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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319/434)

제320화

에이타 킨더가든은 저학년 교육시설로는 최고의 명문으로 떡잎부터가 다른 전국의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런 명문에서도 S+ 브로치를 당당하게 달고 있는 건 벨벳이 처음.

“캬항-!”

자랑스럽게 허리춤에 손을 둔 벨벳이 등장하자 여기저기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S+는 처음 봐…….”

“그러어엄…… 벨벳이 유한보다 더 강한 거야?”

“그러네! 우리 에이타에서 벨벳이 제일 센 거 아냐!?”

“바보야 당연히 유한이 세지! 등급이 높다고 전부가 아니거든?”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유한은 신유성의 어머니인 유민서가 가주로 있는 유수가문에서도 가장 촉망 받는 후계자였다.

반면 비교 대상으로 놓이게 된 벨벳은 사도닉스와 신유성의 잠재력과 아델라의 마나를 흡수해서 태어난 드래곤으로 태생부터가 너무 비범한 케이스.

‘……이 녀석이 S+라고?’

믿기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어린아이라기엔 너무나 차가워 보이는 눈초리로 벨벳을 훑는 유한.

‘머지…… 벨벳을 엄청 노려보고 이써! 완전 이글이글이야!’

하지만 아무리 승부욕을 불태워도 벨벳은 유한을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았다.

‘스미레 엄마 말이 맞아써! 여긴 친구들이 잔뜩이야!’

그저 에이타의 비슷한 나이에 수많은 학생들을 보며 신기해 할 뿐이었다.

*     *      ** * * *

촤아아! 첨벙! 촤악-!

귓가를 울리는 파도 소리.

돌풍 같은 바람에 온몸이 떨리는 추위 속에서 에이미는 눈을 떴다.

“으움, 으…… 여, 여긴?”

철썩- 쿵!

나룻배를 때린 파도의 엄청난 충격에 배가 뒤집힐 듯 흔들리자 눈이 커진 에이미는 그제야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모, 모야 이거! 여긴 어딘데!?”

분명 에이미가 예상한 장소는 여인섬이었건만 눈을 뜬 장소는 해무(海霧)가 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잿빛의 바다 위였다.

갑자기 심해의 몬스터라도 나타나 배를 뒤집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바다의 분위기.

[퀘스트: 어떻게든 생존해서 여인섬에 도착하십시오.]

[상세- 당신은 약간의 식량과 나룻배를 가지고 제왕의 군도의 거친 해역에 표류했습니다. 당신의 목표는 생존이 1순위입니다.]

뭔가 이상한 퀘스트의 설명에 에이미는 배에 있는 물건들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나룻배를 뒤져도 나온 건 보따리에 들어 있는 건 육포 몇 조각과 생수 한 병.

“이, 이게 전부야?”

꿀꺽-

침을 삼킨 에이미는 다시 주변을 보았다. 그러나 주위에는 섬은커녕 육지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끝없이 펼쳐진 잿빛의 망망대해와 세차게 몰아치는 파도뿐.

‘……여기 뭐야 나 살아서 돌아갈 수는 있는 거야!?’

에이미는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얼마나 운이 나빠야 이런 장소에 떨어지는 걸까? 나는 살아서 육지를 밟을 수 있을까?

‘그래! 설마 굶어 죽으라고 이런 곳에 떨어트려 놨겠어? 지금은 이래 보여도 금방 도착하겠지!’

그러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행복회로를 굴려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     *      *

그렇게 에이미가 표류한 지 6년 같은 6시간이 지났다.

무엇보다 밤이 깊어지며 에이미에게 찾아온 가장 큰 문제는 살을 에는 추위였다.

휘이이이- 이이이-!

이렇게나 기온이 떨어졌음에도 바람은 또 얼마나 강한지 머리카락이 다 휘날릴 지경.

“추워…….”

뒤적뒤적-

에이미는 몸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뭐라도 없을까 포켓을 뒤적거렸다.

“아, 이게 있었네…….”

에이미의 눈길이 멈춘 건 숲속에서 묵게 됐을 때 사용하려고 준비해둔 간이 텐트.

“헤헤, 진작 펼칠 걸…….”

그렇게 나룻배 위에 텐트를 설치해 몸을 피한 에이미는 얼어 죽을 위기는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람을 피해도 그리 상황이 나아진 건 없었다. 보따리에 담겨 있던 생수 한 병은 진작 마셔버렸고, 포켓을 아무리 뒤져도 나온 음식이라곤 언제 넣어뒀는지도 모를 사탕 몇 개와 보따리에 있던 육포였다.

‘육포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일단 아껴두자.’

지금은 생존이 달린 상황이기에 배가 아무리 꼬르륵- 소리를 내어도 에이미는 꾹- 참아냈다.

“……일단 지금은 자야지.”

*     *      *

표류 16시간.

텐트에서 나온 에이미는 쨍쨍하게 뜬 해를 바라보며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이러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굶어 죽을 거야.”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아카데미에서 배운 공부는 의외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에이미는 3급 괴수를 효율적이게 처리하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바다에서 표류 했을 때 식량을 얻는 방법 같은 건 외우고 있지 않았다.

‘차라리 육포라도…….’

이 정도면 많이 아낀 게 아닐까?

이렇게 굶어 죽을 바엔 지금 먹어두는 게 낫지 않을까? 피폐해진 눈으로 육포를 보던 에이미는 문득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저녁 식사를 안하셨으면 에이미 씨도 같이 드실래요?]

[내건 괜찮아~ 너무 먹었는지 좀 찐 거 같더라고! 오늘 저녁은 안 먹을 생각이야!]

스미레가 준비해준 카레를 먹지 않는 자신의 모습.

[뭘 그렇게 맛있게 먹냐?]

[캬항~ 이거? 냉장고에 있던 케이크야! 가치 머글래?]

[난 됐어. 아까 전에 먹었어.]

벨벳이 준 레드벨벳 케이크를 거절하는 자신의 모습.

“흑, 안 돼. 제발 먹어…….”

대체 왜 그랬을까?

왜 그때 먹지 않았을까?

그때 먹었다면 지금 조금이라도 덜 배고프지 않았을까?

“먹고 싶다…… 스미레의 카레. 달달한 케이크…….”

그러나 에이미가 이제 와서 아무리 후회하여도 떠난 음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이미가 가지고 있는 건 기껏해야 말라비틀어진 육포와 사탕 몇 개.

“으우…….”

에이미는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잿빛의 바다를 바라보더니.

꾸우욱-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그래!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어떻게든 살아남는 거야!”

에이미는 기껏해야 얼마 되지 않는 육포를 입에 털어 넣는 것보단 더 좋은 생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채찍의 끝에 육포 조각을 매달아 낚시를 하는 것.

“물고기라도 몇 마리 잡으면 지금보단 낫겠지!”

그렇게 에이미가 포부 넘치게 낚시를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바다 속에 채찍을 빠트리고 하염없이 시간만 축내던 에이미는 문득 생각했다.

‘……이거 미친 짓이었나?’

이렇게 큰 바다에서 물고기가 수면 근처로 올라와 자신의 육포를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 이 기분 나쁜 회색빛 바다에 정말 물고기가 있긴 한 걸까?

‘미끼로 사용한 육포는 소금물에 젖어서 먹을 수도 없을 거 같은데…….’

에이미는 망망대해에서 물고기를 잡겠다고 채찍에 육포를 매달아 낚시질을 하는 자신이 처량했다.

이런 바보짓은 이제 그만둘까 고민하던 찰나.

움찔-!

무언가 육포를 먹기 위해 채찍의 끝을 냉큼 물었다.

에이미의 채찍은 진짜 낚싯대처럼 바늘을 달아두지 않았기에 물고기가 무는 순간 위로 낚아채는 것이 중요했다.

평범한 사람은 불가능한 반응 속도와 힘이 필요했지만 이래 봬도 에이미는 가온의 A반에 속한 자랑스러운 헌터.

“물었다아아아-!”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 에이미는 지금이라는 생각으로 엄청난 속도로 채찍을 낚아 올렸다.

첨벙-!

정말 채찍을 따라 바다 위로 딸려온 건 팔뚝만 한 물고기.

퍼덕! 퍼덕! 퍼덕!

육포에 낚여 나룻배 위로 올라온 물고기가 살려달라는 듯 힘차게 퍼덕이자 무릎을 꿇은 에이미는 하늘을 보며.

“잡았-”

참았던 숨을 뱉었고.

“드아아아아아아-!”

사자처럼 포효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다.

“내가 맞았어!”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에 좌절의 순간이 찾아올 때도 있고.

“이게 맞았다구우우-!”

아무리 기다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표류 덕분에 음식의 소중함을 알 게 되고, 긴 기다림 속에서 물고기를 낚게 된 것처럼.

“이제 굶지 않아도 돼-!”

에이미는 나룻배 위에서 물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마나로 조심스럽게 마나로 불을 피웠다.

화륵-!

그리곤 체내의 기름기로 점점 노릇하게 구워지는 물고기를 보며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좀처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에이미는 소금 같은 조미료조차 없이 구워진 물고기를 너무나 맛있게 우걱우걱 먹어 치웠다.

그렇게 먹은 물고기 구이는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음식이지만 너무나 맛있었다.

‘그래. 어쩌면…….’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에서 어쩌면 불행이라 생각했던 순간들은 꼭 필요한 일부가 아닐까?

굶주림이 있기에 배부름이 있고.

오르막이 있기에 내리막이 있다.

에이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화창했던 해는 이미 떨어지고 하늘은 우중충한 색깔로 변해 있었다. 변덕스럽게 해가 떨어지며 다시 추위가 찾아왔지만 에이미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투둑- 툭-

하늘에서 천천히 쏟아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해맑게 미소 지었다.

“비다! 비가 내린다!”

평소라면 갑자기 내리는 비에 습하다며 싫어했겠지만 바다에 표류한 에이미에게 이건 마치 생명의 비였다.

차작- 착!

나룻배의 바닥에 채집용 유리병을 잔뜩 깔며 에이미는 생각했다.

같은 순간이라도.

누군가에겐 슬픔이.

누군가에겐 기쁨이 될 수 있구나.

인생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은 그저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었구나.

비록 바다 위에서 생사를 걸고 표류하고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느낀 에이미는 너무나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나는 지금 행복해.”

아무리 긴 폭풍우 끝에도 화창한 날은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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