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06화 (305/434)

제306화

홀짝.

스미레가 우려낸 홍차의 맛에 메이린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향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정말 솜씨가 좋으시군요.”

“과찬이에요! 좋은 찻잎을 순서에 맞게 우려냈을 뿐인걸요.”

하지만 평화로운 둘의 분위기와 달리 벨벳은 도끼눈을 한 채 메이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캬으으…… 스미레 엄마! 케이크는 주면 안대! 저 사람 벨벳을 데려간 못된 사람이야!”

벨벳의 입장에선 메이린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자신을 연구소로 데려갔으면서 뻔뻔하게 소파에 앉아 홍차를 마시고 있는 걸까?

“그때는 미안했습니다. 당신의 힘은 갓 태어난 드래곤이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대단한 힘이거든요. 저희는 그 위험성을 늦게나마 인지했을 뿐입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한 메이린이 포크로 케이크를 맛보려 하자 김은아는 홱- 하니 접시를 뺏어가 보란 듯 자신이 케이크를 먹었다.

“아무리 그래도 벨벳을 우리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게 어디 있어?”

와구와구- 분노한 김은아가 케이크를 먹어 치우자 멋쩍게 허공을 맴도는 메이린의 포크.

“그래도 너무 미워하진 말아주세요. 협회가 그렇게까지 강경한 대책을 한 건 그만큼 벨벳이 위험하다고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살랑살랑.

칭찬이라고 생각한 건지 강아지처럼 조금씩 꼬리를 흔드는 벨벳. 하지만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벨벳은 도끼눈을 한 채 메이린을 보았다.

“……마자, 벨벳은 대단해. 하지만 칭찬해도 벨벳은 용서 안 해. 연구소는 밥도 맛 업어써…….”

반면 메이린은 김은아가 깨끗이 케이크를 비운 접시를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어쩐지 아쉬워 보이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개선안을 가져왔습니다.”

메이린이 꺼낸 건 한 장의 초대장이었다.

에이타 킨더가든.

초대장에 적힌 건 스미레도 어디선가 본 이름이었다.

“에이타 킨더가든? 여긴…….”

“교육원입니다. 국내에 설립된 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입학 희망자는 전국 최고의 숫자를 자랑하죠.”

그러나 유명 아카데미의 입학 희망자는 전국에서 찾아오기 마련 에이타 킨더가든은 신청자들의 숫자에 비해 너무나 문이 좁았다.

“하지만 전국에서 몰려온 30만의 신청자 중 선택받는 건 단 500명에 불과합니다.”

현역 헌터 출신의 교사.

연구소에도 밀리지 않는 최첨단 시설. 입학만 성공한다면 모든 비용은 전국에서 지원이 온 후원금과 기부금을 통해 전액 무료.

“당연히 특성을 개화한 아이들 중에서도 선별과 선별을 거쳐 극소수의 입학자를 가려내지만 벨벳은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위험성이 있지만 헌터로서의 재능은 누구도 견줄 수가 없으니까요.”

쩍- 쩌저적-

메이린이 말을 하는 도중. 몸이 시릴 정도의 한기와 함께 홍차를 담았던 잔이 깨져버렸다.

“……제가 있는 한. 더 이상 벨벳을 위험물 취급하는 건 용서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아델라는 냉랭한 목소리로 뻗었던 검지를 거두었다.

하지만 메이린은 학원도시의 지부장을 맡은 6급이 넘는 헌터. 놀란 기색조차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수건을 들어 손에 튄 찻물을 닦아냈다.

“……실언했군요. 제가 말을 하고 싶었던 말은 강한 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이야기입니다. 힘에는 선악이 없기 때문이죠. 제대로 된 교육을 토대로 성장한다면 세상을 구할 힘이 될 수도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겠죠?”

쐐액-!

말이 끝나자마자 메이린이 던진 바늘은 아델라의 옆을 스쳐 지나가 벽에 박혔다. 그 아델라조차 반응하지 못한 엄청난 속도.

“아……. 벌레가 있는 줄 알았건만 착각했나 보군요.”

찌릿-

서로 눈을 마주친 아델라와 메이린이 벌이는 매서운 신경전에 결국 스미레는 중재를 했다.

“두, 두 분! 진정하세요! 그리고 메이린 씨의 말은 백분 이해했으니까요. 물론 선택은…….”

저벅저벅.

“벨벳의 몫이겠지.”

언제 부실에 들어온 건지 성큼성큼 다가온 신유성은 벨벳을 안아 들었다.

“캬항~ 아빠!”

“유성아!”

신유성의 등장에 기뻐한 김은아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아델라의 반응은 그것보다 빨랐다.

“하지만…….”

아델라는 신유성에게 꽈악 팔짱을 끼더니 눈을 마주치고 살랑살랑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 벨벳을 보내지 말라는 제스처.

그러나 무작정 거절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벨벳을 언제나 부실에만 둘 순 없어. 우리가 저번처럼 공략을 위해 자리를 비우면 부실에는 또 오르카와 벨벳만 남게 돼.”

신유성의 말에 스미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작정 거절하기에는 스미레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거기다…… 같은 나이대의 친구를 만들어보는 건 무척 중요한 경험이니까요.”

반대파인 아델라조차 멈칫할 정도로 합리적인 이야기에 메이린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그렇죠. 당신들이 벨벳의 교육까지 맡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재들 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에게는 헌터로서 업무가 있으니까요.”

결국 모두의 시선은 벨벳에게 한데 모였다. 부담되는 시선 속에서 신유성에게 안겨 끄으응- 고민을 하는 벨벳.

‘거기 가면 친구를 사귈 수 이써……. 공부도 할 수 이써! 하지만 집에 올 때까지 엄마 아빠를 못 봐…….’

마음 같아선 벨벳은 늘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엄마 아빠가 무척 바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캬우으음…….”

점점 깊어지는 벨벳의 고민.

일반적인 경우 드래곤은 헤츨링 기간 동안 둥지에서 빈둥거리며 아주 긴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일찍 사회를 향해 걸음을 나서는 건 드래곤의 사회에선 드문 일.

하지만 벨벳의 부모는 인간이었고 벨벳은 인간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드래곤이었다.

인간의 공부를 하고 인간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과정.

“벨벳- 정했어!”

신유성에게 안겨 번쩍- 검지를 든 벨벳은 결국 선택을 내렸다.

*     *      *

“입학 선물이라……. 오래 쓸 수 있으면서도 꼭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야겠네요!”

포켓이 있는 벨벳과 에이타의 학생들에게 가방은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상징성이 있었다.

“그러게 알에서 태어난 게 어제 일 같은데 벌써 입학이라니. 애들은 너무 빨리 큰다니까.”

감개무량한 듯 김은아가 어른 같은 이야기를 하자 스미레는 후훗- 하고 웃었다.

“맞아요! 정말이지 아이들이 크는 건 얼마나 빠른지…… 전 제 동생들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랐다니까요?”

화기애애하게 김은아와 스미레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와중에 아델라는 벨벳과 함께 물건을 골라왔다.

“……자, 이건 어떻습니까?”

아델라가 가져온 괴상하게 생긴 기계 장치는 이름조차 어려운 마나역학 위치변환장치.

“이, 이게 뭐죠?”

스미레가 좀처럼 알 수 없는 기계 장치에 떨떠름한 얼굴로 묻자 아델라는 진지하게 답했다.

“마나역학 위치변환 장치는 마나구조를 변환해 전파 변환을 일으킬 수 있는 엄청난 물건입니다. 마나 반응으로 상대의 교신을 차단 할 수 있죠.”

에이타 킨더가든을 정복할 생각이 아니라면 상대의 교신을 차단하는 기계 장치를 대체 어디다 써먹으려는 걸까.

“그, 엄청 좋은 물건 같지만…… 그래도 입학 선물로는 안 어울리지 않을까요?”

결국 아델라의 아이디어는 결렬.

흠- 하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김은아는 자신도 물건을 하나 가져왔다.

“아니면 이건 어때? 지금 헌터들한테 엄청 유용한 물건이래. 일명 음식 워프 장치! 집에 있는 냉장고랑 연동해서 간식 같은 거도 꺼내 먹을 수 있대.”

“와아! 입학 선물에 어울리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엄청 유용하겠네요!”

하지만 이내 가격표를 본 스미레는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렸다.

‘어, 어라…… 1억, 2천?’

정말 이게 가격일까?

실수로 숫자 0을 4개는 더 붙인 게 아닐까?

“새, 생각해보니 다른 선물이 좋을 거 같아요…….”

상상을 초월한 가격에 스미레가 도로 워프 장치를 가져다두자. 아델라는 다시 신기해 보이는 물건을 가져왔다.

“밴드 포켓에 장착이 가능한 소형 마취 총입니다. 이렇게 버튼을 누르면 발사되죠.”

“어, 엄청나! 마취총! 이것만 있으면 다 잠재울 수 이써-!”

벨벳은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이번에도 스미레는 허락할 수 없었다. 아무리 헌터 교육을 받는 곳이라고 해도 이건 입학 선물. 마취총이 어울리진 않았다.

“그, 아무래도 다른 게 좋을 거 같아요…….”

“아니면 이건 어때?”

이번에도 김은아가 내민 건 억 단위의 물건이었다. 어떻게 가져오는 물건마다 억을 우습게 넘을까?

금전 감각이 자신과 다른 건 알았지만 이건 너무한 게 아닐까?

결국 체념한 스미레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어……. 그냥 제가 전부 고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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