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7화
거대한 얼음 동굴.
마치 오색의 수정처럼 아름다운 빛 속에서 아델라는 오히려 공포를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숲이었던 장소가…….”
신유성과 아델라는 알이었던 벨벳을 부화시키기 위해 루인성을 가본 적이 있었다. 루인성 주변의 숲은 봉인석의 영향인지 계절에 비해 서늘함을 품곤 있었지만 동물과 나무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이 풍경은 뭐란 말인가?
루이스의 얼음 동굴은 자신의 성에 침입하려는 침략자들을 상대로 마련해둔 미로 같았다.
“이 동굴. 겉보기엔 아름답지만 오직 얼음과 수정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방향 감각을 상실하기 딱 좋아. 게다가 결계 때문에 투시도 통하지 않는군.”
게다가 심안을 가진 쇼이치조차 구조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루이스의 결계는 한층 진화했다.
“이건 시작부터 불리한 공략이군요. 루이스는 완벽한 성을 갖추었고…… 저희는 어떤 트랩이 있을지 모르는 미로를 맨몸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엘리자의 말처럼 이 얼음 동굴을 통과하는 건 루이스의 의도대로 흐를 뿐이었다. 얼음 동굴의 중심부로 향할수록 빛은 줄어들었고 공간은 거대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얼음 동굴의 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걸어다닌 시간을 계산한다면 벌써 루인성을 도착해야할 거리였지만 동굴은 미지의 아공간처럼 끝이 없었다.
30분.
1시간.
끝없이 동굴을 나아가던 그때.
“……이건 갈림길?”
앞장을 서던 엘리자가 멈춰 섰다.
그녀의 앞에 놓인 건 신전처럼 거대한 공간과 3개의 발판 3개의 입구였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안젤라는 그중에서도 발판 위쪽 얼음에 새겨진 특이한 글자에 시선이 꽂혔다.
“얼음에 수수께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군요.”
안젤라가 골똘히 얼음을 바라보고 있자 로렐라이는 글자에 성큼성큼 다가오며 설명을 시작했다.
“……얼음에 새겨진 글자는 고대어입니다. 루이스가 건너온 차원으로 인식 범위를 설정해서 포켓을 작동시키면 해석이 가능하겠죠.”
이렇게 말은 했지만 로렐라이는 시계탑 아카데미의 서재에 있는 대부분의 지식을 흡수했기에 포켓의 번역 기능은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짧은 문장은 번역 없이도 읽을 수 있지만요.”
로렐라이는 검지를 들어 마나를 불어넣었다. 검지를 벽에 가져다대자 뜨거운 마나는 얼음을 녹이며 문자를 새겨 넣었다.
[가장 뛰어난 자.]
[달의 길을 걸으라.]
[가장 현명한 자.]
[태양의 길을 걸으라.]
[가장 용감한 자.]
[별의 길을 걸으라.]
로렐라이의 번역을 읽은 엘리자는 그제야 입구 앞에 놓인 발판을 보았다. 입구에는 수수께끼 같은 문장처럼 순서대로 달. 태양. 별. 3개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대체…… 쇼이치. 당신의 심안으로도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읽을 수 없습니까?”
“능력을 사용하면 결계의 마나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여. 억지로 색을 덧칠해둔 느낌이야.”
방금 쇼이치는 심안을 사용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뿌연 안개 뿐 얼음 동굴에 가득 찬 루이스의 마나는 쇼이치의 투시를 방해했다. 어쩌면 쇼이치만이 아니었다. 루이스의 결계는 마나를 다루는 헌터라면 천적과 같은 존재.
그러나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신유성에겐 통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간단한 술식입니다.”
자신감 넘치는 신유성의 주장에 쇼이치는 당황했고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간단하다고? 설마 이 결계를 파악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쇼이치는 신유성의 주장에 당혹감을 느꼈다. 루이스의 결계는 탐색형 특성 중에선 몇 없는 S급인 심안조차 통하지 않았다. 그런 결계를 일개 학생이 파악했다는 건 허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탐색형 스킬이 없어 동굴의 구조를 물리적으로 파악하진 못했지만……. 루이스의 술식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지에 대한 구조는 파악을 끝냈습니다. 얼음 동굴은 결계보다는 공간변이 마법에 가까우니까요.”
대부분의 헌터는 이 얼음 동굴을 보며 루인성으로 이어진 길이 바뀌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신유성은 루이스의 얼음 동굴이 처음부터 아공간이라는 사실을 꿰뚫었다.
‘심안으로도 길이 보이지 않은 이유겠지. 겉으로는 이 얼음 동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
사아아-
신유성은 눈을 감았다.
그리곤 천천히 두 손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탐색형 스킬이 없어 투시를 발휘하기엔 아주 짧은 순간이겠지만 단 1초면 충분했다.
서걱!
준비를 끝낸 신유성은 눈을 뜨며 손날로 마나의 흐름을 베었다. 술식을 이루는 선 중 하나를 베어버린 것이다.
“이건 마나 공명…….”
아름다운 얼음 동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주변을 이룬 검은색 아공간의 모습에 쇼이치는 탄식했다.
하지만 주변의 모습이 바뀐 건 아주 잠깐이었다. 얼음 동굴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자 신유성은 설명을 시작했다.
“이대로는 아무리 동굴을 돌아다녀도 루인성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결계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해제가 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쇼이치는 신유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방금의 행동으로 신유성이 무엇을 본 지 알았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왜지? 아무리 루이스라도 이렇게 거대한 공간 변이 결계를 오래 유지할 순 없다. 그랬다간 마나가…….”
쇼이치는 신유성을 인정한 듯 진지한 어투로 물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일개 학생이 아닌 뛰어난 베테랑과 의견을 조율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신유성의 몸에 녹아들어 있는 건 탑의 진실을 본 권왕 유원학의 지식이자 경험이었다.
“첫 번째로 이 결계는 루이스의 마나를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설계에는 마나가 들어갔겠지만 반사 장치를 통해 계속해서 동력을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신유성이 본 결계 내부는 3개의 마나가 물결처럼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끝에 도달한 마나를 다시 중앙으로 이동시키며 결계의 연료로 활용했다.
“분명 결계 내부에는 마나를 활용하기 위한 아티팩트 같은 장치가 있겠죠. 3개 중 하나만 파괴해도 움직임을 멈출 것입니다.”
신유성의 설명을 들은 엘리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안조차 파악하지 못한 결계의 내부를 어떻게 스킬조차 없이 마나의 흐름을 파악했다는 말인가?
그건 인간을 벗어난 경지였지만 쇼이치는 이미 신유성을 신뢰하고 있었다.
“3개라고 확신한 건…… 그 흐름이, 그러니까 마나의 이동이 너의 눈에는 보인다는 건가?”
인간은 전류 센서처럼 미세한 전류를 감지할 수 없듯, 어떤 헌터도 술식이 작동되는 마나의 흐름을 맨눈으로 파악할 순 없다.
공기 중에 함유된 원자의 성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이 신유성에겐 가능했다.
“보입니다. 그것도 명확히.”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방금 잠깐 동안 발생시킨 마나 공명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렇다는 건, 이 입구가 이어진 장소는…….”
엘리자는 다시 입구를 보았다.
이 공간에 놓인 건 3개의 입구와 3개의 발판이었고 이 결계를 이루고 있는 것도 3개의 장치였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결계를 파괴하고 루인성에 도착하려면 누군가 입구의 끝에 도달해야합니다.”
너무나 심플한 신유성의 해답에 아델라는 중앙 입구의 발판에 올라섰다.
드르륵-
아델라가 발판에 올라서자 입구에 새겨진 태양의 문양이 반 바퀴 회전했다.
“반 바퀴라. 입구에 들어가기 위한 인원은 2명인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저는 여기로!”
안젤라는 곧바로 아델라의 발판에 올라섰다. 총원 6명의 공략대 중 3개의 입구를 2명씩 나누면 인원수가 딱 맞았다.
“그럼 2명씩 짝을 맞춰야하니 베테랑과 학생들이 한…….”
6급 헌터인 엘리자는 학생들과 한명씩 짝을 지으려고 했지만 로렐라이의 의견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제, 제 생각에는…… 이렇게 짝을 짓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볼을 붉힌 로렐라이는 언제 움직인 건지 신유성과 함께 발판을 밟기를 강력하게 희망했다.
“뭐, 이해해. 심안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던전이니 나보다 저 쪽이 더 믿음직스럽다는 거겠지.”
쇼이치는 그런 로렐라이의 의도를 잘못 이해했지만 엘리자는 설득되고 있었다.
“……저들이라면 괜찮을 지도 모르겠군요. 어떻게 보면 경험도 저희보다 나은 수준이니까요.”
쇼이치와 엘리자가 발판에 올라서자 달의 문양이 회전했다. 술식이 작동함에 따라 점점 바뀌어가는 마나의 흐름. 로렐라이는 조심스럽게 신유성에게 다가섰다.
언제나 공략 때는 냉철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썼건만 로렐라이는 신유성에게 다가서는 것만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신유성을 본 건 겨우 몇 번의 만남이 전부인데도 로렐라이는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보면 멋진 남자주인공의 모습에 신유성의 얼굴이 겹쳤고 로렐라이가 꿈을 꾸면 언제나 신유성은 나타났다.
비록 어떤 역할인지, 어떤 모습인지는 다르지만 그 사람이 신유성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로렐라이는 가슴이 떨려왔다. 이토록 긴장을 한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신유성은 그런 로렐라이를 곁에서 지켜보더니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겁내지 마.”
신유성의 목소리와 너무나 부드러운 어투는 상상 속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서 로렐라이는 꼭 숨을 참고 말았다.
“내가 지켜줄게.”
로렐라이가 했던 수천, 수만 번의 상상은 단 한 번의 현실을 이기지 못했다. 지금 로렐라이에게는 어떤 꿈도 어떤 소원도 없었다.
“네에, 엣엣…….”
로렐라이는 고고한 시계탑의 오라클이 아닌, 볼을 붉힌 한 명의 소녀가 되어 그저 세차게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