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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327/434)

제328화

푸른 달빛이 감도는 밤.

벌레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소동물의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는 적막한 숲속에서 신유성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기 힘들군.’

신유성은 몸이 변한 순간부터 느낀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성별이 변한다는 건 신체가 변한다는 뜻 그건 단순히 겉모습에 한정 된 게 아니었다.

‘체질이 같고 마나의 총량이 같아도 신체의 차이만으로 마나의 성질이 달라졌다.’

이건 산맥에 흐르는 강물의 방향이 미세하게 바뀐 정도의 너무나 미세한 차이였다. 집중력 강화의 힘을 가진 신유성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 검신조차 알아채기 힘들 정도.

그러나 신유성은 실타래 같은 미세한 감각을 따른 끝에 한 가지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해냈다.

‘지금까지 헌터는 마나의 성질을 타고난다는 게 정설이었다. 나조차도 인류가 가진 마나의 성질은 자연물이 뿜어내는 고유한 파장처럼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변화를 감지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헌터로서 마나를 사용한다는 건 신체에 내재한 연료를 개개인의 엔진으로 발휘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실 마나의 성질이라 믿고 있었던 건 신체에 새겨진 체질과 더불어 개개인이 마나를 작동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편린에 관한 개념을 이전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마나와 신체가 비슷한 정도로 개개인의 성질을 구분한다면 편린의 힘과 연관하여 동화율이 측정되는 방식을 완벽히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전 주인과 신체와 마나가 닮은 정도가 측정치의 전부라면 편린이 허락할 만한 대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편린이 동화율을 측정하는 방식은 꽤 까다롭다.

불과 연관된 보스의 편린이라도, 측정 중인 헌터가 불을 사용한다고 해서 전부 동화율이 높은 게 아니고 신체와 마나의 파장이 비슷하다고 동화율이 전부 높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특성으로서 헌터의 ‘근간’을 가르는 건 좀 더 미세한 차이가 아닐까?

‘예를 들면 마나를 작동하는 방식의 차이…….’

숨을 쉬는 방법을 타인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헌터들은 서로 어떻게 마나를 구현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몸 안의 힘을 바깥으로 끌어낸다는 통일된 감각 아래에 그저 행할 뿐.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신체가 다르면 마나를 바깥으로 발휘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같은 양의 마나를 손바닥으로 끌어내더라도 누군가는 팔이 짧으며 누군가는 팔이 길다. 그 외의 부분까지 상정한다면 변수는 셀 수 없이 많아진다.

긴장을 풀고.

마나가 느껴지는 근원에서 천천히 힘을 끌어내라고 가르칠 순 있지만 그게 어떤 감각인지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명확히 가르칠 순 없다.

‘지금은 그저 이론일 뿐이지만.’

말끝을 흐린 신유성은 눈을 감았다. 지금 자신은 한순간 다른 사람으로 바뀌려는 게 아니었다. 어떤 헌터도 인간인 이상 타고난 체질을 바꿀 순 없으며 마나의 파장을 바꿀 순 없다.

이건 선천적인 조건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다만 힘을 끌어내는 방식과 마나를 구현시키는 방식을 바꿀 순 있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지금 내가 사용하는 투신류는 나의 투신류가 아니다.

물론 투신류는 최강의 헌터가 만들어낸 막강한 기술이기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신유성과 만나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신유성이 사용하고 있는 투신류의 근간은 모두 권왕 유원학에 맞춰진 것이었다.

힘을 싣는 방법과 몸의 근간에서 마나를 방식은 물론 기술을 사용 중에 내뱉는 호흡 하나마저도 전부 신유성이 아닌 유원학의 신체에 맞춰져 있었다.

‘평소에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수 있어. 스승님의 투신류는 이 몸으로 절대 구현 해낼 수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일 때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신유성의 신체는 유원학과 월등한 차이가 있다.

신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해내더라도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달라진 신체는 기존의 투신류와 마나를 발산하는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것.

[무투라는 건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이 지닌 힘을 백분 활용해야 하며 한 번의 호흡으로 승패가 갈리곤 하지.]

신유성은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자신은 스승의 가르침을 정확히 흡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흉내만 낸다면 그 간극은 절대 메울 수가 없었다.

‘원래의 신체로는 그 미세한 차이를 느끼기 힘들어. ……오히려 지금이 적기다.’

퉁-

신유성은 땅을 밟은 채 눈을 감았다.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몸의 중심을 곧게 잡고 있으면 그저 굳건한 땅에 자신을 올려둔 것인지, 아니면 거대한 땅을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지 착각이 들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투신류를 사용한다면 후의 느낌이 좋았다.

[모든 무투의 근간은 자신의 중심을 잡는 것이다. 그 어떤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두 다리로 굳건히 땅을 지지하는 거다!]

신유성은 얇아진 두 다리로 땅을 지지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나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변화 시키는 거야.’

유원학의 목소리를 따라 신유성은 감각을 일깨웠다. 몸의 근간에서 마나가 뻗어나가며 다리와 팔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벌써 차이가 느껴져.’

평소대로라면 신유성이 끌어올린 마나는 마치 근육을 지나치며 파괴력을 증진했겠지만 마나는 이미 갈 곳을 잃고 말았다.

그건 힘을 부과할 만한 근육이 없는 탓이고, 마나의 통로 자체가 짧아진 탓이었다.

‘바뀐 신체는 이전처럼 온전히 힘을 담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저장시켜 발산하는 게 아니라…….’

화악-!

신유성이 반원을 그려 팔을 회전시켰다. 이전까지 신유성의 동작은 직선이었다. 증진 시킨 힘을 곧게 뻗으려면 통로를 직선으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신유성은 방식을 바꿨다.

마나가 통로를 지나치며 근육에 농축시키고 저장시킨 힘을 뿜어내는 게 아닌, 마나 자체를 스프링처럼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뒤튼다.’

부족한 힘을 채우기 위해 스프링을 더 강하게 굽히듯 반원을 그려 통로에 담긴 마나를 응축시켰다.

‘같은 통로를 지나치고 손바닥을 통해 발산되지만. 작동 방식과 원리는 전혀 달라.’

기존의 방식이 곧게 던진 투창이라면 이번 건 회전을 이용한 투포환과 같았다.

사아아-

신유성은 한 번 뒤섞인 마나가 가녀린 팔을 타고 강렬히 흐르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할 일은 통로에서 난폭하게 날뛰는 마나에게 그저 길을 열어주는 것.

척-

신유성은 반원을 그린 팔을 간결하게 뻗었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바위가 모래로 변하고 눈앞의 나무가 형체도 없이 분쇄됐다. 흉포한 마나는 굉음과 함께 고요했던 숲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평소에 버금갈 정도의 파괴력.

아니 준비 단계가 길어진 탓일까? 실전성이 아닌 파괴력만을 두고 본다면 오히려 평소보다 한층 강해진 기분이었다.

지금 신유성의 신체가 약해진 걸 감안한다면 평소의 방식대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파괴력.

‘하지만. 정말 이걸…… 스승님의 기술이라 칭할 수 있는 걸까?’

작은 번뇌에 휩싸였던 신유성은 이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 문제에 관해선 지금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건 스승 유원학의 투신류가 아니었으며 권왕의 폭룡암쇄장이 아니었다.

‘이건 나의 투신류. 나의 폭룡암쇄장이야.’

지금의 기술은 원리는 비슷하지만 현재의 신체에 맞게 신유성의 방식으로 창조해낸 것이었다.

‘왜 잊고 있었을까.’

신유성은 자신의 고민이 우스웠다. 이미 유원학은 말한 적이 있었다. 권왕 유원학의 투신류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을 찾으라고. 분명 나의 제자인 넌 할 수 있다고.

차이점이 있다면 신유성은 6장 이후의 투신류가 아닌, 그 이전의 투신류도 자신의 몸에 맞도록 스스로 방식을 찾으려는 점이었다.

‘스승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거야.’

어쩌면 유원학이 그 가르침을 깨닫게 된 이유는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이다.

유원학의 근처에는 몸이 변화했음에도 이전처럼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 이가 있었다. 그는 제자에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쳤고, 제자로 하여금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극의를 보려 했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군.’

신유성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 높이 발을 뻗었다.

투신류 낙월각(落月脚)

직선으로 곧게 뻗은 신유성의 다리는 하늘의 달을 떨어트릴 듯 맹렬했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투신류 월영보법(月影步法)

달빛에 빛나던 신유성의 몸이 일순간 사라졌다.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는 잔상.

타앗-

신유성이 가을의 낙엽처럼 조심스럽게 안착한 장소는 환한 달빛을 머금은 호수의 수면 위였다.

‘왜 지금까지 이 차이를 알지 못했을까?’

신유성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나를 발산하며 살풋- 살풋-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물위를 걸었다.

‘이 감각은 누군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신유성이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까지 힘을 발휘한 방식이 직선이라면 지금 신유성이 새로이 추구하고 있는 길은 둥근 반원이었다.

투신류 창룡승천파(蒼龍昇天波)

신유성이 양 주먹을 위로 들어 올리자 마치 용이 되어 승천하는 이무기처럼 호수의 물이 요동치며 치솟았다. 신유성은 미소를 띤 채로 허공에서 아름답게 흩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신유성의 예상이 맞았다.

마나가 염료라면 기술이라는 건 액자에 불과했다.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는 붓을 든 화가 정하는 게 당연했다.

왜 이리도 당연한 사실을 지금까지 깨우치지 못했을까?

투신류 파천권격(破天拳擊)

신유성이 곧은 직선을 내질렀다.

주먹의 끝을 따라 호수의 물가가 직선으로 갈라졌다. 지금 신유성은 유선의 형태에도 직선의 형태에도 구속되지 않았다. 그저 원하는 대로 자유로웠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

신유성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이전과 달라졌지만 이 사실을 깨달은 이상 본질은 다를 게 없었다.

“신체가 변해도 나는 여전히 나.”

미소를 머금은 신유성은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게 나의 새로운 투신류.”

전쟁을 앞둔 지금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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