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3화
세계에서 최정상으로 손꼽히는 설비 덕분에 가온 아카데미의 트레이닝 룸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누군가 트레이닝 룸에 입장했다고 주변의 관심이 모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저기 봐. 아델라다!”
“와, 진짜 오랜만에 보네……. 엄청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탈리아에서 돌아왔다더니. 얼굴 보기 힘드네. 그래도 진짜 예쁘다.”
“근데 아델라 옆에 같이 있는 꼬마는 뭐야?”
“너 벨벳을 몰라?”
각자 훈련에 집중하고 있던 트레이닝 룸의 분위기는 아델라의 등장에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물론 아델라는 학생들의 시선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몸을 숙여 벨벳과 눈을 맞췄다.
“벨벳. 여긴 트레이닝 룸이에요. 벨벳의 입장 카드도 만들었으니 원할 때마다 들어올 수 있어요.”
“캬아아…… 사람들이 엄청 많아!”
확실히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보니 벨벳은 신기한 모양. 사실 지금까지 벨벳은 아카데미를 돌아다녀도 건물의 밖만 보았을 뿐 이렇게 건물의 안을 직접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신기한가요?”
“캬항! 여기는 뭔가 상쾌해! 마나가 완전 시원시원이야!”
역시 벨벳은 드래곤답게 마나 밀도가 높은 장소를 오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자주 와야겠군요. 벨벳은 저와 함께 수련하게 돼서 기쁜가요?”
“응응! 벨벳은 아델라 엄마랑 같이 열심히 수련해서 착한 드래곤이 될 거야!”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작 데리고 올 것을. 아델라는 빙긋 웃으며 벨벳과 함께 트레이닝 룸 중 하나에 입장했다.
[아델라 오르텐시아 님이 테스트 룸에 입장하셨습니다.]
[벨벳 님이 테스트 룸에 입장하셨습니다.]
“아델라가 저 꼬마랑 같이 들어가는데?”
“꼬마는 그냥 구경하러 온 게 아니었나?”
어딜 봐도 어린아이에 불과한 벨벳이 아델라와 함께 테스트 룸에 들어가자 학생들은 좀처럼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과연 무엇을 하려는 걸까?
비록 거리가 멀어 대화는 들리지 않아도 투명한 유리 너머로 아델라와 벨벳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명확히 잘 보였다.
“여긴 테스트 룸. 벨벳이 가진 마나의 성질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벨벳. 마나의 성질은 모두 제각기 다르다는 건 알고 있죠?”
“캬응! 알고 이써! 마나는 뾰족뾰족, 찌릿찌릿! 따뜻따뜻이야!”
벨벳의 설명은 좀처럼 알아듣기 힘들지만 아무래도 뜻은 통한 모양. 아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에 마나를 피워 올렸다.
사아아-
아델라의 푸르른 마나는 눈꽃처럼 흩날렸다.
아델라가 발현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마나였다. 그것이 발하는 푸른빛은 가장 순도 높은,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마나의 빛깔이었다.
“기본적으로 마나는 이렇게 투명하고 파란빛을 발하지만 개개인이 가진 마나의 성질이 가미되면 형태가 달라집니다.”
사아악- 쩌적!
아델라의 손위에서 마나는 얼음 결정처럼 뭉쳐지고 부서짐을 반복했다. 이게 바로 아델라의 성질이 가미된 마나. ‘차가움’의 성질을 가진 마나의 형태인 것이다.
“캬오! 완전 꽁꽁이야!”
“후훗, 꽁꽁이라…… 귀여운 이름입니다. 자, 벨벳? 이렇게 가공된 형태의 마나는 대부분 특성을 각성할 때 정해지는 바꿀 수 없는 성질입니다. 벨벳의 마나도 어떤 형태인지 궁금하지 않은가요?”
아델라가 본격적인 수련을 하기 전에 테스트 룸으로 벨벳을 데려온 건 ‘마나의 형태’ 그러니까 벨벳이 가진 마나의 성질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 형태를 파악하고 어떤 마나 성질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그걸 토대로 효율적인 수련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습니다.’
벨벳은 레드 드래곤이다.
거기다 체내의 마나로 원할 때마다 멋진 불을 뿜어내는 걸 보면 아무래도 불꽃과 관련된 붉은 계통의 마나를 발현할 게 분명했다.
“으으음…….”
그러나 벨벳은 이해가 되질 않는 듯 마나를 발현하기 전에 계속 고민에 빠져 있었다.
“벨벳 이해가 가지 않아.”
“아…… 벨벳. 제 설명이 어려웠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벨벳이 아델라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꽁꽁이인지 따끈따끈인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거야?”
인간의 상식으로 드래곤을 가르치려 했기 때문이었다. 벨벳은 설명 대신 직접 보여주기로 결심한 듯 후으읍- 숨을 들이켰다.
사아아- 쩌억!
벨벳의 마나는 순식간에 손바닥 위에 모이며 얼음 결정으로 바뀌었다. 이건 아델라가 가진 ‘차가움’의 마나 성질로 냉기 계통에 어울리는 형태였다.
“이건 제가 보여준…….”
하지만 벨벳은 지금까지 냉기 계통 기술은 보인 적이 없었다.
설마 방금 본 것만으로 아델라의 마나 성질을 흉내 낸 것일까?
“캬으-! 압!”
그리고 그 궁금증은 벨벳의 손바닥에서 푸른색의 얼음 결정이 타오르는 붉은색 불꽃으로 바뀌었을 때 해결됐다.
“벨벳……. 설마 마나 성질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건가요?”
“캬오! 맞아! 똑같이 하려고 하니까 됐어! 벨벳 은아 엄마랑 스미레 엄마 것도 할 수 이써!”
아델라가 놀란 반응을 보이자 자신감이 붙은 벨벳은 김은아 특유의 푸른 전기와 스미레 특유의 보랏빛 마나도 순식간에 손바닥 위로 발현해냈다.
“벨벳 다른 것도 가능해!”
아무리 벨벳이 갓 태어난 헤츨링이라도 드래곤은 드래곤. 인간의 상식으로는 좀처럼 접근할 수 없었다.
아델라가 특성을 각성한 5살 때부터 ‘냉기’를 자유자재로 다뤄온 천재라면 벨벳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천재인 것이다.
‘정말 엄청난 재능……. 이런 벨벳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워 주는 게 부모의 몫이겠죠.’
자식을 바라보는 한 명의 부모로서 너무나도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델라.
하지만 훈훈하고 평화로운 테스트 룸의 분위기와 달리 바깥의 학생들은 이미 패닉이었다.
“방금 뭐야! 너도 봤어!?”
“당연히 봤지! 대체 저 꼬마 마나 성질이 몇 개야!”
“내가 본 것만 4개? 5개? 아니 세지도 못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벨벳은 쉴 틈 없이 천재를 자칭했지만 진실을 안다면 ‘천재’라는 단어도 겸손의 범주에 속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벨벳은 사도닉스와 신유성의 재능을 백분 이어받았기에, 드래곤 중에서도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 몰라? 벨벳은 드래곤이라고~ 전에 불 뿜다가 교장 선생님 꽃밭도 태워 먹었어.”
“뭐? 입에서 불을 뿜어?
“나는 교장이 가만히 있었다는 게 더 신기한데.”
“그냥 허허 웃기만 하던데?”
“쟤 장난 아냐. 전에는 범고래 인형 타고 강에서 놀던데.”
“난 바다에서 봤어.”
“아주 하늘도 날았다고 하지?”
주변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벨벳의 엄청난 무용담들이 터져 나왔다.
* * *
모든 마나 성질을 다룰 수 있는 벨벳의 엄청난 재능. 벨벳의 두 번째 교사가 된 스미레는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벨벳…… 제가 3달이 걸린 걸 3분 만에…. 정말 대단해요오…….”
흑마술의 원리를 가르쳐 주자마자 하급 패밀리어와 계약을 성공하다니? 그리고 소환까지 하다니?
“캬항~ 고양이 완전 귀여워!”
벨벳이 소환한 검은 고양이는 특별한 감지 능력이 있는 하급 패밀리어였다. 대부분 누군가를 추적할 때 소환하는 패밀리어로 하급 중에서는 소환 난이도가 높았다.
“냐앙~”
하급 패밀리어답게 구울이나 해골처럼 인간의 말은 사용 할 수 없지만 지능이 높아 의사소통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벨벳. 나중에는 스미레 엄마처럼 본드래곤도 소환하고 시퍼!”
자신감이 붙은 벨벳은 엄청난 포부를 밝혔지만 스미레는 그 포부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벨벳이라면…… 정말 본 드래곤을 소환하는 게 가능할지도…….’
스미레는 벨벳을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미레는 벨벳의 사회성을 높이고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을 만들어주기 위한 많으 고민을 했다.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이라면 교육원이나 유치원에서 그걸 배우겠지만 벨벳에겐 너무나 특별한 구석이 많았다.
‘아니 뛰어나다고 해야겠죠.’
그렇다.
벨벳은 같은 나이대의 어린아이들과 교육을 받기에는 너무 똑똑했다. 나이는 기껏해야 5살에서 7살 정도로 보이지만 말하는 것도 어른스러웠고 지식의 수준도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정말 고민이네요…….’
그렇다고 같이 있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매일 부실에만 둘 수는 없는 것도 사실.
‘벨벳의 사회성을 기르려면 타인과 어울리고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많은 친구를 사귀고 어울리는 것보다 좋은 건 없는데…….’
벨벳이 마나의 천재라면 스미레는 동생이 3명이나 있는 육아의 천재였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사회성을 기르고 가족이 아닌 타인과 어울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있었다.
어쩔때는 순수한 아이 같고.
어떤 순간에는 또 너무나 비범한 것이 벨벳.
‘지금은 오르카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당분간은 부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겠지만 스미레는 벨벳의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번처럼 먼 곳으로 공략을 가면…… 벨벳은 또 혼자 있게 되니까요.’
벨벳은 그런 스미레의 고민이 느껴졌는지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왔다.
“스미레 엄마 표정이 굳어써…… 이건 고민하는 사람의 마나야!”
스미레는 이렇게 착한 벨벳을 보면 마음 같아선 계속 부실에서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임감을 가져야 할 순간.
“벨벳은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즐겁나요?”
스미레의 질문에 벨벳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자! 벨벳은 똑똑해지는 게 즐거워! 그래서 오르카랑 책을 많이 읽어!”
그래 이건 물으나 마나한 질문이었다. 드래곤인 벨벳보다 배우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진 않아요?”
정말 중요한 건 이것.
가족 이외의 타인을 만나고 누군가를 사귄다는 게 벨벳에게 즐거운 일인지가 중요했다.
누구보다 벨벳의 어머니로서 육아에 진지한 스미레의 질문에.
“캬우음…… 그건…….”
벨벳은 한참 고민을 했다.