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41화 (340/434)

제341화

김은아는 지난 며칠간 신유성을 보며 깨달은 게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분석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했지. 하지만 나는 유성이에 대해 한 가지 진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거야.”

김은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이수현과 오빠인 김준혁은 꼴깍 침을 삼켰다.

“아, 아가씨? 진실이라면…….”

“유성이의 진실?”

끄덕-

김은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의문을 가지고 유성이를 볼수록 내 가설은 점점 명확해졌어.”

김은아가 세운 가설이란 무엇일까? 신유성의 비밀과 진실이란 무엇일까?

팟-!

“자 한 번 봐. 최근에 스미레랑 내가 찍은 유성이의 사진이야.”

김은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홀로그램을 띄우며 신유성의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

사진에 담긴 건 신유성이 벨벳과 식사를 하거나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웃고 있는 모습. 그리고 무언가에 몰두한 채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뭔가, 느끼는 거 없어?”

김준혁은 턱을 감쌌다. 길드 최고의 브레인이었던 자신의 분석력이라면 몇 장의 사진에서도 공통된 특징을 분석 해낼 자신이 있었다.

“음, 전에도 느꼈지만…… 유성이는 확실히 바나나우유를 좋아하는 거 같아. 그리고 이전부터 관찰했지만 식성이 엄청나.”

“맞아요. 3인분 정도는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시잖아요.”

김준혁과 이수현의 분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김은아는 긴 한숨을 뱉었다.

“그게 아니야!”

김은아는 심각했다. 언제는 부끄럽다며 팔짝 뛰었지만 상황이 급박해지자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더 잘 알겠지.’ 같은 이유로 김준혁까지 섭외했다.

자신의 연애 사정을 무려 친오빠에게 조언을 구하다니 이 상황만 보아도 김은아가 얼마나 진지하고 절박한지 알 수 있었다.

김은아는 스미레와 아델라라는 강적을 이기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잘 봐……. 사진들의 공통점을 정말 모르겠어?”

그러나 다그쳐도 김준혁과 이수현이 골똘히 생각만 할 뿐 명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자 김은아는 한숨을 쉬었다.

“……뭐 어려울 수 있겠지. 가까이서 유성이를 본 나조차 내리기 힘든 판단이었으니까.”

이수현은 어느 때보다 집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비서라고 해봤자 이수현은 큰 일거리가 없이 김은아의 수발을 드는 게 전부였기에 오늘처럼 연애 사정을 듣는 건 최고의 재미였다.

“다시 꼼꼼히 봐! 유성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이수현은 김은아의 열변에 신유성의 사진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 보아도 느껴지는 거라곤 하나의 감상뿐.

“……잘 생겼네요.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그리고 이게 유성이 가문 사람들이야. 본적 있지?”

보여준 사진에는 선악의 헤일로 유민서를 포함한 유수가문의 사람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유심히 보면 유민서는 신유성과 제법 닮아 있는데다 신오가문과 달리 유수 출신의 여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미인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모아서 보니 믿기지가 않네요. 유수 가문 쪽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미인이에요.”

유수(瑜秀)

瑜아름다울 유.

秀빼어날 수.

유수 가문은 그 이름처럼 남녀 구분 없이 유독 미인(美人)이 많았다. 무신산에 있던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미인만 보며 자란 것이다.

거기다 신유성 본인도 워낙 미모가 뛰어나니 신유성에게 아름다움의 값어치란 한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신유성이 여자를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김은아는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긴 어렸을 때부터 온통 미인들만 보고 자랐으면 감흥이 덜 할만도 하죠.”

이수현의 말은 정론이었다. 신유성에게 미인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 김은아에게 꽤 중대사항이었다.

“……맞아. 바로 그거야! 유성이한테는 내 완벽한 미모와 몸매가 아무런 무기가 될 수 없어.”

약간의 겸손도 없는 자신감 넘치는 김은아의 발언이지만 이수현은 진심으로 동감했다.

그런 여자로서의 매력을 김은아에게서 빼버리면 남는 게 뭐가 있을까?

까칠하고 잘 삐지는 데다 귀찮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성격밖에 남는 게 없지 않을까?

“그렇죠. 아가씨한테 그걸 빼버리면…….”

김은아의 설명에 이수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건 심각한 문제인걸.”

김준혁도 턱을 괴고 고민했다.

“하지만 미인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아가씨처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서로 무기가 없다는 입장은 같은 게 아니냐며 이수현이 물었지만 김은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쟤들은 달라! 스미레는 요리도 엄청 잘 하고. 다른 한 명은 아예 살림을 차리려고 애까지 데려왔어! 내가 너무 불리하다고.”

김은아를 포함한 3인의 브레인은 곰곰이 생각했다. 미인계조차 없이 김은아가 신유성을 단번에 사로잡을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남자들은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지켜주고 싶지 않나?”

“너무 구식이에요. 그리고 아가씨는 평소에도 어설픈걸요.”

“그건 그러네요.”

“오히려 솔직하게 간다거나? 이미 서로 키스도 한 사이잖아요.”

그나마 나아 보이는 선택지인 이수현의 발언에 김은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그렇긴 한데……. 근데 스미레가…….”

뚝.

뭔가 이상함을 느낀 김은아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이수현도 문제를 알아차렸는지 동시에 서로 눈이 맞은 이수현과 김은아.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네? 아뇨! 봤다는 게 아니고! 그냥 그랬을 거 같다는…….”

이수현은 뒤늦게 말을 번복하려 했지만 아무리 김은아라도 이런 변명에 당해줄 리가 없었다.

“너, 봤구나.”

김은아는 진실에 도달했다.

“네, 네?”

“몰래 따라온 거지? 설마 할아버지가 시킨 거야?”

“어, 아, 아가씨 그, 그게‥….”

큐피트를 자처한 3인의 신유성 공략단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 * *

이탈리아의 대부분 지역이 그렇다. 아무리 겨울이 찾아와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지역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특히 볼테라는 마녀 루이스의 강림으로 찾아온 ‘영원한 겨울’ 이후 그에 반발이라도 하는 듯 영하로 기온이 떨어진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뭐 때문인지 겨울이 오기 전부터 점점 추위가 강해지더란 말이지……. 그것도 이 루인성 주변 지역만.”

긴 머리의 여성 헌터가 호- 하고 보란 듯 숨을 불자 새하얀 입김이 허공을 수놓았다. 이건 단순히 평소보다 기온이 떨어진 수준이 아니었다. 어딘가 루인성 주변에서 문제가 있다는 증거.

“제 생각엔 금방 조사가 끝날 거 같아요. 루인성은 마녀 루이스가 봉인된 장소잖아요. 봉인석에서 마나가 새어나올 수도 있죠.”

“네 말은 호들갑 떨 필요 없이. 보수작업만 하면 끝인 쉬운 일이라는 말이지?”

그러나 아무렇지 않을거라던 말과 달리 조사단원들은 얼음 동상이 된 헌터들을 지나치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많은 고위 헌터가 보스몹 하나에게 당했다니. 겨우 10여 년 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요.”

“겨울의 마녀~ 지금도 학생들 교과서에 언급되는 유명한 사건이지. 주변 지역 전체를 봉쇄할 정도였으니까.”

겨울의 마녀 루이스 공략은 초기에 이루지 못한 것을 최대의 실수라 칭한다.

“하긴 지금도 신기하긴 해요. 이렇게 사람이 밀집된 지역에 7급이 나타나는 건 지금도 드문 일이니까요.”

“맞지. 거기다 지능도 보스 중에서 손에 꼽잖아?”

루이스는 단순히 사람에게 덤벼드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마력 흡수’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결계를 설치해 볼테라 봉쇄를 진행했다. 영원한 추위 속에서 정신력을 흡수하며 힘을 강화시켰다.

“그 때문인지 이탈리아 헌터들 중에선 루이스가 7급이 아니라 8급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사람도 많아요. 일단 재앙의 마녀들 자체가 네임드잖아요.”

후배 헌터의 말에 기억을 더듬던 여헌터는 이내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꽤 긴 시간 동안 볼테라에 있던 사람들의 힘을 흡수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아마 아덴 님이 맞섰던 당시에는 평범한 7급은 아니었을 거야.”

“아덴 님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볼테라는 루이스의 손아귀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오싹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

두 헌터는 루인성 깊숙이 들어갈수록 점점 추위가 믿을 수 없이 심해지는 게 느껴졌다.

“으, 추워…… 뭔가 문제가 단단히 생기긴 했나보네요.”

“그, 그러게…… 봉인석이 고장 났거나. 아니면 마법진에서 마나가 누수 되고 있겠지.”

두 헌터들은 루이스가 봉인된 본성의 대문을 열고 나서야 문제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네요.”

사아아-

“그러게 보수가 끝나면 바로 헌터 협회에 보고해. 이렇게 금이 간 걸 보니 봉인석의 수명이 간당간당한가 봐.”

이 믿기지 않는 추위의 원인은 금이 간 루이스의 봉인석에서 흘러나온 마나 탓이었다.

“그래도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한 달만 방치했다간…….”

“왜 잠든 마녀가 깨어나기라도 할까 봐?”

두 헌터는 뼈가 시린 추위 속에서도 웃고 떠들며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헌터임에도 숨을 쉬기가 버겁고 턱이 떨릴 정도의 추위지만 최악을 면하기 위해선 얼른 금이 간 부분을 보수해야 했다.

타닥- 드드드득!

토치처럼 생긴 마나번으로 봉인석을 용접하던 선배 헌터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중요한 작업이라도 이 수다스러운 녀석이 이렇게나 조용하다니.

‘겁이라도 먹은 건가.’

역시 아직은 애송이라고 한숨을 쉬며 선배 헌터는 손을 뻗었다.

“왜 이렇게 굼떠? 마나번은 완료했으니까. 빨리 연마제나 줘.”

턱-

그러나 누군가 선배 헌터의 손에 쥐여준 건 연마제가 아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영혼이 시릴 정도로 너무나 차가운 손이었다.

‘이 자식……. 이렇게 중요한 작업 중에 장난이라니.’

화악!

짜증 섞인 얼굴로 선배 헌터가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를 반긴 건 장난스럽게 웃는 후배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괴로운 표정을 지은 채 얼어붙어 동상이 되어 있었고 선배헌터를 붙잡은 건 창백할 정도로 푸른 손이었다.

“이, 이럴 수가…….”

헌터는 덜덜 떨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을 부정했지만 눈앞의 여성이 짓는 시리도록 푸른 미소는 거짓이 아니었다. 잠든 마녀는 눈을 떴고 가장 추운 겨울이 다시 볼테라를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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