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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55화 (354/434)

제355화

한 줄기의 햇빛도 들지 않는 견고한 얼음성. 생명의 움직임도 시간의 흐름도 멈춰버린 이 세상에서 루이스는 가혹한 폭군이었다.

고통에 찬 인간들의 부정한 감정을 세금처럼 거두며 엄청난 에너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연료나 다름없는 감정들이 루인성의 지하에 가득 잠들어 있다는 건 아덴조차도 모르는 사실.

‘나이에 비해 현명하고 용감한 인간이지만 이건 처음부터 너에게 불리한 전투였느니라.’

하지만 그럼에도 루이스는 ‘신유성을 죽여야 한다.’는 이성과 ‘저 녀석은 죽이고 싶지 않아.’라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그릇 때문이겠군. 감히 정신을 흡수당하는 주제에 귀찮게도…….’

실눈을 뜬 루이스는 신유성을 보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아델라의 몸과 동화된 덕택에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었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느냐?”

“무엇을?”

온몸에 투기를 두른 채 긴장한 신유성을 보며 루이스는 지금의 순간을 음미하며 느릿하게 물었다.

“너는 왜 이 여자의 곁에 나타났지? ……왜 위로해주었지? 그저 이유 없는 우연이었나?”

루이스는 증오로 인간을 초월해버린 마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던 평소라면 던지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루이스와 아델라 그 사이에서 태어난 ‘무언가’였다.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다. 이건 변덕스러운 여흥일 뿐이니 말이다.”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할 이 감정이야말로 인간의 변덕스러움. 아델라를 흡수한 루이스가 마녀가 아닌 인간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신유성은 그런 루이스를 보았다.

너무나 고요한 눈으로 한참 동안 시선을 마주친 채 입을 뗐다.

“내 질문부터 대답해. 진짜 아델라는 어디 있지?”

루이스는 신유성의 질문에 대답 대신 얼음 수정구를 만들어보였다. 그 투명한 얼음 속에 비친 건 어려진 아델라의 모습.

“아직도 겨우 그까짓 게 궁금하단 말이더냐.”

어린 아델라는 혼자 남았지만 울지 않았다. 곰 인형을 옆에 두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델라가…….”

경멸이 깃든 눈으로 신유성은 루이스를 올려보았다. 마주 본 루이스의 눈은 마치 아델라를 처음 본 순간 같았다. 여유롭게 웃고 있지만 즐거움은커녕 무감정하고 공허해보였다.

“넌 모르겠지. 누군가를 위로하는 건…… 원래 이유도 목적도 없는 일이야.”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래. 그렇군.”

대답을 들은 루이스는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신유성과 아델라의 경험을 음미했다. 평온한 일상에 불과한 둘의 기억은 루이스에게 달콤한 풍미를 가진 와인 같았다.

참으로 세상이란 불공평했다.

“그릇은 내가 만든 허상 속에 갇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잃고 존재조차 지워지겠지.”

왜 같은 위험에 처하더라도 아델라에겐 신유성이라는 구원자를 보냈으면서 루이스에게 찾아온 건 영원한 지옥뿐이었을까.

인간이었던 루이스의 생에서 인류란 증오해야할 대상에 불과했으면서 아델라에겐 이리도 행복한 경험을 나누어준 걸까.

“그럼 그때는…….”

하지만 이 불공평함도 이젠 끝이었다. 루이스는 자신의 손으로 이 불공평한 세상을 모조리 깨부술 생각이었다.

“내가 아델라다.”

루이스는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신유성은 자신이 겪었던 쓰레기들과 정반대의 인간. 바퀴벌레와 같은 인류를 청소한 새하얀 세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다.

모처럼 인간이 되었으니 신유성의 기억을 지우고 둘만이 남은 세상에서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는 일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루이스가 불공평하게 잃어버린 인생을, 증오로 얼룩진 경험을 새롭게 덧씌우는 것이다.

‘쓰레기를 모두 구도하고…… 나의 기준에 맞는…… 새로운 인류를 만든다.’

루이스가 새하얀 손을 뻗자 여러 줄기의 투명한 실타래처럼 얼음결정이 이어졌다.

“몸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눈의 오페라]

루이스가 미소를 짓자 마나로 이루어진 새파란 물결이 출렁였다. 물결은 차가운 철판에 물이 닿은 듯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싸라기눈이 되었다.

이건 아델라 최강의 기술인 눈의 오페라의 전조 부분.

솨악!

하지만 그 싸라기눈이 흩어지려는 순간 루이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물론 내가 사용하는 건 많이 다르지. 기억을 읽어 보니 너는 마나 공명을 사용할 수 있다지?”

꽈악!

눈의 오페라는 주변을 눈보라로 감싸버리는 아델라의 결계. 그러나 루이스는 그 결계를 원형의 구로 압축했다.

“……자, 보아라. 같은 마나도 형체와 성질을 달리하는 것. 마녀의 응용이란 이런 것이다.”

눈의 오페라는 원래 루인성 전체를 감싸고도 남았어야 할 거대한 결계지만 그 힘은 루이스의 검지 앞에서 작은 점이 될 때까지 한계까지 응축했다.

너무나 초라한 창백한 푸른 점.

루이스의 공격은 지구만한 크기의 마나를 탁구공 크기로 축소시킨 듯 보였다.

‘저게 마나 공명을 막을 방법이라고?’

이렇게 작은 형태로 축소시킨다면 대체 어떤 이점이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루이스의 공격은 신유성조차 이유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이건 수백 수천 년을 살아온 마녀와 인간이 가진 경험의 차이.

“얼어붙은 네 모습이 보고 싶구나. 그래도 걱정하지 말거라 다시 눈을 떴을 땐 괴로운 기억은 모두 잊게 될 테니.”

루이스는 검지와 엄지를 맞대어 푸르른 점을 으스러트렸다.

점의 형태로 한계까지 응축시킨 눈의 오페라에 냉기를 마치 수류탄처럼 폭발시킨 것이다.

퍼어엉!

루이스의 손에서 시작된 푸른 폭발은 닿는 모든 물체를 얼어붙게 만들며 루인성 전체로 확산되었다.

“아-!”

그 물결에 손이 닿은 로렐라이가 탄식을 뱉었다. 로렐라이가 폭발을 인지한 그 순간 팔의 절반 이상은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이건…….”

루이스의 방식이 당혹스러운 건 신유성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신유성에겐 마나를 사용한 기술에 대해 많은 대비책이 있었다.

창룡승천파를 사용해 원거리에서 받아치는 방법도 있었으며 파장을 공명시켜 기술의 발동 자체를 무효화 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루이스가 사용한 기술에는 파훼법이 없었다. 루이스는 신유성이 마나의 파장을 읽을 수 없도록 한계에 가깝게 응축시켰다.

마나란 그렇다.

거대한 폭풍의 움직임은 예측 할 수 있다 하여도 작은 구슬에 담긴 폭풍의 움직임은 읽을 수 없다.

신유성에게 허용된 시간은 루이스가 점을 깨트리며 냉기폭발이 형성된 그 찰나의 순간뿐.

신유성은 초월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며 얼음폭발의 파장을 읽어냈다. 감각을 평소의 몇 배로 가속시키며 시간이 느려진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늦었다.’

마나 공명으로 기술을 파훼시킨다는 건 정보를 이해하고 재해석한다는 것. 그러나 루이스가 터트린 [눈의 오페라]에 담긴 엄청난 정보량은 거대한 책과 같았다.

아무리 감각을 가속해도 이렇게 방대한 정보를 찰나의 순간 동안 이해 할 수 있을까?

루이스는 아델라의 기억을 통해 신유성의 약점을 읽어냈다. 무적 같았던 마나 공명을 간단히 파훼해낸 것이다.

쩍, 쩌적-!

신유성은 손끝이 얼어붙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자신이 아니라면 누가 아델라를 구할 수 있을까? 힘들게 용기를 낸 아델라는 또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끝나지 않는 겨울을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생각을 가속해서 더 많은 파장을 읽어 내는 거야, 더 빠르게!’

신유성은 더욱 사고를 가속시켰다.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속도는 한참 전에 뛰어넘었다. 지금 느껴지는 건 뇌에서 이어진 전깃줄이 스파크를 튀기며 끊어지는 아찔한 감각.

자신이 힘을 갈고 닦은 건, 권왕에게 선택 받은 건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단순히 강해지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구한다면 그보다 큰 의미는 없었다.

‘더, 더, 빠르게!’

손끝에서 퍼진 얼음은 이제 손가락을 뒤덮었지만 신유성은 머릿속으로 ‘빠르게’라는 단어만을 되새겼다.

어서 빨리 이 마나를 읽어내자, 변환시키자, 그렇게 아델라를 구해내자.

그러나 몸을 타고 흘러들어는 루이스의 한기는 너무 섬뜩했다. 이건 단순한 추위가 아닌 절망의 감각이었다.

‘아델라는 5살의 나이로 이 추위를…… 혼자 겪어낸 건가.

신유성의 숨이 가빠왔다. 흐릿해지는 시야에서 아델라의 모습이 선명했다.

턱-

언제나와 같은 부실에서 악몽으로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아델라의 모습.

[당신……이었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내 담담하게 정신을 차리는 아델라의 모습을 보며 신유성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델라는 대체 얼마나 이 악몽을 반복했을까.

[……인정하기 싫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5살의 나이에서 지금이 되기까지 좀처럼 담담해질 수 없는 공포 속에서 다시금 소중한 사람을 보고 싶은 외로움 속에서 얼마나 많이 자신을 죽여야 했을까?

[하지만 멈추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야…….]

어떻게 그럼에도 용기를 냈을까?

신유성은 그렇기에 처음부터 불가능한 계산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용기를 내 과거를 마주한 건 아델라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더, 조금만, 더…….’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었다.

신유성의 정신이 흐릿해졌다.

사고를 가속하던 뇌가 한순간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며 타들어가는 고통에서 해방됐다. 사고를 잃어버린 몸은 냉기에 잠식되는 끔찍한 기분밖에 남지 않았다.

냉기로 둔해진 정신이 돌아올 수 없는 심해 속으로 천천히 빠져 들어가는 그 순간.

“포기하직…… 마세요-!”

로렐라이가 소리쳤다.

로렐라이는 몸의 절반이 얼어붙은 와중에도 신유성을 깨우기 위해 애썼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공주를 구하는 게, 왕자님의…… 역할이잖아요.”

비록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닌 아델라였지만 로렐라이는 신유성을 응원했다.

“당신은 분명…….”

로렐라이는 말을 끝내지 못한 채 차가운 얼음 동상이 되어버렸다. 비록 신유성의 공주는 되지 못했지만 로렐라이는 신유성이 동화처럼 모두를 구원할 왕자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았다.

‘난-!’

정신을 차린 신유성은 다시 손을 뻗었다. 맑아진 정신 속에서 다시 감각을 일깨우자 주변은 얼음성이 아닌 언젠가 보았던 황금의 땅이 되어 있었다.

시계탑.

부서지는 대지.

그 위에 세워진 건 시간의 여신 크로노아의 신전.

[인간을 위해 또 규칙을 어기다니……. 어리석은 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했건만 여신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신유성의 옆에 형체를 드러낸 크로노아는 작게 읊조렸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군요.]

자신의 계약자인 가여운 로렐라이를 위해서일까? 아니면 신유성의 근성에 감동한 걸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이번만입니다.]

시간의 여신은 계약을 어기고 시계추를 흔들었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지만 시간을 완전히 멈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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