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9화
탑의 20층에 도전하는 날.
신유성의 파티에 사쿠라가 합류한 7인의 공략 팀은 대기실에서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여인섬이라는 곳…… 엄청 유명한 장소였네 20층이라기에는 자료도 많고…….”
탑의 기록에 수없이 펼쳐진 여인섬의 자료들을 보면 김은아가 놀라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여인섬의 장소가 어디인지 알면 이해가 갈걸?”
그러나 에이미의 이야기처럼 여인섬이라는 이름은 생소할지 몰라도 여인섬이 속한 장소는 이미 헌터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곳이었다.
[제왕의 군도]
제국조차 두려워하는 5명의 제왕이 다스린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여인섬은 이 군도에 속한 하나의 섬 중 하나였다.
띠링!
에이미가 스크린에 자료를 띄우자 몇몇 파티원들은 여인섬의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해저 깊은 곳.
심해괴물을 언데드로 만들어 끌고 다니는 일인군단 통칭 사령술사 도라.
제국의 소드마스터 중 하나였지만 반기를 들고 10개가 넘는 부대를 전멸시킨 반역자 타일런.
금지된 실험과 약물을 사용해 비정상적인 루트로 힘을 쌓다 결국 추방당한 연금술사 파울로.
마나로 움직이는 대형 함선을 제작해 해역 전체를 돌아다니며 무자비하게 약탈을 한 해적 패트릭.
“통칭 제왕의 군도. 여기에 속한 장소들은 섬의 이름보다 보스들의 이름이 익숙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상대할 보스는…….”
에이미가 손짓하자 스크린 속에는 하얀색 털로 이루어진 망토와 검은색 가면을 쓴 여성이 등장했다.
“여인섬의 주인! 매혹의 산드라!”
산드라에 대한 정보는 탑의 기록을 전부 뒤져도 딱 지금 보이는 실루엣이 전부였다.
사령술사 도라는 심해 괴물.
반역자 타일런은 소드마스터.
연금술사 파울로는 약물제조.
해적 패트릭은 함선을 이용한 해상전이 특기라는 게 모두 밝혀졌음에도 산드라는 제왕의 군도에 속한 보스 중 유일하게 능력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아쉽지만 산드라는 다른 공략에서 이름과 모습이 등장한 게 전부야. 다만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는데…….”
[페널티: 여인섬은 오직 여성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여인섬이라는 이름처럼 산드라는 자신의 부하를 오직 여자로만 구성했다고 해. 분명 능력과 연관이 있겠지!”
에이미는 다른 한쪽에 홀로그램을 새로 띄워 보란 듯 탑의 페널티를 가리켰다.
“……확실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페널티가 저렇게 설정된 이유도 이해가 되네요!”
“그렇군요. 산드라의 능력이 성별과 관련이 있다는 건 명백해 보입니다.”
스미레와 아델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했지만 이시우는 그 보다 더욱 진지한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이 망할 보스 때문에 탑이 날 여자로 만들겠다고? 이건, 이건 꿈이야…….”
“시우야~ 왜 그렇게 심각해? 잠깐 정도는 참을 수 있잖아 탑에서 나오면 다시 변하겠지. 그리고 풉, 잘 어울릴 수도…… 있잖아?”
이걸 위로라고 하는 걸까.
아니면 놀리는 걸까.
“네가 내 입장이 되어봐야 이해하지. 이건 존엄의 문제라고…….”
이시우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건만 야속하게도 에이미는 스크린을 꺼버렸다.
“브리핑은 여기서 끝! 그럼 파티장님!”
“응! 훌륭한 브리핑이었어 에이미. 그럼 출발해볼까?”
당당한 발걸음의 신유성과 달리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죽을상인 이시우.
“참가 신청을 하신 7인 모두 19층의 공략이 확인 되었습니다. 그럼 워프석을 작동시키겠습니다.”
안내원의 말에 따라 하나 둘 워프석에 손을 올리자 눈앞에는 익숙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퀘스트 이름: 여인섬의 비밀]
[최소 참여 인원 6명]
[페널티: 여인섬은 오직 여성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20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승낙을 하는 순간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면서 이보다 더한 공포를 느낀 적이 있었을까?
위이잉!
워프석이 작동하고 새하얀 빛이 모두를 감싸자 단념한 이시우는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 * *
벨벳이 S+라는 에이타 킨더가든 초유의 등급을 뱃지로 달고 등장하자 아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쏠렸다.
“뭐야! 이 뱃지! 대단해!”
“우리 학교 최초 아냐?”
“진짜, 엄청나……. 거기다 시험만 봤는데 벌써 랭킹 1위야!”
칭찬을 좋아하는 벨벳은 그저 뿌듯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캬항! 벨벳은 천재야! 1등 아니면 안 해!”
“대, 대단해…… 근데 이 꼬리랑 뿔 진짜야?”
“벨벳은 드래곤이야!”
“드래곤이라니! 엄청나!”
벨벳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펑펑 터져 나오는 어린 아이들의 반응. 그걸 지켜보는 유한은 몹시 심기가 거슬렸다.
‘이 지긋지긋한 이름을 또 듣게 될 줄이야…….’
유한은 5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차가운 표정으로 턱을 괴고 벨벳을 보았다. 유한은 유민서에게 가주의 자리를 빼앗긴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늘 푸념을 들었다.
유민서가 얼마나 천재였는지.
왜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주가 될 수 없었는지. 그러니 유한의 어머니는 더더욱 유한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대신해 유민서에게서 다음 가주 자리를 되찾아오라고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러기 위해선 신오가문과 유수가문의 모두를 제쳐야 한다.’
그렇기에 유한의 목표는 유민서만이 아니었다. 유한이 꺾어야 할 상대 중에는 유월도 있었으며, 신하윤도 있었으며, 유사시에는 신유성도 있었다.
만약 마음이 바뀐 신유성이 가문으로 돌아온다면 유민서가 유수가문의 다음 가주 자리를 인계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런 유한이 믿을 것은 오직 힘.
‘그러니…… 저 녀석도 결국 내가 꺾어야 할 적이야.’
마치 원수를 노려보듯.
유한은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게 눈을 뜬 채 벨벳을 노려보았다.
스윽.
벨벳도 그런 유한의 시선을 느꼈는지 서로 마주친 두 아이들의 눈. 벨벳은 이글이글 불타는 유한의 시선에 허억-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마나의 기운! 벨벳을 엄청 싫어하고 이써!’
마나를 통해 상대의 기분을 읽는 건 벨벳의 주특기.
‘캬, 캬항!? 어째서!’
영문도 모른체 유한에게 미움을 받은 벨벳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20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워프를 할 때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머리가 어지러운 감각은 신유성도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20층에 들어온 건가?’
희미하게 눈을 뜬 신유성의 시야에 보이는 건 평소보다 유난히 새하얀 자신의 손이었다.
‘이게…… 내 손?’
누가 봐도 지금 신유성의 손은 무투로 단련된 이전의 손과 거리가 멀었다. 탑에 들어오기 전 신유성의 신체는 마나를 싣지 않아도 나무 정도는 간단히 부숴버렸던 강인한 신체였지만 지금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런 손으로 제대로 전투에 임할 수 있을까?’
손이 이렇게나 변했다면 신체는 얼마나 변한 걸까. 자리에 우뚝 일어선 신유성은 자신의 키가 평소보다 작아진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다리도 팔도 길이가 짧아졌다. 전투 중 나의 리치가 짧아진 걸 감안하지 않으면 실수를 할 수 있겠군.’
자신의 변화에 대한 모든 걸 전투와 관련된 쪽으로 받아들이는 신유성. 하지만 가장 큰 신체의 변화는 따로 있었다.
‘몸이…… 평소보다 너무 둔하고 무거워.’
왜 이렇게까지 몸이 무거워진 걸까? 신유성은 변화된 몸 때문에 목이 뻐근해질 지경이었다.
‘대체 왜…….’
신유성의 의문은 자신의 방에 놓인 거울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