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8화
학생회장으로서 아카데미의 대소사에 관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학생들 중 신하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진 건 오직 신유성의 소식뿐이었다.
왜 하필 신유성인가?
만약 누군가 이유를 묻는다면 신하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후, 후후후후……. 진짜…… 믿기지 않네?”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등록 번호:AT-42455]
[공략 보상-드래곤 하트(고대)]
[소유자:하나지마 스미레]
[획득 장소: 탑]
신하윤은 기쁨인지, 놀라움인지 종잡을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홀로그램을 읽었다.
“어쩜 이렇게 내 동생은 쓸모가 많을까? 하필 20층에서 얻은 게 드래곤 하트라니.”
신하윤은 ‘영원한 저주’를 걸기 위한 원동력을 위해 드래곤 하트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 변환이 가능한 엔진은 드래곤 하트밖엔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동생의 파티 운이 따라주나 본데? 30층도 아니고 20층에서 고대급 아티팩트를 얻다니.”
이혁의 사무적인 대답에 신하윤은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 꼬마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아~ 잘된 일이야. 벌써부터 동생에게 너무 많은 미움을 살 순 없으니까.’
마치 신하윤은 이미 드래곤 하트를 손에 쥔 듯 기뻐했다. 마치 스미레에게서 드래곤 하트를 뺏기라도 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부탁해 이혁. 겁쟁이를 구워삶는 건 네 전문이지?”
물론 그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는 건 언제나 부회장인 이혁의 일.
“그래. 접촉해보도록 할게.”
“좋아 되도록이면 빠른 시일 내로.”
무려 드래곤 하트를 뺏어 오라는 신하윤의 무리한 명령에도 이혁은 이런 취급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승낙했다.
* * *
탑에서 들여온 기술로 마공학은 순식간에 발전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건 포탈을 이용한 거리 워프 시스템.
아무리 먼 거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할 수 있는 워프 시스템은 고가의 ‘마나석’만 충분하다면 엄청난 편의성을 자랑했다.
물론 부실에 포탈을 설치한 김은아가 이제 와서 마나석을 신경 쓸 리는 없었다.
참방-
첨벙-
길고 하얀 다리로 물장구를 친 김은아는 행복함이 녹아나는 노곤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하, 진짜 이게 그리웠단 말이지.”
잿빛 바다를 항해하며 파도와 싸우며 이 따뜻한 노천탕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물론 그 중에서도 클라이맥스는 단연!”
물 위에 띄워진 동그란 통에서 그릇을 꺼냈다. 그릇에 담긴 건 아니나 다를까 김은아가 그토록 원했던 온천물로 삶아진 계란.
“그래. 이거야. 이게 얼마나 그리웠는지…….”
감동에 빠진 김은아가 행복의 여운을 즐기는 사이.
딱! 치이익- 벌컥벌컥!
에이미는 통에 담긴 사이다를 꺼내 순식간에 들이마시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으으-! 은아야…… 네 말이 맞았어, 이건 정말 최고야!”
“그렇지?”
“하, 거기다 아까 먹은 음식들도 전부 다 맛있고……. 헤헤…… 여긴 천국이 분명해!”
그러나 에이미가 행복함의 극치를 즐기는 사이 김은아는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녀석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오늘은 오랜만에 벨벳과 시간을 보내겠다며 나갔으니 김은아는 신유성이 스미레의 마수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스미레……. 아무리 그래도 그런 억지를 부리다니.’
가장 먼저 키스를 했으니 당연히 사귀는 사이라고 인정하는 게 응당 옳았다. 그러니 당연히 그 다음 단계들도…….
‘키스를 나랑 했으니까 당연히 나랑 사귀는 거고…… 그러니 결혼도 나랑 하는 거지. 이게 당연한 거 아냐?’
김은아는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논리적이라고 믿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김은아가 다행이라 느끼는 점이 있다면.
‘뭐, 아직은 라이벌이 스미레만 있다는 거겠지.’
꺾어야 할 연적이 겨우 1명에 불과하다는 것. 루인성 사건 이후 아무리 신유성이 아델라와 시간을 보내는 게 늘었지만 그래도 김은아는 아델라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김은아는 아델라가 파티에 오기 훨씬 이전부터 신유성과 정을 쌓은 데다 종전에는 키스까지 했으니 자신감이 넘칠 만도 했다.
‘좋아! 정면 승부다!’
지금 김은아의 목적은 오직 하나.
‘요리’와 ‘자애’라는 최강의 무기를 쓰는 연적 스미레에게서 신유성을 안전하게 쟁취하는 일이었다.
목표를 정한 김은아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승리를 다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모두의 신유성을.
이젠 자신만의 신유성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 * *
행복에 절어 헤헤- 하고 웃는 에이미와 산타처럼 양손에 바구니를 든 김은아가 부실에 돌아오자.
“으, 은아 씨…… 그건!”
스미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은아가 사온 간식은 잇신이 사과의 선물로 줄려고 했던 우유맛 당고와 꿀맛 당고로 역 앞에서 한참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간식이었다.
“놀랄 거 없어. 이거 네가 그렇게 좋아한다며?”
“저를 위해…… 한참 동안 줄을 서주신 거예요?”
눈이 커진 스미레가 감격받은 듯 묻자 김은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 어어? 아니…… 그냥 비서 보고 사 오라 그랬는데.”
역 앞에서 줄을 서며 당고를 산 사람은 다름 아닌 이수현이었다. 물론 그 외의 간식이나 선물들을 준비한 것도 모두 이수현. 김은아가 한 일이라곤 입을 뻐끔거리며 명령을 내린 것뿐이었다.
“아, 아아…… 그래도 감사해요!”
“별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벨벳이랑 유성이는?”
“아마 벨벳과 함께 방에 있으실 거예요. 지금 동화책을 읽어주고 계시거든요.”
김은아는 스미레의 대답에 편안한 마음으로 방으로 향했다. 노천탕에 계란이라는 소원도 이루고 왔겠다. 이제 준비해온 간식과 선물만 전해주면 오늘 할 일은 모두 끝나는 셈이었다.
벌컥-!
신유성을 보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연 순간.
“나 왔…….”
신유성과 벨벳.
그리고 아델라가 화목하게 동화책을 보는 광경을 보며 김은아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틀렸어. 왜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했을까?’
전투에서 섣부른 판단이 위험을 초래하는 것처럼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왜 자신은 적이 하나라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왕자는 영원히 꿈을 찾기 위한 길을 떠났답니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동화책을 읽는 신유성.
“벨벳 감동의 불뿜기가 하고 시퍼 이건 정말 체고야……, 캬항! 안대겠다! 아빠! 더 읽어죠!”
“후후, 벨벳. 하지만 벌써 동화책을 3권이나 읽어주지 않았습니까?”
“캬, 캬오, 그래도…….”
“정말 어쩔 수 없군요.”
그런 신유성의 곁에서 행복해하는 벨벳과 아델라를 보며 김은아는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
만약 스미레가 사랑의 연적이라면 이쪽은 전혀 다른 느낌의 위협이었다. 마치 김은아는 이미 완성된 화목한 가정에 자신이 억지로 끼어드는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그래.
자신이 키스와 연애라면, 아델라가 벨벳과 구현한 분위기는 마치 결혼이었다.
아델라가 예상치 못한 전술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격을 구사하자 김은아는 전력을 상실한 채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럴 수가…….”
풀썩-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은 김은아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눈앞의 가족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하나 더 읽어줄게.”
“캬오~! 감동의 불 뿜기-!”
“후훗 벨벳. 정말이지…….”
절망적일 정도로 단란한 3인을 보며 김은아는 생각했다.
“아델라……. 스미레…….”
김은아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떠올렸다. 분명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하는 동화 속에선 앞서 나간 위치나 타고난 유리함이 아니라 결국 근면과 성실이 승리를 불러왔다.
‘그래. 난……. 토끼였어.’
신유성과 입을 맞췄다는 사실에.
신유성은 자신과 가장 가깝다는 안일한 믿음 속에서 김은아는 그만 안주하고 말았다. 그러나 김은아가 멈춰선 순간에도 아델라는 멈추지 않았다. 경쟁자들은 착실하게 발을 움직이며 단단한 성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흐흐흣, 은아 씨…… 미안하지만 제 승리에요. 유성 씨가 제 카레나 닭튀김 없이…… 일주일이라도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상상속의 스미레가 턱을 괸 채 마녀처럼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김은아에게 말했다.
[전투에서도 그리고 사랑에서도 당신은 바뀐 게 없군요. 이미 체크메이트입니다. 여기 당신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상상 속의 아델라는 벨벳을 안은 채로 김은아를 내려다보았다.
[아델라 엄마 체고야-!]
[보았습니까? 우리는 이미 완성된 가족……. 고맙군요. 시간을 벌어주고, 멈춰 있어 줘서. 제 승리는 모두 당신 덕분이겠죠.]
김은아의 상상속 아델라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벨벳을 안은 채로 신유성과 함께 사라졌다.
“은아 엄마가 와써! 양손에 선물도 잔뜩 이써!”
“돌아왔구나. 은아야.”
“예상보다 일찍 돌아 오셨군요.”
자신을 반겨주는 모두의 환영 속에서 주저앉은 김은아는 주먹을 움켜쥐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자신이 유리했던 상황은 잊었다.
“……그래. 돌아왔어.”
김은아의 두 눈에는 승리를 향한 결의가 가득 차 있었고. 두 주먹에는 승리를 향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취한 건. 인생이라는 기나긴 레이스에서 먼저 달려 나갔다는 짧은 유리함이었어.’
그런 주제에 마치 승자처럼 승리를 확신하며 취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왜일까?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김은아는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히려 눈을 감으며 자신에게 굳건하게 맹세했다.
‘……인정할게. 스미레. 아델라. 너희가 내 최고의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자신은 이 레이스에서 굳건하고 착실히 달리겠다고. 동화 속 토끼가 아닌 거북이가 되어 언젠가 꼭 결승점에 다다르겠다고.
“……마저 동화 읽어주고 있어. 나는 잠시 생각 할게 있어서.”
결심을 다진 김은아가 방에서 걸어 나오자 거실에 있던 스미레는 마치 김은아의 마음을 안다는 듯 빙긋- 웃어주었다.
“스미레…….”
김은아는 오늘의 자신을, 그리고 이 순간을 잊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푸릇한 봄이 지고 뜨거운 여름이 지고 낙엽이 무성한 가을이 지고 서늘한 바람이 살을 에는 추위를 겪고 나서야. 겨울이 온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