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2화
우걱 우걱.
에이미는 마치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양손에 포크를 쥔 채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흑, 맛있어…… 그래. 이게 음식이지! 계속 생선구이만 먹었더니 얼마나 물리던지…….”
“후후, 그러다 체하시겠어요. 음식은 많으니 천천히 드셔도 괜찮답니다.”
상냥하게 웃어주는 스미레의 미소와. 비록 여자로 변했지만 여전히 든든한 신유성의 곁에 도착하자 에이미는 비로소 마음을 편히 놓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저 파티장님도 보고 싶었고. 스미레도 엄청 보고 싶었어! 바다 위에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
“고생했어. 에이미.”
나룻배에 의지해서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면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까?
그러나 에이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신유성은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이걸 에이미에게 어떻게 부탁하지?’
퀘스트를 진행 중인 지금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제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건 탑의 공략.
“저기, 에이미?”
신유성이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자 에이미는 너무나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네!”
입가 주변에 잔뜩 소스를 묻히며 먹고 있는 에이미의 모습에 신유성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산드라는 지금 세이덴이라는 국가와 전쟁을 치를 생각이야. 내 퀘스트는 그 전쟁을 막거나 산드라가 패배하게 만드는 거지.”
“그거 쫍- 큰일이네요. 냠- 흠, 빨리 대비책을 마련해야겠네요.”
에이미가 손에 묻은 소스를 빨아 먹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자 신유성은 시선을 피했다.
“대비책은 있어. 산드라의 능력을 세이덴에게 알리는 거지.”
“흠…… 어떻게 해야 전달 할 수 있을까요. 아까 들어보니까 여인섬에서 육지는 배를 타도 제법 멀다고 하던데.”
에이미의 혼잣말에 신유성은 그저 웃었다. 지금 신유성의 눈앞에는 여인섬의 파티원 중 유일하게 홀로 항해해본 사람이 있었다.
“아, 그럼 역시…….”
이미 신유성의 의도를 알아챈 스미레는 안쓰럽게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으, 으응?”
에이미는 그제야 꿀꺽 침을 삼키더니 우물쭈물 눈치를 보았다.
“저어…… 혹시…….”
“응……. 부탁할게. 역시 믿을 사람은 경험이 있는 에이미밖에 없을 거 같아.”
신유성의 부탁에 에이미는 그만.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띠링!
[퀘스트: 세이덴 왕국의 기사단장에게 산드라의 침공을 알리시오.]
[상세-기사단장에게 산드라의 능력에 대해 알려준다면 세이덴이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집니다.]
돌이 된 에이미는 무심하게 울리는 퀘스트의 알림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더니.
우물우물-
다시 음식을 씹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에…… 먹자. 지금이라도…… 많이 먹어둬야지…….”
또다시 새로운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 * *
여인섬의 지하 깊은 곳.
페리아는 지하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 첩자들을 가둔 감옥보다 더욱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페리아가 이 비밀의 장소로 내려올 때면 언제나 산드라와 함께한다는 긍지가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올랐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 복잡한 마음은 뭘까.
‘참으로 불공평하군.’
페리아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부정했지만 이건 명백한 질투였다.
‘내가 그토록 얻고 싶어 했던 그분의 신임을……. 겨우 얼굴이 좀 반반하단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얻어내다니…….’
대륙의 엘리트 마법사들이 한데 모인 마탑을 졸업한 페리아의 앞에는 보장된 자리와 부귀영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페리아는 공방에 찾아온 산드라의 이야기를 듣고 그 달콤한 미래를 기꺼이 포기했다.
산드라의 포부는 책벌레에 불과했던 자신과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맹세하지. 나를 따라온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다. 내가 하려는 건 전쟁이 아니다. 거대한 사업이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페리아는 산드라의 이야기에 매혹됐다. 그녀가 왜 용병단을 창설했는지.
[국가의 존속을 쥐고 흔드는 거대한 사업! 약속하지. 네가 따르려는 국왕도 제국의 군대도 결국 우리의 눈치를 보게 될 거다.]
바라고 있는 꿈이 무엇인지 들은 순간 이미 페리아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우린 이 세상의 모든 걸 손아귀에 쥐게 될 거다.]
이렇게나 용감하고.
이렇게나 명석하며.
이렇게나 확신이 있는 사람이.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구나.
‘난 그분의 꿈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어.’
산드라와 함께라면 정말 제국조차 두려워할 거대한 집단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이 그 증거.’
불이 꺼진 어두운 실험실.
페리아가 고개를 들자 마나로 된 램프가 일제히 켜지며 실험실의 불을 밝혔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철제 실험실은 마치 둥지 같았고 그 중앙에는 고철 뭉치로 이루어진 짐승이 웅크리고 있었다.
‘산드라 님은 내 요구를 전부 들어주셨다. 마탑조차 헛소리라고 치부한 내 꿈을…….’
몸체는 엘라이트라는 신비의 광석을, 이빨은 에메랄드로 이루어진 해룡의 것을 박아 넣었다.
어디 그뿐이랴.
동력원은 전쟁의 대가로 드래곤 슬레이어였던 국왕에게 받아낸 드래곤 하트를 사용했다.
‘이 고철 덩어리를 제조하는데 들어간 금화를 모은다면 작은 왕국 정도는 손쉽게 살 수 있겠지.’
어찌 보면 이 고철덩이는 산드라와 페리아의 믿음이자 유대.
덜컹- 쿵쿵!
페리아는 빠른 걸음으로 철제 계단을 올랐다. 그리곤 고철덩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부여하며 작게 읊조렸다.
“데우스(Deus).”
기이이익-
페리아의 짧은 마법 영창에 고철덩이의 몸이 비명을 지르며 기계 장치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엑스(ex).”
고철덩이의 중심에 박힌 드래곤 하트가 마나를 비산하며 빛을 뿜어냈고 기계장치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무시무시한 동력을 만들어냈다.
“마키나(machina)!”
페리아가 영창을 끝내자 고철덩이의 눈에 박힌 보석이 빛을 뿜었고.
지이잉- 기이익!
고철덩이에 불과했던 기계는 드디어 몸을 일으켜 숨겨왔던 형태를 웅장하게 자랑했다.
항마의 성질을 가진 금속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두 날개. 강철조차 으깨버리는 해룡의 이빨.
남부 열대지역의 우두머리 괴수 포이즌 리자드리온의 발톱.
그르르륵-
생명체의 부산물과 기계로 이루어진 몸체가 섞인 ‘무언가’는 페리아 앞에 고개를 숙이며 거친 숨을 뱉어냈다. 이 괴물은 금단의 영역인 합성 키메라 기술에 페리아가 마공학을 접목한 걸작.
드라고닉스(Dragonyx).
원동력인 드래곤 하트 덕에 진짜 드래곤에게도 밀리지 않는 전투를 위해 태어난 창조물이었다.
‘이 합성 키메라가 세상에 드러나는 날. 나는 영원히 마탑에서 제명 되겠지. 하지만 산드라 님을 위해서라면 그럴 가치가 있어.’
산드라의 신뢰에 페리아가 모든 걸 바쳤다는 증거였다. 근데 왜 출신조차 모를 굴러들어온 돌이 그 유대를 넘보는 걸까?
스윽-
페리아는 지금까지 꽈악 쥐고 있던 주먹을 풀어 드라고닉스에게 내밀었다. 그리곤 차가운 기계에 얼굴을 비비며 너무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건 내가 미워하는 인간의 냄새야. 그러니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면 그대로 삼켜버려.”
그르으윽-
기계의 몸을 가졌지만 생명체의 지성을 갖춘 드라고닉스는 페리아의 명령을 곧바로 이해했다.
자신의 눈앞에 옷자락의 주인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씹어 삼켜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페리아는 그런 드라고닉스가 기특한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지금은 배가 고파도 조금만 참아……. 곧 전쟁이 벌어질 테니까.”
* * *
과연 몬스터를 대비한 현대전에서 총을 사용하는 원거리 사수가 처음 배우는 기술은 무엇일까?
제각기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은폐와 엄폐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사수의 특성상 근접전이 취약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위치를 들키지 않은 은밀한 이동은 결국 예상치 못한 사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격을 위해 갈고닦은 능력을 이렇게 쓸 줄이야.’
빼꼼-
철제 부품 뒤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 이시우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밀폐된 장소라 걱정했는데. 우리 기척을 느끼진 못한 모양이야.”
“흐우, 나는 들킬까. 조마조마해서 숨도 참았어…….”
그럴 필요까진 없었지만 얼굴이 창백해진 걸 보니 사쿠라의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근데 진짜 상상도 못 했어. 이런 곳에 지하 기지가 있고 로봇 드래곤이 있다니…….”
“유성이 말이 맞았어. 이 괴물이 산드라가 전쟁에 자신감을 드러낸 이유 중 하나겠지. 이건 얼핏 봐도 6급. 어쩌면 그 이상이니까.”
이렇게 거대한 기계 괴물이 드래곤 하트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일반 병사들은 낙엽처럼 쓸려나갈 게 분명했다.
“그러면 지금 고장 내 두는 게 좋지 않아?”
통통-
사쿠라의 노크에 드라고닉스의 머리에서 상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실히 사쿠라의 말대로 페리아가 작동시키지 않으면 드라고닉스는 그저 기계 부품 뭉치에 불과했다.
드라고닉스를 부수려면 당연히 지금이 적기.
“당장 그런 짓을 하면 그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는 우리는 물론이고 유성이도 의심을 사게 될 거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을 페리아에게 들키지 않고 해내야 했다.
“아예 이 괴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페리아도 금방 문제를 발견하겠지. 하지만 부품이 바뀌는 것 정도라면 찾아내기 힘들 거야.”
“흐음- 부품을 바꾼다고? 예를 들면?”
이시우의 아이디어에 사쿠라는 턱을 괴고 드라고닉스를 보았다. 이 거대한 기계 괴물은 발톱 몇 개를 부수는 것 정도로는 약해질 것 같지 않았다.
“이런 거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시우는 포켓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돌을 꺼냈다.
“설마 마나석이야?”
“응 맞아. 역시 치킨 두 마리랑 바꿔두길 잘했어.”
이시우는 드라고닉스의 동력원인 드래곤 하트와 포켓에서 꺼낸 마나석을 갈아 끼웠다.
“시우야……. 드래곤 하트 대신 마나석을 끼우면 이렇게 거대한 기계가 움직일 리가 없잖아.”
사쿠라는 이시우의 행동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나 똑똑한 이시우가 드래곤 하트를 마나석 따위로 대체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 분명 움직여.”
하지만 이시우는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오히려 확신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이건 벨벳이 만든 마나석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