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2화
언제부터일까?
이따금 아델라는 같은 꿈을 꾸곤 했다. 물론 그 내용은 참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어린 자신은 새하얀 눈밭 속을 끝없이 걷는다. 꿈이란 녀석은 과장이 심하다. 길가는 거닐어도 사람이 없으며 오두막을 발견해도 그 안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없기에 목소리를 내는 법도 없다. 끔찍한 추위 속에서 그저 걸을 뿐이었다.
꿈이라는 걸 알아도 깰 수 없다.
꿈이지만 그 추위가 생생하다.
다리가 아파도 멈출 수 없으며 무엇 하나 아델라의 생각대로 되는 게 없었다.
포옥포옥-
어린 아델라는 발목까지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걸을 뿐이었다.
결국 추위를 참지 못한 어린 아델라가 곰 인형을 더욱 세게 끌어안자.
“아델라 뭘 찾고 있는 거야?”
유일한 친구 곰 인형이 아델라의 팔을 건드렸다. 늘 반복되는 꿈이었지만 곰 인형이 말을 걸다니 이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설마 엄마 아빠를 찾는 거야? 하지만 이래선 평생 찾을 수 없어.”
우뚝-
곰 인형의 말에 어린 아델라는 발을 멈췄다. 이건 분명 지금까지 꿨던 꿈의 내용이 아니었다.
‘나, 나는…….’
뱉지 못한 목소리가 그저 머릿속에서만 맴돌자 유일한 친구인 곰 인형은 어린 아델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델라. 뭐 하는 거야. 넌 이미 알고 있잖아? 얼른 저길 봐.”
곰 인형의 덕분인지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아델라는 곰 인형이 뭉툭한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았다.
언제 있었는지 모를 거대한 성채는 바로 루인성이었다.
“뭐 하는 거야. 아델라 넌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곰 인형은 루인성을 똑바로 보라며 한숨을 쉬었다.
“설마 잊은 건 아니지? 네 부모님은 저기 루인성에서 차갑게 굳어 있어.”
꿈의 내용이 달라졌다. 이제 아델라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이미 지나버린 현실을 돌이킬 순 없었지만 여긴 꿈이다.
적어도 꿈속에서라면 부모님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결단을 내린 아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표정 했던 얼굴은 이제 분노와 결단으로 바뀐 채 아델라는 걸음을 재촉했다.
“루인성으로 가는 거야?”
아델라는 곰 인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녀가 있는데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다. 이 지독한 꿈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곰 인형은 그런 아델라를 비웃었다.
“거짓말! 아델라! 친구를 속이는 거야? 넌 이미 알고 있잖아. 넌 마녀를 이길 수 없어 넌 겁먹은 꼬마에 불과한걸?”
아델라가 곰 인형의 말을 부정할 새도 없이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이길 수 있어…….”
아델라가 힘겹게 목소리를 내자 곰 인형은 인형 주제에 너무나 풍부한 표정으로 “정말?” 하고 반문했다.
“좋아. 그럼 내가 불러줄게.”
곰 인형의 대답과 함께 끼이익- 소리를 내며 루인성의 대문이 열렸다. 창백한 피부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루이스는 기다렸다는 듯 아델라를 향해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루이스…….”
왜일까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야 하는 게 아닌 걸까? 대체 왜 내 몸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걸까?
“뭐하는 거야 아델라. 대체 그 몸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곰 인형이 답답하다는 듯 또 긴 한숨을 내쉬자 아델라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부모님을 잃었던 그날처럼.
루이스를 앞둔 아델라는 5살의 나이 그대로였다.
“아, 안 돼……. 나느은……”
어린 아델라의 머리를 향해 루이스가 창백한 손을 뻗어왔다. 아델라는 그 손아귀에서 도망치려 발버둥 쳤다.
툭-
그러나 결국 루이스의 손아귀에 잡혀버린 어린 아델라.
“역시 아델라. 넌 전혀 성장하지 않았구나.”
겨울의 마녀 앞에서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한 채 아델라의 몸은 점점 얼음이 되어갔다.
* * *
“저리 가-!”
소파에 잠들어 있던 아델라는 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신유성의 손을 뿌리쳤다.
“하악- 흑, 으윽…….”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뱉던 아델라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천천히 숨을 골랐다.
“당신……. 이었군요…….”
“악몽을 꾼 거야?”
도대체 어떤 악몽을 꾸었기에 그 아델라가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걸까.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야.”
아델라는 두통을 느끼는 듯 이마를 짚더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늘상 있는 일이니까요……. 당신에게 걱정을 끼쳤군요.”
왜 악몽을 꾸는지, 무엇에 관한 악몽인지 신유성은 묻지 않았다.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신유성은 아델라의 눈물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아델라가 이렇게까지 흐트러질 악몽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신유성은 아델라에게 오늘의 사건을 말해주어야 했다.
“……오늘 이탈리아에서 우리 파티에게 연락이 왔어. 정확히는 볼테라 지역이지.”
“……볼테라에서 연락이?”
의아해 하는 아델라에게 신유성은 짧은 한마디로 모든 설명을 끝마쳤다.
“루이스가 깨어났어.”
볼테라의 악몽.
겨울의 마녀 루이스.
그녀는 전설의 헌터인 아덴의 봉인에도 불구하고 결계를 깨트리고 봉인을 해제했다.
“벌써 2명의 피해자가 생겼어. 힘을 되찾지 못해 지금은 6급 정도지만. 시간을 준다면 7급으로 난이도가 격상할거야.”
신유성은 아델라의 옆에 앉았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아도 교감을 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신유성은 아델라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선명했다.
“볼테라에서 요청한 인원은 2명이야.”
아델라의 옆에 앉은 신유성은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자신과 달리 아델라의 손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처음에는 아델라 널 데려가지 않으려고 했어. 위험할 테니까.”
움찔.
신유성은 맞잡은 손으로 아델라가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아델라가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저 신유성은 파티장으로서 무엇이 더 중요할지 생각했다.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네가 위험할 테니까. 차라리 다른 파티원과 함께 가는 게 성공률이 높을 거라 생각했거든.”
아델라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신유성의 판단은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아델라의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하지만 역시 결단은 네가 내리는 쪽이 옳다고 생각했어.”
아델라는 악몽의 기억이 겹치자 빠르게 뛰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이건 명백한 공포였다. 아델라는 지금 루이스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볼테라의 기억이 다시금 고개를 내민 것이다.
“저는…….”
어쩌면 꿈의 내용은 자신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5살의 자신에서 전혀 정신이 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의 꿈은 자신의 내면이 속삭인 게 아닐까. 혼자선 절대 극복 할 수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아무리 부정하려 애를 써도 부모님을 앗아간 볼테라의 기억은 아델라의 명백한 트라우마였다.
그럼에도 꿈속의 아델라가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멈추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야…….”
벨벳에게도 훌륭한 엄마가 되지 않을까? 아델라는 자신의 과거조차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겁쟁이 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넌 충분히 성장했어. 더 이상 5살의 네가 아니야.”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감내했을지 아델라의 마음을 알고 있는 신유성은 아델라를 꽈악- 끌어안아 차갑게 식은 몸에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도 함께야.”
혼자라면 춥고 시린 겨울도 몸을 맞대 서로의 온기를 나눠준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파티란 혼자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함께 하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 * *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름다운 수중 도시에서 배에 탄 한 남자가 열심히 노를 저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6급 공략자 중 상당수가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학생들이 상당수인데…….”
7급 헌터인 로쟈는 헌터의 말에 선글라스를 낀 채 고개를 저었다.
“이번 세대는 이야기 다르지. 권왕의 제자 신유성. 전설의 헌터 아덴의 손녀 아델라. 그리고 마녀의 후계자인 오라클 로렐라이까지. 그냥 학생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아까운 이름들이잖아?”
신유성과 아델라는 20층에서 6급을 처리했으며 오라클인 로렐라이도 엄청난 두각을 드러내며 6급 보스를 처리했다.
겨우 학생 때부터 이렇게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걸 보면 청출어람이란 말조차도 이번 세대를 칭하기엔 부족했다.
“아, 물론 누구네 제자는 전설적인 빌런이 되겠지만…….”
“리벨리온 놈들…… 로쟈 님의 힘만 건재했다면 이번 공략도 직접 해내셨을 텐데…….”
“네임리스가 준비한 그 단검. 장난이 아니더라고 이 대도시에서조차 사람들의 마나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야. 적어도 1년은 고생해야겠지.”
네임리스에게 당한 로쟈의 후유증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 이탈리아는 7급 헌터의 부재까지 겹치며 결국 이번처럼 다른 국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거기다 볼테라의 악몽인 겨울의 마녀 루이스까지 부활하며 이탈리아는 최악의 악재가 연달아 터진 셈이었다.
그럼에도 로쟈는 긍정적인 마인드는 어디가지 않는 듯 여유롭게 말했다.
“그래도~ 좋게 생각해~ 젊은 애들이 강해져야 이 험한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겠어?”
전 세계적으로 6급과 7급 헌터의 숫자는 워낙 부족한 탓에 이렇게 타국가에게 손을 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래도…….”
하지만 역시 부하 헌터는 학생들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게 찝찝한 모양이었다.
“걱정 놓으라니까. 내가 직접 봤는데 제법 믿을 만해. 전설들의 제자잖아. 그리고…… 루이스는 이제 갓 봉인석을 빠져나온 상태야. 절대 전성기의 힘을 낼 수 없어.”
로쟈의 말처럼 루이스는 봉인석을 깨트릴 순 있었지만 힘을 회복할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루이스의 능력을 아는 헌터들이 다시 한 번 볼테라의 잘못을 반복할리도 없었다.
“이미 볼테라에 살고 있던 시민들을 전부 대피시켜놨거든.”
사람들의 정신력과 마나를 흡수해 힘을 키우는 루이스에겐 마나를 회복할 원천을 차단당한 셈이었다.
“그 녀석의 공략은 끝났어. 더이상 마녀의 시대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