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6화
6급 헌터 심안 쇼이치.
6급 헌터 섬광의 엘리자.
둘은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경험이 적은 아카데미 학생들을 베테랑으로서 인도해주기 위해 리더를 맡게 됐다.
혹여 사전 조사 중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베이스캠프에 공략원들이 대기하는 동안 공략지 주변을 확인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이거,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군. 결계 안에서는 포켓의 전파가 외부와 닿지 않아.”
쇼이치의 말처럼 아공간 장치와 같은 내부 처리 시스템은 작동하지만 외부로 통화를 걸자 포켓은 묵묵부답이었다.
“이건 결국…… 루이스가 인류의 통신망을 인식했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암담한 표정으로 분석하는 엘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쇼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자신이 공략된 이후 깨달았나 봐. 아무리 내부를 고립시켜도 통신망이 멀쩡하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마나를 통해 인류의 전파망에 혼란을 주는 건 7급 보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신기한 건 그 ‘발상’이었다. 어떻게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보스가 인류의 통신과 전파망의 존재를 인식한단 말인가?
그건 루이스가 대부분의 보스가 가지고 있지 않은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엘리자는 먹통이 된 통신망과 더욱 촘촘해진 결계를 재차 확인하며 암담한 듯 한숨을 쉬었다.
“루이스가 갓 봉인에서 깨어나 마나의 총량이 낮아졌다고 한들. 루이스는 인류의 전투 방식을 깨달았고 그에 따른 데이터를 축적하며 성장했습니다. 쇼이치 당신도 정말 이걸 다운그레이드라 생각하고 있습니까?”
“책상에서 서류나 만지는 녀석들이 뭐가 알겠어? 공략에는 마나 농도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모르는 거지.”
쇼이치도 이번만은 협회의 판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나의 총량이 낮아졌다고 6급이라니?
상대는 그 겨울의 마녀다.
“나도 네 말처럼 루이스는 6급과 7급. 그 사이의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있어.”
다행이도 쇼이치는 엘리자에게 동감하고 있었다. 아무리 힘을 잃었어도 도시 전체를 마비시킨 대재앙이었다. 지금이라도 추가적인 지원을 요청하며 공략대를 강화시키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지.”
“무엇입니까?”
“넌 아직 느끼지 못하겠지만…… 베이스캠프에 인원들이 늘어난 순간 결계의 형태가 변모했거든.”
“루이스의 결계가 변화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엘리자는 쇼이치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여긴 루인성과 한참을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특히 베이스캠프는 지금의 조사지보다 더욱 거리가 먼 장소다.
그런데 루이스가 결계를 변형시켰다는 건 단순한 변덕이 아닌 이상 볼테라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 눈에는 미약하지만 마나의 흐름이 보여. 자연물의 마나는 푸른빛으로 비치지만 헌터들의 마나는 대부분 색이 훨씬 짙거나 붉은빛을 띠고 있지.”
쇼이치의 두 눈은 심안(心眼)
사물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 본질을 꿰뚫는 힘이었다. 그렇기에 쇼이치는 알 수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잘 들어. 심안으로 본 볼테라의 풍경은 온통 붉은 빛이다.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모두 루이스의 마나라는 이야기지…….”
쇼이치의 말처럼 결계의 내부에는 한 치도 빠짐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건 결계 내부의 모든 공간이 루이스의 마나로 통제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루이스가…… 침입자를 감시하기 위해 눈을 내리고 있다는 겁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루이스의 지능과 전략은 이전보다 훨씬 높아져 있었다. 루인성의 내부로 가면 얼마나 많은 함정이 숨어 있을지 몰랐다.
“지금이라도 공략을 철회해야 합니다.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 학생들을 사지로 내몰 순 없습니다.”
엘리자의 의견에 너무나 동감함에도 쇼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미 늦었어. 아까 말하지 않았나? 결계의 형태가 변모했다고…….”
지금 쇼이치가 느끼는 공포는 탐색 능력이 높은 헌터의 숙명과 같았다. 가장 먼저 당혹감을 느끼지만 지금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동료들에게 직접 설명해주어야 했다.
“원래 베이스캠프부터 입구까지의 길은 자연물의 마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 눈에는 푸른빛으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지.”
쇼이치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아무리 말재주가 뛰어나도 이 풍경을 입으로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역시 이건 설명보다 직접 보는 게 나으려나.”
결국 쇼이치는 엘리자의 목덜미에 검지를 대며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쇼이치의 상징인 심안의 푸른 불빛은 엘리자의 두 눈으로 옮겨갔다.
화아악!
눈보라로 가려져 있던 엘리자의 시야가 한순간에 탁 트이며 볼테라의 만물이 푸른빛과 붉은빛으로 나누어졌다.
“이, 이건!”
쇼이치의 설명대로라면 자연물인 눈과 볼테라의 길은 푸른빛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하겠지만 볼테라의 9할은 온통 붉은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제 알겠지? 볼테라에 들어선 순간 루이스는 이미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돌아갈 길 같은 건 없어.”
“그럼 루이스가 만든 이 붉은 길을 따라 되돌아가면…….”
하지만 엘리자의 말은 ‘길’이 존재할 때의 이야기였다.
“아니.”
쇼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루이스가 만든 결계의 구조는 단순했지만 여러 가지 마법이 섞여 있었다. 마나를 빼앗는 폭설과 절대로 원하는 장소에 도달할 수 없는 차원 통제 마법.
지금은 루이스의 결계가 덧씌워지며 볼테라의 공간 자체가 바뀌어 있었다.
그건 마치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와 같았다. 아무리 물속을 헤엄치고 헤매어도 인간의 도움이 없는 이상 금붕어는 절대 어항을 나갈 수 없었다.
“그저 미아가 되어 영원히 결계 안을 떠돌 뿐이야.”
쇼이치는 엘리자의 목덜미에서 손을 뗐다. 심안의 능력을 잃고 평소의 시야로 되돌아온 엘리자는 자신의 눈으로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눈.
자신들이 걸어온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아까 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엘리자의 눈에 볼테라의 풍경은 더이상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었다. 엘리자는 지금껏 수많은 공략을 성공한 베테랑이었지만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선택지는…… 두 가지라는 이야기군요.”
이곳의 멤버 전원은 루이스를 공략하거나 볼테라에 남아 영원한 추위에 고통받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진실의 무게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엘리자는 고개를 들어 산의 정상을 보았다. 그곳에 위치한 얼어붙은 루인성은 당당한 위용을 풍기며 서 있었다.
베테랑의 헌터가 공략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녀의 수에 압도당하고 만 것이다.
* * *
겨울의 마녀 루이스가 부활했다는 소식은 이탈리아는 물론 국내에서도 각종 사이트의 1면을 장식하는 대사건이었다.
어딜 가든 신유성과 아델라. 그리고 루이스에 관한 이야기로 뒤덮여 있었다.
“매스컴에선 온통 네 동생에 관한 이야기뿐이야. 1학년에 벌써 이 정도의 파급력이라니…….”
학생회에서 기사를 확인하던 이혁이 감탄을 터트리자 신하윤은 다른 의미로 협회에게 감탄했다.
“나도 봤어. 참 재밌는 이야기지. 마녀의 공략을…… 푸릇푸릇한 학생들에게 맡기다니.”
신하윤은 협회의 판단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수천 명이 넘는 연구원들이 그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내놓은 결과가 마녀의 입장으로 보자면 동화책에 적힌 이야기만 못했다.
“특히 걸작인 부분은 마나를 운운하는 그들의 발표였어. 마녀의 힘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딴 이야기는 안 했을 텐데 말이야.”
신하윤은 특이하고 특별하다.
그런 신하윤의 곁을 항시 보좌한 이혁에게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신하윤은 이렇게 상식을 뛰어넘는 비약을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그녀는 좀처럼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뱉어냈다.
자신과 같은 18살이라고 치부하기엔 신하윤은 끝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은 그게 인간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다 보니, 이혁의 눈에는 신하윤이 수백 년을 산 엘프나 탑의 기록이 새겨진 기계처럼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그럼 하윤이 너는 알고 있다는 거야?”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이혁의 물음에 신하윤은 풋- 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곤 천천히 이혁에게 다가와 귓가에 슬며시 속삭였다.
“……너에게만 알려줄게.”
이혁의 귓불에 신하윤의 숨결이 간질거리듯 닿았다. 신하윤의 행동에 당황한 이혁은 숨을 참았다.
“마녀가 되는 조건은…… 인간이 인간을 초월하는 거야.”
“그건…… 강해져야 한다는 이야기야?”
자신이 느낀 감정과 당혹감을 숨기며 이혁이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묻자. 신하윤은 그것도 방법 중 하나지? 라며 싱긋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초월의 개념은 제각기 다르니까.”
초월적 강함도 방법이지만 신하윤이 말하는 초월이란 어떤 행동과 상황에 국한된 의미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마녀의 힘이란 타고난 힘일 수도 있지만 주어진 힘일 수도 있지. 마나가 없는 인간도 초월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마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야.”
신하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녀의 능력은 선천적일 수도 후천적일 수도 있으며 마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적어도 이혁이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탑의 기록에도 남겨져 있지 않은 정보였다.
“……타고난 마나도 능력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마녀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거야?”
“지금까지 선택받은 건 전부 여자였지만……. ‘초월’을 할 수 있고 재앙에게 선택받기만 한다면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어.”
이혁은 궁금했다.
신하윤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언급되는 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럼 정확히 하윤이 네가 말하는 초월의 의미는 뭐야?”
이혁의 질문에 신하윤은 그녀답지 않게 음- 소리를 내며 장시간 고민했다.
“내가 아는 초월이란 경험이야. 인간이라곤 믿기 힘든 추악한 감정을 통해 마녀가 되기도 하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꽃을 피우기도 하지.”
신하윤은 마녀란 재앙의 꽃이라 말하고 싶었다.
“인류를 초월한 경험은 재앙이 되고 마녀의 능력은 곧 재앙의 형상화야.”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신하윤은 이혁을 향해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말했다.
“원망의 마음은 사령이 되고, 냉혹한 마음은 얼음이 되고, 지독한 열망은 몽환이 되지.”
자신의 착각일까.
“인류를 초월할 정도로 강렬한 마음은 재앙이 되고……. 재앙이 곧 마녀가 된다는 이야기야.”
이혁은 평소보다 말이 빨라진 신하윤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광기를 느꼈다.
“이 정도면 알겠지?”
하지만 이내 차분해진 신하윤의 모습에 이혁은 용기를 내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마녀의 힘이라는 건, 마나가 매개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본질을 파악한 이혁의 질문에 신하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넌 역시 유능하구나.”
그 탓일까, 신하윤은 원래는 감추어두었을 비밀을 한 가지 더 이혁에게 알려주었다.
“협회는 루이스가 영원한 겨울을 통해 시민들에게서 마나를 앗아갔다고 기록했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야.”
신하윤은 이혁에게 비밀을 알려주었다. 마녀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이자 비밀을.
“그 여자가 쓰는 힘의 원천은 부정적인 감정이거든. 인간의 고통이나 절망 말이야.”
그것도 아주 친근하게 신하윤은 루이스에게 ‘그 여자’라는 호칭까지 붙여주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 같아서 이번만은 이혁도 궁금증을 억누르며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