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7화
크로노아가 멈춰준 시간이.
로렐라이가 전해준 의지가.
결국 신유성의 손을 통해 루이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러나 관통당한 아델라의 몸에선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았다. 그저 황금의 물결만이 타고 흘렀다.
탁, 터덕-
루이스는 힘겹게 몸을 주춤거렸다. 꿰뚫린 심장을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벌어진 틈 사이로 쏟아지는 건 아델라를 지배했던 루이스의 자아였다.
“아…….”
단말마를 흘린 루이스는 직감했다. 여신의 힘은 몸속 깊이 스며들 테고 아델라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도 ‘온전한 형태’로 복구할 것이다. 그럼 외부인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는 영원히 사라지겠지.
새로운 기회가 생겼음에도 똑같은 결말을 반복한 것이다.
“어, 째서…… 왜 하늘은 나만을 미워하는 거지? 나에게는 단 한 번도 뻗어주지 않았던 손을…….”
루이스는 상처를 부여잡은 채 흘러나오는 기운을 막으려 애썼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폭우를 막을 순 없는 일이었다.
루이스의 자아는 꺼지고 있었고, 그녀의 생명은 죽어가고 있었으며, 그녀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 원망스러워라.
“나를 증오 속에 빠트린 것도, 인류를 원망하게 한 것도, 마녀가 되게 한 것도, 모두 그의 선택이…… 그의 안배가 아니었는가?”
루이스는 고개를 올려 얼어붙은 천장을 보았다. 무너진 틈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겨울은 저물었다.
봄이 찾아온 세상은 너무나도 화창하겠지. 삶이란 승자의 것이고 행복이란 산자의 것이다.
자신과 닮은 주제에 몇 번이고 절망한 주제에 아델라는 루이스가 단 한 번도 누린 적 없던 그것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왜 이 녀석에게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손을 뻗어주는 거지? 하늘이란 자는 가혹한 자가 아니었는가? 아니면 그는 나에게만 가혹하였는가?”
루이스는 인간이 증오스러웠다.
마을의 인간들은 아무런 힘도 없는 그녀의 어머니를 마녀로 몰아 처형시켰고, 종내에는 루이스마저 심판대에 올렸다.
인간들은 막연한 역병은 두려워했지만 힘없는 소녀는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제물로 삼았다.
그래. 그런 것이 만연한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하늘은 맹세를 들어준 게 아니었는가? 맹렬한 불 위에서 타오르는 고통을 느낀 그 순간. 자신에게 복수를 약속한 게 아니었는가?
루이스는 증오로 초월했다.
인류가 자신의 삶을 앗아갔기에, 인류의 미래를 닫는 것이 ‘겨울의 마녀’가 된 이유였다.
“왜 같은 절망 속에서도 이 녀석만 구원받는 거지? 훗…… 후후, 아무래도 나는 단단히 미움을 산 모양이군.”
이럴 거면 차라리 타오르는 판자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나았다. 자신이 기다려온 그 길고 긴 시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돌려달라고 말했지?”
루이스는 원망 어린 눈으로 신유성을 보았다. 신유성의 말처럼 나올 수 없는 심상의 세계에 아델라를 가두어둔 건 루이스였다.
“내 대답은…… 거절이다.”
루이스는 대답과 함께 생기를 잃어갔다.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힘을 잃은 몸은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루이스는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아델라를 길동무로 삼으려는 생각이었다.
“아델라!”
신유성은 쓰러지는 아델라를 감싸 안았다. 루이스의 죽음으로 루인성을 둘러싼 결계가 해제되었다. 완전히 무너진 천장 위로 햇살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깨어나 줘……. 아델라.”
어떤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어떤 선택을 했어야 아델라를 돌려받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어긋난 게 아닐까?
아델라에게 용기를 주지 않았더라면 극복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더라면 임무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래, 그랬더라면.
신유성은 품에 있는 아델라의 볼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아델라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저 잠이 든 듯 평온했다.
미동도 없는 아델라를 껴안은 신유성을 보며 로렐라이가 탄식을 뱉었다.
“아…….”
크로노아의 도움에도 결국 구하지 못했던 걸까. 물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간단한 원리다.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그걸 인정한다고 헤도 익숙해 질 순 없었다. 로렐라이는 동료를 잃은 신유성이 가여웠고, 크로노아가 그리웠다.
이윽고 햇살이 잦아든 얼음성에 하나둘씩 모여드는 발걸음.
“너희들…….”
“아델라가…….”
이 모든 게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생각에 쇼이치와 엘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로렐라이 님! 아…….”
파티장을 반기려던 안젤라도 아델라와 신유성을 확인하자 그 자리에서 몸이 굳고 말았다.
미동조차 없는 아델라를 끌어안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신유성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루인성의 강당에는 오직 침묵만이 가득했다.
신유성은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패배를 맛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대가였다. 신유성은 자신에 대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소중한 동료는 아니었다.
“……미안하다. 네 동료가 그런 꼴을 당한 건 우리의 모자람 때문이다. 그 죄책감은 우리가 짊어지도록 하마.”
신유성의 어깨에 손을 올린 쇼이치는 너무나도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건 그가 본분을 다한 헌터를 애도하는 방식. 하지만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델라는…… 죽지 않았습니다.”
신유성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아델라의 몸에선 뜨거운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아델라는 생명을 잃은 게 아니다. 루이스의 말처럼 그 누구도 모르는 세상을 떠돌며 긴 꿈을 꾸고 있었다.
“루이스가 말했습니다. 아델라는 자신이 만든 허상 속에 갇혀있다고…….”
그 허상이 무엇일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라 하여도 형상이 없는 적을 물리칠 수 있을까?
“아델라는 지금…… 긴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독한 악몽 속을 영원히 헤맬지도 모른다. 두 번 다신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유성이 품에 안은 아델라의 손을 잡아주는 그 순간.
그그그극-!
루인성의 구석에서 무언가 강제로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아공간이 열렸다.
삐죽!
아공간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건 검은색 지느러미와 꼬리.
“……꼬리?”
베테랑인 엘리자조차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그 순간. 힘에 의해 억지로 밀려 나오던 검은색 물체는 괴성을 질렀다.
“끄에에엑-! 자, 작은 주인님! 찢어집니다! 이 구멍은 저에게 너무 작습니다!”
“갠차나! 찢어져도 스미레 엄마가 바늘로 치료해 줄 거야!”
“끄이야아악-!”
검은색 물체는 무자비하게 밀어내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결국 아공간에서 튀어나왔다.
통-
그렇게 튀어나온 범고래 인형은 찢어질 번한 허리를 지느러미로 애처롭게 쓰다듬었다.
“휴, 힘드러따, 오르카 살쪄써?”
“인형은 살 안찝니다.”
반면 벨벳은 가뿐하게 아공간에서 걸어 나오더니 해냈다는 듯 뿌듯한 얼굴로 탁탁- 손을 털었다.
“아, 그 소문의…….”
“드래곤?”
6급인 엘리자와 쇼이치가 협회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벨벳을 알아보았지만 당사자인 벨벳은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도 결계가 업서져서 다행이야 찾느라 고생해써…….”
안젤라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민을 모두 대피시킨 볼테라에서 갑자기 아공간을 찢으며 뿔을 단 꼬마와 범고래 인형이 걸어 나오다니?
“아빠! 아델라 엄마!”
게다가 신유성과 아델라를 부모라 칭하며 달려오기까지 하자 덩달아 로렐라이마저 벨벳의 페이스에 휘말려버렸다.
“아, 아빠?, 엄…… 마?”
대체 언제 결혼을 했었던 걸까, 게다가 이런 아이까지? 도저히 믿기 힘든 전개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시간을 주지 않았다.
“벨벳? 혼자서 찾아온 거야?”
“아니 오르카랑 가치 와써! 아델라 엄마는 자고 있는 거야?”
신유성의 물음에 벨벳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답게 비범한 구석이 있는 벨벳조차 지금 아델라의 상태를 잠으로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신유성은 지금의 상황을 벨벳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아직 어린 벨벳이 루이스의 저주를 이해할 수 있을까? 만약 다시 못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벨벳은 어떻게 반응할까?
“……응, 무척 깊고 긴 잠이 될지도 몰라. 당분간은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
신유성이 힘겹게 이야기를 꺼내자 벨벳은 잠에 든 아델라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곤 벨벳은 마치 모두 알고 있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신유성을 위로했다.
“캬항! 걱정하지 마! 아빠! 아델라 엄마는 깨어날 거야!”
길고 긴 악몽을 꾸더라도 상관없었다. 아델라가 길을 잃고 자신을 찾아오지 못한다면 벨벳은 이 쪽에서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상식으론 불가능했지만 알에서 부화하기까지 계속 함께한 아델라와 벨벳은 그만큼 강한 유대로 묶여 있었다.
“벨벳이…… 아델라 엄마를 깨울 거야!”
장담을 한 벨벳이 아델라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이내 잠에 든 아델라처럼 신유성의 품에 안 겨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 * *
찢어진 사진을 기워 붙인 듯 어렴풋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하지만 아델라가 아무리 떠올리려 애써도 기억은 안개가 낀 듯 희미했다.
여긴 어디일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더라?
고개를 갸웃거린 아델라는 그제야 거울을 보았다.
“아…….”
거울 속 자신은 거울보다 작은 키와 이제 막 잠에서 깬 잠옷 차림으로 곰 인형을 들고 있었다.
“알겠다.”
아델라는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듯 곰 인형을 끌어안은 채 주방으로 걸어 나갔다.
“응, 맞아…… 나는 론이랑 같이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어.”
도르르륵- 톡!
이제 아델라는 콩 통조림을 캔 따개로 여는 것에 익숙해졌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이젠 부모님이 떠나신 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
아델라는 이제 혼자만의 생활이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새하얀 접시위에 식빵과 올리고 열어둔 콩 통조림을 그 옆에 부었다. 조촐하지만 한 끼를 넘기기엔 나쁘지 않은 식사.
“있지. 론.”
한참 동안 식빵을 우물거리던 아델라가 곰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부모님이 선물해주신 곰 인형 론은 혼자 남은 아델라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우리, 이 식사가 끝나면 같이 떠나자 엄마랑 아빠를 찾는 거야.”
이젠 외로운 기다림에 지쳤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자. 가족들을 만나서 다시 행복을 되찾자. 어린 아델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비극은 벌어졌다. 아델라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델라는 그것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어렸을 뿐이었다.
그건 정해진 과거였고 지나쳐 버린 시간이었다. 바꿀 수 있는 건 무엇도 없다. 하지만 여긴 현실이 아닌 꿈의 세상.
딩동-
누군가 울릴 일 없는 아델라의 집을 찾아와 벨을 눌렀다. 이야기가 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