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4화
마녀로서 태생부터 비범했던 라플라스는 ‘지식’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나의 충실한 종. 호레타야. 너는 생각해본 적 있느냐? 왜 생태의 정점에 인간이라는 연약한 종(種)이 우뚝 설 수 있었는지.”
라플라스의 질문에 어린 소년의 모습인 호레타는 인큐버스 특유의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려운 질문이십니다. 그래도 인간은 연약하지만 그들 특유의 단결력이 있지 않습니까?”
“……흐음, 단결이라. 호레타야. 내가 살던 차원에는 거대개미의 군집이 있었느니라.”
벌레형 몬스터는 라플라스의 차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구에서도 벌의 형태로 4급 보스가 발견 된 적이 있으며 ‘정신’을 공유하는 언데드인 스피릿 워커도 출몰한 적이 있었다.
“곰보다도 거대한 개미들이 여왕개미의 호르몬에 따라 한 몸처럼 움직였지. 아무리 인간들의 단결력이 좋다고 한들 그에 비할 바가 되겠느냐? 단결력이 전부라면 나의 차원은 개미들의 세상이 되었겠지.”
“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지식이 아니겠습니까?”
“해답에 비슷하게 다가왔구나. 그러나 지식만이 전부라면 수명이 짧은 인간들은 나와 같은 영원불멸의 마녀나 엘프들을 따라올 수 없겠지.”
라플라스의 말처럼 배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짧은 생애로 천년이 넘는 수명을 가진 엘프와 영원불멸의 마녀를 상대로 어찌 견줄 수 있을까?
귀엽게 턱을 쥔 호레타는 흠-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겉모습은 어려 보여도 호레타는 100년을 넘게 살아온 인큐버스. 평범한 인간이라면 한 사람의 생에가 충분히 끝이 났을 시간이었다.
당장 호레타만 하여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거늘. 어찌 인류는 그 짧은 생애로 그렇게나 많은 차원에서 종(種)의 정점이 될 수 있었을까?
“인간은 엘프보다 월등히 수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얻을 수 있는 지식도 많을 것입니다.”
“아직도 반쪽짜리 해답이다. 아무리 인간들의 수가 많다고 한들 번식력이 뛰어난 오크들에 견주겠느냐?”
라플라스의 말을 듣고 보니 호레타는 더욱 이해 가지 않았다.
“주인님의 말씀을 들으니 확실히 인간은 장점이라곤 없는… 어딘가 부족한 종족 같습니다.”
결국 긴 고민 끝에 호레타가 감상을 내놓자 라플라스는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맞았느니라. 그 결핍이 바로 바로 인류의 강함이다.”
그리고 그 감상은 정답이었다.
“인간은 다른 종족보다 약하기에 살아남으려 무기를 만들고 전투를 연마했다.”
라플라스의 말처럼 어느 차원에서도 인류는 처음부터 뛰어난 역사를 가진 적이 없었다.
부족한 전투력을 메꾸기 위해 검술을 연마하고 드래곤의 전유물로 취급받던 마나를 연마해 마법사가 되었다.
그럼 지식은 또 어떠한가?
“부족한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짧은 수명으로 생에를 마칠 즘엔 그 지식이 사라지지 않도록 후대에 남겨주지.”
엘프처럼 엄청난 수명도 없고.
드래곤처럼 고등 지식을 지닌 채 태어나진 않지만 짧은 생에 동안 열정을 불태워 지식을 쌓고 그 불꽃이 꺼질 즈음 다음 세대에 불씨를 전파한다.
“그 지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사람에게 전파되며 이어지고 전해질 때마다 변형되며 새롭게 태어난다. 같은 가지로 뻗어 나갔지만 그 끝에 무엇이 꽃 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
결핍이 있기에.
부족하기에 더욱 탐하는 것이다.
“인류의 강함이란 곧 결핍이며 그 결핍에서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심이 가져온 결과다. 그 욕심은 강대한 드래곤의 목을 떨어트리고 요새 같은 마녀의 성조차 초토화 시키지.”
역병의 마녀인 라플라스와 겨울의 마녀를 포함한 모든 마녀들을 7급으로 분류된 강대한 보스였다.
탑의 고층이 아니면 볼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가진 존재였다.
“난 편린에 불과하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나의 목이 떨어졌는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마녀들은 그저 미물이라 생각했던 인간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나를 포함한 마녀들은 죽음을 앞둔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는 오만했다고.”
멸악(滅惡)의 기사는 대륙의 용사였다. 인류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십여 년의 시간 동안 신성왕의 모든 기술과 지식을 흡수했다.
“알겠느냐? 인간의 잠재력은 실로 무한하니라.”
어떤 차원이라 하여도 인류에게 결핍이 있고,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건재한 이상 그런 괴물은 태어나기 마련이다.
“과연 주인님이십니다. 이 호레타. 짧은 식견이지만 주인님의 말씀을 백분 이해했습니다.”
호레타는 똑똑하지만 겸손했기에 라플라스가 가장 아끼는 인큐버스였다.
“호레타. 너는 똑똑한 아이구나. 그럼 마지막 문제이니라.”
라플라스가 이렇게 친절히 직접 설명해주는 건 호레타를 그만큼 인정한다는 증거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주어진 단서들을 통해 정답을 유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막으면 막을수록. 결핍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욱 강해지는 인류를 영원토록 제 발밑에 두기 위해. 모르간이 택한 방법은 무엇이겠느냐?”
호레타가 아무리 영특한 인큐버스라 하여도 마지막 문제는 특히 어려웠다.
인간에게 목숨을 빼앗긴 몽환의 마녀 모르간은 꿈을 꾸게 됐다.
결핍될수록 더욱 욕망하며 억압할수록 더욱 거세게 반발하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류를 영원히 정복하고 싶어 했다.
마족과 내통해서도 이루지 못한 꿈을 지금 이루고자하고 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어느 차원의 역사도 모두 그러하듯……. 폭군은 더욱 강한 반역자의 반발에 무너지기 마련이니 영원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모르게 만들면 어떠하겠느냐? 억압당하는지 모르고 지배당하는지 모른다면. 결핍도 없을 것이며 욕망도 없을 것이다. 그저 거짓된 하루. 거짓된 삶을 행복하게 이어갈 뿐이겠지.”
라플라스의 말을 들은 호레타는 소름이 끼쳤다. 모르간은 꿈을 지배 할 수 있는 몽환의 마녀. 그녀의 힘이라면 모두로 하여금 같은 꿈을, 거짓된 꿈을 꾸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인큐버스인 호레타 너라면 꿈의 무서움을 알고 있겠지. 꿈은 잠결의 순간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훨씬 깊고도 짙다는 걸.”
몽환의 마녀인 모르간이 원한다면 현실의 1초가 영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영원이란 한 사람의 삶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생명으로 하여금 영원토록 인지하지 못하는 평생을 뜻했다.
모르간의 통제 아래에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고 행복조차 허락되지 않은 영원.
“꿈의 통제란 신체의 억압보다 무서운 것이다. 현실의 비참함보다 잔혹한 것이다.”
꿈을 꾼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기에 깨어날 수조차 없다.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은 채 그저 모르간이 정해둔 삶을 반복할 뿐이다. 그걸 정말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호레타. 나는 모르간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다. 영원이란 지루한 단어다. 삶이란 죽음이 있기에 숭고하다.”
라플라스는 삶과 죽음을 순환시키는 역병의 마녀. 영원을 꿈꾸는 모르간의 사상에 어찌 동조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주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하자. 무릎을 꿇은 호레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라플라스 님이 예견하신 전쟁이군요. 이 호레타. 이해했습니다. 그럼 스미레 님은 라플라스 님이 빌려주신 힘으로 모르간 님을…….”
마녀인 라플라스의 힘은 흑마술의 극의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물론 스미레는 그 힘을 전부 활용 할 수 있는 건 아직 아니지만 그건 모르간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기억이 남아 있어도 신하윤의 몸과 모르간의 몸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호레타는 생각했다.
라플라스를 그토록 닮은 스미레라면 전혀 닮지 않은 환생체인 신하윤을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라플라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스미레는 신하윤을 이기지 못한다. 아니지…… 나 라플라스는 모르간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해야 더욱 알맞겠군.”
라플라스는 스미레를 과소평가한 게 아니었다. 정말 신하윤이 모르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이건 태생적인 성격의 문제였다.
“모르간은 마녀 중 가장 결핍이 강하고, 가장 욕망이 강하거든.”
그 결핍을 해결하고 인정받기 위해. 모두의 위에서기 위해.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모르간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래. 모르간은 마녀가 아니야. 인간에 가깝다. 그 욕망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모르간의 불씨는 영원히 꺼지지 않아.”
모든 것을 태우고 잿더미가 될 때까지 계속 불타오르려 했다.
“그렇다면 스미레 님은…….”
“위협 받겠지. 스미레에겐 진실을 알고 있는 내가 곁에 있으니까. 모르간이 힘을 되찾는다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라플라스의 말처럼 모르간이 계획을 이루는 순간. 성격상 모르간은 위험이 될 가능성을 남겨둘 리가 없었다. 다음 타깃은 명백히 스미레와 라플라스였다.
“다시 말하지만 몽환은 무서운 힘이다. 영원한 꿈에 빠트리거나. 정신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희도…….”
호레타의 말처럼 라플라스는 스미레의 몸에 깃든 편린이었으며 호레타는 그런 편린의 힘으로 구현된 하수인이었다.
몸체인 스미레의 정신이 오염된다면 이 평온한 성의 생활은 같이 무너지게 될 해변의 모래성이었다.
“스미레 님이 위험에 빠지면 함께 없어질 수 있다는 겁니까?”
호레타가 걱정스런 얼굴로 성의 전경을 둘러보자 라플라스는 맥없이 웃었다.
“너는 사라지는 것이 두렵더냐? 미안하구나. 나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단다. 이미 나는 원본이 남긴 허상에 불과하니……. 있어도 없어도 다를 것은 없지.”
팟-
라플라스는 부채를 펼쳐 얼굴을 반쯤 가렸다. 부채 위로 드러난 라플라스의 눈은 웃고 있지만 목소리는 어딘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스미레는 다르다. 스미레의 삶은 명백한 현실이다. 내 원본을 닮았음에도 마녀가 아닌 한명의 여자아이로서 너무나 평범하고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스미레는 라플라스처럼 태어나자마자 역병의 마녀라 손가락질 받지 않았으며 죽음을 몰아 대륙을 멸망시키지도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이와 같이 있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라플라스가 그토록 바랐던…….
“……난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계속 평안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말을 마친 라플라스는 부채를 접었다. 이제야 드러난 그녀의 표정은 평소처럼 너무도 여유로웠지만 호레타는 라플라스의 감춰진 일면을 본 듯 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저희 모두는 전쟁을 준비하겠습니다.”
파악!
창가로 나간 호레타는 마치 역전의 용사가 된 것처럼 창문을 열며 거세게 소리쳤다.
“모두 다가올 전쟁을 위해 힘을 기릅시다!”
그런 호레타를 성 아래에서 바라보고 있는 건 스미레의 사역마인 언데드 군단.
“당연하지! 주인님을 모시는 건 우리들의 일인데!”
그 중에는 서큐버스인 릴리스도 있었으며.
“주인, 님의 적. 죽, 인다…….”
듀라한으로 새롭게 거듭난 데스나이트도 있었고.
“따, 닥, 딱!”
“그르르르…….”
초기부터 함께한 해골과 여러번 죽다 살아난 구울도 있었다.
퉁-
그렇게 모두 스미레를 위한 결의를 다지던 순간. 스미레의 소환물만 들어올 수 있는 이 영역에 미지의 생물이 새롭게 소환됐다.
사아아-
성에 범접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에 다른 사역마를 전부 합쳐도 비견되지 못할 엄청난 마나를 지닌 괴수.
무려 [악룡 바하무트]라는 새롭게 이름을 부여받은 본 드래곤의 등장에 흐뭇한 표정으로 홍차를 마시던 라플라스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뭐야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