매던 어린아이는 성장했다. 이젠 어른이 되어 곰 인형을 졸업할 시간이었다.

“안녕…….”

아델라는 아득한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눈물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입가에 머무는 미소는 과연 어떤 감정일까?

부모님은 그런 아델라를 보며 너무 기쁜 얼굴로 입을 움직였다.

[사랑한다. 아델라.]

[정말 잘 자라주었구나.]

어쩌면 이건 자신의 위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기뻐서 아델라는 그만 웃고 말았다.

“모두, 잘 있어.”

아델라는 고개를 돌렸다.

벨벳을 손을 잡은 채 성큼성큼 투명한 계단을 나아가며 아델라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그럼에도 너무나 기쁜 목소리로 벨벳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벨벳.”

벨벳은 그런 아델라를 보며 해맑게 답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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