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0화
멀뚱멀뚱.
놀란 듯 눈이 커진 아델라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신유성……. 당신이 정말 이렇게 변해버린 겁니까?”
제복을 입은 아델라는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신유성의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그러나 아무리 확인해도 신유성의 몸은 완벽히 바뀌고 말았다.
결국 현실을 인지한 아델라는 너무나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이건 큰 문제군요.”
스미레는 아델라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신유성의 몸이 여자가 되며 근육이 줄고 전투력이 약화되었으니 충분히 아델라의 입장에선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그래도! 전투에는 지금의 유성 씨가 훨씬 유리하실 거 에요! 산드라님은 제약을 다시 설정할 생각이니까요.”
그럼에도 스미레가 괜찮다며 설득하자 아델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래선 벨벳에겐 오직 어머니만…….”
아델라가 저런 말을 너무나 심각한 표정으로 하자. 스미레는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얼른 당신이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군요. 저는…… 아버지의 역할도 꼭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델라가 걱정하고 있는 게 곧 벌어질 전쟁이 아니라 벨벳의 육아 계획이었다니 물론 그렇다고 아델라의 말에 동감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역시 그렇죠? 아, 물론…… 유성 씨가 어떤 모습이든 유성 씨는 저희들의 소중한 파티장님이고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스미레에게는 이미 숙소 제공을 빙자한 상견례 때부터 꿈꿔온 장대한 계획이 있었다.
신유성을 닮은 딸과 자신을 닮은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스미레 비장의 결혼 계획이 지금 신유성의 상태로는 무너지고 만다.
“역시 그래도 평소의 유성 씨 쪽이…….”
정작 당사자인 신유성은 성별 따윈 아무래도 좋은 걸까. 어젯밤 새롭게 깨달은 극의를 떠올리며 못내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원래의 몸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어.”
결혼 후보를 자처한 둘의 마음은 몰라준 채 신유성은 뿌듯한 얼굴로 마나를 손바닥에 피워 올려보였다.
“제법 이 몸에 익숙해진 거지. 중요한 건 마나를 발현하는 방식이었어.”
아델라와 스미레는 그런 사실이야 아무래도 좋은 듯했다. 그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이 통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클리어 해야겠군요.”
“……네! 반드시 유성 씨를 되찾는 거예요!”
* * *
세이덴의 여왕 레이오나는 피로 물든 생애를 보냈다. 일생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자랐으며 반역과 숙청으로 이 왕좌에 앉았다.
하지만 산드라는 그런 레이오나조차 꺼릴 정도로 강력한 상대였다.
“무패의 여제 산드라……. 건방질 정도로 거창하지만 전쟁터 출신들은 잊을 수가 없는 이름이지.”
하지만 레이오나에게는 지금 아델라가 있었다.
“능력 있는 자들을 모아 새롭게 휘하 기사단을 꾸리겠습니다.”
아델라는 혜성처럼 등장한 최정예의 실력을 가진 기사단장이며 세이덴에 산드라의 침공 소식을 처음으로 알렸다.
지금 아델라는 레이오나는 물론 모두의 신임을 받는 상태였다.
“새로운 휘하 기사단이라……. 그래 평화에 찌든 바보들로 상대하기엔 산드라는 너무 강력한 적이지. 다만…… 산드라의 침공까지 시간이 충분하겠나?”
레이오나가 푸른 머리칼을 넘기며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묻자 아델라는 담담하게 답했다.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줄 인재는…… 이미 모두 세이덴에 있으니까요.”
* * *
촤아아-!
잿빛으로 물든 제왕의 군도를 가로지르며 전함 샹그릴라는 엄청난 속도로 나아갔다. 그 뒤를 따르는 건 모두 용병으로 이루어진 12척의 배.
“……페리아는 그 녀석의 가동을 시작했나?”
산드라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베니안에게 물었다.
“네 아까 전 북부로 이동 했습니다. 도착하는 즉시 세이덴의 북단부터 침공을 시작할 겁니다.”
“다행이군. 북단은 궤멸이나 마찬가지겠어. 세이덴의 촌놈들이 마공학 괴수를 감당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드라고닉스(Dragonyx).
페리아가 준비한 비밀병기이자.
산드라가 왕국 하나를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돈을 갈아 넣어 만든 역작이었다.
몸체는 마나에 반응해 강철보다 단단한 경도를 자랑하는 신비의 광석 엘라이트로 만들어졌으며 이빨은 바다를 호령하던 시서펜트들의 우두머리 해룡의 이빨을 끼워 넣었고.
날개는 항마의 강철로 주조한 거대한 금속덩이를 달아주었으며, 발톱은 열대지역의 괴수 포이즌 리자드리온의 발톱을 박아 넣었다.
그렇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드라고닉스는 오직 인간을 학살하기 위해 태어난 철의 괴수였다.
“그 귀한 드래곤 하트까지 얻어주었으니 청사자 레이오네가 직접 오더라도 저지가 불가능할 거다. 우리는 그사이 수도를 점령한다.”
이건 20년은 준비한 복수다.
시간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흐르지만, 누군가의 칼날을 무뎌지게 만들고 누군가의 칼날은 날카롭게 다듬었다.
‘평화에 찌든 바보들이 내가 어떤 기분으로 이 전쟁을 준비해왔는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세이덴을 점령하고 복수라는 이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산드라는 계속해서 자신의 칼날을 다듬어왔다.
‘나는…….’
눈앞에서 처형당한 가족들의 모습을. 날갯죽지에 뜨거운 철이 닿고 죄의 낙인이 찍혔을 때의 고통을.
그 모든 일이 벌어진 곳. 세이덴이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산드라는 생각했다.
자신이 지나온 인내의 20년을 이젠 돌려주겠노라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게 더한 고통을 돌려주겠노라고. 세이덴이 자신의 눈에 새겨준 ‘제약’이란 증거를 이젠 돌려주겠노라고.
촤악!
산드라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거칠게 안대를 뜯어냈다. 진득한 붉은 액체가 진흙처럼 눈에서 흘러나왔다.
그에 산드라는 처음과 같은 끔찍한 통증에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크으으윽-! 아아악!”
“사, 산드라 님-!”
베니안은 쓰러지려 하는 산드라를 부축했다. 산드라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안대 대신 손바닥으로 눈덩이를 부여잡았다.
“……제약의 눈에게 선언한다. 20년의 기다림이 끝났고, 복수의 순간이 다가왔으니, 내 제약의 대상을 반전시켜라.”
툭- 투둑-
산드라의 말이 끝나자 제약의 눈에선 푸른 액체가 진흙처럼 떨어졌고 공기 중으로 산화했다.
“훗, 크흐흣-!”
무엇이 그리 기쁜 걸까.
산드라는 미친 듯 웃더니 번뜩이며 눈을 떴다. 그러자 원래는 붉게 물들어 있던 눈엔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세이덴을 정복하기 위한 새로운 제약이 맺어진 것이다.
* * *
침략자들에게 전함은 일종의 요새였다. 맨몸으론 건널 수 없는 바다를 이동시켜 주는 건 물론이고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을 상당수 담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무기와 식량.
“3번 창고도 무사하군. 그럼 올라가 볼까?”
끼이익-
문이 닫히고 덩치 큰 여자 용병이 사라지자.
빼꼼-
커다란 물자 뒤에 숨어있던 사쿠라는 조심스럽게 기어 나와 등잔을 키며 말했다.
“우리…… 좀 도둑 같아.”
실망 가득한 사쿠라의 표정처럼 이시우도 지금의 역할이 썩 내키는 얼굴은 아니었다.
“뭐, 그래. 인정할게. 이건 정말 폼이 안 나는 일이라는걸……. 그래도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야.”
사쿠라는 흥이 깬 듯 시무룩한 얼굴로 자신의 포켓에 창고의 식량과 무기를 채워 넣었다.
비록 한계는 있지만 최첨단 장치인 포켓에는 제법 많은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근데 이거 어디다 버리지?”
“밑층에 정화조가 있을 거야. 거기 던져버려.”
“……설마 화장실?”
사쿠라의 질색한 얼굴에도 이시우는 무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이것 이상으로 최악의 임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래도 포켓에 들어가는 양을 보니 10번 정도만 왔다갔다하면 되겠어.”
식량과 무기를 포켓에 담아 똥통에 빠트리는 게 20층 공략 퀘스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니.
“나 이러려고…… 헌터가 된 게 아니야.”
“동감이야.”
“메이드가 된 채 하루종일 잡무만 하고…….”
사쿠라는 확실히 반복되는 잡무로 찌들어 있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다크서클도 보이는 게 잠을 못 잔 듯 보였다.
“그래 동감이야. 차라리 몬스터가 낫지. 손빨래는 진짜 끔찍하더라.”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간 사쿠라는 밸브를 돌려 관을 열더니 포켓에서 꺼낸 식량과 무기를 하나하나 빠트렸다.
“시우 너. 나 완전 유명인 취급인 거 알지? 밖에 나가면 다들 싸인 받겠다고 줄 서고 난리도 아냐……. 팬카페도 있다고…….”
탑을 등반한다는 건 헌터에게 위험하지만 달콤한 도전이었다. 20층 정도만 되어도 어중간한 5급은 발조차 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니 사쿠라 또한 일본 내에선 당연할 정도로 전국민들의 인기와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대스타였다.
“근데 취급이 왜 이런 거야…….”
하지만 오늘만큼은 코가 마비될 정도로 끔찍한 냄새를 맡으며 똥통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정화조에서 도둑질한 물건을 빠트리고 있었다.
“우와 이거 씻어도……. 일주일은 냄새가 안 지워지겠는데?”
얼마나 냄새가 아찔하면 사쿠라는 반사적으로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건 뭐에 쓰는 무기길래 이렇게 커? 어, 어어……!?”
그 때문일까 중심을 잃고 위험하게 휘청거리는 사쿠라의 몸. 이시우는 쥐고 있던 물건을 내던지며 반사적으로 달려갔다.
“사쿠라-!”
“시우야!”
정말 찰나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속도.
휘익! 척!
이시우는 관을 한 손으로 잡은 채 나머지 한쪽 손으론 사쿠라의 손을 잡아챘다.
하지만 악재가 너무 많았다.
“윽-! 손이 너무 미끄러워-!”
기름이 발라진 무기를 만진 탓에 손바닥은 너무 미끄러웠고, 여자로 변한 이시우의 신체는 평소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같이 빠질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지한 걸까.
“시우야.”
사쿠라는 이시우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난 괜찮아.”
“무슨 소리야! 그렇게 하면 사쿠라 네가!”
이대로는 잡은 손을 놓고 동료를 포기해야한다는 생각에 이시우가 슬픈 표정을 짓자. 사쿠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진짜 괜찮아.”
“하지만! 사쿠라!”
“아니 진짜 괜찮다고. 바람으로 올라오면 되는데 뭐 하는 거야.”
스윽-
정말 바람을 타고 관 위로 올라온 사쿠라. 결국 멋쩍게 시선이 마주친 둘은 한참 동안 정적을 흘리더니 한마음으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