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4화
[볼테라 지역 탈환을 위해 신예들이 나서다.]
[전설의 제자 3인! 합동 공략!]
[심안 쇼이치 “엘리자와 다시 합을 맞추게 되어 기쁘다.” 발언!]
볼테라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최상위 헌터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이탈리아의 전역이 들썩였다.
특히 상위 랭커인 6급 헌터들보다 주목을 받은 건 권왕의 제자인 신유성과 아덴의 손녀인 아델라와 마녀의 제자인 로렐라이가 한 공략대에 모였다는 사실이었다.
화악-!
신유성과 아델라는 푸른빛의 포탈존을 빠져나오자마자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신들의 용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볼테라를 지켜주세요!”
“아델라 님! 힘내세요!”
“공략이 끝날 때까지 당신들의 안전을 기도하겠습니다!”
지금은 루이스의 침공으로 한적해야 할 볼테라의 포탈존은 공략대를 응원하기 위해 몰린 인파로 빈 공간 없이 빼곡했다.
공략대의 리더 격인 엘리자와 쇼이치를 환영하러 온 인원도 이 정도 숫자는 아니었다.
와아아아-!
수많은 사람의 함성 속을 거닐던 아델라는 인파를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음을 멈췄다.
‘응원이라…….’
아델라는 전설의 외손녀였다.
최고의 아카데미로 손꼽히던 가온의 1위를 차지한 기대주이자 이탈리아가 사랑한 신예였다.
그러니 이렇게 많은 인파가 자신을 응원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은 달랐다.
부모님과의 재회.
벨벳과의 생활.
그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들이 아델라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두근두근.
사람들의 함성과 연호 소리에 아델라는 가슴이 뛰었다. 거대한 인파가 합을 맞춘 응원은 포탈존 전체가 진동할 지경이었다.
신유성의 말처럼 아델라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아델라의 용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아델라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 있었다.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아델라는 미소를 지었다.
신유성이 그렇게 강했던 건,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계속 강해질 수 있었다는 건 이런 의미였구나.
감정이란 이런 것이었다.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했던 수많은 인파의 연호 소리는 아델라의 가슴을 뛰게 했고 용기를 북돋았다.
무채색의 세상이 여러 가지 빛깔로 가득했다.
“감정이란……. 이런 거군요.”
발걸음을 멈춰선 아델라의 중얼거림에 수많은 인파는 약속한 듯 연호를 멈추었다.
“아델라?”
신유성이 아델라를 보았다.
수많은 인파도 아델라를 보았다. 이렇게 드넓은 포탈존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주인공이 아델라였다.
“지금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신유성과 인파는 모두 아델라의 변화를 직감했다. 더 이상 아델라는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여제가 아니었다. 말을 꺼내는 아델라는 평소보다 동공이 커진 채 감정을 가라앉히려하고 있었다.
아델라는 변화가 두려운 듯 보였다. 자신마저 놀랄 정도로 빠르게 뛰는 가슴과 뜨거운 온기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아델라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감정은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조용해진 포탈존에 얼음 여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델라의 표정은 더 이상 무표정하지 않았고 목소리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신유성의 자상한 물음에 아델라는 설핏 웃었다. 그 이유에 답하기 위해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자신의 부모님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할까? 아니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라고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가슴이 사무칠 정도로 그 두 사람이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할까?
하지만 생각나는 답변이 아무리 많아도 아델라는 하나를 꼽을 수 없었다.
“감정은 저를 아프게 하고 지치게 하고…… 그립게 하니까요.”
그 슬픔을 버틸 수 없기에 아델라는 기꺼이 다른 감정을 포기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유일한 혈육인 아덴과 재회를 해도, 목표를 성취해도 기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참 공평했다.
회색으로 가득 찬 무채색의 세상 속에선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다. 기쁨을 포기했기에 슬픔에도 무감해질 수 있다.
“그러니까 다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기쁨을 잊는다면 그립지도 않을 테고 그립지가 않다면 슬프지도 않을 테니까요.”
이야기를 듣는 인파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지만 당사자인 아델라는 타인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했다.
“하지만…… 슬프지 않기 위해 세상을 회색빛으로 칠한다면 평생을 알지 못했겠죠.”
오히려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신유성의 손을 자신의 볼에 가져다대어 그 온기를 느끼며 말했다.
“……당신의 손이 얼마나 따뜻한지. 봄의 꽃잎은 얼마나 향기로운지. 그리고…… 벨벳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델라는 미소를 지으며 신유성을 올려다보았다. 평소보다 커다래진 아델라의 두 눈에는 오직 신유성만이 담겨져 있었다.
“물론……. 감정은 저에게 공포를 줍니다. 볼테라를 떠올리면…… 그 추위가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신유성의 손을 볼에서 뗀 아델라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마녀라는 단 하나의 공포 때문에 겁을 먹고 포기하기에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은 저에게 용기를 줍니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게 만들고……. 더 이상은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아델라에게 신유성은 감정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기쁨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런 신유성이 함께 있다면 무서울 게 무엇일까?
“저는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아델라의 솔직한 고백에 신유성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서로의 양손을 꽈악- 깍지를 끼며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아델라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
물론 아델라의 고백이 절대 이성적인 의미를 노린 건 아니었다. 아델라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지는 미지수였다.
“아, 아델라 양이…….”
“권왕의 제자에게 공개석상에서 프로포즈를!”
“이건 특종 중의 특종!”
아니나 다를까 대기 중이던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포탈존에 모인 인파는 신유성과 아델라의 이름을 연호하며 함성을 질렀다.
마치 신유성과 아델라의 관계가 기정사실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 * *
이번 루이스 공략대의 소식은 여러 국가에서 대서특필 될 정도로 대사건 중 하나였다.
덕분에 스크린으로 포탈존의 생중계를 지켜보던 김은아는 아델라의 충격 고백에 뒷골이 당겨왔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공략 전, 갑자기 아델라는 공개고백을 해버렸다.
“아니이-!”
마녀를 공략하러 간 건지 신유성을 공략하러 간 건지 알 수 없는 아델라의 행동에 김은아는 테이블을 치며 쩌렁하게 분노했다.
쾅-!
“가자마자 이러기냐!”
반면 스미레는 아델라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 듯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훌쩍이고 있었다.
“아델라 씨의 이야기 흑, 너무…… 감동적이에요.”
“지금 그게 중요해!? 하루 종일 걱정했더니 공략하러 가서는 갑자기 고백이나 하고!”
이미 신유성에게 이야기를 들은 스미레는 김은아의 반응이 의아했다. 신유성을 아쿠아리움에 데리고 가 먼저 고백을 해버린 건 김은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강제로 입술까지 빼앗았으니 더욱 죄질이 크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미레는 넓은 포용력으로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제가 유성 씨를 사랑하는 만큼, 두 분에게도 유성 씨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스미레가 신유성을 양보하거나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누가 뭐라 해도 가장 먼저 신유성을 좋아했다는 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놀고 있네! 이러다가 아주 셋이서 손잡고 결혼이라도 하지!?”
김은아의 입장에선 나름 강수를 두어 비꼬는 말이었지만 스미레는 오히려 여유롭게 웃어주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은아 씨도 아델라 씨도 평생 볼 수 있겠네요.”
“어……, 으응?”
김은아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스미레의 광기에 차마 웃지 못했다.
* * *
재계의 전설.
신성그룹의 회장 김석한은 [시간이 곧 금이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김석한도 김은아가 속한 가온의 공략대의 소식은 챙겨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 이놈이이익…… 감히 우리 은아를 두고!”
덕분에 신유성을 향한 아델라의 고백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본 김석한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파티원을 향한 신유성의 호의는 의도치 않게도 여럿 피해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 * *
천림산(天林山)의 정상.
산소조차 희박해 어지간한 헌터도 발을 들이기 어렵다는 이곳을 유원학의 동료들은 제집처럼 찾아왔다.
“오늘은 아덴 네 녀석이냐?”
며칠 전에는 마녀 아리스가 찾아와 로렐라이가 어쩌니 상사병이 어쩌니 한참을 떠들고 간 탓에 유원학은 작업에 차질이 생겼었다.
“구경을 온 건 좋지만 그토록 찾아다니던 하늘고래를 갓 잡은 날이니 방해를 했다간…….”
그러나 유원학의 으름장에도 아덴은 오히려 행복한 듯 웃으며 손을 저었다.
“방해는 무슨! 오늘은 내 손녀와 너의 제자가 부부의 연을 맺은 날이니 하늘고래 정도면 축배를 위한 안주로 딱 알맞겠군!”
유원학은 집채만 한 하늘 고래를 흔한 도축 칼도 없이 손날로 썰며 생각했다.
도대체 유성이 이 녀석은 무엇을 하기에 가는 곳마다 이런 사단을 벌이고 있는 걸까?
벌써 자신의 주변만 하더라도 아리스의 제자인 로렐라이와 아덴의 외손녀인 아델라까지 얽혀 있었다.
무신산을 하산하기 전만 하더라도 뛰어난 실력에서 똘똘한 외모까지 자신을 똑 닮았다고 생각했건만 가는 곳마다 걷잡을 수 없이 일을 벌이는 걸 보면 여자 관계는 자신과 아주 정반대였다.
이래서야 아리스가 찾아와 애꿎은 자신에게 괜히 깽판을 놓을 지경이었다.
‘……유성이 이 녀석.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