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메이드 장. 클로네.
올해로 30세가 된 그녀는 성에서 손재주가 좋기로 소문난 20명의 하녀들을 뽑아 각종 요리를 전수했다. 클로네는 제왕의 군도 일대는 물론 제국에까지 소문이 자자한 엄청난 실력의 요리사.
“속이 제대로 익지도 않은 이딴 걸 고기 요리라고! 단언컨대 접시에 담긴 이 쓰레기는 3일을 굶은 들짐승에게 던져 주어도 정중히 거절당할 것입니다.”
그런 만큼 클로네의 심사는 아주 까다로웠다. 하녀들이 준비한 20개의 음식 중 이미 절반 이상은 쓰레기통에 직행을 한 상황.
“우, 우으-”
결국 하녀 중 한명이 상상을 초월한 클로네의 독설에 눈시울이 붉어지자.
쾅!
클로네는 눈을 번뜩이며 식탁을 내려쳤다.
“뭘 잘했다고 눈물을 글썽입니까? 울고 싶은 건 이딴 쓰레기를 만들기 위해 도축 당한 불쌍한 가축들인데!”
후드득-
클로네는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은 음식을 접시에 담긴 채로 쓰레기통에 직행시켰다.
“이름이 뭐지?”
“바, 바피오네…… 입니다.”
“준비한 음식의 레시피는?”
“큼지막하게 썬 고기를 레몬즙과 허브. 그리고 올리브에서 짠 기름으로 하루…… 동안 마리네이드 했습니다.”
클로네는 바피오네가 만든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입에 가져갔다.
우물우물.
모든 하녀들이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는 와중에 한 결 나아진 표정으로 클로네는 물었다.
“오…… 버터로 졸일 때, 마무리로 소금을 뿌렸습니까?”
“네! 맞습니다!”
드디어 클로네를 만족시킬 첫 통과자가 나오는 걸까. 그리고 그 주인공이 자신인 걸까? 바피오네가 너무나 기쁜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후드득-
클로네는 다시 차가워진 무표정의 얼굴로 접시를 쓰레기통에 직행시켰다.
“그거 참 다행이군요. 너무 짜서 실수로 바닷물에 빠트린 줄 알았건만……. 그건 아닌 모양이에요.”
그야말로 반전의 반전.
“우으-”
11번째 타자인 바피오네도 울상이 되자 클로네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재료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이 비싼 향신료만 때려 넣으면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줄 아는 그 저질스러운 발상…….”
“바피오네? 당신은 빨리 여기 구석에 서서 1분마다 향신료와 식재료들에게 사죄하십시오. 당신이 비싼 재료로 만들어낸 건 날고기만도 못한 쓰레기니까.”
고개가 축 늘어진 바피오네는 클로네의 말을 따라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중얼거렸다.
“햐, 향신료야. 미안해…….”
“가축들이 저승에서도 들을 수 있게 좀 크게 말할 수 없겠습니까?”
“시! 식! 재료야! 미안해!”
11명.
“윽, 변소보다 심한 냄새……. 이 음식은 제게 트라우마군요. 양고기를 먹을 때마다 이 냄새가 떠올라서 적어도 3년간은 입에도 못 댈 테니.”
13명.
“계란 요리라……. 간단한 요리를 하면 실력을 감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쯧, 그마저도 이건 실패작!”
16명.
“치즈 요리에 땅콩버터라…… 영양학적으로 치즈는 땅콩과 상극입니다. 나를 이런 독극물로 암살할 생각이었나요?”
19명의 요리가 모두 퇴짜를 맞고 이제 테이블 위에는 20개의 접시 중 단 1개의 접시만 남았다.
“이름이 뭐죠?”
이젠 기대조차 없는 얼굴로 클로네가 기계적으로 묻자 보라색 머리의 소녀는 몸을 움찔거리며 답했다.
“스, 스미레…… 입니다!”
클로네의 심사를 받게 될 마지막 도전자는 다름 아닌 스미레.
“준비한 음식의 레시피는?”
“하, 하몽과 치즈를 쓴 샌드위치입니다.”
들썩-
“흥미롭군요.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생고기를 사용한 요리를 했는데 혼자 숙성한 가공육을 사용하다니.”
클로네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매서운 눈초리로 묻자 스미레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아, 그게…….”
스미레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아챈 클로네는 괜찮다며 다시 이유를 물었다.
“빨리 말해보세요.”
“이번에 준비된 고기는 도축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상태긴 하지만 유독 암적색을 띠는 걸 보아. 젖소나 노화된 소로 보였습니다.”
하녀들은 스미레의 말에 놀란 얼굴로 서로 눈치를 살폈다. 재료의 상태가 안 좋았다면 이번 시험은 억울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정답입니다. 요리사를 자처하며 재료의 상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주는 대로 고기를 사용한 바보들은 전부 탈락. 당연한 이치죠.”
재료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까지가 클로네의 시험의 일부였다. 그럼 식재료의 관문은 통과했으니 드디어 맛을 볼 차례.
“하지만 좋은 재료를 사용했으면서 맛이 없다면 그건 더더욱 쓰레기. 그럼 어디 한 번…….”
클로네는 샌드위치를 냉큼 한입 물었다. 그리곤 좀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클로네는 또다시 한 입 더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읍…….”
그리곤 뭔가 잘못됐는지 얼굴이 뒤틀릴 정도로 강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클로네.
‘저, 잘못이라도 한 걸까요. 표정이 너무 무서워요…….’
덕분에 스미레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30년 같은 30초를 침묵 속에서 기다렸다.
어쩌면 이 샌드위치라면 혹시 모르지 않을까? 이미 탈락한 19명의 하녀들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모두 스미레를 지켜보았다.
스미레는 이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전환할 마지막 구원자였다.
“아까, 이름이 스미레라고 했나?”
결국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다시금 이름을 묻자 스미레는 자신감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클로네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보더니 갑자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빵의 겉만을 구워내 속은 촉촉함을 유지하고…… 치즈와 햄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잘게 썬 멜론을 곁들였군. 너무 단맛이 강했다면 싸구려처럼 느껴졌겠지만 양을 잘 조절했군. 하몽과 치즈의 풍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샌드위치를 심심하지 않게 만들었어……. 그래. 정말이지 좋은 조화다…….”
마치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호흡조차 잊은 채 속사포처럼 칭찬을 쏟아내는 클로네.
“이 샌드위치는 극상의 맛이다! 믿을 수 없이 맛있어! 먹는 사람을 위한 배려와 고민이 돋보인다! 단순한 음식이라도 작은 고민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결과로 바뀌는 것이 요리의 세계에에에-!”
광인처럼 눈을 번뜩이는 클로네의 기세에 스미레는 꿀꺽 침을 삼켰다.
‘맛있게 먹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이분, 무서워요…….’
스미레가 겁에 질리든 말든 클로네는 꾸역꾸역 2개의 샌드위치를 모두 입안에 집어넣더니.
“……합격입니다.”
어느새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식사를 끝냈다.
“당신은 요리에 꽤 조예가 있는 것 같군요. 이 샌드위치 말고도 자신 있는 레시피가 있습니까?”
“네! 좋은 식재료만 있다면 뭐든 만들 수 있어요!”
만약 음식을 망쳤다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취급했겠지만 지금 클로네는 무한한 신뢰를 담은 눈으로 스미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이번에 산드라 님과 귀빈님께 대접할 요리는 당신이 만드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제, 제가요?”
“네. 통솔권을 드릴 테니 무언가 필요한 게 생기면 저에게 말하도록 하세요.”
샌드위치 요리로 순식간에 클로네에게 인정을 받게 된 스미레는 주먹을 불끈 쥐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단해…….”
“너라면 믿고 따를 수 있어~!”
“이 샌드위치! 접시에 묻은 소스조차 맛있어요!”
그러자 스미레는 자신에게 충성을 하고 있는 19인의 동료들이 보였다. 혼자가 아닌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스미레는 넘지 못할 산이 없었다.
“그럼~! 저희 모두 힘을 내서 최고의 요리를 대접하는 거예요!”
스미레가 힘껏 하늘 위로 손을 치켜올리자.
와아아-!
식당이 떠나가라 모두에게서 쏟아지는 엄청난 크기의 함성.
[퀘스트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당신은 곧 산드라를 만나게 됩니다. 산드라를 통해 정보를 얻고 동료와 합류하십시오.]
자신의 주특기인 요리를 통해 퀘스트를 멋지게 클리어 해낸 스미레는 뿌듯한 얼굴로 창가 너머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유성 씨! 그리고 모두들! 기다려주세요! 제가 만나러 갈 테니까요!’
어두워지는 무던히도 더운 여름의 밤하늘을 쏟아질 듯 장식한 별빛 속에서 스미레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꼭! 최고의 요리를 만들게요!’
* * *
[내 곁에만 있는다면 당신이 섬에서 무엇을 하든 괜찮아. 나는 신경 쓰지 않겠어.]
방금 전의 만남 끝에 신유성으 산드라에게서 원하던 약속을 얻어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를 얻은 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옆에 붙여두다니.’
산드라는 신유성이 성에 있는 동안 총 3명의 시녀를 붙여주었다. 호위 명목인지 관리명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건 꽤 정신 사나운 일이었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요. 이 백옥 같은 피부…… 제국에서부터 셀 수 없이 귀족들의 피부를 관리했지만…… 이 피부는 가히 보물이에요!”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귀빈분의 미모는 또 어떻게요? 이렇게 자로 세운 듯 날카로운 콧날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지는 얼굴선…….”
“그러네요. 이건 마치 신이 세공한 걸작!”
신유성은 3시간 가까이 쏟아지는 시녀들의 칭송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대체 여인섬에선 외모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나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는 걸까.
사실 대부분을 무신산에서 보낸 신유성은 시녀들의 칭찬 자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권왕은 신유성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한 적이 없었고, 아카데미에 오고 나선 대부분을 부실에서 보낸 가끔 스미레나 김은아가 해준 칭찬이 전부였으니 별로 의식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이 정도면…….’
시녀에게 머리를 맡긴 채 의자에 앉은 신유성은 흠- 하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되었어도 길어진 머리카락과 몸을 제외한다면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자신은 여전히 칠흑처럼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이목구비의 생김새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여인섬에 오고 나서 대체 자신의 무엇이 바뀌었기에 이렇게나 찬사가 쏟아지는 걸까.
신유성은 거울을 한참이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결국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평범하게 생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