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8화
입구가 열리고 엘리자가 마주하게 된 건 동굴 안이 아닌 새하얀 평야였다.
세상은 하늘에서 내린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땅에는 오직 단 하나의 바위와 그곳에 앉아 날개를 쉬고 있는 북극 흰 올빼미만이 있었다.
“일행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올빼미가 말한다고 해도 신기할 건 없었다. 마녀가 패밀리어를 부리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이 동굴은 처음부터 형체가 없는 공간. 하지만 무엇도 아니기에 무엇도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처럼 웃음 짓는 올빼미의 모습에 엘리자는 레이피어를 겨누었다.
“루이스의 사역마……. 네놈이 우리의 적인가?”
하지만 심안을 통해 올빼미의 능력을 알아챈 쇼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올빼미의 마나 양으로만 보면 그저 단순한 잡무용 패밀리어였다. 마나의 양으로만 따지자면 2급 괴수보다도 적었다.
“아뇨, 저는 안내자입니다. 길을 열 뿐 당신들에게는 어떤 위해도 가할 힘이 없습니다.”
“……길? 수수께끼는 됐으니 쉽게 말하도록 해.”
참지 못한 엘리자는 마나를 뿜어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올빼미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길. 당신들은 결계를 부수러 오신 것이 아닙니까?”
날개를 쉬던 올빼미는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얀 날개가 푸드덕 소리를 내자 깃털이 사방으로 휘날리며 올빼미는 하얀 머리카락의 소년으로 변했다.
“수수께끼 같은 게 아닙니다. 루이스 님은 수수께끼를 좋아하지 않으신답니다.”
루이스의 패밀리어인 하얀 머리칼의 소년은 침입자에 불과한 두 헌터를 보며 웃었다.
“당신들은 달의 길을 택했습니다. 친절히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까? 가장 뛰어난 자…… 달의 길을 택하라. 일행분께선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장치를 아티팩트로 예상하셨지만 그건 틀렸습니다.”
소년은 안내자로서 설명했다.
“이 공간은 당신들이 걸어야 할 길이자 시련 그 자체입니다. 물론 결계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이지요.”
이 공간이 무엇인지, 당신들이 걸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물론 그 길의 끝에 있는 건, 루이스님이 새기신 문자 그대로…… 저희들의 주인. 루이스 님이 만나신 가장 뛰어난 자.”
안내자가 바위에 손을 올렸다.
“당신들은 달의 길을 통해 그를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화아악!
소년의 몸은 검은 물결이 되어 승천했고 일순간 어둑해진 밤하늘에선 아름다운 달이 빛났다.
이상향(理想鄕).
푸른 밤바다에는 황금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조용한 적막 속에 남아 있는 건 처음과 같은 단 하나의 바위.
다른 게 있다면 첫 번째는 변화한 풍경일 것이고, 두 번째는 바위에 앉아 있는 게 올빼미가 아닌 검은색 보호구를 입은 기사라는 점이었다.
“루이스가 만난……. 가장 뛰어난 자?”
쇼이치는 의문을 표했고, 눈앞의 기사가 누구인지 알아챈 엘리자는 탄식하듯 말을 뱉었다.
“……마, 마녀들을 쓰러트린 게 누구인지 모르십니까?”
마녀에 관해 조사를 했다면 탑의 기록에서 몇 번이고 본 이름을 어떻게 잊을까?
인간들이 불리했던 전황 속에서 그 기사는 마녀와 마족을 비롯한 제국의 적을 단신의 몸으로 베어내어 승리를 쟁취했다.
“탑의 기록을 통해 추정되는 강함은 7급…….”
제국 최고의 기사이자 신성왕의 제자인 그의 상징은 검은색 갑옷. 제국의 국민들은 검은색 갑옷을 입고 마족 원정에 나서는 그를 보며 입을 모아 이렇게 칭송했다.
“멸악(滅惡)의 기사.”
물론 바위에 앉아 있는 건 진짜 멸악의 기사는 아니었다. 루이스가 결계로 구현해낸 아류작일 뿐이다. 그러니 이쪽에서 쓰러트리기만 하면 결계는 술식이 파괴되어 곧바로 해제된다.
덜컹-
멸악의 기사가 철갑을 입은 몸을 일으켰다. 밤바다를 감싼 황금빛 물결은 신성왕이 타계했다는 증거이며 멸악의 기사가 가장 강했던 전성기라는 의미였다.
“모든 게 미지수군.”
긴장한 쇼이치가 읊조렸다.
7급의 아류작은 얼마나 강할까?
6급 정도의 전투력이라면 둘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멸악의 기사가 검을 꺼낸 순간 엘리자는 느끼고 말았다.
‘저건…… 위험하다.’
사아아-
기사의 검은 루이스의 마법으로 냉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건 원본에는 없는 능력이었으며 루이스가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는 증거였다.
‘바보 같은 협회 녀석들!’
루이스는 진화했다.
지금의 루이스는 6급이 아니라, 어쩌면 전성기보다 강했다.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이려면 멸악의 기사가 힘을 발휘하기 전에 먼저 선공을 해야 했다.
“지금입니다!”
“좋아 협공이다!”
엘리자가 직선으로 뻗은 레이피어는 은빛의 꼬리를 만들며 유성처럼 쇄도했고 쇼이치의 검격은 멸악의 기사가 가장 막기 힘든 사각을 파고들었다.
쐐애액-!
서걱!
이건 찰나의 순간 두 헌터가 만들어낸 기가 막힌 협공.
퍼억-!
레이피어가 갑옷을 뚫어 몸에서 피가 튀기고 쇼이치의 칼이 두툼한 몸통을 파고들었지만 멸악의 기사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에 레이피어와 칼이 꽂힌 채로 거대한 검을 휘둘러 반월을 그렸다.
부웅-!
“큿!”
“으윽!”
엄청난 반응속도로 물러선 엘리자와 쇼이치는 몸통이 두 동강 나는 건 피했지만 문제는 검에 깃든 루이스의 냉기에 있었다.
검격과 함께 튄 얼음 조각은 피부에 닿자마자 얼어붙기 시작했다. 마치 몸 안에 스며든 독처럼 빠르게 반응했다.
하필이면 다리 전체가 얼어붙은 엘리자의 모습에 쇼이치는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엘리자!”
루이스의 냉기는 순식간에 엘리자를 얼음 동상으로 만들었다. 쇼이치는 저항을 위해 마나를 불어 넣었지만 다리에서 시작되어 스멀스멀 올라온 냉기는 쇼이치의 몸마저도 얼어붙게 만들었다.
철썩!
거친 파도 소리와 함께 썰물처럼 아름다운 밤바다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달이 지고 하늘이 지고 처음처럼 눈보라가 몰아치는 세상에서 소년은 바위에 앉아 읊조렸다.
“달의 길을 통과하는 데 실패하셨군요. 두 분 모두 몸은 얼어붙었어도 제 목소리는 들리시죠? 후훗, 몸은 움직일 수 없음에도 정신은 온전하다…… 루이스 님의 냉기가 참으로 잔인한 점이죠.”
올빼미의 모습으로 돌아간 소년은 얼음 동상이 된 엘리자의 머리에 앉아 아쉬움을 토로했다.
“달의 길은 루이스 님이 만드신 걸작이랍니다. 아덴……. 그 은발의 괴물에 대비해서 모처럼 준비하신 시련이지요……. 하지만 이번 침략자들은 너무 약하군요.”
자신의 주인 루이스는 이전보다 더욱 준비를 견고히 다지고 강해졌건만 도전자들은 이전에 들이닥친 아덴과 비교해 너무나 약해진 상황이었다.
“가장 뛰어난 자를 모집한 달의 길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다른 쪽도 마찬가지겠죠.”
정작 대장이 이 꼴인데 다른 쪽 길이라고 엄청난 실력자가 있을까? 올빼미로 변한 패밀리어는 아델라의 머리에 누워 날개를 쉰 채 늘어지게 하품했다.
“죽기 위해 제 발로 찾아오다니 어리석은 인간들……. 루이스 님이 진정으로 현신하실 날도 머지않았군요.”
* * *
그녀는 수정구를 통해 성장한 아델라를 은발과 붉은 눈을 처음 본 순간 그만 전율하고 말았다.
“……아아, 늦지 않았구나.”
루이스는 수정구 속 아델라의 모습을 바라보며 창백한 두 손을 모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루이스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린 열매를 눈앞에 두고 봉인석에 갇힌 순간을 떠올렸다.
[이렇게…… 봉인될 수는 없어어어억-!]
루이스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헌터들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다른 보스들보다 고차원의 지능을 가진 그녀는 이 세상에 공포와 지배를 하기 위해선 헌터들에게서 몸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정체를 숨기고 인간들의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선 겨울의 마녀 루이스의 몸을 버려야 한다는 것.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때부터 벌인 루이스의 행동은 모두 계획의 일부였다. 그녀는 몸을 숨긴 채 자신의 그릇을 물색했고 오랜 시간 끝에 어린 아델라를 보게 되었다.
겨울의 마녀인 루이스가 아델라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 아델라는 냉기에 대한 적성이 뛰어났고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붉은 눈은 마치 ‘마녀’로 선택받기 전 자신의 모습 같았다.
루이스에게 아델라는 어떤 그릇보다 훌륭했으며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씨앗이었다.
“나의 그릇.”
그렇기에 루이스는 볼테라에 요새와 같은 결계를 펼치고 인간들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가고, 부모님까지 잃은 아델라는 외로움에 눈물을 훔쳤지만 루이스는 전율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델라는 절망과 외로움으로 정신과 자아를 잃어 갔고 루이스가 그토록 원하던 단 하나의 열매처럼 농익기 시작했다.
이제 루이스는 손을 뻗기만 하면 그 열매를 얻을 수 있었다. 농익은 열매를 입에 넣고 삼키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걸까.
루이스의 계획은 한 존재로 인해 엉망이 됐다.
[……너무 늦고 말았군.]
전설의 헌터이자 아델라의 조부인 은빛 바람 아덴.
[나는 알고 있다. 너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라는 걸, 오히려 고등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너의 욕심으로…… 나의 무엇보다 소중한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지.]
아덴의 그 말을 끝으로 은빛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모든 게 끝이었다. 환한 빛과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른 채 루이스는 봉인석에 갇히고 말았다.
자신에게 딱 맞는 그릇을.
그 농익은 열매를 단 한 걸음 앞두고 놓치고 만 것이다.
스르륵-
루이스는 수정구 속 아델라의 모습이 보물이라도 되는 듯 창백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그리곤 수정구 가까이 얼굴을 대어 아이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처럼 평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번에는 절대로…… 너를 놓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