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52화 (351/434)

제352화

적은 인구수와 작은 영토.

그럼에도 너무나 잦은 빈도로 출몰하는 던전과 포탈의 위험으로 시민들은 지쳐 있었다.

곡식을 재배해야 할 농지에서는 사람보다 거대한 메뚜기가 병충해를 일으키고, 도심에 나타난 괴수들이 건물을 파괴하는 일이 빈번했다.

지금은 헌터를 양성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교육을 시작해 아카데미에 이르기까지 완성된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건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으로 쓰인 역사였다.

사회의 규칙은 이미 몬스터라는 힘 앞에서 무너졌다.

설령 총기를 들었다 하여도 2급 괴수를 상대로 목숨을 부지하지 힘들었고, 3급은 시티가드와 군대가 아니면 퇴치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드넓은 창공은 괴조들이 날아다녔고 해상선이 지나다니던 메트로 시티의 광활한 바다는 6급 보스 해왕에게 빼앗겨버렸다.

평온한 일상을 되찾기 위한 인류의 갈망은 너무나 간절했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류는 여전히 희망을 가진 채, 세상을 구원할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며 생존과 번영을 위한 싸움을 이어갔다.

인류에게 내려진 축복이라는 ‘특성’의 힘을 갈고 닦으며 던전을 공략하고 도심지에 출몰한 몬스터와 싸워나갔다.

그러나 난세에는 영웅이 태어나기 마련.

[나의 수련은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함이다.]

영웅은 폭포를 맞으며 상념을 지웠고, 어제의 자신보다 강해지기를 소원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나무를 부수던 손이 바위를 부수고 헌터조차 공략을 포기한 무신산의 괴수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릴 때마다 영웅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가?]

답은 명확했다. 던전과 몬스터의 위험에서 인류를 구하고 보스에게 빼앗긴 도시를 되찾기 위한 해답은 언제나 강력한 힘이었다.

그건 영웅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진리이자 법칙.

영웅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했다.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수련에도 만족은 없었다. 매일 한계를 맛보았고, 매 순간 자신을 뛰어넘었다.

꽃이 피는 푸릇한 봄이 시작되고, 햇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에도, 단풍이 지는 가을에도, 무신산 전체가 하얗게 물든 겨울에도 영웅의 수련은 계속됐다.

1년이 지나 이전의 자신이 무색하도록 엄청난 성장을 했음에도 영웅은 만족하지 않았다.

3년이 지나 무신산의 주인이라 불리던 5급 보스 산군(山君)을 단신으로 처치했음에도 영웅은 만족하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영웅의 수련은 계속됐다.

계속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는 수련 속에서 영웅은 외로움도 지루함도 느낄 수 없었다.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삶은 매일이 새로웠다.

영웅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가 언제나 모자라다고 느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하는 날은 없었다.

그렇게 10년.

영웅은 자신의 변화를 자각했다.

손날은 거대한 바위를 두부처럼 잘랐으며 애써 상념을 지우지 않아도 예리한 감각은 전투에서 모든 변수를 잡아냈다.

전투에 돌입하는 영웅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항상 이유가 있었다. 숨을 내뱉는 행동마저도 승리를 위한 극의가 담겨 있었다.

[나의 꼴이 우습구나. 이토록 강해졌음에도 아직 세상의 무엇 하나 바꾼 게 없으니. 이건 무엇을 위한 힘인가?]

이제 남은 건 처음 가졌던 질문에 해답을 찾는 일. 길게 심호흡한 영웅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건 변화를 위해 성장을 위해 셀 수 없이 휘둘렀던 주먹이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결심이다.]

결심하지 않는다면 무엇도 벌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위험도 없이 아무런 시련도 없이 미온하게 죽어갈 뿐이다.

홀로 무신산에 올라선 지 10년. 영웅은 해답을 찾았고, 그날 영웅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산했다.

[……혼란한 세상이군.]

도심에서 건물을 갉아먹던 거대한 5급 괴수를 일격에 쓰러트렸고, 헌터들의 묘라 불리던 메트로시티의 바다에 단신으로 뛰어들어 맨손으로 해왕의 몸을 찢어버렸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영웅의 수련은 매 순간 한계를 뛰어넘는 극한의 반복이었지만, 영웅의 전투는 너무나 단순했다.

그 어떤 강적도 영웅의 단련된 주먹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그 뒤는 새로이 얻은 ‘권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여느 때처럼 계속 나아갔을 뿐이다.

역사상 최초로 8급의 경지에 올랐다며 칭송을 받았고, 신뢰 할 수 있는 동료들을 얻어 탑의 60층도 공략했다. 영웅은 정말 세상을 구원했다. 전설의 헌터라는 행적을 남겼다.

고오오-

신유성과 로렐라이는 지금 그런 영웅을, 전설을 대면하고 있었다. 그저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기세에 압도당했다.

‘……아무리 7급 보스라 하여도 감히 스승님의 전투력을 구현할 수는 없어.’

신유성의 이성은 냉정한 판단을 추구했지만 자신의 스승을 마주한 순간 내면에서 새어 나오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늦었지만 술식의 종류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두려움에는…… 형태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루이스가 별의 길에 새겨둔 술식은 도전자의 기억과 상상력에 의존하죠.”

로렐라이는 알에서 거미가 부화한 순간을 떠올렸다. 루이스의 술식은 아무런 형태도 없는 알이었지만 로렐라이가 털이 숭숭 돋아난 거미의 다리를 떠올리고, 붉은빛을 뿜어내는 거미의 눈을 떠올린 순간 깨어났다. 로렐라이의 상상력으로 말미암아 형체를 가진 것이다.

“나의 기억과 상상력?”

“네. 분신체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대상자가 직접 본 기억. 그러니까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합니다. 당신이 모르는 범주의 행동은 할 수 없겠죠.”

아직 유원학의 분신체가 멈춰 있는 지금. 신유성은 로렐라이의 힌트를 토대로 다시 유원학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스승님의 모습…….”

로렐라이의 말처럼 유원학은 전투에 임하기 전 취하고 있는 행동마저도 언젠가 신유성이 본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기억을 더듬는다면 분명 힌트를 얻을 수 있겠죠. 저는 그런 당신의 백업을…….”

말을 잇던 로렐라이는 서늘한 감각에 몸을 움츠렸다. 화아악! 자신의 볼을 향해 바람이 불어왔다.

마음 같아선 로렐라이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려 위압감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늦었다.’

하지만 감히 정체를 확인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지금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건 죽음이었다.

“Χρόνοα.”

로렐라이는 시간의 여신 크로노아의 진명을 읊조렸다. 로렐라이의 몸에서 번져나가는 여신의 빛은 세상을 멈추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멈추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일반인의 눈에는 정지된 듯 보이지만 크로노아의 힘은 사실은 ‘느리게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을 만분의 1까지 쪼개버린다면 인지는 예지의 경지로 넘어간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로렐라이라 하여도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령 분신체라 하여도 유원학과 로렐라이는 너무 격의 차이가 났다.

‘절대 피할 수 없어.’

화아아악-!

유원학의 공격은 너무나 빨랐으며 로렐라이의 ‘인지’는 너무 늦었다. 유원학의 주먹은 이미 그녀에게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시간을 아무리 잘게 쪼개도 이건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공격을 인지한 로렐라이가 몸을 움직여도 피할 수 없는 느릿한 죽음이었다.

‘피한다는 선택지는 없어, 이건 막아야 해!’

다행인 건 느려진 세상에선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로렐라이는 최악의 상황에서 차선을 택했다.

자신의 마나를 최대한 배리어로 사용한다면 이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사아아!

로렐라이가 만들어낸 황금빛 배리어와 유원학의 주먹이 닿았다. 마나를 얇게 압축시킨 로렐라이의 배리어는 6급의 공격도 막아내는 엄청난 방어막을 자랑했다.

‘단 한 번만 버텨낸다면. 그 뒤는 충분히…….’

쿠웅!

황금빛 배리어와 영웅이라 불린 남자의 주먹이 충돌했다. 고개를 돌린 로렐라이는 쿠킹호일처럼 간단히 일그러지는 배리어를 보며 절망했다.

배리어조차 간단하게 일그러트리는 저 주먹에 닿는다면 자신의 몸은 어떻게 될까?

버틸 수 없다.

아니 살 수 없다.

지금 로렐라이를 감싸는 감정은 죽음의 공포였다.

‘막을 수 없어, 절대 피하지도 못해. 이건…….’

분신체라 하여도 지금 로렐라이를 노리는 건 전설의 헌터. 로렐라이는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진정한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로렐라이가 배리어가 벌어준 잠깐의 찰나가 기회를 만들었다.

“로렐라이!”

유원학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모든 힘을 속도로 전환한 신유성은 로렐라이를 껴안았다.

가까스로 공격을 회피한 로렐라이에게 느껴진 건 바람이 볼을 스치고, 거대한 힘이 등을 지나치는 아찔한 감각.

쐐액- 쿠우웅!

권왕이 내지른 주먹은 묵직한 충격파를 만들어 로렐라이가 있던 자리를 깔끔하게 치워버렸다.

거대한 고목도 단단한 바위도 무엇도 남지 않았다.

충격파가 지나간 자리는 거대한 블랙홀에 삼켜진 듯 동그란 원이 뚫려 있었다.

저 주먹이 몸에 닿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 충격파에 휘말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흐윽, 헉, 흐윽…….”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경험한 로렐라이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로렐라이의 상태를 수습할 새도 없이 신유성은 다급하게 몸을 틀었다.

‘다시 온다.’

전투의 기본은 교환이다.

무언가를 취했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자신보다 강한 강자와의 전투에서 로렐라이의 목숨을 취했다면 신유성은 대가로 다른 무언가를 내놓아야 했다.

그리고 이걸 신유성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다름 아닌 권왕 유원학이었다.

“…….”

분신체라 하여도 다를 건 없었다. 유원학은 자신에게 등을 보인 상대를 용서하지 않았다.

투신류 수라권격(修羅拳擊)

유원학이 앞으로 내지른 주먹이 정권은 주변을 도려내는 거대한 풍압을 만들었다. 신유성은 물론 그 뒤에 서 있는 로렐라이를 함께 노린 일격이었다.

신유성에게 다시 선택의 순간이 닥쳐왔다.

하지만 신유성은 분신체가 이토록 로렐라이를 끈질기게 노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로렐라이의 존재는 스승님을 이길 수 있는, 내게 남은 유일한 변수니까.’

그렇기에 신유성은 아집이 아닌 차가운 이성으로 유원학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선택지를 택했다.

유원학은 신유성에게 단 한 번도 전력을 보인 적이 없지만 신유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설령 분신체라 하여도 자신은 절대로 혼자 유원학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정면승부다.’

투신류 5장 파류공명(波流共鳴)

신유성의 손에서 푸른빛의 마나가 잔재를 남기며 유성처럼 꼬리를 늘어트렸다.

투신권격이 만들어낸 칼날처럼 날카로운 풍압은 손을 도려낼 듯 위협적이었지만 신유성의 손은 그 풍압을 막아섰다.

이전의 자신이라면 분신체라 하여도 그토록 경외하던 스승의 공격을 감히 정면에 막겠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위이잉!

거대한 칼날이 돌아가는 듯 풍압이 만들어낸 엄청난 굉음 속에서 신유성은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 저는 당신의 가르침대로 성장했고.”

자신이 이토록 강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스승인 유원학 덕분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킬 힘을 얻었습니다.”

미처 풍압 속에서 공명시키지 못한 일부의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자신의 한쪽 팔을 부러트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신유성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스승의 일격을 막아내는데 겨우 이 정도 피해로 그쳤다면 싼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뚝- 뚝-

걸레짝이 된 한쪽 팔에서 피가 떨어짐에도 신유성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신유성을 보며 씨익- 마주 웃어주는 유원학의 분신체.

“그리고 전 혼자가 아니니까요.”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떨친 신유성이 자세를 취하자 신유성의 양손에선 시간의 여신 크로노아의 징표인 황금빛 마나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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