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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의 최강투신-337화 (336/434)

제337화

녹색의 잎이 주황빛으로 무르익는 가을은 서서히 저물고 가온 아카데미에는 이른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 학기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곧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1년이라는 시간이 공평하게 지나간 것입니다.”

마이크를 쥔 사람은 가온의 교사 중 하나인 소해정이었다. 안경을 벗은 그녀는 평소의 차가운 모습과 달리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1년. 누군가에겐 짧고, 누군가에겐 긴 시간입니다. 학생분들 중에선 그 시간을 만족하는 사람도 있으며 아쉬운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릅니다.”

소해정의 나긋한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1년 동안 여러분이 느낀 건 무엇입니까?”

소해정의 물음에 신유성은 생각했다.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배운 건 무엇일까?

하지만 누군가 묻는다고 해도 좀처럼 대답이 힘들었다. 바깥에서 생활한 1년은 어쩌면 무신산의 10년보다 더 많은 걸 신유성에게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학생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말이지. 난 헌터 일이 무척 힘들다고 생각했어. 예전에는 그저 멋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이야. 바깥에 나가보면…….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주하진은 같은 반의 여학생과 떠들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괜한 소리를 했다며 부끄러워했지만 여학생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 나 그 기분 알 것 같아. 우린 학생이라 완전 말단이잖아.”

“그렇지. 내가 동경했던 모습이랑 아직 좀 멀다고 해야 하나.”

“응응, 그렇지. 직접 해보면 너무 고되기도 하고~”

옆에서 떠드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신유성은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군.’

매스컴에는 대부분 밝은 면만 비추어지지만 헌터는 목숨을 건 고난과 역경 속에서 성장한다. 그건 급수와 관계없는 명백한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소해정의 말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른다.

‘그 덕분일까. 모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단순히 실력과 마나만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었다. 첫 시험 때와 학생들을 비교한다면 학생들은 전부 제 각기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옆에서 떠들고 있는 주하진만 보더라도 제 멋대로만 굴던 때와 달리 신뢰 관계의 파트너가 생겼고, 이시우는 그토록 싫어했던 총을 다시 잡으며 아버지에게 인정까지 받았다.

‘그리고…….’

신유성은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자 자신을 보며 배시시- 웃는 스미레가 보였다. 학년 초 자신감 없이 열등생으로 불리던 스미레와 지금의 스미레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어떻게, 기껏해야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 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

‘하지만…….’

누군가 어느 쪽의 스미레가 진짜냐고 묻는다면 신유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5살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같은 사람인 것처럼 낮아진 자존감으로 고개를 숙인 스미레도 지금처럼 볼을 붉히며 밝게 웃는 스미레도 모두 같은 스미레라고.

“저, 저기…… 유성 씨, 혹시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너무 빤히 본 탓일까 스미레가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자 신유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저 시우랑 스미레 널 처음 본 날이 생각났을 뿐이야.”

“아…….”

신유성의 말에 스미레는 안심한 듯 웃더니 주변이 시끄러운 틈을 타 슬쩍 신유성의 손을 잡았다.

“그러네요. 이제 곧 2학년이 되니까요.”

1년의 시간 속 여운을 느끼는 듯 잠깐 말을 멈춘 스미레는 몸을 가까이 신유성을 올려다보았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죠.”

어쩌면 스미레는 가온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잇신의 파티에서 제법 유망한 사령술사로 성장하던 스미레는 던전에서 친구들을 위험에 빠트렸고 결국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해 일본에서 도망쳐 가온으로 왔다.

만약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긴 시간을 자책과 자기혐오로 흘려보내야 했을까.

스미레는 다른 학생들이 들을까 부끄러운 건지 더욱 신유성에게 밀착한 채 조용히 속삭였다.

“저는……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 유성 씨의 파트너가 되었던 일이에요.”

“인생에서 제일이라니 과분한 이야기네.”

신유성은 겸손하게 답했지만 이건 명백한 진실이라며 스미레는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저, 정말이에요. 유성 씨는…… 제 가치를 알아주신…… 유일한 분인 걸요?”

신유성은 생각했다. 스미레가 말하는 신뢰의 순간이란 과연 어떤 기억일까. 보석섬에서 머리카락을 빌려준 순간일까. 함께 파티가 된 순간 일까. 그것도 아니면 진병철의 권유 속에도 스미레와 함께 던전 공략에 나선 순간일까?

‘아마…… 모두겠지.’

과분하다고 느끼지만 신유성도 알고 있었다. 스미레는 자신과 했던 일들은 무엇 하나 잊지 않는다는 걸. 분명 스미레가 말하는 ‘신뢰의 순간’이란 스미레와 함께 있었던 모든 순간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야. 스미레 넌 원래 가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신유성이 늘어난 말주변으로 달콤한 말을 뱉기 시작하자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휘휘-

대체 무엇을 저렇게 확인 하는 걸까? 세 번 가까이 주변을 확인한 스미레는 안전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는지 신유성의 팔에 와락- 안겨들었다.

“유성 씨-!”

스미레는 이미 결정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역시 자신의 결혼 상대는 신유성뿐. 극도로 낀 콩깍지 때문인지 스미레는 이 세상어디에도 신유성보다 자상한 남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언제나 저는! 유성 씨가 아니라면 절대 바뀔 수 없었다고 생끼야악-!”

신유성에 대한 사랑달이 극도로 차오르는 순간. 미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스미레는 의문의 손에게 뒷덜미를 잡혀 제압당하고 말았다.

“얼씨구- 아주 놀고 있네. 야 너희 연설 중에 구석에서 뭐하냐?”

스미레를 제압한 건 다름 아닌 몹시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은 김은아였다.

“어, 어째서 으, 은아 씨가 여기에! 여긴 F반의 줄인데…….”

스미레가 아차- 하는 얼굴로 김은아를 보았다. 분명 몇 번이나 확인했건만 대체 언제 김은아가 온 걸까?

스미레는 상황을 유추해 보건데 김은아는 저 멀리 A반의 줄에서 신유성과 스미레만을 지켜보다 다급하게 달려온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지금 줄이 어딘지가 중요해?”

마치 단속 시티가드라도 되듯 김은아가 으름장을 놓자 스미레는 오히려 모르쇠로 일관했다.

“저는 그냥……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그, 그럼 말만 하던가! 모, 몸이 닿…….”

얼굴이 새빨개진 김은아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지적을 했지만 우위를 점하기엔 상대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은아 씨…….”

스미레는 어쩐지 평소보다 서늘해진 분위기로 김은아가 빠져나가지 못할 공격을 준비했다.

“저, 유성 씨에게 들었는걸요. 유원지에서 있었던 일…….”

꼴깍-

“어…….”

김은아는 석상처럼 굳은 채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대답을 할 동안 괜히 “어…….” 라는 소리로 시간을 끌어보았지만 그건 무의미한 저항.

툭-

스미레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지만 그건 절대 평소의 스미레가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그, 그게에…….”

김은아는 뒤로 물러나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스미레가 들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만약 자신이 짐작하는 주제라면 과연 어디까지 듣고 온 걸까?

주도권을 놓친 김은아가 말을 더듬으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리자. 스미레는 김은아의 생각이라도 읽은 듯 필살기를 꽂아 넣었다.

“……입맞춤. 하셨죠?”

어디까지 알고 있냐는 질문에 대답은 심플하게 ‘전부’였다. 정면 승부가 되어버린 지금 머리를 굴려도 의미는 없었다.

생각을 바꿔보면 이건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까? 선수를 빼앗겨 이미 자신과 입맞춤을 한 걸 알았으니 분하게 생각은 해도 깔끔하게 포기하지 않을까?

“그, 그래! 내, 내가 그랬다!”

나름 그럴싸한 추론 끝에 결론을 내린 김은아가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자 스미레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다만……. 유성 씨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일은……. 아니! 함께 가정을 가지는 일은! 저도 예전부터 꿈꾼 일이에요!”

그리곤 스미레가 자신은 상관없다며 오히려 당당하게 신유성의 지분 소유권을 주장하며 나서자. 김은아는 말을 잃고 말았다.

“하, 하지만…… 내가 이미 유성이랑 그, 키스…… 했는데?”

김은아의 주장은 심플했다.

키스는 당연히 사귀는 사이에 한다. 그러니 자신은 당연히 신유성과 사귄다. 아무래도 이게 김은아의 상식인 모양이었지만 스미레는 김은아의 주장을 용납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저도 하면 되니까!”

“뭐!? 하, 하지만…….”

기세에 밀린 김은아의 손이 갈곳을 잃은 채 애처롭게 허우적거렸지만 스미레는 멈추지 않았다.

“전 자신 있어요. 저를 유성 씨가 행복하게 해주신 만큼, 저도 유성 씨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오히려 정공법으로 김은아를 압박하며 매섭게 몰아쳤다.

“나, 나도 자신 있어…….”

“그럼 승부에요! 저 몰래 입맞춤을 빼앗고 승부를 피하는 건 비겁한 일이에요!”

스미레는 언제나 양보했다.

그게 동생이든 신유성이든 김은아든 항상 남을 위했다.

그게 카레에서 가장 큰 고깃덩이도 마지막 남은 닭튀김이여도 설령 엄청난 보물이라 하여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양보하지 못할 건 없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신유성이 된 순간 스미레는 결투를 결심했다. 단 한 번도 뽑은 적 없는 검을 뽑으며 승부를 선포한 것이다.

“어? 그, 근데……. 하지만 내가 유성이랑…….”

“우기셔도 소용없어요! 은아씨보다 먼저 유성 씨를 좋아한 건 제 쪽이니까!”

강당 구석에서 시작된 김은아와 스미레의 혈투로 어느새 주변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단이 났군. 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어.”

신유성과 파티원들의 관계를 의심을 한 게 한 명은 아닌 듯 레니아가 운을 띄우자.

“시우만 빼면 다 여자애들만 파티원이잖아. 유성이는 역시…….”

“소문으론 이시우도 여자로 변신시켰다던데?”

“……우와. 역시 대단하네. 진짜.”

우르르- 학생들의 추측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유성이 부실에 자칭 드래곤인 꼬마까지 데려와 살림을 차렸다는 건 아카데미에서 너무나 유명한 사실. 1명의 드래곤 아이와 3명의 부인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정론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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