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7화
아델라는 헌터로 활동하며 오색보석이 등딱지에 박힌 소라게도 본 적이 있었으며 일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들다는 황금 골렘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훨씬 희귀했다.
김은아가 누구인가?
[난 별로…….]
[그냥 평범하네. 이걸로 배를 채우고 싶진 않지만.]
재벌들의 재벌이자 산해진미가 모이는 가온의 급식조차 만족시키지 못한 미식가 중 미식가.
하지만 지금의 김은아는 달랐다.
“진짜 맛있다……. 이 삶은 계란.”
“은아야~! 여기 소금도 있어, 헤헤. 스프도 맛있고. 이 딱딱한 고기도 맛있고. 다 맛있어…….”
기껏해야 삶은 계란과 소금에 절인 훈제 고기 정도를 먹으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사부작- 사그작-
김은아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계란 껍질을 까고 호호- 입김을 불어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곤 만족한 듯 으으- 하고 몸을 떠는 김은아를 보며 아델라는 생각했다.
‘……굶기라도 한 건가?’
허기진 배는 무엇보다 뛰어난 조미료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 김은아가 이렇게 변할 줄은 아델라도 몰랐다.
“여기 삶은 계란과 빵. 고기 조림도 추가해주십시오.”
아델라는 괜히 호의호식을 한 자신이 미안해졌는지 추가로 메뉴들을 주문했다.
“아 그리고 생선 스프…….”
척!
그러나 김은아는 메뉴의 이름에 ‘생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자 격하게 반응했다.
“아니. 그건 진짜 됐어.”
“맞아……. 이제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는 냄새도 맡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건 에이미도 마찬가지.
항해 내내 생선 구이와 말린 해산물만 씹어댔더니 입에선 바다 냄새와 생선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자아! 여기 추가 메뉴입니다. 보기와 달리 대식가시군요.”
그런 김은아와 에이미에게 생선이 아닌 식재료로 만든 요리는 너무나도 그리운 맛이었다.
“나, 살면서 이렇게 많이 먹은 건 처음이야.”
“나, 나도 동감. 으으, 배가 빵빵해…….”
요리사가 내민 접시를 다시 맛있게 비워낸 김은아와 에이미는 그제야 만족한 듯 식사를 멈췄다.
아델라는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강철 건틀릿을 낀 양손을 식탁에 올렸다.
“그럼 이제…… 본론을 이야기 해볼까요?”
에이미는 때가 왔다는 듯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미는 주변이 왁자지껄 시끄러운 와중 너무나도 조용한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이번 보스가 여인섬의 산드라인 건 모두 잊지 않았지? 산드라가 백전백승의 용병단을 통해 엄청난 군자금과 병력을 모았다는 것도.”
에이미의 말에 아델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은아는 진지한 얼굴로 계란껍질을 까며 말했다.
“산드라는 세이덴과 전쟁을 치룰 생각이야. 그러기 위해 필승의 전략을 준비했지.”
“이건 파티장님이 알아낸 우리만 알고 있는 사실이야. 매혹의 여제 산드라의 능력은 제약의 눈! 20년에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임의로 정 할 수 있다고 해. 물론 터무니없는 능력을 정할 순 없을 테니 대상의 범위가 좁고 제약이 강할수록 강해지겠지.”
어찌 보면 매혹의 여제라는 이름부터가 연막이자 거짓이었다.
“산드라가 제약의 눈을 얻고 처음으로 정한 능력은 상대가 여자라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매혹의 눈을 얻는 것이었어.”
에이미는 포켓을 통한 마나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건 산드라가 능력을 발휘 했을 때 채취한 마나야. 보여? 본질은 환각 계통이지만 실질적으로 산드라의 능력도 동시에 강화가 이루어지지.”
원리는 간단했다.
서로가 같은 6급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면 산드라는 상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능력이 상승 보정된다. 동 실력대의 헌터는 절대 능력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여자의 몸으로 산드라를 공략하기 위해선 적어도 7급 헌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까?”
6급 헌터는 국가 단위로 귀한 헌터라면 7급은 전 세계를 통틀어 몇 없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단일 병기로 분류되며 6급과 7급의 실질적인 전투력 차이는 10배. 아무리 탑의 20층이라 하여도 이렇게 난이도가 높을 리는 없었다.
절레절레-
김은아는 아델라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지. 아무리 한국이라도 7급 헌터가 몇 명이나 있다고?”
국내에서 7급 헌터는 김은아가 몹시 싫어하는 신오가문의 가주 신강윤과 선악의 헤일로 유민서를 포함한 최정예의 헌터만이 극소수로 존재했다.
“말했잖아. 20년을 주기로 한다고 산드라는 이번 전쟁을 위해 능력을 새롭게 설정할 생각이야.”
“물론 이번에도 파티장님이 극비의 정보를 알아오셨지만!”
김은아와 에이미의 설명에 아델라는 신유성의 근황이 궁금했다. 여자의 몸으로 변한 채 대체 어떻게 지내고 있기에 이런 극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던 걸까.
‘역시…… 당신은 유능하군요.’
아델라는 그저 신유성이 미모로 산드라를 꾀어냈다는 진실은 꿈에도 모른 채 감탄했다.
그리고 그때.
아델라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그럼. 설마…… 산드라가 다음에 정할 능력이 무엇인지도 알아낸 겁니까?”
산드라가 비밀과 작전을 털어놓게 한 과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만약 다음으로 정할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된 다면 공략에 성공할 확률은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당연히~ 그것도 파티장님이 알려주셨지! 한 번 생각해봐. 산드라가 주변의 인물들을 전부 여자로 꾸린 이유를!”
짠- 하고 에이미가 멋들어진 포즈를 잡자. 아델라는 생각에 빠졌다. 만약 자신이 산드라였다면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그러나 해답은 간단했다.
처음 제약으로 빌어낸 소원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 20년 뒤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해했습니다. 문제는 그 시기를 맞추는 것이겠군요.”
“그러니까 미리 대비해줘. 산드라가 침략을 시작했을 때 맞설 수 있도록.”
모든 설명을 끝낸 에이미는 한숨 놓았다는 듯 진이 빠진 얼굴로 털썩 의자에 앉았다.
[불굴의 항해자를 만나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당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실마리를 얻어냈습니다.]
다음 타자를 맡게 된 아델라는 그런 에이미를 보며 수고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음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리고 고생을 한 건 함께 온 김은아도 마찬가지. 아델라는 삶은 계란을 우물거리는 김은아를 보며 금화를 내밀었다.
“제가 드리는 이 금화는 왕국에서 지내는 동안 사용하시면 됩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게 되다니.
그 김은아가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하지만.
동화 한 닢에 계란이 1개.
은화면 삶은 계란이 100개.
금화는 무려 삶은 계란 1만 개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오. 고마워…….”
김은아는 양손바닥을 펼쳐 금화를 받아들었다. 부랑자처럼 꾀죄죄한 모습 때문에 아델라는 어딘가 더 짠해보였다.
“당신…….”
만약 신성그룹의 회장 김석한이 지금 김은아의 꼴을 본다면 무엇이라 말할까? 대체 탑을 공략하는 게 대체 무엇이기에 그 김은아가 이렇게 거지꼴이 되어야 했을까?
씁쓸한 마음에 아델라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자.
“어‥….”
금화를 주머니에 넣으려던 김은아는 멋쩍게 답했다.
“으, 으응? 왜? 너무 많이 줬어?”
김은아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금화를 다시 꺼내며 돌려주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아델라는 너무나 변한 동료의 모습에 그만 고개를 돌렸다.
“……아뇨 아닙니다.”
아델라가 묘한 기분에 슬퍼하는 와중에도 에이미는 금화를 받은 게 기쁜지 그 옆에서 마냥 행복하게 웃었다.
“헷, 헤헤, 금화다 금화……. 은아야 우리 마실 거도 시키자.”
시작하는 위치와 맡는 역할에 따라, 밖에선 콧대 높은 재벌 아가씨가 생선 비린내가 나는 부랑자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탑.
아델라는 금화 몇 닢에 기뻐하는 김은아와 에이미를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목욕탕도 있습니다.”
* * *
평범한 유치원의 현장 학습이 유원지나 공원으로 소풍을 떠나는 것이라면 에이타의 현장 학습은 아예 결이 달랐다.
“자 모두 집중-! 우리가 오늘 현장학습을 온 장소가 어디라고?”
선생님보단 조교에 가까운 남자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우렁차게 외치자. 에이타의 학생들은 마치 군대라도 되듯 더욱 힘찬 함성으로 답했다.
“마지라이 들판입니다!”
“그렇다! 독이 있는 달팽이와 마취 성분이 있는 버섯. 육식성 거대 진드기가 가득한 장소지! 만약 꿈과 희망이 가득한 유원지를 기대했다면 지금이라도 에이타를 나가는 게 좋을 것이다!”
에이타는 7살 전후의 아동이 모여 있었지만 그들의 목표가 모두 ‘헌터’라는 점에서 에이타의 교육은 안전과 거리가 멀었다.
“현재 이 마지라이 들판에는 총 12명의 실습 교관님들이 수백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점수를 채점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채집과 사냥! 생물에 대한 기록은 헌터의 기본이자 근간!”
촤악!
모자를 눌러 쓴 교관이 손을 펼치자 에이타 학생들 앞에는 주르륵-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1. 자기장 달팽이]
[2. 해파리 진드기]
[3. 투명날개 개미]
[4. 변이 잠자리]
[5. 지옥 발 쇠똥구리]
…….
[10. 절단 사슴벌레]
“너희에게 주어진 건 단 6시간! 리스트에 있는 총 10마리의 대상을 채집하고.”
[1. 거짓말 버섯]
[2. 수면초]
[3. 달맞이 나무]
[4. 바람열매]
“도감과 비교해. 방금 전 리스트에 있는 4개의 군락지를 찾아내 기록해야 한다. 알겠나!?”
교관이 우렁차게 외치자.
괜히 신이 난 벨벳은 한술 더 떠 마나를 담아 힘차게 답했다.
“느예엣-!”
너무니 힘차게 마지라이 들판에 울려 퍼지는 벨벳의 외침.
“기, 기합이 엄청나군……. 조, 좋아! 그럼 모두 파트너와 함께 현장 실습을 실시하도록!”
교관의 명령에 따라 번개처럼 흩어지는 에이타의 아이들.
“캬항……. 벌레 찾기! 벨벳은 벌레가 좋아!”
시작하기 전 벨벳이 주섬주섬 헌터용품을 꺼내려 포켓을 뒤지고 있자. 파트너인 아키오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 저어기…… 벨벳…… 혹시, 민폐가 되지 않으면. 내가 같이 다녀도 될까?”
멀뚱멀뚱.
그 말에 벨벳이 바라보자 아키오는 흐익- 하고 시선을 피했다.
“미, 미안…… 내가 B반 주제에 너무 건방졌지?”
어린 아이를 모아둔 에이타지만, 전국에서 엘리트를 모아둔 탓일까. 어찌 보면 경쟁은 고등부의 아카데미보다 더욱 치열하고 심했다.
그러다 보니 에이타에서 등급 간의 차별은 당연한 일. 그러나 벨벳은 아키오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캬항……. 당연히 가치 갈려고 했는데. 벨벳이랑 팀이잖아~!”
같이 가도 되냐는 말이 손을 잡고 가도 되냐는 말은 아니었다.
“어? 으, 으응! 소, 손까지? 나는 좋아!”
결국 아키오가 기쁜 얼굴로 손을 잡자. 벨벳은 가늘게 뜬 눈으로 마지라이 들판을 바라보며 코를 킁킁거렸다.
“킁킁- 냄새가 나…….”
“나? 씨, 씻었는데.”
“아니, 마나의 냄새! 저기 바람 열매가 이써!”
강아지나 늑대도 아니고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일까? 보통 사람이라면 믿지 못할 이야기였지만.
아키오는 마냥 좋았다.
“그, 그럼 같이 찾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